아버지
1
“나의 아버지가 나의 곁에서 조을 적에 나는 나의 아버지가 되고 또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고 그런데도 나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대로 나의 아버지인데 어쩌자고 나는 자꾸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아버지가 되니 나는 왜 나의 아버지를 껑충 뛰어넘어야 하는지 나는 왜 드디어 나와 나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노릇을 한꺼번에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냐.”
2
아버지. 육십 년만에 그 아버지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그 아버지를 소리 내어 부를 수 있을까. 가슴이 떨려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정중한 자세로 스물 일곱에 세상을 하직한 아버지를 불러본다. 처음, 아버지라는 단어는 입술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 식구가 살던 시골집에도 없었으며, 동네 노인당에도 없었으며 섬 곳곳 아무 데도 없었다. 아버지는 그냥 스물 일곱 나이에, 그 와중에 휩싸여 그 나름대로 역할을 수행하며 조국통일을 염원하다, 그냥 저승으로 떠난 그런 사람에 불과했다.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육지에서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아버지는 해방이 되자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두 살배기 아들인 바로 내가 기다리는 고향집에서 해방을 실감하며 열심히 해방정국의 일원으로 땀을 흘렸다. 그러던 아버지가 1949년 탕탕, 서문비행장에서 총살형을 당하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냥 아무 변명도 못하고 말없이 떠나버렸다. 그렇다면 당시 정치의 실세였던 이승만은 아버지의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 대하여, 육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죽음의 사연에 대하여 말을 꺼낸다는 자체가 참으로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도대체 아버지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가.
3
“미군은 일본의 항복조건을 수락하고 한국의 재건과 질서 있는 정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한국에 상륙하였다. 우리의 사명은 엄격한 것이며 또한 확실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한국인이 무분별하거나 경솔한 행동은 귀중한 생명을 다치게 하고 아름다운 국토를 황폐시켜 재건을 지체시킬 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지금의 여건은 한국인들이 다같이 추구하는 바가 아닐지 모르나 장래의 한국을 위해서 냉정과 평정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떠한 동란도 일어나서는 안되고 용납될 수도 없다. 한국국민은 장래의 재건을 위하여 맡은바 생업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지시를 충실히 지키면 한국은 급속히 재건될 것이며 동시에 민주주의가 보장되어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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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제주도 행정당국입니다. 평화스러운 섬에 한을 남겼던 4․3사건이 발생한지도 올해로 6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4․3사건으로 인한 희생자들의 한을 풀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이제 4․3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정부차원에서도 여러 가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4․3 영령들의 아픔을 풀어 드리고 우리 가슴에 맺힌 한, 섬사람들의 명예 회복은 물론 4․3의 올바른 자리 매김을 위하여 공무원들은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또한 4․3 영령들의 아픔을 풀기 위한 4․3 위령 공원을 봉개동 부지에 조성하였습니다. 이처럼 4․3 해결은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4․3 희생자 신고를 받기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신고를 하지 않은 분이 있습니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신고되는 자료로 정부차원에서 희생자 및 유족으로 심사 결정되기 때문에 빠짐없이 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신고에서 누락되면 다시는 신고할 기회가 없으므로 신고절차가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신고서식과 같이 보내드리오니 반드시 신고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4․3 문제 해결은 유족 여러분의 참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4․3 문제 해결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바칩시다. 특히 당시 미국의 역할이 과연 정당하였는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4․3 사건이 일어난 지 육십여 년이 지나도록 가슴속에 응어리를 품고 살아 오신데 대하여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5
"시민․동포들에게! 경애하는 부모 형제들이여! 4․3 오늘 당신님의 아들 딸 동생은 무기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매국 단선단정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조국위 통일 독립과 완전한 민족 해방을 위하여! 당신들의 고난과 불행을 강요하는 미제 식인종과 주구들의 학살만행을 제거하기 위하여! 오늘 당신님들의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풀기 위하여! 우리들은 무기를 들고 궐기하였습니다. 당신님들은 종국의 승리를 위하여 싸우는 우리들을 보위하고 우리와 함께 조국과 인민의 부르는 길에 궐기하여야 하겠습니다.“
6
아버지는 육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상의 올가미만 식구들에게 씌우고 영영 소식이 없지만, 물론 아버지가 저 세상 사람이 된 것은 주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는 그 동안 아버지 죽음에 대해서만큼, 남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끼며 살아왔다. 아니 벽에 꼭꼭 숨기고 영영 꺼내지 못하는 사실로 여겨왔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그것도 해방 직후 섬 사태 때문에 돌아갔다는 사실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솔직히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무척 싫었다. 그런데 당국은 육십여 년이나 지난 그 한 많은 사실을 갖고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재야단체에 속한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정확하게 전후 사정을 파악하여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무턱대고 신고만 하라니, 대체 어떻게 되어 가는 사실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 사건의 내면에 깔린 아픔은 생각지도 않고 멋대로 당국은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불러 보았다. 아버지, 당신은 그냥 무고하게 세상을 등진 사람입니까? 그냥 이데올로기 희생물이 된 사람입니까? 강대국의 논리에 의하여 그냥 죽어간 사람입니까? 당신의 실체를 어떻게 규정해야 옳겠습니까, 아버지. 정말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를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아니 죽임을 당하였다. 나는 일년에 한번 아버지 제사를 지내는 것이 고작이다. 시신 없는 아버지의 영을 모시는 것이 마음 아팠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아버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누구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내 아버지가 돌아갔는데 혹시 우리 아버지에 대하여 아는 사실이 없습니까? 아버지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죽었을까요? 그러나 누구에게나 물을 수 없었다. 아내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냥 아버지에 대한 모든 사실을 묻어두고 싶었다. 묻어두는 것의 실체가 딱, 무엇이라고 결론 내릴 수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주위 분위기가 너무 어수선하게 변하면서, 아버지를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앞으로 그 사태에 대한 올바른 자리 매김은 이루어질까? 당신 죽은 영령들의 아픔을 풀 수 있을까. 아버지에 대한 신고는 어떻게 할까? 이번에 신고가 누락되면 다시는 신고할 기회조차 없다는데, 내가 나서서 아버지의 죽음을 알려야 할까? 아버지의 얼굴과 음성이 아니 아무 것도 기억이 없는데, 그리고 시신도 찾지 못했는데 어떻게 신고를 한단 말인가? 그런데 당국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닐까? 아버지가 이 세상을 등진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신고를 할 수 없으면, 다음 기회라도 신고를 하는 것이 원칙이 아닌가. 신고에서 누락하면 다시는 신고할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어째서 당국은 시민을 향하여 무자비하게 언어의 폭력을 휘두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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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는 안 된다며, 주위의 사람들을 모으러 다녔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며,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옛날 농업학교 동창들과 이웃마을 중학원에 다니는 학생들도 만나고 다녔다. 모두가 주인이 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겠다며 마을 청년회를 조직하고 관덕정에서 열린 3․1정 기념행사에도 다녀왔다. 그 날 시위군중에게 응원경찰관이 무차별 발포, 사상자를 내면서 아버지의 분노는 극에 달하였다. 더욱이 사망자들은 초등학생, 젖먹이를 안은 아낙네, 50대 농부 등 대부분 관람군중이라는 사실이 아버지를 격분시켰다. 사건발생 뒤부터 대규모 총파업이 전개되었으며, 학교가 항의휴교를 했고,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미군정은 무력을 사용하여 진압하였으며, 파업을 중지하지 않으면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는 경찰 간부의 발언은 미군정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기도 하였다. 이때 미군정은 응원경찰과 서북청년 단원들이 대거 제주도로 끌어들였다. 그들은 빨갱이를 소탕한다는 명분 아래 조금이라도 불평하는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연행, 투옥 고문하였다. 인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듭시다. 미국을 믿지 맙시다. 우리 나라를 두 동강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외치고 다녔다. 남한만의 단독 선거는 결코 안 됩니다. 아버지가 집에 들르는 날도 줄어들었다.
8
세상에는 죽임의 역사가 존재한다. 그것은 처절한 몸부림의 역사이며 아우성의 역사이다. 섬은 죽임이며, 육지는 정복이다. 정복당한 섬에서는 항상 죽임이 뒤따른다. 육지는 갖은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섬과 인연을 맺으면서, 섬을 수탈하고 섬을 짓밟았고, 섬을 능멸하였다. 죽임으로 인한 고통을 하나 하나 열거하기에는 힘이 너무 벅차다. 섬을 향하여 총을 겨누고, 섬을 향하여 칼 부리를 휘두르는 자들을 하나 하나 열거하며, 왜 그들이 그러한 행위를 자행해야 했는지 생각하는 일은 힘겨운 일이다. 아아, 지겨운 세월이여. 아아, 통한의 역사여. 섬에 침입하여 섬사람들을 약탈하고, 섬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던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의 악랄한 행동으로 섬은 찢겨지고, 섬사람들은 고통의 신음소리를 밤새도록 내뱉었다. 육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신음하고 있으며 울분을 삼키고 있다. 섬사람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하며 약탈한 놈들은 육지에서 건너온 놈들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섬사람들을 빨갱이 사냥이라는 미명으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총알 밥으로 만들었다. 낮이나 밤이나 가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빨갱이 누명을 쓰고 죽어갔다. 섬은 역사적으로도 항상 약탈을 당했던 곳이다. 과거 섬사람들은 육지 놈들의 종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항상 죽음의 냄새가 났다. 육지 놈들이 총칼을 들고 몰려와, 섬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광경이 항상 눈앞에 선하게 펼쳐졌다. 구릉과 골짜기 어느 곳이든, 항상 죽음의 냄새가 심하게 풍겼다. 파도까지 죽음의 냄새를 싣고 세차게 밀려들어 사람의 애간장을 녹였다. 당시, 저 바다를 건넌 정복자들은 항구를 통해 보무도 당당하게 땅을 지긋이 밟고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가고 총을 쏘았다. 정복자들 앞에서 사람들은 우수수 쓸어졌다. 불법적인 계엄령을 선포하여, 섬사람들을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곳곳에서 자행된 학살 만행은 너무 끔직하였다. 가슴이 떨려 당시 그 피해 지역을 지금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다. 아아, 섬의 모든 곳이 학살 터였다. 정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천혜의 아름다운 관광지 모두가 학살 터였으니,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화북 곤을동․별도봉․관덕정․관음사․돔박웃홈․리생이․ 어우눌․월평성․ 주정공장․ 죽성․조천 낙선동성․너분숭이․도툴굴․목시물굴․와흘굴․이덕구산전․조천중학원․한림 만벵듸․진동산․ 애월 머흘왓성․개수동 ․벌레못굴․영모원․원동․자리왓․자운당․구좌․중문 녹하지주둔소․천제연주차장․소남머리․시오름주둔소․영남동․천서동․안덕 무동이왓․삼밧구석․양씨가족 ․큰넓궤와도엣궤․ 임문숙가족헛묘․ 표선 버들못․한모살 ․대정 사만질앞밭 ․섯알오름탄약.․성산초교옛건물․우뭇개동산 ․터진목․남원 ․송령이골․수악주둔소․오림반․현의합장묘옛터․세화리 연두방․다랑쉬굴․종달리․연평리․교래리․선흘리․신촌리․신흥리․와흘리․조천지서 앞밭․북촌초등학교 옆밭․함덕해수욕장․광령리․고내리․구엄리․상가리․상귀리․애월 파군봉․봉성리․어음 빌레못․소길리․원동마을․자운당․학원동․ 비학동산․하가리․상명리․수원․봉근굴․한림 신갱이서들․한림 옛오일장터․협재리․한원리. 이제부터라도 학살 터마다 안내문을 설치하여, 그곳이 사람들이 무참하게 죽어간 곳임을 밝히고 관광객들이 그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참혹한 역사가 펼쳐졌는데, 해방 당시 한국에서의 미국의 역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미국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팔짱만 끼고 있었을까. 아니다. 미국은 세계를 제패한 대제국이다. 모를 리가 없다. 미국은 분명히 사태가 났을 당시 제 역할이 있었다.
9
세찬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은 집안에 꼭꼭 숨어서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그것은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상 돌아가는 사태가 모든 걸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바람은 마루 덧문을 마구 흔들더니, 횅하니 마을 입구로 사라졌다. 어둠은 자정을 붙들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마주 앉아 긴 한숨을 쉬었다. 회오리바람이 문풍지 사이를 뚫고 방으로 새어 들어왔다. 세상 돌아가는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었다. 산에 오른 사람들이 무장을 하고, 경찰과 선전 포고를 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할머니는 옆방에서 우두커니 앉아 아들 내외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할머니 옆에는 두 살배기 손자 녀석, 바로 내가 쿨쿨 잠에 빠져있었다.
"너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어. 나도 이제 어디론가 몸을 피해야겠어.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도망갈까 생각도 하고 있어. 너무 심하게 조여 오고 있어. 일단 목숨은 붙여야 할 것 같애. 잡히면 죽어. 목숨은 살려야지."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 물며 불안한 모습을 띄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갈피를 잡지 못하는 표정이다. 사람들을 따라 산으로 올라야 하나. 토벌군들이 계속 조여 오는데,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떠나면 가족들은 어떻게 될까. 아버지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이제 그만 주무시죠.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시고."
어머니가 근심이 어린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천장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다시 긴 한숨을 길게 쉬었다.
이 때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발자국 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렸다. 누굴까. 무장대원들일까. 어머니가 몸을 부르르 떨며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아버지가 문을 살짝 열고 가만히 밖을 내다보았다. 누가 마당으로 들어서는 그림자가 보였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날세."
그림자가 나직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누가 급히 방으로 들어섰다. 윗동네에 사는 아버지의 농업학교 동창생이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두리번거리면서 주위를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내일 새벽 마을을 뜨기로 했네. 일단 몸을 숨겨야 이 난리를 피할 수 있어. 자네도 같이 산으로 올라 일단 몸을 숨기지."
아버지는 이미, 그를 따라 산에 오르리라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일찍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몰랐다. 아버지가 조용히 일어섰다. 어머니와 한쪽 구석에서 잠을 자는 아들 녀석을 쳐다보았다.
"여보, 내 다녀오리다."
어머니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여보, 당신이...........차마........이럴 수가.........."
어머니는 울음을 참고 있었다.
할머니도 옆방에서 뛰쳐나왔다.
"집에 있어도 잡히면 죽어. 일단 도망이라도 가야지."
아버지는 댓돌에 놓여있는 신발을 꿰고 친구를 따라 마당으로 나섰다. 두 사람은 총총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 아버지는 식구들 앞에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10
이불 속으로 파고들다 불쑥 일어나 앉았다. 심한 갈증이 느껴졌다. 두리번거리며 방 구석구석을 한참 둘러보았다. 목을 축일만 한 것이 없을까. 자리끼라도 준비할 걸. 손을 뻗고 물 컵을 찾았다. 책상 위에 컵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다. 이불 속에서 빠져 나와 엉거주춤 컵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 듬뿍 물을 따르고, 컵에 입술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참 앉아 있다가, 다시 컵에 물을 따르고 목젖으로 넘겼다. 속에서 열이 물컥물컥 솟아오르며 가슴이 울렁거렸다. 아내는 세상 모르게 잠에 빠져있다. 건넛방 아이들도 잠을 청했는지 조용하다.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벽시계가 자정을 알렸다. 책상 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그리고 낮에 우체부가 건네준 우편물을 꺼냈다. 시장이 보낸 행정 우편물이다. 낮에 우체부가 건네주는 우편물을 받고 참으로 어리둥절하였다. 시장이 두툼한 우편물을 나에게 보낸 것이다. 혹시 잘못 배달된 것이 아닐까, 하고 처음은 의심까지 하였다. 그런데 제주시 이도2동 777번지라고 주소까지 적혀있었으며, 이름 세 자도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봉투 안에는 4․3 사건 희생자 신고 방법과 절차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시장의 인사말과 함께 여러 가지 다른 자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나는 다시 컵에 물을 따르고 쭉 들이 마셨다. 시 당국은 나의 아버지가 4․3 사건 희생자라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이렇게 공문까지 보냈다. 한편으로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우르르 무너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4․3 사건 희생자. 아버지는 결국 죽어서 육십 년만에 이렇게 공문 한 장으로 나에게 나타났다. 달랑 공문 한 장으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내보이며 나를 옥죄이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어둠이 삼켜버린 사위를 살폈다. 덜컥 겁이 났다. 분단 시대를 살아간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서면서, 나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이제 신고를 미룰 것이 아니라 앞장서서 신고를 해야 하겠구나. 나는 다시 물 컵을 들었다. 그리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마셨다. 행정 당국은 지금까지 안경을 끼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구나. 그들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노려보고 있었구나. 정말 이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육십 년 동안 감추었던 비밀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지난 육십여 년 동안 속앓이를 해온 긴 침묵이 하루아침에, 공문 한 장으로 깨어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죽었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그 사실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 살아왔다. 심지어 아내와 아들에게까지 그것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설명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아버지가 남쪽 당국에 의하여 사살되었다는 이유가 깔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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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대원들은 차를 몰고 가끔 서문 비행장에 나타났다.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수상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조사를 하고 총살을 시켰다. 그들은 끌고 온 사람들에게 각자 구덩이를 파게 하였다. 그리고 일렬로 세우고, ‘겨눠 총!’ ‘쏘아 총!’ 명령을 내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탕. 탕탕탕. 총소리에 사람들은 우르르 쓰러졌다. 그들은 시신들을 발로 하나씩 구덩이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모래를 긁어모아 그곳을 메웠다. 한 구덩이에 여러 개의 시신들이 함께 묻는 경우가 많았다. 죽은 사람들은 정식 재판을 받거나, 어떤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토벌대원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잡아온 양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학살 터는 서문비행장만이 아니었다. 도내 곳곳이 학살 터로 변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총질도 다반사였다. 총소리는 도내 곳곳에서 자주 들렸다. 특히 읍내가 가까운 서문 비행장 자리에서는 총소리가 더욱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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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 희생자 신고접수가 3차례 이뤄졌는데도 불구하고 4․3희생자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가 4․3연구소와 합동조사반을 편성, 제주시 도두동과 북제주군 조천읍 북촌리 등 2개 마을을 대상으로 4․3사건 인적피해 상황을 조사한 결과 제주도 도두동에서는 4․3사건으로 모두 323명이 피해를 보았다. 또 조천읍 북촌리에서는 4․3사건으로 모두 469명이 피해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이들 2개 마을 피해자 가운데 미신고 희생자는 도두동 27명과 북촌리 18명 등 이들 2개 마을에서만 45명에 이르렀다. 제주도는 북촌리의 경우, 미신고자 대부분이 당시 5세 미만의 어린이들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도두2동의 경우 비행장에 마을이 편입되면서 4․3당시 희생자 가운데 무연고자가 많은 것도 미신고자를 양산한 한 요인이 됐다고 덧붙였다. 제주도는 이번 조사에서 도두동의 경우 4․3당시 가옥 385동이 소실됐으며 북촌리는 가옥 591동이 소실된 것을 비롯해 가축피해 522마리, 선박피해 13척 등도 조사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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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적막에 쌓였다. 하늘에 별들도 총총 떠있다. 산기슭으로 바람도 잔잔하게 불어대었다. 함께 피신 온 사람들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아버지는 막사 밖으로 혼자 나와 깊은 적막에 젖었다. 아내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리고 아들놈은 그 큰 눈을 번쩍 뜨고 멀뚱거리며 나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만 참고 기다리자. 사태가 수습되면 집으로 돌아가리라. 조금만 기다려라. 그러나 상황이 너무 불안하다. 전세는 계속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일부 젊은이들은 반미구국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에 대하여 너무나 허술하게 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지금 섬사람들이 겪고 있는 엄중한 역사적 사실은 너무나 처절한 비극사가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인가. 미국이 해방된 남반부를 점령하는 첫날부터 반미 구국 투쟁사는 시작되었으며, 미국의 식민지 정책과 그의 앞잡이들의 반인민적 정책은 조국의 통일과 민족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남반부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쓰라린 시련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싸움은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거리고 있지 않은가. 나가자, 저 전선으로 나서 구국의 일념으로 싸워야 한다. 우리가 주인 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절망만이 앞을 가린다.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승리할 확신이 없다. 저 미국이라는 나라가 거대한 바퀴가 되어 작은 섬을 짓밟는 일이 정의로운 일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죽어야 하나..........정말 허망하게 끝을 맺어야 하나................ 아버지는 혼자 중얼거리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멀리 서쪽 하늘에는 별 하나가 오돌오돌 떨고 있다. 그 동안 섬사람들의 힘은 개별적으로 일어난 총파업의 대중적인 반미투쟁을 통하여 무장적 투쟁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비약적으로 강화된 애국 대열을 만들었다. 경찰과, 서북청년회를 비롯한 테러단이 안하무인격으로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과 만행, 유린과 박해가 자행되는 그러한 조건하에서 우뚝 서서 섬사람들을 위한 싸움을 계속하였다. 미군정의 폭정과 주구들의 포악한 살인 테러에서 격발된 무력 봉기로 전면적으로 전개된 무장대의 맹렬한 활동은 5․10 단선을 파탄시켰다. 아아, 이는 우리의 승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모두의 승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아버지는 담배를 끄고, 지긋이 양 이빨을 물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날이 갈수록 토벌대원들은 더욱 옥죄어 오지 않은가. 그리고 대원들은 갈수록 힘을 잃고 사분 오열이 되고 있지 않은가. 이래서는 모든 일이 너무나 절망적이다. 정말 모두 전멸하고, 적의 총부리에 살아져 가야 하는가. 아버지는 깊은 내면에서 몇 천 번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정말 그 동안 도민들의 영웅적인 투쟁은 훌륭하였다. 야수들의 대중적인 학살과 전면적인 초토화 작전을 반대하고 궐기한 여수 국방군의 애국적인 폭동도 눈으로 확인하였다. 이는 남조선 전체 사람들에게 혁명적 열정과 용감성을 고무하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빨치산 운동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 놓은 기점으로 되었다. 특히 장기간에 걸쳐 벌어진 무력항쟁을 통하여 미국의 타격과 통치 체계를 근저로부터 뒤흔들어 놓았다는데 섬사람들이 단행한 무장투쟁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승리인 업적을 남기면서도 그 반면에는 구체적인 타산도 없는 투쟁 조직과 운동 행정에서 지도성의 결함은 혁명 역량에 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 막대한 희생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아아, 정말 이제 이렇게 끝나야 하는가. 북쪽과의 연계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 않은가. 점점 더 불안하다. 그렇다면 섬사람들의 봉기도 역시 종파적 모험적 책동에 의하여 지방주의적 편향에서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까. 그리고 반동 세력의 대세에 밀린다면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아버지는 계속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렸다. 멀리 초소에서는 동지들이 깊게 잠에 빠져있었다. 밤은 더욱 적막에 쌓여 갔으며, 하늘에 별들도 추워 오돌오돌 덜기 시작했다. 산기슭으로 불던 바람도 산을 넘을 듯 하였다. 그러나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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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은 벽이다. 벽은 장애물이다. 장애물은 막힘이다. 4․3이라는 벽이 육십 년 동안 모든 것을 막아버렸다. 입을 막고 귀를 막고, 숨통을 막아 버렸다. 사람들의 삶은 꽉꽉 닫혀버렸다. 4․3은 누구나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불문율이다. 4․3이란 장애물로 사람들은 입을 함부로 놀리지 못했다. 4․3으로 사람들은 아픈 가슴앓이를 계속 하였다. 4․3의 벽은 사람들의 만남과 대화를 가로막아 버렸다. 학문과 학문을 예술과 예술을 만나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올가미를 씌워 섬사람들을 뿌리 달린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람들은 아무도 몰래 벽을 향하여 비난을 퍼붓고 침을 뱉었다. 오랜 세월 숨을 죽이며 살아가는 것도 운명으로 받아드렸다. 뿌리 달린 사람들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 사람들을 옥죄었다. 그렇다. 벽은 막힘이다. 4․3도 역사의 막힘이다. 그런데 4․3의 막힘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 단단한 막힘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육십 년 동안 벽을 사이에 두고 등을 돌리고 살았던 남과 북의 사람들이 벽을 하나씩 허물고, 이제 숨통을 터 나갈 수 있을까. 그 동안 사람들은 서로 사상의 올가미에 씌워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 많은 벽들이 언제면 다 무너지고, 화합의 마당으로 펼쳐질 수 있을까. 벽이 무너지고 양쪽이 통합되어 새로운 노래가 울려 퍼진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삼천리 강산을 밝게도 비치네/짓밟힌 조선에 동은 트리라/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캄캄한 밤하늘 바라다보니/신음하는 조국강산 어리여 오네/변치 말자 혁명에 다진 그 마음/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간악한 강도 일제 쳐 물리치고/삼천리에 새별이 더욱 빛날 제/조선아 자유의 노래 부르자/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북쪽 노래가 남쪽 텔레비전에서 들려오고, 남쪽 장관이 북쪽 장관과 만나 국사를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북쪽 사람들이 남쪽을 방문하고 남쪽 사람들이 북쪽을 방문하면서, 벽은 하나씩 무너지고 있었다. 벽이 와르르 모두 무너지는, 그 물꼬가 터지는 날은 과연 언제일까. 아아, 누가 뭐라고 해도 벽은 하나씩 무너지고 있었다. 나와 아버지와의 사이에도 그 벽은 존재하고 있었다. 벽이 아버지와 나를 가로막고, 결코 무너질 수 없는 장애물로 버티고 있었다. 아버지는 벽 뒤에 숨어서 꼼짝없이 그 동안 역사의 반역자가 되어 나를 구속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육십 년 동안 아버지의 실체를 감추고 살아왔다. 상상해 보라. 만약 아버지의 실체를 인정한다면, 이 남한 사회에서 대체 어떻게 생을 유지하며 살아야 할지, 당신은 짐작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빨갱이 아들이 되어, 심지어 빨갱이가 되어 저 아득한 동굴 속에 갇혀 영원히 나올 수가 없었으리라. 아아, 나는 빨갱이 아들이다. 나의 핏속에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아,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래서 나는 남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으로 지금까지 모든 사실을 무조건 숨겼다. 심지어 아내와 아들에게도 아버지의 실체를 숨기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 빨갱이 누명이 벗겨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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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매일 작업장으로 끌려나갔다. 손발은 이미 피멍이 들었고, 아버지는 그날 밤 산으로 오른 후 소식이 없다. 어느 날 작업을 끝마치고 돌아온 밤이었다. 아들을 품에 안고 잠에 골아 떨어졌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잠에서 깨어 주섬주섬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머니 있나? 누가 숨을 죽이고 어머니를 불렀다.”
“ ............?”
어머니는 오금이 바싹 조여옴을 느꼈다.
“아주머니 집에 있나?”
매우 굵고 우렁찬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토벌대원이 분명했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들은 이제 남편이 산행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체포하러 온 것이 분명했다. 이 일을 어찌하란 말인가. 핏덩어리 아들 녀석을 어찌한단 말인가.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들은 군화를 신은 채 우르르 방으로 들이 닥쳤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잠에 빠진 한 살 박이 아들을 내버려두고 특무대 사무실로 어머니를 끌고 갔다. 어머니는 그날 밤 서북 청년으로 구성된 특무대 군인들에게 넘겨졌다. 중위 계급장을 단 특무대장이 어머니를 끌어 앉히더니, 심문을 시작하였다.
“당신 남편 산에 올랐지?”
어머니는 특무대장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너무 무서웠다.
“당신 남편 빨갱이 맞지? 그래서 산으로 올랐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대답할 기력도 잃어 버렸다.
특무대장의 구둣발이 어머니 복부로 날아들었다. 어머니가 비명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특무대장이 다시 달려들었다. 비명소리는 취조실 벽을 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특무대원들이 어머니를 밧줄로 묶고 벽안에 가두었다. 다음 날 어머니가 다시 특무대장에게 끌려갔다.
“당신 남편이 빨갱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지금도 남편과 연락을 하고 있지?”
“집을 나간 후 연락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정신을 차리고 겨우 대답하였다. 거짓말 말아.
“내가 당신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제발, 믿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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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제주도민과 국민여러분! 그리고 제주 4․3 사건 유족 여러분과 내빈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곳 평화의 섬 제주에서 희생당하신 많은 분들의 넋을 추모하고 위로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선 4․3 사건 희생자들의 영전에 깊은 추모의 마음을 바치면서, 삼가 명복을 빌어마지 않습니다. 또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만들어낸 상처를 반세기동안 안고 살아오신 유가족 여러분과 제주도민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ꡐ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ꡑ 위원장의 자격으로 그 동안 4․3 사건의 진상을 역사에 되살리고 억울하게 가신 희생자분들과 유가족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여러 일들을 해 왔습니다. 지난달에는 여러분의 뜻을 받아들여 수형인들을 4․3 사건의 희생자로 결정하기도 하였습니다. 희생자 심사는 현재 3분의 2 이상이 진척되고 있습니다. 빠른 기한 내 마무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회의를 주재하고 많은 것을 결정하면서 평소 제가 명예 제주도민으로서 제주인들의 아픔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현대사에 묻혀진 제주인의 상처와 아픔은 너무 깊고 커서 그 어떤 위로와 사과의 말도 결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주도와 제주도민은 과거의 아픔을 승화시켜 미래로 가고 있습니다. 제주도민은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하고 한반도와 동북아, 나아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섬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저는 제주도민들의 평화 애호 정신의 기저에는 4․3 사건이라는 비극을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극복해낸 강인한 의지와 평화에의 바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민 여러분! 그리고 국민여러분! 역사는 현재의 자신을 과거와 미래로 이어주는 긴 동아줄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든, 어느 민족이든 간에 역사를 은폐하거나 왜곡하면서 그 아픔을 매듭짓지 않으면 역사의 동아줄은 스스로의 발목을 잡아 미래로의 전진을 방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분명히 매듭짓고 나아간다면 그 동아줄은 우리를 하나로 묶고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이루는 튼튼한 끈으로 변할 것입니다. 제주 4.3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억울한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과거 우리의 공과를 바로 함으로써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분들의 충정을 올바로 평가하고 억울한 희생자를 위로하여 진정한 통합의 이루어 나가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제주의 경험은 우리 역사를 재평가하고 새로 쓰는데 하나의 모범이 될 것이라 저는 감히 평가합니다. 역사의 진실을 규명함으로써 진정한 평화와 통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곳 4․3 평화공원은 역사의 진실과 화해를 상징하는 평화 염원의 성지가 될 것입니다. 참여정부는 앞으로도 과거 정부들의 잘못을 외면하지 않고 이를 올바로 밝혀내며 공적은 더욱 높이고 잘못은 분명히 사죄하면서 역사의 아픔을 치유하고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역사 앞에서 진실과 양심을 지켜나갈 것을 당당하게 촉구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제주도민 여러분! 여러분은 역사의 아픔을 딛고 평화의 섬, 아름다운 제주도를 가꾸어 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화해와 평화의 새로운 꿈을 가꾸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57년 전 먼저 가신 넋들도 지금의 여러분을 보며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모쪼록 제주만이 아닌 한반도 전체, 나아가 동북아 전체에 역사의 진실 규명과 이를 토대로 한 화해와 평화의 기운이 가득해 지도록 함께 나서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다시 한번 영령들의 명복을 빌면서 제주도의 앞날에 밝은 미래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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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무대장은 몸집이 호리호리하고 키가 작았다. 한마디로 생쥐를 연상시키는 인상이다. 그렇지만 눈을 가늘게 부릅뜰 때는 주위를 사뭇 긴장시키면서 어디에서 그런 위엄이 나오는지 모르게 날카롭다. 그가 눈을 부릅뜨며 어머니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자네 남편 빨갱이 맞지?”
“아닙니다.”
“나이가 스물 일곱인가?”
“네, 맞습니다.”
“자네 신랑은 며칠 있으면 저 서문비행장에 끌려가 사형을 당한단 말씀이야. 그런데 자네 신랑은 빨갱이 중에서도 꾀 배운 놈이더구먼. 빨갱이들은 대개 배운 놈들이 많지. 그런데 그게 제대로 배운 게 아니란 말이야.”
어머니 팔목에는 밧줄이 감겨져 있었다. 특무대장이 바싹 앞으로 다가섰다. 왼손으로 어머니의 턱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밧줄을 풀어나갔다.
“인민 대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원하던데, 그런 세상은 원래 없는 거야. 자네 남편이 그걸 원했어.”
특무대장이 두 손으로 양 볼을 움켜잡더니 갑자기 어머니의 윗도리를 찢었다. 어머니의 내복이 밖으로 드러났다. 특무대장이 다시 내복을 힘껏 찢었다. 어머니의 하얀 젖무덤이 출렁거렸다.
“자네........그래도 몸매는 그만인데. 아직도 싱싱하게 살이 올랐네.”
군인이 다시 어머니의 속옷을 벗겨나갔다. 어머니가 발가벗겨졌다. 그리고 군인이 천천히 옷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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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앞마당은 사람들로 웅성거렸다. 4․3 사건을 심층 보도하여 독자들에게 열렬한 갈채를 받고 있는 신문사 직원들도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신문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재야단체 임원들과 4․3 연구소 관계자들도 보였다. 재판정 문이 열리자, 제일 먼저 4․3 유족회 회원들이 재판정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좌석을 메우고 앉았다. 재판정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처음은 꾀나 들썩거렸다. 그러나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침묵만이 흘렀다. 4․3 계엄령은 과연 불법인가 아닌가. 법정이 역사를 심판하는 날이다. 지금까지 대부분 사람들은 4․3 계엄령은 정당하다고 믿고 있었다. 차마 그것에 누가 시비를 걸고 대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진실을 오래 숨기고 있지 않았다. 신문이 특집 기사를 통해 이 사실을 물고 늘어졌다. 4․3에 대한 기사를 몇 년 동안 심층 보도하고 있는 제민일보는 ꡐ4․3 계엄령은 불법이었다ꡑ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기에 이르렀으며, 그것에 대한 증거를 조목조목 나열하여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승만의 양자라는 사람은 그 내용의 기사를 게재한 신문사를 상대로 정정 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오늘은 이에 대하여 선고공판이 열리는 날이다. 피고는 물론 신문사였으며, 원고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양자라는 바로 그 사람이었다. 재판장이 천천히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방청객은 조용한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제헌헌법에는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사건에 대한 계엄 선포 당시에는 계엄법이 제정, 공포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이승만 전대통령이 선포한 계엄은 법령에 근거 없이 선포된 위법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이 그 시행과정에서 많은 불법적인 조치가 이뤄졌음은 변론으로 하더라도 관련법령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과도기적 상황에서 발생한 비상상태를 맞아 계엄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 필요성이 있었던 점등을 보면 계엄선포행위 자체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이뤄진 불법적 조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그러나 신문의 취재과정, 취재기간과 보도경위 등에 비춰볼 때 신문은 4․3이 발생한지 수십 년 동안 묻혀져 있던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던 과정에서 국내외를 망라한 각계 자료와 논문, 생존자들의 증언, 법학자, 변호사 등 전문가, 심지어는 일본 헌법학자에게까지 자문을 얻은 후 계엄은 법령에 근거 없이 선포된 불법적인 것이었다는 확신을 얻고 보도한 것..................이 계엄은 실제로 제헌헌법에 따른 계엄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선포됐으며 현재도 4․3 특별법과 관련해 일부 국회위원들이 이 계엄을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점에 비춰보면 신문이 단편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주관적 보도를 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 자료와 근거에 의해 나름대로 진실 확인 작업을 거쳐 보도한 이상 이 보도가 진실하다고 믿은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재판장은 판결문 낭독을 마쳤다. 박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신문사가 승소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이 ꡐ4․3 계엄령은 불법이었다ꡑ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한 신문사를 상대로 제기한 정정 보도 및 손해 배상 청구소송에서 이겼다. 제주지방법원 민사합의부는 선고공판에서 원고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방청객들은 오랫동안 신나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목안에 걸렸던 큰 가시가 밖으로 튀어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19
초등학교 졸업식이 가까웠다. 나는 육 년 개근상에 육 년 우등상, 그리고 전교어린이 회장을 일년 동안 무리 없이 수행하였으니, 졸업식 날 가장 뛰어난 졸업생에게 수여하는 교육감이 수여하는 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교육감 상은 내 차지였다. 할머니도 졸업식이 있는 날만 기다렸다. 학교에서 졸업생 수상 관계로 직원 조회가 열렸다.
“안됩니다. 그 아이에게 교육감 상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 아이의 아비가 4․3 사건 당시 저쪽에 편입되어 열렬하게 활동하던 빨갱이가 분명합니다. 그런 아이의 아들에게 그 중요한 교육감 상을 준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한 선생님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물론 졸업식 날 교육감 상은 다른 아이에게로 돌아갔으며, 나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속으로 분만 삭이고 있었다.
“그래, 너도 이제 고향 마을을 떠나거라. 너의 아버지의 사인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열심히 공부하거라.”
할머니가 나의 등을 어루만졌다. 나는 보따리를 싸고 시내 중학교에 입학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아아, 어머니는 나를 버리고 이북사투리를 쓰는 특무대장을 따라 집을 나간지도 몇 년이 지나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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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을 나온 나는 버스를 타고 고향 바닷가를 향했다. 당시 집단 학살 터였던 고향 바닷가는 여름철이면 전국의 피서객들이 몰려드는 해수용장으로 변했다. 피서철이 지난 지금은 너무나 한적하게 파도소리만 처량하게 들썩였다. 붉은 노을이 바다를 물들인 무렵에 바닷가에 도착하였다. 사람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모래밭으로 내리쬐는 석양만이 참혹한 붉은 색을 띄면서 내리 비췄다. 그 붉은 노을을 바라보는 자체가 사람을 황홀하게 하고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였다.
이여싸나 이여싸나/혼백상자 등에다 지고/가슴 앞에 두렁박 차고/한 손에 빗창을 쥐고/한 손에 낫을 쥐고/한 길 두 길 깊은 물 속/허위적 허위적 들어간다.
저 아득한 곳에서, 지는 해를 등 삼아 잠녀들이 자맥질을 하며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노래가 들리는 곳은 서우봉이 가까운 곳이다. 잠녀들이 부르는 노래에는 깊은 슬픔이 서려있다. 그 가사가 너무 시적으로 흐르면서 사람을 애달프게 하였다. 잠녀들은 바다 깊숙이 들어가서, 오랜 시간 물질하다가 목숨을 여위는 경우가 있다. 그 길이 열두 길이라 했던가. 열두 길은 어림잡아 이십 이 미터다. 잠녀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혼백상자를 지고 이십 이 미터 물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 인생 자체가 열두 길에서 물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잠녀들은 물질을 한다. 나의 귓전으로 잠녀들의 노랫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아버지도 혼백상자를 지고 죽음을 향하여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갔을까. 아버지가 추구하는 이념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흔쾌히 멍에를 지기를 바랬을까. 아버지, 당신은 지금 나에게 무엇입니까? 당신은 지금 우리 가족에게 무엇입니까? 당신은 이념을 신봉하다가 그냥 저 세상으로 떠난 한 젊은이에 불과합니까? 멀리 백사장 끝에 자리잡은 양옥 한 채가 눈길을 끌었다. 하얀 색으로 외벽을 발랐다. 늦가을 바람이 부는 이 계절에 그 집은 매우 쓸쓸한 느낌으로 다가섰다. 모래가 바람에 휘날려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집을 향하여 천천히 걸었다. 바람이 불어대는 모래밭에, 사람들은 얼씬 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ꡐ월촌리 식당ꡑ이라는 작은 간판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이십 평 남짓한 가게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온기가 흐르면서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나무의자에 걸터앉자, 방에서 인기척이 났다. 여자 주인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뭘 드시겠습니까?”
주인이 마른기침을 콜록거렸다.
“소주 주십시오. 안주는 뭐가 있습니까?”
“여러 가지 있습니다.”
주인이 대답을 하고 소주병을 상위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안주로 빈대떡이 괜찮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내가 괜찮다고 눈짓으로 대답했다. 여인은 다시 무 깍두기를 비롯한 기본 안주들을 상위로 늘어놓았다. 집이 매우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은 주방으로 걸어 들어가 빈대떡을 굽기 시작하였다. 나는 잔에 천천히 술을 따랐다. 깍두기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한잔 들었다. 주인을 다시 쳐다보았다. 주인은 어디서 많이 본듯한 낯익은 얼굴이다. 주인이 빈대떡을 들고 내 앞으로 왔다. 틀림없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동창생이 틀림없었다. 갑자기 나의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뛰었다. 나이를 먹고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복받쳤다.
“혹시 월촌초등학교 17회 졸업생이 아니십니까?”
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주인을 쳐다보았다. 주인이 안주를 상위로 놓으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맞으시죠? 맞으시죠?”
주인도 다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우리는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나는 술잔을 채우고 그녀에게 넘겼다. 그녀는 고향 마을에서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재일 동포를 만나 결혼도 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도 아이가 없었다. 오 년 전부터 남편이 바람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참고 있으면 곧 돌아 오리라던 남편은 아예 다른 여인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작년에 혼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이곳에 삶터를 마련하였다. 이제 우리들의 대화도 자연스럽게 전개되었다. 그녀는 내 앞에 앉았다.
“고향에 돌아오니 아버지 생각이 너무 간절하구나.”
“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는데?”
내가 물었다.
“4․3 사건 때.”
“그렇다면 언제 어디에서?”
“1949년 10월 2일. 바로 서문 비행장에서.................................?”
이럴 수가 있는가. 내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과 장소가 똑 같은 것이 아닌가.
“내 아버지도 10월 2일인데, 서문 비행장에서.”
나는 창 너머 수평선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왜 우리는 어린 시절 4․3에 대하여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을까?”
“빨갱이 짓이니까. 4․3은 입으로 결코 꺼내지 못하는 불문율이었으니까. 그런데 정부는 요즘 들어 4․3에 대하여 왜 호들갑을 떨까? 사상이고 이념이고 제쳐두고 너무 쉽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두 사람은 모래밭으로 나왔다. 그녀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었다. 나도 신발을 벗어 양손에 들고 그녀를 따랐다. 흡사 어린아이들 같았다. 모래밭을 걸으며 조개껍질도 주어 나갔다. 그녀의 연분홍 한복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우리는 이곳에 자주 왔다. 선생님을 따라 올 때도 있었다. 하얀 모래밭과 멀리 펼쳐지는 파도는 어린 마음을 너무 설레게 했다. 아이들은 조개를 잡고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놀았다. 선생님은 이곳이 총을 겨누던 학살 터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알아도 그냥 놔뒀을까. 아이들은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기차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이때 누가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한 아이가 사람의 뼈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생님, 여기도 있어요.”
다른 아이도 뼈를 들었다.
“여기도 있어요.”
“여기도 있어요.”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뼈들을 들고나섰다. 선생님은 재빨리 아이들을 모으고 학교로 돌아왔다.
“앞으로 바닷가에는 가지 말아라. 절대 가지 말아라.”
선생님의 긴 명령이 아이들에게 떨어졌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시는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 그후 아이들은 영영 이 모래밭에 나오질 못했다.
“이제 백사장에는 조개껍질만 널려있어.”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저 바다와 파도도 있지.”
바람이 포근하게 우리를 감싸 안았다. 파도가 밀려왔다. 저 파도가 어디에서부터 밀려오는 것일까. 이곳은 막혀있다. 그리고 이 막힘은 저 바다를 통해 다시 열려지고 있었다. 바다는 열린 공간이다. 출륙금지령이 내려졌던 조선후기를 제외하면, 섬사람들은 항상 바다를 통하여 한반도, 일본, 중국 등지의 주민들과 대외교류를 하였다. 고려시대나 조선초기까지만 해도 섬의 선박 제조기술이 한반도의 것을 능가했다고 옛 문헌은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바다를 활짝 열어야 하지 않을까. 바다 앞에 서서 파도소리를 듣는 일도 괜찮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다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도 아무소리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21
고등학교 졸업시즌이다.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공부에 열을 올리고, 나도 ‘영어정해’와 ‘수학정석’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시간을 쪼개며 밤을 설치고 있었다. 나는 서울법대가 목표였다. 판사가 되어서, 정의로운 심판을 하는 법관이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이다. 수학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나를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교무실 문을 두드리고 선생님 앞에 섰다. 선생님은 나를 보자 앞장을 서서 교무실 밖으로 나섰다. 수학선생님은 나와 같은 고향이라 나의 집 내력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교사휴게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마침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서울법대에 간다고 너의 담임선생님께 들었어. 그런데 말이야........................................”
선생님의 입이 매우 무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네 서울법대를 포기하고, 다른 생각을 해봐. 자네도 알고 있잖아. 너의 선배 중에 서울법대를 나와서 고시패스에 실패하고 폐인이 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왜 떨어진 줄 알아? 그의 아버지 때문이야. 그 녀석 아버지가 4․3사건 당시................”
선생님은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교사휴게실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22
월촌리 윗동네에 사는 노인은 어둠이 으슥해야 집으로 돌아왔다. 노인이 돌아올 때가지 집 주변을 서성거리며 시간을 때웠다. 노인은 생각보다 정정하였다. 여든 두 살이라는 나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기력이 충분하였다.
"자네가 누구라고...........?"
내가 누구의 아들이라고 아버지의 함자를 대자, 노인이 번쩍 눈을 떴다.
"아하,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자네가 살아있다니."
노인은 연거푸 긴 한숨을 뿜어내었다. 그리고 나를 뚜렷이 자세하게 쳐다보았다. 노인은 육십 년 전 아버지의 친구다. 나는 이전부터 들어서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네가 그 아랫동네 그 누구의 아들이란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이렇게 늦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이제라도 만났으니 얼마나 좋은가. 꿈도 꾸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군."
노인은 얼굴을 대충 씻고는 나를 끌고 방으로 들어섰다. 나는 무릎을 꿇고 절부터 하였다. "그래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나?"
"네, 그럭저럭 입에 풀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 아버지를 닮아서 똑똑하겠지."
노인은 아들을 만난 것처럼 기뻐하였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이제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노인을 쳐다보았다.
"삼촌, 저의 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습니까? 그리고 어디에서 돌아가셨습니까? 물론 사태 대 돌아가신 줄을 알고 있습니다마는 정확한 날짜를......................."
나는 노인을 삼촌이라고 불렀다. 섬에서는 아버지 친구를 보통 삼촌이라고 부르는 것이 상례였다. 노인은 한참동안 나를 쳐다보았다.
"자네 아버지는.....................그래 자네도 확실하게 모르겠지. 그러니까.............."
노인은 그 날짜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49년 10월 2일. 읍내 경찰서에서 급사 일을 하는 동생이 자정이 가까워서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왔다.
"큰일났습니다, 형님. 누구가 서문 비행장에서 일을 당했습니다."
"일을 당하다니?"
"모르시겠습니까?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동생은 땀을 흘리며 노인에게 읊조리고 있었다.
"그래서 자네 아버지가 죽은 줄 알고 있었지. 그날 나는 급히 자네 집으로 달려갔지. 자네 어머니는 자네를 가슴에 안고 잠을 자고 있었어. 내가 전하는 남편 소식을 전해 듣고 눈물만 흘렸지."
노인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삼촌, 아무리 생각해도 이제는 4․3 희생자 신고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사망신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망신고도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삼촌이 보증을 서 주셔야 하겠습니다."
"보증도 필요한가?"
"네, 도장만 찍어 주시면 됩니다."
"그래."
노인은 서류에 도장을 찍고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23
군대를 다녀오고,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한 나는 처음 도서관을 주무대로 공부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도서관에만 머리를 들어 밀기에는 정국 상황이 너무나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군사정권은 캠퍼스에 장갑차를 앞세워 총을 멘 군인들을 상주시켰다. 학생들은 ‘군사정권 물러나라’ 고 외치며 감옥을 제 집 드나들 듯 하였다. 그냥 도서관에서만 주리를 틀 수가 없었다. 군사정권에 앞장선 5․16의 주체 세력들은 대부분 4․3 사건 당시 토벌대를 이끌었던 자들이 아닌가. 앞장서야 한다. ‘군사정권 물러가라!’ ‘양심세력 풀어 주라!’를 외치며 시위대를 이끌기로 했다. 최루탄이 터지고 군인들이 캠퍼스로 몰려들었다. 결국 군인들에 이끌려 지하실로 끌려갔다. 공안당국은 이른바 좌경학생들에 대해서는 특단의 대책을 세우고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잡혀 들어간 지하실은 기관에서 비밀리에 운영을 하면서 인신 구속 및 대학생들에 대한 불법사찰과 검열을 해온 곳이다. 이러한 병영국가의 활동은 군사정권 당시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군인들에 이끌려 우중충한 건물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건물 1층 오른쪽 통로의 한 문을 여니 조그만 공간에 나선형 계단 입구와 엘리베이터가 눈에 띄었다. 2층에는 계단과 통하는 출입구가 없고, 1층과 5층만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통로 양쪽으로 조사실 문들이 반듯하게 정렬한 모습은 교도소를 떠올리게 했다. 3평 남짓한 일반 조사실에는 별다른 장식 없이, 한쪽 벽의 냉․온풍기와 구석의 세면대와 변기만이 눈에 띈다. 내가 끌려 들어간 511호실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출입구 바로 옆으로 담요가 씌워진 낡은 침대 쿠션과 구석에 설치된 욕조가 첫눈에 들어왔다. 자해 방지 목적인 듯, 책상과 의자는 볼트로 바닥에 고정돼 있었다. 형광등은 철망으로 덮여 있었고, 조명 스위치는 조사실이 아닌 복도에 설치돼 있다. 천장 한쪽엔 폐쇄회로 촬영기기가 설치됐던 공간과 폭 15㎝의 길고 좁은 창도 눈에 들어왔다. 냉기가 도는 조사실 분위기를 그나마 완화시켜주는 것은 비좁은 창문에서 쏟아지는 햇빛이었다. 변기를 딛고 내다본 창문 밖으로는 현관 앞 정원과 숲, 테니스장, 주차장, 미군기지 등이 보였다. "자네는 좌경학생이야. 자네 아버지도 빨갱이지.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 것은 순리일까?"
취조관은 질근질근 껌을 씹으며 아버지부터 들춰내었다. 다시 4․3 망령이 젊은 나를 들쑤셔 놓고 있었다. 아아아아. 그 지하실의 그 끔직한 횡포. 아아아아.
24
4․3은 벽이다. 벽은 장애물이다. 장애물은 막힘이다. 4․3이라는 벽이 육십 년 동안 모든 것을 막아버렸다. 입을 막고 귀를 막고, 숨통을 막아 버렸다. 사람들의 삶은 꽉꽉 닫혀버렸다. 4․3은 누구나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불문율이다. 4․3이란 장애물로 사람들은 입을 함부로 놀리지 못했다. 4․3으로 사람들은 아픈 가슴앓이를 계속 하였다. 4․3의 벽은 사람들의 만남과 대화를 가로막아 버렸다. 학문과 학문을 예술과 예술을 만나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올가미를 씌워 섬사람들을 뿌리 달린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람들은 아무도 몰래 벽을 향하여 비난을 퍼붓고 침을 뱉었다. 오랜 세월 숨을 죽이며 살아가는 것도 운명으로 받아드렸다. 뿌리 달린 사람들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 사람들을 옥죄었다. 그렇다. 벽은 막힘이다. 4․3도 역사의 막힘이다. 그런데 4․3의 막힘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 단단한 막힘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육십 년 동안 벽을 사이에 두고 등을 돌리고 살았던 남과 북의 사람들이 벽을 하나씩 허물고, 이제 숨통을 터 나갈 수 있을까. 그 동안 사람들은 서로 사상의 올가미에 씌워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 많은 벽들이 언제면 다 무너지고, 화합의 마당으로 펼쳐질 수 있을까. 벽이 무너지고 양쪽이 통합되어 새로운 노래가 울려 퍼진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삼천리 강산을 밝게도 비치네/짓밟힌 조선에 동은 트리라/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캄캄한 밤하늘 바라다보니/신음하는 조국강산 어리여 오네/변치 말자 혁명에 다진 그 마음/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간악한 강도 일제 쳐 물리치고/삼천리에 새별이 더욱 빛날 제/조선아 자유의 노래 부르자/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북쪽 노래가 남쪽 텔레비전에서 들려오고, 남쪽 장관이 북쪽 장관과 만나 국사를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북쪽 사람들이 남쪽을 방문하고 남쪽 사람들이 북쪽을 방문하면서, 벽은 하나씩 무너지고 있었다. 벽이 와르르 모두 무너지는, 그 물꼬가 터지는 날은 과연 언제일까. 아아, 누가 뭐라고 해도 벽은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나와 아버지와의 사이에도 그 벽은 존재하고 있었다. 벽이 아버지와 나를 가로막고, 결코 무너질 수 없는 장애물로 버티고 있었다. 아버지는 벽 뒤에 숨어서 꼼짝없이 그 동안 역사의 반역자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육십 년 동안 아버지의 실체를 감추고 살아왔다. 상상해 보라. 만약 아버지의 실체를 인정한다면, 이 남한 사회에서 대체 어떻게 생을 유지하며 살아야 할지, 당신은 짐작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빨갱이 아들이 되어, 심지어 빨갱이가 되어 저 아득한 동굴 속에 갇혀 영원히 나올 수가 없었으리라. 아아, 나는 빨갱이 아들이다. 나의 핏속에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아,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래서 나는 남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으로 지금까지 모든 사실을 무조건 숨겼다. 심지어 아내와 아들에게도 아버지의 실체를 숨기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 빨갱이 누명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25
저녁달이 아름답게 솟았다. 바람도 산들산들 불어 운치를 더해 갔다. 멀리 수평선에 떠있는 배 위에도 어부들이 쉼 없이 고기를 낚아 올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나란히 모래밭을 걸었다. 너무 아름다운 밤이구나. 그렇구나. 잠이 오지 않는 밤이구나. 시대의 피해자끼리 서로의 위로가 아름답게 전개되는 밤이구나. 우리 나이가 이제 육십이다. 우리 둘이 우리 아버지들을 위로해야 한다. 바람이 살랑살랑 바지가랑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어도가 어디일까. 이어도가 여기구나. 달이 휘영청 밝구나. 우리 마음도 휘영청 밝아지는구나.
26
섬은 아름답다. 그래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원더풀, 원더풀을 외친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역사를 한 페이지라도 읽어보면, 섬사람들이 통한의 역사를 알게 된다. 그리고 4․3이라는 가장 비극적인 사건과 만나게 된다. 토벌대원들은 산을 향하여 대대적인 공습을 펼쳤다. 그들의 총부리에서 내뿜는 열기가 산사람들을 하나 둘 쓰러뜨렸다. 산사람들은 토벌대의 총부리에 죽임을 당하였고, 그래도 운 좋은 몇몇 사람만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목숨을 구한 산사람들도 하나 둘 잡히거나, 그렇지 않으면 각자 흩어지기 시작했다. 무장대의 아지트가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산사람들은 흩어지거나 산에 남아 있다가 잡혀서 총살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산은 쑥밭으로 변하였다. 스물 일곱 아버지도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은 산에서 생포한 젊은이들을 유치장에 감금하였다가, 서문 비행장으로 끌고 갔다. 아버지가 잡혀간 그 순간에도 탕, 탕탕, 방아쇠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 말없이 버티고 서있는 산은 아버지에게 대체 무엇이었을까. 산은 아버지의 목숨을 보호해주었을까. 산은 무장대원의 보호막 그 자체였을까. 산은 잠시나마, 사람대원들에게 남쪽으로부터의 태풍을 막아낼 뿐만 아니라, 중산간 지대의 광활한 목초지를 내어주었다. 화산이기 때문에, 엄청난 비가 내렸을 때에는 빗물을 대부분 빨아들여 해안지대의 홍수를 막아 목숨을 건져주기도 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산을 ꡐ거대한 물 허벅ꡑ이라고 하였다. 산이 높이 솟아있는 만큼 땅 밑으로 거대한 지하수 층을 형성시켜 사람들에게 최고질의 식수를 제공했다. 이러한 지하수는 지형에 따라서 해안이나 중산간 곳곳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대원들은 용천수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아지트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결국 붙잡혔다. 아버지는 서문비행장에서 토벌대원의 명령에 따라 삽을 들고 자기의 누울 자리 구덩이를 팠다. 죽음을 기다리는 동지들 앞쪽으로 경찰 일개 분대가 겨눠 총 자세로 노려보았다. 아버지 일행도 토벌대 앞으로 일렬로 세워졌다. 쏘아 총. 탕. 탕탕. 탕탕탕. 아버지가 쓰러졌다. 하나 둘 모두 쓰러졌다. 계속 ꡐ겨눠 총ꡑ 명령이 떨어졌다. 쏘아 총. 탕. 탕탕. 탕탕탕. 탕탕탕탕.
27
4․3 도민연대 사무실을 찾았다. 그곳에서도 희생자 접수를 받고 있었다. 희생자 신고를 위해서는 65세 이상 연대 보증인 세 사람이 보증을 서거나, 아니면 4․3 연대에서 확인 서명을 받아야 한다. 사무실에서는 희생자 명단을 확보하여 대민 봉사를 하고 있었다. 안경을 낀 젊은 친구가 친절하게 안내를 했다.
“희생자는 언제 돌아 가셨습니까?”
그의 앞에 의자를 당기고 앉았다.
“49년 10월 2일입니다.”
젊은이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열심히 자판을 눌렀다.
“돌아가신 장소를 아십니까?”
“저기, 서문비행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참 동안 젊은이를 컴퓨터 모니터를 살피더니,
“돌아가신 분 이름이 있습니다. 10월 2일 명단에 있습니다. 49년 10월 2일, 당시 계엄군 사령부의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했습니다.”
“그럼 신고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예, 분명히 희생자입니다.”
28
4․3은 죽임의 역사이다. 4․3은 처절한 몸부림의 역사이다. 섬은 죽임이며, 육지는 정복이다. 정복당한 섬에서는 항상 죽임이 뒤따른다. 육지는 갖은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섬과 인연을 맺으면서, 섬을 수탈하고 섬을 짓밟았고, 섬을 능멸하였다. 4․3으로 인한 고통을 하나 하나 열거하기에는 힘이 너무 벅차다. 섬을 향하여 총을 겨누고, 섬을 향하여 칼 부리를 휘두르는 자들을 하나 하나 열거하며, 왜 그들이 그러한 행위를 자행해야 했는지 생각하는 일은 힘겨운 일이다. 아아, 지겨운 세월이여. 아아, 통한의 역사여. 섬에 침입하여 섬사람들을 약탈하고, 섬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던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의 악랄한 행동으로 섬은 찢겨지고, 섬사람들은 고통의 신음소리를 밤새도록 내뱉었다. 육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신음하고 있으며 울분을 삼키고 있다. 섬사람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하며 약탈한 놈들은 육지에서 건너온 놈들이 틀림없다. 그들은 섬사람들을 빨갱이 사냥이라는 미명으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총알 밥으로 만들었다. 낮이나 밤이나 가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빨갱이 누명을 쓰고 죽어갔다. 섬은 역사적으로도 항상 약탈을 당했던 곳이다. 과거 섬사람들은 육지 놈들의 종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항상 죽음의 냄새가 났다. 육지 놈들이 총칼을 들고 몰려와, 섬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광경이 항상 눈앞에 선하게 펼쳐졌다. 구릉과 골짜기 어느 곳이든, 항상 죽음의 냄새가 심하게 풍겼다. 파도까지 죽음의 냄새를 싣고 세차게 밀려들어 사람의 애간장을 녹였다. 4․3 당시, 저 바다를 건넌 정복자들은 항구를 통해 보무도 당당하게 땅을 지긋이 밟고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가고 총을 쏘았다. 정복자들 앞에서 사람들은 우수수 쓸어졌다. 불법적인 계엄령을 선포하여, 섬사람들을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곳곳에서 자행된 학살 만행은 너무 끔직하였다. 가슴이 떨려 4․3 당시 그 피해 지역을 지금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다. 아아, 섬의 모든 곳이 학살 터였다. 정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천혜의 아름다운 관광지 모두가 학살 터였으니,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제부터라도 학살 터마다 안내문을 설치하여, 그곳이 사람들이 무참하게 죽어간 곳임을 밝히고 관광객들이 그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참혹한 역사가 펼쳐졌는데, 해방 당시 한국에서의 미국의 역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미국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팔짱만 끼고 있었을까. 아니다. 미국은 세계를 제패한 대제국이다. 모를 리가 없다. 미국은 분명히 사태가 났을 당시 제 역할이 있었다.
29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돌아앉아 방바닥에 걸레질만 하였다. 나는 다시 간단한 옷가지만 챙기고 집을 나섰다. 차를 몰고 고향 바닷가를 향하였다. 월촌리 바닷가를 향하였다. 나는 앞으로 4․3 당시 이승을 떠난 영혼들을 위로하고 그 유족들과 더불어 한 많은 세월을 보내리라. 그런데 ꡐ월촌리 식당ꡑ은 문이 잠겨져 있었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바닷가를 빠져 나와 식당이 가까운 구멍가게를 찾았다. 낯익은 아주머니가 가게를 보고 있었다.
“월촌리 식당 주인이 어디로 가신 줄 아시겠습니까?”
“그 어른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예?”
“식당을 정리하고, 다시 일본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주머니는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고, 그리고 길게 내뿜었다.
Posted by 김관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