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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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가 나의 곁에서 조을 적에 나는 나의 아버지가 되고 또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고 그런데도 나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대로 나의 아버지인데 어쩌자고 나는 자꾸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아버지가 되니 나는 왜 나의 아버지를 껑충 뛰어넘어야 하는지 나는 왜 드디어 나와 나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노릇을 한꺼번에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냐.”                 

                                

                                 2

 

아버지. 육십 년만에 그 아버지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그 아버지를 소리 내어 부를 수 있을까. 가슴이 떨려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정중한 자세로 스물 일곱에 세상을 하직한 아버지를 불러본다. 처음, 아버지라는 단어는 입술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 식구가 살던 시골집에도 없었으며, 동네 노인당에도 없었으며 섬 곳곳 아무 데도 없었다. 아버지는 그냥 스물 일곱 나이에, 그 와중에 휩싸여 그 나름대로 역할을 수행하며 조국통일을 염원하다, 그냥 저승으로 떠난 그런 사람에 불과했다.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육지에서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아버지는 해방이 되자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두 살배기 아들인 바로 내가 기다리는 고향집에서 해방을 실감하며 열심히 해방정국의 일원으로 땀을 흘렸다. 그러던 아버지가 1949년 탕탕, 서문비행장에서 총살형을 당하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냥 아무 변명도 못하고 말없이 떠나버렸다. 그렇다면 당시 정치의 실세였던 이승만은 아버지의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 대하여, 육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죽음의 사연에 대하여 말을 꺼낸다는 자체가 참으로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도대체 아버지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가.


                                 3

     

“미군은 일본의 항복조건을 수락하고 한국의 재건과 질서 있는 정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한국에 상륙하였다. 우리의 사명은 엄격한 것이며 또한 확실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한국인이 무분별하거나 경솔한 행동은 귀중한 생명을 다치게 하고 아름다운 국토를 황폐시켜 재건을 지체시킬 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지금의 여건은 한국인들이 다같이 추구하는 바가 아닐지 모르나 장래의 한국을 위해서 냉정과 평정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떠한 동란도 일어나서는 안되고 용납될 수도 없다. 한국국민은 장래의 재건을 위하여 맡은바 생업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지시를 충실히 지키면 한국은 급속히 재건될 것이며 동시에 민주주의가 보장되어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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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제주도 행정당국입니다. 평화스러운 섬에 한을 남겼던 4․3사건이 발생한지도 올해로 6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4․3사건으로 인한 희생자들의 한을 풀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이제 4․3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정부차원에서도 여러 가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4․3 영령들의 아픔을 풀어 드리고 우리 가슴에 맺힌 한, 섬사람들의 명예 회복은 물론 4․3의 올바른 자리 매김을 위하여 공무원들은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또한 4․3 영령들의 아픔을 풀기 위한 4․3 위령 공원을 봉개동 부지에 조성하였습니다. 이처럼 4․3 해결은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4․3 희생자 신고를 받기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신고를 하지 않은 분이 있습니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신고되는 자료로 정부차원에서 희생자 및 유족으로 심사 결정되기 때문에 빠짐없이 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신고에서 누락되면 다시는 신고할 기회가 없으므로 신고절차가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신고서식과 같이 보내드리오니 반드시 신고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4․3 문제 해결은 유족 여러분의 참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4․3 문제 해결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바칩시다. 특히 당시 미국의 역할이 과연 정당하였는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4․3 사건이 일어난 지 육십여 년이 지나도록 가슴속에 응어리를 품고 살아 오신데 대하여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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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동포들에게! 경애하는 부모 형제들이여! 4․3 오늘 당신님의 아들 딸 동생은 무기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매국 단선단정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조국위 통일 독립과 완전한 민족 해방을 위하여! 당신들의 고난과 불행을 강요하는 미제 식인종과 주구들의 학살만행을 제거하기 위하여! 오늘 당신님들의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풀기 위하여! 우리들은 무기를 들고 궐기하였습니다. 당신님들은 종국의 승리를 위하여 싸우는 우리들을 보위하고 우리와 함께 조국과 인민의 부르는 길에 궐기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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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육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상의 올가미만 식구들에게 씌우고 영영 소식이 없지만, 물론 아버지가 저 세상 사람이 된 것은 주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는 그 동안 아버지 죽음에 대해서만큼, 남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끼며 살아왔다. 아니 벽에 꼭꼭 숨기고 영영 꺼내지 못하는 사실로 여겨왔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그것도 해방 직후 섬 사태 때문에 돌아갔다는 사실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솔직히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무척 싫었다. 그런데 당국은 육십여 년이나 지난 그 한 많은 사실을 갖고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재야단체에 속한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정확하게 전후 사정을 파악하여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무턱대고 신고만 하라니, 대체 어떻게 되어 가는 사실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 사건의 내면에 깔린 아픔은 생각지도 않고 멋대로 당국은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불러 보았다. 아버지, 당신은 그냥 무고하게 세상을 등진 사람입니까? 그냥 이데올로기 희생물이 된 사람입니까? 강대국의 논리에 의하여 그냥 죽어간 사람입니까? 당신의 실체를 어떻게 규정해야 옳겠습니까, 아버지. 정말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를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아니 죽임을 당하였다. 나는 일년에 한번 아버지 제사를 지내는 것이 고작이다. 시신 없는 아버지의 영을 모시는 것이 마음 아팠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아버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누구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내 아버지가 돌아갔는데 혹시 우리 아버지에 대하여 아는 사실이 없습니까? 아버지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죽었을까요? 그러나 누구에게나 물을 수 없었다. 아내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냥 아버지에 대한 모든 사실을 묻어두고 싶었다. 묻어두는 것의 실체가 딱, 무엇이라고 결론 내릴 수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주위 분위기가 너무 어수선하게 변하면서, 아버지를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앞으로 그 사태에 대한 올바른 자리 매김은 이루어질까? 당신 죽은 영령들의 아픔을 풀 수 있을까. 아버지에 대한 신고는 어떻게 할까? 이번에 신고가 누락되면 다시는 신고할 기회조차 없다는데, 내가 나서서 아버지의 죽음을 알려야 할까? 아버지의 얼굴과 음성이 아니 아무 것도 기억이 없는데, 그리고 시신도 찾지 못했는데 어떻게 신고를 한단 말인가? 그런데 당국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닐까? 아버지가 이 세상을 등진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신고를 할 수 없으면, 다음 기회라도 신고를 하는 것이 원칙이 아닌가. 신고에서 누락하면 다시는 신고할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어째서 당국은 시민을 향하여 무자비하게 언어의 폭력을 휘두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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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자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는 안 된다며, 주위의 사람들을 모으러 다녔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며,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옛날 농업학교 동창들과 이웃마을 중학원에 다니는 학생들도 만나고 다녔다. 모두가 주인이 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겠다며 마을 청년회를 조직하고 관덕정에서 열린 3․1정 기념행사에도 다녀왔다. 그 날 시위군중에게 응원경찰관이 무차별 발포, 사상자를 내면서 아버지의 분노는 극에 달하였다. 더욱이 사망자들은 초등학생, 젖먹이를 안은 아낙네, 50대 농부 등 대부분 관람군중이라는 사실이 아버지를 격분시켰다. 사건발생 뒤부터 대규모 총파업이 전개되었으며, 학교가 항의휴교를 했고,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미군정은 무력을 사용하여 진압하였으며, 파업을 중지하지 않으면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는 경찰 간부의 발언은 미군정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기도 하였다. 이때 미군정은 응원경찰과 서북청년 단원들이 대거 제주도로 끌어들였다. 그들은 빨갱이를 소탕한다는 명분 아래 조금이라도 불평하는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연행, 투옥 고문하였다. 인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듭시다. 미국을 믿지 맙시다. 우리 나라를 두 동강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외치고 다녔다. 남한만의 단독 선거는 결코 안 됩니다. 아버지가 집에 들르는 날도 줄어들었다.  


                                 8

                             

세상에는 죽임의 역사가 존재한다. 그것은 처절한 몸부림의 역사이며 아우성의 역사이다. 섬은 죽임이며, 육지는 정복이다. 정복당한 섬에서는 항상 죽임이 뒤따른다. 육지는 갖은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섬과 인연을 맺으면서, 섬을 수탈하고 섬을 짓밟았고, 섬을 능멸하였다. 죽임으로 인한 고통을 하나 하나 열거하기에는 힘이 너무 벅차다. 섬을 향하여 총을 겨누고, 섬을 향하여 칼 부리를 휘두르는 자들을 하나 하나 열거하며, 왜 그들이 그러한 행위를 자행해야 했는지 생각하는 일은 힘겨운 일이다. 아아, 지겨운 세월이여. 아아, 통한의 역사여. 섬에 침입하여 섬사람들을 약탈하고, 섬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던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의 악랄한 행동으로 섬은 찢겨지고, 섬사람들은 고통의 신음소리를 밤새도록 내뱉었다. 육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신음하고 있으며 울분을 삼키고 있다. 섬사람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하며 약탈한 놈들은 육지에서 건너온 놈들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섬사람들을 빨갱이 사냥이라는 미명으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총알 밥으로 만들었다. 낮이나 밤이나 가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빨갱이 누명을 쓰고 죽어갔다. 섬은 역사적으로도 항상 약탈을 당했던 곳이다. 과거 섬사람들은 육지 놈들의 종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항상 죽음의 냄새가 났다. 육지 놈들이 총칼을 들고 몰려와, 섬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광경이 항상 눈앞에 선하게 펼쳐졌다. 구릉과 골짜기 어느 곳이든, 항상 죽음의 냄새가 심하게 풍겼다. 파도까지 죽음의 냄새를 싣고 세차게 밀려들어 사람의 애간장을 녹였다. 당시, 저 바다를 건넌 정복자들은 항구를 통해 보무도 당당하게 땅을 지긋이 밟고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가고 총을 쏘았다. 정복자들 앞에서 사람들은 우수수 쓸어졌다. 불법적인 계엄령을 선포하여, 섬사람들을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곳곳에서 자행된 학살 만행은 너무 끔직하였다.  가슴이 떨려 당시 그 피해 지역을 지금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다. 아아, 섬의 모든 곳이 학살 터였다. 정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천혜의 아름다운 관광지  모두가 학살 터였으니,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화북 곤을동․별도봉․관덕정․관음사․돔박웃홈․리생이․ 어우눌․월평성․ 주정공장․ 죽성․조천 낙선동성․너분숭이․도툴굴․목시물굴․와흘굴․이덕구산전․조천중학원․한림 만벵듸․진동산․ 애월 머흘왓성․개수동 ․벌레못굴․영모원․원동․자리왓․자운당․구좌․중문 녹하지주둔소․천제연주차장․소남머리․시오름주둔소․영남동․천서동․안덕 무동이왓․삼밧구석․양씨가족 ․큰넓궤와도엣궤․ 임문숙가족헛묘․ 표선 버들못․한모살 ․대정 사만질앞밭 ․섯알오름탄약.․성산초교옛건물․우뭇개동산 ․터진목․남원 ․송령이골․수악주둔소․오림반․현의합장묘옛터․세화리 연두방․다랑쉬굴․종달리․연평리․교래리․선흘리․신촌리․신흥리․와흘리․조천지서 앞밭․북촌초등학교 옆밭․함덕해수욕장․광령리․고내리․구엄리․상가리․상귀리․애월 파군봉․봉성리․어음 빌레못․소길리․원동마을․자운당․학원동․ 비학동산․하가리․상명리․수원․봉근굴․한림 신갱이서들․한림 옛오일장터․협재리․한원리. 이제부터라도 학살 터마다 안내문을 설치하여, 그곳이 사람들이 무참하게 죽어간 곳임을 밝히고 관광객들이 그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참혹한 역사가 펼쳐졌는데, 해방 당시 한국에서의 미국의 역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미국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팔짱만 끼고 있었을까. 아니다. 미국은 세계를 제패한 대제국이다. 모를 리가 없다. 미국은 분명히 사태가 났을 당시 제 역할이 있었다.


                                 9                                                     

세찬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은 집안에 꼭꼭 숨어서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그것은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상 돌아가는 사태가 모든 걸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바람은 마루 덧문을 마구 흔들더니, 횅하니 마을 입구로 사라졌다. 어둠은 자정을 붙들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마주 앉아 긴 한숨을 쉬었다. 회오리바람이 문풍지 사이를 뚫고 방으로 새어 들어왔다. 세상 돌아가는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었다. 산에 오른 사람들이 무장을 하고, 경찰과 선전 포고를 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할머니는 옆방에서 우두커니 앉아 아들 내외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할머니 옆에는 두 살배기 손자 녀석, 바로 내가 쿨쿨 잠에 빠져있었다.

  "너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어. 나도 이제 어디론가 몸을 피해야겠어.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도망갈까 생각도 하고 있어. 너무 심하게 조여 오고 있어. 일단 목숨은 붙여야 할 것 같애. 잡히면 죽어. 목숨은 살려야지."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 물며 불안한 모습을 띄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갈피를 잡지 못하는 표정이다. 사람들을 따라 산으로 올라야 하나. 토벌군들이 계속 조여 오는데,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떠나면 가족들은 어떻게 될까. 아버지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이제 그만 주무시죠.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시고."

어머니가 근심이 어린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천장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다시 긴 한숨을 길게 쉬었다.

이 때다. 마당으로 들어서는 발자국 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렸다. 누굴까. 무장대원들일까. 어머니가 몸을 부르르 떨며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아버지가 문을 살짝 열고 가만히 밖을 내다보았다. 누가 마당으로 들어서는 그림자가 보였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날세."

그림자가 나직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누가 급히 방으로 들어섰다. 윗동네에 사는 아버지의 농업학교 동창생이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두리번거리면서 주위를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내일 새벽 마을을 뜨기로 했네. 일단 몸을 숨겨야 이 난리를 피할 수 있어. 자네도 같이 산으로 올라 일단 몸을 숨기지."

  아버지는 이미, 그를 따라 산에 오르리라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일찍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몰랐다. 아버지가 조용히 일어섰다. 어머니와 한쪽 구석에서 잠을 자는 아들 녀석을 쳐다보았다.

"여보, 내 다녀오리다."

어머니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여보, 당신이...........차마........이럴 수가.........."

어머니는 울음을 참고 있었다.

할머니도 옆방에서 뛰쳐나왔다.

"집에 있어도 잡히면 죽어. 일단 도망이라도 가야지."

아버지는 댓돌에 놓여있는 신발을 꿰고 친구를 따라 마당으로 나섰다. 두 사람은 총총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 아버지는 식구들 앞에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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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속으로 파고들다 불쑥 일어나 앉았다. 심한 갈증이 느껴졌다. 두리번거리며 방 구석구석을 한참 둘러보았다. 목을 축일만 한 것이 없을까. 자리끼라도 준비할 걸. 손을 뻗고 물 컵을 찾았다. 책상 위에 컵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다. 이불 속에서 빠져 나와 엉거주춤 컵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 듬뿍 물을 따르고, 컵에 입술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참 앉아 있다가, 다시 컵에 물을 따르고 목젖으로 넘겼다. 속에서 열이 물컥물컥 솟아오르며 가슴이 울렁거렸다. 아내는 세상 모르게 잠에 빠져있다. 건넛방 아이들도 잠을 청했는지 조용하다.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땡. 벽시계가 자정을 알렸다. 책상 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그리고 낮에 우체부가 건네준 우편물을 꺼냈다. 시장이 보낸 행정 우편물이다. 낮에 우체부가 건네주는 우편물을 받고 참으로 어리둥절하였다. 시장이 두툼한 우편물을 나에게 보낸 것이다. 혹시 잘못 배달된 것이 아닐까, 하고 처음은 의심까지 하였다. 그런데 제주시 이도2동 777번지라고 주소까지 적혀있었으며, 이름 세 자도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봉투 안에는 4․3 사건 희생자 신고 방법과 절차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시장의 인사말과 함께 여러 가지 다른 자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나는 다시 컵에 물을 따르고 쭉 들이 마셨다. 시 당국은 나의 아버지가 4․3 사건 희생자라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이렇게 공문까지 보냈다. 한편으로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우르르 무너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4․3  사건 희생자. 아버지는 결국 죽어서 육십 년만에 이렇게 공문 한 장으로 나에게 나타났다. 달랑 공문 한 장으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내보이며 나를 옥죄이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어둠이 삼켜버린 사위를 살폈다. 덜컥 겁이 났다. 분단 시대를 살아간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서면서, 나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이제 신고를 미룰 것이 아니라 앞장서서 신고를 해야 하겠구나. 나는 다시 물 컵을 들었다. 그리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마셨다. 행정 당국은 지금까지 안경을 끼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구나. 그들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노려보고 있었구나. 정말 이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육십 년 동안 감추었던 비밀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지난 육십여 년 동안 속앓이를 해온 긴 침묵이 하루아침에, 공문 한 장으로 깨어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죽었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그 사실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 살아왔다. 심지어 아내와 아들에게까지 그것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설명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아버지가 남쪽 당국에 의하여 사살되었다는 이유가 깔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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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벌대원들은 차를 몰고 가끔 서문 비행장에 나타났다.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수상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조사를 하고 총살을 시켰다. 그들은 끌고 온 사람들에게 각자 구덩이를 파게 하였다. 그리고 일렬로 세우고, ‘겨눠 총!’ ‘쏘아 총!’ 명령을 내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탕. 탕탕탕. 총소리에 사람들은 우르르 쓰러졌다. 그들은 시신들을 발로 하나씩 구덩이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모래를 긁어모아 그곳을 메웠다. 한 구덩이에 여러 개의 시신들이 함께 묻는 경우가 많았다. 죽은 사람들은 정식 재판을 받거나, 어떤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토벌대원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잡아온 양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학살 터는 서문비행장만이 아니었다. 도내 곳곳이 학살 터로 변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총질도 다반사였다. 총소리는 도내 곳곳에서 자주 들렸다. 특히 읍내가 가까운 서문 비행장 자리에서는 총소리가 더욱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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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사건 희생자 신고접수가 3차례 이뤄졌는데도 불구하고 4․3희생자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가 4․3연구소와 합동조사반을 편성, 제주시 도두동과 북제주군 조천읍 북촌리 등 2개 마을을 대상으로 4․3사건 인적피해 상황을 조사한 결과 제주도 도두동에서는 4․3사건으로 모두 323명이 피해를 보았다. 또 조천읍 북촌리에서는 4․3사건으로 모두 469명이 피해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이들 2개 마을 피해자 가운데 미신고 희생자는 도두동 27명과 북촌리 18명 등 이들 2개 마을에서만 45명에 이르렀다. 제주도는 북촌리의 경우, 미신고자 대부분이 당시 5세 미만의 어린이들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도두2동의 경우 비행장에 마을이 편입되면서 4․3당시 희생자 가운데 무연고자가 많은 것도 미신고자를 양산한 한 요인이 됐다고 덧붙였다. 제주도는 이번 조사에서 도두동의 경우 4․3당시 가옥 385동이 소실됐으며 북촌리는 가옥 591동이 소실된 것을 비롯해 가축피해 522마리, 선박피해 13척 등도 조사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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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적막에 쌓였다. 하늘에 별들도 총총 떠있다. 산기슭으로 바람도 잔잔하게 불어대었다. 함께 피신 온 사람들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아버지는 막사 밖으로 혼자 나와 깊은 적막에 젖었다. 아내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리고 아들놈은 그 큰 눈을 번쩍 뜨고 멀뚱거리며 나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만 참고 기다리자. 사태가 수습되면 집으로 돌아가리라. 조금만 기다려라. 그러나 상황이 너무 불안하다. 전세는 계속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일부 젊은이들은 반미구국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에 대하여 너무나 허술하게 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지금 섬사람들이 겪고 있는 엄중한 역사적 사실은 너무나 처절한 비극사가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인가. 미국이 해방된 남반부를 점령하는 첫날부터 반미 구국 투쟁사는 시작되었으며, 미국의 식민지 정책과 그의 앞잡이들의 반인민적 정책은 조국의 통일과 민족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남반부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쓰라린 시련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싸움은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거리고 있지 않은가. 나가자, 저 전선으로 나서 구국의 일념으로 싸워야 한다. 우리가 주인 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절망만이 앞을 가린다.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승리할 확신이 없다. 저 미국이라는 나라가 거대한 바퀴가 되어 작은 섬을 짓밟는 일이 정의로운 일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죽어야 하나..........정말 허망하게 끝을 맺어야 하나................ 아버지는 혼자 중얼거리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멀리 서쪽 하늘에는 별 하나가 오돌오돌 떨고 있다. 그 동안 섬사람들의 힘은 개별적으로 일어난 총파업의 대중적인 반미투쟁을 통하여 무장적 투쟁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비약적으로 강화된 애국 대열을 만들었다. 경찰과, 서북청년회를 비롯한 테러단이 안하무인격으로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과 만행, 유린과 박해가 자행되는 그러한 조건하에서 우뚝 서서 섬사람들을 위한 싸움을 계속하였다. 미군정의 폭정과 주구들의 포악한 살인 테러에서 격발된 무력 봉기로 전면적으로 전개된 무장대의 맹렬한 활동은 5․10 단선을 파탄시켰다. 아아, 이는 우리의 승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모두의 승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아버지는 담배를 끄고, 지긋이 양 이빨을 물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날이 갈수록 토벌대원들은 더욱 옥죄어 오지 않은가. 그리고 대원들은 갈수록 힘을 잃고 사분 오열이 되고 있지 않은가. 이래서는 모든 일이 너무나 절망적이다. 정말 모두 전멸하고, 적의 총부리에 살아져 가야 하는가.  아버지는 깊은 내면에서 몇 천 번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정말 그 동안 도민들의 영웅적인 투쟁은 훌륭하였다. 야수들의 대중적인 학살과 전면적인 초토화 작전을 반대하고 궐기한 여수 국방군의 애국적인 폭동도 눈으로 확인하였다. 이는 남조선 전체 사람들에게 혁명적 열정과 용감성을 고무하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빨치산 운동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 놓은 기점으로 되었다. 특히 장기간에 걸쳐 벌어진 무력항쟁을 통하여 미국의 타격과 통치 체계를 근저로부터 뒤흔들어 놓았다는데 섬사람들이 단행한 무장투쟁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승리인 업적을 남기면서도 그 반면에는 구체적인 타산도 없는 투쟁 조직과 운동 행정에서 지도성의 결함은 혁명 역량에 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 막대한 희생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아아, 정말 이제 이렇게 끝나야 하는가. 북쪽과의 연계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 않은가. 점점 더 불안하다. 그렇다면 섬사람들의 봉기도 역시 종파적 모험적 책동에 의하여  지방주의적 편향에서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까. 그리고 반동 세력의 대세에 밀린다면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아버지는 계속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렸다. 멀리 초소에서는 동지들이 깊게 잠에 빠져있었다. 밤은 더욱 적막에 쌓여 갔으며, 하늘에 별들도 추워 오돌오돌 덜기 시작했다. 산기슭으로 불던 바람도 산을 넘을 듯 하였다. 그러나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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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은 벽이다. 벽은 장애물이다. 장애물은 막힘이다.  4․3이라는 벽이 육십 년 동안 모든 것을 막아버렸다. 입을 막고 귀를 막고, 숨통을 막아 버렸다. 사람들의 삶은 꽉꽉 닫혀버렸다. 4․3은 누구나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불문율이다. 4․3이란 장애물로 사람들은 입을 함부로 놀리지 못했다. 4․3으로 사람들은 아픈 가슴앓이를 계속 하였다. 4․3의 벽은 사람들의 만남과 대화를 가로막아 버렸다. 학문과 학문을 예술과 예술을 만나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올가미를 씌워 섬사람들을 뿌리 달린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람들은 아무도 몰래 벽을 향하여 비난을 퍼붓고 침을 뱉었다. 오랜 세월 숨을 죽이며 살아가는 것도 운명으로 받아드렸다. 뿌리 달린 사람들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 사람들을 옥죄었다. 그렇다. 벽은 막힘이다. 4․3도 역사의 막힘이다. 그런데 4․3의 막힘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 단단한 막힘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육십 년 동안 벽을 사이에 두고 등을 돌리고 살았던 남과 북의 사람들이 벽을 하나씩 허물고, 이제 숨통을 터 나갈 수 있을까. 그 동안 사람들은 서로 사상의 올가미에 씌워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 많은 벽들이 언제면 다 무너지고, 화합의 마당으로 펼쳐질 수 있을까. 벽이 무너지고 양쪽이 통합되어 새로운 노래가 울려 퍼진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삼천리 강산을 밝게도 비치네/짓밟힌 조선에 동은 트리라/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캄캄한 밤하늘 바라다보니/신음하는 조국강산 어리여 오네/변치 말자 혁명에 다진 그 마음/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간악한 강도 일제 쳐 물리치고/삼천리에 새별이 더욱 빛날 제/조선아 자유의 노래 부르자/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북쪽 노래가 남쪽 텔레비전에서 들려오고, 남쪽 장관이 북쪽 장관과 만나 국사를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북쪽 사람들이 남쪽을 방문하고 남쪽 사람들이 북쪽을 방문하면서, 벽은 하나씩 무너지고 있었다. 벽이 와르르 모두 무너지는, 그 물꼬가 터지는 날은 과연 언제일까. 아아, 누가 뭐라고 해도 벽은 하나씩 무너지고 있었다. 나와 아버지와의 사이에도 그 벽은 존재하고 있었다. 벽이 아버지와 나를 가로막고, 결코 무너질 수 없는 장애물로 버티고 있었다. 아버지는 벽 뒤에 숨어서 꼼짝없이 그 동안 역사의 반역자가 되어 나를 구속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육십 년 동안 아버지의 실체를 감추고 살아왔다. 상상해 보라. 만약 아버지의 실체를 인정한다면, 이 남한 사회에서 대체 어떻게 생을 유지하며 살아야 할지, 당신은 짐작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빨갱이 아들이 되어, 심지어 빨갱이가 되어 저 아득한 동굴 속에 갇혀 영원히 나올 수가 없었으리라. 아아, 나는 빨갱이 아들이다. 나의 핏속에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아,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래서 나는 남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으로 지금까지 모든 사실을 무조건 숨겼다. 심지어 아내와 아들에게도 아버지의 실체를 숨기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 빨갱이 누명이 벗겨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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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매일 작업장으로 끌려나갔다. 손발은 이미 피멍이 들었고, 아버지는 그날 밤 산으로 오른 후 소식이 없다. 어느 날 작업을 끝마치고 돌아온 밤이었다. 아들을 품에 안고 잠에 골아 떨어졌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잠에서 깨어 주섬주섬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머니 있나? 누가 숨을 죽이고 어머니를 불렀다.”

“ ............?”

어머니는 오금이 바싹 조여옴을 느꼈다.

“아주머니 집에 있나?”

매우 굵고 우렁찬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토벌대원이 분명했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들은 이제 남편이 산행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체포하러 온 것이 분명했다. 이 일을 어찌하란 말인가.  핏덩어리 아들 녀석을 어찌한단 말인가.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들은 군화를 신은 채 우르르 방으로 들이 닥쳤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잠에 빠진 한 살 박이 아들을 내버려두고 특무대 사무실로 어머니를 끌고 갔다. 어머니는 그날 밤 서북 청년으로 구성된 특무대 군인들에게 넘겨졌다. 중위 계급장을 단 특무대장이 어머니를 끌어 앉히더니, 심문을 시작하였다. 

“당신 남편 산에 올랐지?”

어머니는 특무대장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너무 무서웠다.

“당신 남편 빨갱이 맞지? 그래서 산으로 올랐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대답할 기력도 잃어 버렸다. 

특무대장의 구둣발이 어머니 복부로 날아들었다. 어머니가 비명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특무대장이 다시 달려들었다. 비명소리는 취조실 벽을 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특무대원들이 어머니를 밧줄로 묶고 벽안에 가두었다. 다음 날 어머니가 다시 특무대장에게 끌려갔다.

“당신 남편이 빨갱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지금도 남편과 연락을 하고 있지?”

“집을 나간 후 연락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정신을 차리고 겨우 대답하였다. 거짓말 말아.

“내가 당신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제발, 믿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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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제주도민과 국민여러분! 그리고 제주 4․3 사건 유족 여러분과 내빈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곳 평화의 섬 제주에서 희생당하신 많은 분들의 넋을 추모하고 위로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선 4․3 사건 희생자들의 영전에 깊은 추모의 마음을 바치면서, 삼가 명복을 빌어마지 않습니다. 또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만들어낸 상처를 반세기동안 안고 살아오신 유가족 여러분과 제주도민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ꡐ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ꡑ 위원장의 자격으로  그 동안 4․3 사건의 진상을 역사에 되살리고 억울하게 가신 희생자분들과 유가족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여러 일들을 해 왔습니다. 지난달에는 여러분의 뜻을 받아들여 수형인들을 4․3 사건의 희생자로 결정하기도 하였습니다. 희생자 심사는 현재 3분의 2 이상이 진척되고 있습니다. 빠른 기한 내 마무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회의를 주재하고 많은 것을 결정하면서 평소 제가 명예 제주도민으로서 제주인들의 아픔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현대사에 묻혀진 제주인의 상처와 아픔은 너무 깊고 커서 그 어떤 위로와 사과의 말도 결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주도와 제주도민은 과거의 아픔을 승화시켜 미래로 가고 있습니다. 제주도민은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하고 한반도와 동북아, 나아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섬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저는 제주도민들의 평화 애호 정신의 기저에는 4․3 사건이라는 비극을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극복해낸 강인한 의지와 평화에의 바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민 여러분! 그리고 국민여러분! 역사는 현재의 자신을 과거와 미래로 이어주는 긴 동아줄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든, 어느 민족이든 간에 역사를 은폐하거나 왜곡하면서 그 아픔을 매듭짓지 않으면 역사의 동아줄은 스스로의 발목을 잡아 미래로의 전진을 방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분명히 매듭짓고 나아간다면 그 동아줄은 우리를 하나로 묶고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이루는 튼튼한 끈으로 변할 것입니다. 제주 4.3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억울한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과거 우리의 공과를 바로 함으로써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분들의 충정을 올바로 평가하고 억울한 희생자를 위로하여 진정한 통합의 이루어 나가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제주의 경험은 우리 역사를 재평가하고 새로 쓰는데 하나의 모범이 될 것이라 저는 감히 평가합니다. 역사의 진실을 규명함으로써 진정한 평화와 통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곳 4․3 평화공원은 역사의 진실과 화해를 상징하는 평화 염원의 성지가 될 것입니다. 참여정부는 앞으로도 과거 정부들의 잘못을 외면하지 않고 이를 올바로 밝혀내며 공적은 더욱 높이고 잘못은 분명히 사죄하면서 역사의 아픔을 치유하고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역사 앞에서 진실과 양심을 지켜나갈 것을 당당하게 촉구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제주도민 여러분! 여러분은 역사의 아픔을 딛고 평화의 섬, 아름다운 제주도를 가꾸어 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화해와 평화의 새로운 꿈을 가꾸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57년 전 먼저 가신 넋들도 지금의 여러분을 보며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모쪼록 제주만이 아닌 한반도 전체, 나아가 동북아 전체에 역사의 진실 규명과 이를 토대로 한 화해와 평화의 기운이 가득해 지도록 함께 나서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다시 한번 영령들의 명복을 빌면서 제주도의 앞날에 밝은 미래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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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무대장은 몸집이 호리호리하고 키가 작았다. 한마디로 생쥐를 연상시키는 인상이다. 그렇지만 눈을 가늘게 부릅뜰 때는 주위를 사뭇 긴장시키면서 어디에서 그런 위엄이 나오는지 모르게 날카롭다. 그가 눈을 부릅뜨며 어머니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자네 남편 빨갱이 맞지?”

“아닙니다.”

“나이가 스물 일곱인가?”

“네, 맞습니다.”

“자네 신랑은 며칠 있으면 저 서문비행장에 끌려가 사형을 당한단 말씀이야. 그런데 자네 신랑은 빨갱이 중에서도 꾀 배운 놈이더구먼. 빨갱이들은 대개 배운 놈들이 많지. 그런데 그게 제대로 배운 게 아니란 말이야.”

어머니 팔목에는 밧줄이 감겨져 있었다. 특무대장이 바싹 앞으로 다가섰다. 왼손으로 어머니의 턱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밧줄을 풀어나갔다.

“인민 대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원하던데, 그런 세상은 원래 없는 거야. 자네 남편이 그걸 원했어.”

특무대장이 두 손으로 양 볼을  움켜잡더니 갑자기 어머니의 윗도리를 찢었다. 어머니의 내복이 밖으로 드러났다. 특무대장이 다시 내복을 힘껏 찢었다. 어머니의 하얀 젖무덤이 출렁거렸다.

“자네........그래도 몸매는 그만인데. 아직도 싱싱하게 살이 올랐네.”

  군인이 다시 어머니의 속옷을 벗겨나갔다. 어머니가 발가벗겨졌다. 그리고 군인이 천천히 옷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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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앞마당은 사람들로 웅성거렸다. 4․3 사건을 심층 보도하여 독자들에게 열렬한 갈채를 받고 있는 신문사 직원들도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신문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재야단체 임원들과 4․3 연구소 관계자들도 보였다. 재판정 문이 열리자, 제일 먼저 4․3 유족회 회원들이 재판정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좌석을 메우고 앉았다. 재판정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처음은 꾀나 들썩거렸다. 그러나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침묵만이 흘렀다. 4․3 계엄령은 과연 불법인가 아닌가. 법정이 역사를 심판하는 날이다. 지금까지 대부분 사람들은 4․3 계엄령은 정당하다고 믿고 있었다. 차마 그것에 누가 시비를 걸고 대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진실을 오래 숨기고 있지 않았다. 신문이 특집 기사를 통해 이 사실을 물고 늘어졌다. 4․3에 대한 기사를 몇 년 동안 심층 보도하고 있는 제민일보는 ꡐ4․3 계엄령은 불법이었다ꡑ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기에 이르렀으며, 그것에 대한 증거를 조목조목 나열하여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승만의 양자라는 사람은 그 내용의 기사를 게재한 신문사를 상대로 정정 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오늘은 이에 대하여 선고공판이 열리는 날이다. 피고는 물론 신문사였으며, 원고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양자라는 바로 그 사람이었다. 재판장이 천천히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방청객은 조용한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제헌헌법에는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사건에 대한 계엄 선포 당시에는 계엄법이 제정, 공포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이승만 전대통령이 선포한 계엄은 법령에 근거 없이 선포된 위법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이 그 시행과정에서 많은 불법적인 조치가 이뤄졌음은 변론으로 하더라도 관련법령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과도기적 상황에서 발생한 비상상태를 맞아 계엄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 필요성이 있었던 점등을 보면 계엄선포행위 자체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이뤄진 불법적 조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그러나 신문의 취재과정, 취재기간과 보도경위 등에 비춰볼 때 신문은 4․3이 발생한지 수십 년 동안 묻혀져 있던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던 과정에서 국내외를 망라한 각계 자료와 논문, 생존자들의 증언, 법학자, 변호사 등 전문가, 심지어는 일본 헌법학자에게까지 자문을 얻은 후 계엄은 법령에 근거 없이 선포된 불법적인 것이었다는 확신을 얻고 보도한 것..................이 계엄은 실제로 제헌헌법에 따른 계엄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선포됐으며 현재도 4․3 특별법과 관련해 일부 국회위원들이 이 계엄을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점에 비춰보면 신문이 단편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주관적 보도를 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 자료와 근거에 의해 나름대로 진실 확인 작업을 거쳐 보도한 이상 이 보도가 진실하다고 믿은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재판장은 판결문 낭독을 마쳤다. 박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신문사가 승소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이 ꡐ4․3 계엄령은 불법이었다ꡑ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한 신문사를 상대로 제기한 정정 보도 및 손해 배상 청구소송에서 이겼다. 제주지방법원 민사합의부는 선고공판에서 원고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방청객들은 오랫동안 신나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목안에 걸렸던 큰 가시가 밖으로 튀어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19

   

초등학교 졸업식이 가까웠다. 나는 육 년 개근상에 육 년 우등상, 그리고 전교어린이 회장을 일년 동안 무리 없이 수행하였으니, 졸업식 날 가장 뛰어난 졸업생에게 수여하는 교육감이 수여하는 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교육감 상은 내 차지였다. 할머니도 졸업식이 있는 날만 기다렸다. 학교에서 졸업생 수상 관계로 직원 조회가 열렸다.

“안됩니다. 그 아이에게 교육감 상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 아이의 아비가 4․3 사건 당시 저쪽에 편입되어 열렬하게 활동하던 빨갱이가 분명합니다. 그런 아이의 아들에게 그 중요한 교육감 상을 준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한 선생님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물론 졸업식 날 교육감 상은 다른 아이에게로 돌아갔으며, 나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속으로 분만 삭이고 있었다.

“그래, 너도 이제 고향 마을을 떠나거라. 너의 아버지의 사인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열심히 공부하거라.”

할머니가 나의 등을 어루만졌다. 나는 보따리를 싸고 시내 중학교에 입학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아아, 어머니는 나를 버리고 이북사투리를 쓰는 특무대장을 따라 집을 나간지도 몇 년이 지나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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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을 나온 나는 버스를 타고 고향 바닷가를 향했다.  당시 집단 학살 터였던 고향 바닷가는 여름철이면 전국의 피서객들이 몰려드는 해수용장으로 변했다. 피서철이 지난 지금은 너무나 한적하게 파도소리만 처량하게 들썩였다. 붉은 노을이 바다를 물들인 무렵에 바닷가에 도착하였다. 사람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모래밭으로 내리쬐는 석양만이 참혹한 붉은 색을 띄면서 내리 비췄다. 그 붉은 노을을 바라보는 자체가 사람을 황홀하게 하고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였다. 

이여싸나 이여싸나/혼백상자 등에다 지고/가슴 앞에 두렁박 차고/한 손에 빗창을 쥐고/한 손에 낫을 쥐고/한 길 두 길 깊은 물 속/허위적 허위적 들어간다.

저 아득한 곳에서, 지는 해를 등 삼아 잠녀들이 자맥질을 하며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노래가 들리는 곳은 서우봉이 가까운 곳이다. 잠녀들이 부르는 노래에는 깊은 슬픔이 서려있다. 그 가사가 너무 시적으로 흐르면서 사람을 애달프게 하였다. 잠녀들은 바다 깊숙이 들어가서, 오랜 시간 물질하다가 목숨을 여위는 경우가 있다. 그 길이 열두 길이라 했던가. 열두 길은 어림잡아 이십 이 미터다. 잠녀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혼백상자를 지고 이십 이 미터 물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 인생 자체가 열두 길에서 물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잠녀들은 물질을 한다. 나의 귓전으로 잠녀들의 노랫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아버지도 혼백상자를 지고 죽음을 향하여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갔을까. 아버지가 추구하는 이념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흔쾌히 멍에를 지기를 바랬을까. 아버지, 당신은 지금 나에게 무엇입니까? 당신은 지금 우리 가족에게 무엇입니까? 당신은 이념을 신봉하다가 그냥 저 세상으로 떠난 한 젊은이에 불과합니까? 멀리 백사장 끝에 자리잡은 양옥 한 채가 눈길을 끌었다. 하얀 색으로 외벽을 발랐다. 늦가을 바람이 부는 이 계절에 그 집은 매우 쓸쓸한 느낌으로 다가섰다. 모래가 바람에 휘날려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집을 향하여 천천히 걸었다. 바람이 불어대는 모래밭에, 사람들은 얼씬 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ꡐ월촌리 식당ꡑ이라는 작은 간판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이십 평 남짓한 가게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온기가 흐르면서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나무의자에 걸터앉자, 방에서 인기척이 났다. 여자 주인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뭘 드시겠습니까?”

주인이 마른기침을 콜록거렸다.

“소주 주십시오. 안주는 뭐가 있습니까?”

“여러 가지 있습니다.”

  주인이 대답을 하고 소주병을 상위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안주로 빈대떡이 괜찮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내가 괜찮다고 눈짓으로 대답했다. 여인은 다시 무 깍두기를 비롯한 기본 안주들을 상위로 늘어놓았다. 집이 매우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은 주방으로 걸어 들어가 빈대떡을 굽기 시작하였다. 나는 잔에 천천히 술을 따랐다. 깍두기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한잔 들었다. 주인을 다시 쳐다보았다. 주인은 어디서 많이 본듯한 낯익은 얼굴이다. 주인이 빈대떡을 들고 내 앞으로 왔다. 틀림없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동창생이 틀림없었다. 갑자기 나의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뛰었다. 나이를 먹고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복받쳤다.

“혹시 월촌초등학교 17회 졸업생이 아니십니까?”

  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주인을 쳐다보았다. 주인이 안주를 상위로 놓으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맞으시죠? 맞으시죠?”

  주인도 다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우리는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나는 술잔을 채우고 그녀에게 넘겼다. 그녀는 고향 마을에서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재일 동포를 만나 결혼도 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도 아이가 없었다. 오 년 전부터 남편이 바람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참고 있으면 곧 돌아 오리라던 남편은 아예 다른 여인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작년에 혼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이곳에 삶터를 마련하였다. 이제 우리들의 대화도 자연스럽게 전개되었다. 그녀는 내 앞에 앉았다.

“고향에 돌아오니 아버지 생각이 너무 간절하구나.”

“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는데?”

  내가 물었다.

“4․3 사건 때.”

“그렇다면 언제 어디에서?”

“1949년 10월 2일. 바로 서문 비행장에서.................................?”

  이럴 수가 있는가. 내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과 장소가 똑 같은 것이 아닌가.

“내 아버지도 10월 2일인데, 서문 비행장에서.”

  나는 창 너머 수평선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왜 우리는 어린 시절 4․3에 대하여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을까?”

“빨갱이 짓이니까. 4․3은 입으로 결코 꺼내지 못하는 불문율이었으니까. 그런데 정부는 요즘 들어 4․3에 대하여 왜 호들갑을 떨까? 사상이고 이념이고 제쳐두고 너무 쉽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두 사람은 모래밭으로 나왔다. 그녀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었다. 나도 신발을 벗어 양손에 들고 그녀를 따랐다. 흡사 어린아이들 같았다. 모래밭을 걸으며 조개껍질도 주어 나갔다. 그녀의 연분홍 한복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우리는 이곳에 자주 왔다. 선생님을 따라 올 때도 있었다. 하얀 모래밭과 멀리 펼쳐지는 파도는 어린 마음을 너무 설레게 했다. 아이들은 조개를 잡고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놀았다. 선생님은 이곳이 총을 겨누던 학살 터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알아도 그냥 놔뒀을까. 아이들은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기차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이때 누가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한 아이가 사람의 뼈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생님, 여기도 있어요.”

다른 아이도 뼈를 들었다.

“여기도 있어요.”

“여기도 있어요.”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뼈들을 들고나섰다. 선생님은 재빨리 아이들을 모으고 학교로 돌아왔다.

“앞으로 바닷가에는 가지 말아라. 절대 가지 말아라.”

  선생님의 긴 명령이 아이들에게 떨어졌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시는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 그후 아이들은  영영 이 모래밭에 나오질 못했다.

“이제 백사장에는 조개껍질만 널려있어.”

그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저 바다와 파도도 있지.”

  바람이 포근하게 우리를 감싸 안았다. 파도가 밀려왔다. 저 파도가 어디에서부터 밀려오는 것일까. 이곳은 막혀있다. 그리고 이 막힘은 저 바다를 통해 다시 열려지고 있었다. 바다는 열린 공간이다. 출륙금지령이 내려졌던 조선후기를 제외하면, 섬사람들은 항상 바다를 통하여 한반도, 일본, 중국 등지의 주민들과 대외교류를 하였다. 고려시대나 조선초기까지만 해도 섬의 선박 제조기술이 한반도의 것을 능가했다고 옛 문헌은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바다를 활짝 열어야 하지 않을까. 바다 앞에 서서 파도소리를 듣는 일도 괜찮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다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도 아무소리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21


고등학교 졸업시즌이다.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공부에 열을 올리고,  나도 ‘영어정해’와 ‘수학정석’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시간을 쪼개며 밤을 설치고 있었다. 나는 서울법대가 목표였다. 판사가 되어서, 정의로운 심판을 하는 법관이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이다. 수학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나를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교무실 문을 두드리고 선생님 앞에 섰다. 선생님은 나를 보자 앞장을 서서 교무실 밖으로 나섰다. 수학선생님은 나와 같은 고향이라 나의 집 내력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교사휴게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마침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서울법대에 간다고 너의 담임선생님께 들었어. 그런데 말이야........................................”

선생님의 입이 매우 무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네 서울법대를 포기하고, 다른 생각을 해봐. 자네도 알고 있잖아. 너의 선배 중에 서울법대를 나와서 고시패스에 실패하고 폐인이 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왜 떨어진 줄 알아? 그의 아버지 때문이야. 그 녀석 아버지가 4․3사건 당시................”

선생님은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교사휴게실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22

월촌리 윗동네에 사는 노인은 어둠이 으슥해야 집으로 돌아왔다. 노인이 돌아올 때가지 집 주변을 서성거리며 시간을 때웠다. 노인은 생각보다 정정하였다. 여든 두 살이라는 나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기력이 충분하였다.

"자네가 누구라고...........?"

내가 누구의 아들이라고 아버지의 함자를 대자, 노인이 번쩍 눈을 떴다.

"아하,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자네가 살아있다니."

  노인은 연거푸 긴 한숨을 뿜어내었다. 그리고 나를 뚜렷이 자세하게 쳐다보았다. 노인은 육십 년 전 아버지의 친구다. 나는 이전부터 들어서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네가 그 아랫동네 그 누구의 아들이란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이렇게 늦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이제라도 만났으니 얼마나 좋은가. 꿈도 꾸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군."

  노인은 얼굴을 대충 씻고는 나를 끌고 방으로 들어섰다. 나는 무릎을 꿇고 절부터 하였다.   "그래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나?"

"네, 그럭저럭 입에 풀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 아버지를 닮아서 똑똑하겠지."

노인은 아들을 만난 것처럼 기뻐하였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이제 결론을 내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노인을 쳐다보았다.

"삼촌, 저의 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습니까? 그리고 어디에서 돌아가셨습니까? 물론 사태 대 돌아가신 줄을 알고 있습니다마는 정확한 날짜를......................."

  나는 노인을 삼촌이라고 불렀다. 섬에서는 아버지 친구를 보통 삼촌이라고 부르는 것이 상례였다. 노인은 한참동안 나를 쳐다보았다.

"자네 아버지는.....................그래 자네도 확실하게 모르겠지. 그러니까.............."

노인은 그 날짜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49년 10월 2일. 읍내 경찰서에서 급사 일을 하는 동생이 자정이 가까워서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왔다.

"큰일났습니다, 형님. 누구가 서문 비행장에서 일을 당했습니다."

"일을 당하다니?"

"모르시겠습니까?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동생은 땀을 흘리며 노인에게 읊조리고 있었다. 

"그래서 자네 아버지가 죽은 줄 알고 있었지. 그날 나는 급히 자네 집으로 달려갔지. 자네 어머니는 자네를 가슴에 안고 잠을 자고 있었어. 내가 전하는 남편 소식을 전해 듣고 눈물만 흘렸지."

  노인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삼촌, 아무리 생각해도 이제는 4․3 희생자 신고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사망신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망신고도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삼촌이 보증을 서 주셔야 하겠습니다."

"보증도 필요한가?"

"네, 도장만 찍어 주시면 됩니다."

"그래."

  노인은 서류에 도장을 찍고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23   

              

  군대를 다녀오고,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한 나는 처음 도서관을 주무대로 공부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도서관에만 머리를 들어 밀기에는 정국 상황이 너무나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군사정권은 캠퍼스에 장갑차를 앞세워 총을 멘 군인들을 상주시켰다. 학생들은 ‘군사정권 물러나라’ 고 외치며 감옥을 제 집 드나들 듯 하였다. 그냥 도서관에서만 주리를 틀 수가 없었다. 군사정권에 앞장선 5․16의 주체 세력들은 대부분 4․3 사건 당시 토벌대를 이끌었던 자들이 아닌가. 앞장서야 한다. ‘군사정권 물러가라!’ ‘양심세력 풀어 주라!’를 외치며 시위대를 이끌기로 했다. 최루탄이 터지고 군인들이 캠퍼스로 몰려들었다. 결국 군인들에 이끌려 지하실로 끌려갔다. 공안당국은 이른바 좌경학생들에 대해서는 특단의 대책을 세우고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잡혀 들어간 지하실은 기관에서 비밀리에 운영을 하면서 인신 구속 및 대학생들에 대한 불법사찰과 검열을 해온 곳이다. 이러한 병영국가의 활동은 군사정권 당시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군인들에 이끌려 우중충한 건물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건물 1층 오른쪽 통로의 한 문을 여니 조그만 공간에 나선형 계단 입구와 엘리베이터가 눈에 띄었다. 2층에는 계단과 통하는 출입구가 없고, 1층과 5층만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통로 양쪽으로 조사실 문들이 반듯하게 정렬한 모습은 교도소를 떠올리게 했다. 3평 남짓한 일반 조사실에는 별다른 장식 없이, 한쪽 벽의 냉․온풍기와 구석의 세면대와 변기만이 눈에 띈다. 내가 끌려 들어간 511호실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출입구 바로 옆으로 담요가 씌워진 낡은 침대 쿠션과 구석에 설치된 욕조가 첫눈에 들어왔다. 자해 방지 목적인 듯, 책상과 의자는 볼트로 바닥에 고정돼 있었다. 형광등은 철망으로 덮여 있었고, 조명 스위치는 조사실이 아닌 복도에 설치돼 있다. 천장 한쪽엔 폐쇄회로 촬영기기가 설치됐던 공간과 폭 15㎝의 길고 좁은 창도 눈에 들어왔다. 냉기가 도는 조사실 분위기를 그나마 완화시켜주는 것은 비좁은 창문에서 쏟아지는 햇빛이었다. 변기를 딛고 내다본 창문 밖으로는 현관 앞 정원과 숲, 테니스장, 주차장, 미군기지 등이 보였다.   "자네는 좌경학생이야. 자네 아버지도 빨갱이지.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 것은 순리일까?"

  취조관은 질근질근 껌을 씹으며 아버지부터 들춰내었다. 다시 4․3 망령이 젊은 나를 들쑤셔 놓고 있었다. 아아아아. 그 지하실의 그 끔직한 횡포. 아아아아.

                                  

                                 24

                   

4․3은 벽이다. 벽은 장애물이다. 장애물은 막힘이다.  4․3이라는 벽이 육십 년 동안 모든 것을 막아버렸다. 입을 막고 귀를 막고, 숨통을 막아 버렸다. 사람들의 삶은 꽉꽉 닫혀버렸다. 4․3은 누구나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불문율이다. 4․3이란 장애물로 사람들은 입을 함부로 놀리지 못했다. 4․3으로 사람들은 아픈 가슴앓이를 계속 하였다. 4․3의 벽은 사람들의 만남과 대화를 가로막아 버렸다. 학문과 학문을 예술과 예술을 만나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올가미를 씌워 섬사람들을 뿌리 달린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람들은 아무도 몰래 벽을 향하여 비난을 퍼붓고 침을 뱉었다. 오랜 세월 숨을 죽이며 살아가는 것도 운명으로 받아드렸다. 뿌리 달린 사람들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 사람들을 옥죄었다. 그렇다. 벽은 막힘이다. 4․3도 역사의 막힘이다. 그런데 4․3의 막힘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 단단한 막힘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육십 년 동안 벽을 사이에 두고 등을 돌리고 살았던 남과 북의 사람들이 벽을 하나씩 허물고, 이제 숨통을 터 나갈 수 있을까. 그 동안 사람들은 서로 사상의 올가미에 씌워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 많은 벽들이 언제면 다 무너지고, 화합의 마당으로 펼쳐질 수 있을까. 벽이 무너지고 양쪽이 통합되어 새로운 노래가 울려 퍼진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삼천리 강산을 밝게도 비치네/짓밟힌 조선에 동은 트리라/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캄캄한 밤하늘 바라다보니/신음하는 조국강산 어리여 오네/변치 말자 혁명에 다진 그 마음/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간악한 강도 일제 쳐 물리치고/삼천리에 새별이 더욱 빛날 제/조선아 자유의 노래 부르자/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북쪽 노래가 남쪽 텔레비전에서 들려오고, 남쪽 장관이 북쪽 장관과 만나 국사를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북쪽 사람들이 남쪽을 방문하고 남쪽 사람들이 북쪽을 방문하면서, 벽은 하나씩 무너지고 있었다. 벽이 와르르 모두 무너지는, 그 물꼬가 터지는 날은 과연 언제일까. 아아, 누가 뭐라고 해도 벽은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나와 아버지와의 사이에도 그 벽은 존재하고 있었다. 벽이 아버지와 나를 가로막고, 결코 무너질 수 없는 장애물로 버티고 있었다. 아버지는 벽 뒤에 숨어서 꼼짝없이 그 동안 역사의 반역자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육십 년 동안 아버지의 실체를 감추고 살아왔다. 상상해 보라. 만약 아버지의 실체를 인정한다면, 이 남한 사회에서 대체 어떻게 생을 유지하며 살아야 할지, 당신은 짐작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빨갱이 아들이 되어, 심지어 빨갱이가 되어 저 아득한 동굴 속에 갇혀 영원히 나올 수가 없었으리라. 아아, 나는 빨갱이 아들이다. 나의 핏속에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아,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래서 나는 남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으로 지금까지 모든 사실을 무조건 숨겼다. 심지어 아내와 아들에게도 아버지의 실체를 숨기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 빨갱이 누명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25


저녁달이 아름답게 솟았다. 바람도 산들산들 불어 운치를 더해 갔다. 멀리 수평선에 떠있는 배 위에도 어부들이 쉼 없이 고기를 낚아 올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나란히 모래밭을 걸었다. 너무 아름다운 밤이구나. 그렇구나. 잠이 오지 않는 밤이구나. 시대의 피해자끼리 서로의 위로가 아름답게 전개되는 밤이구나. 우리 나이가 이제 육십이다. 우리 둘이 우리 아버지들을 위로해야 한다. 바람이 살랑살랑 바지가랑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어도가 어디일까. 이어도가 여기구나. 달이 휘영청 밝구나. 우리 마음도 휘영청 밝아지는구나. 


                                 26

      

섬은 아름답다. 그래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원더풀, 원더풀을 외친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역사를 한 페이지라도 읽어보면, 섬사람들이 통한의 역사를 알게 된다. 그리고 4․3이라는 가장 비극적인 사건과 만나게 된다. 토벌대원들은 산을 향하여 대대적인 공습을 펼쳤다. 그들의 총부리에서 내뿜는 열기가 산사람들을 하나 둘 쓰러뜨렸다. 산사람들은  토벌대의 총부리에 죽임을 당하였고, 그래도 운 좋은 몇몇 사람만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목숨을 구한 산사람들도 하나 둘 잡히거나, 그렇지 않으면 각자 흩어지기 시작했다. 무장대의 아지트가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산사람들은 흩어지거나 산에 남아 있다가 잡혀서 총살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산은 쑥밭으로 변하였다. 스물 일곱 아버지도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은 산에서 생포한 젊은이들을 유치장에 감금하였다가, 서문 비행장으로 끌고 갔다. 아버지가 잡혀간 그 순간에도 탕, 탕탕, 방아쇠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 말없이 버티고 서있는 산은 아버지에게 대체 무엇이었을까. 산은 아버지의 목숨을 보호해주었을까. 산은 무장대원의 보호막 그 자체였을까. 산은 잠시나마, 사람대원들에게 남쪽으로부터의 태풍을 막아낼 뿐만 아니라, 중산간 지대의 광활한 목초지를 내어주었다. 화산이기 때문에, 엄청난 비가 내렸을 때에는 빗물을 대부분 빨아들여 해안지대의 홍수를 막아 목숨을 건져주기도 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산을 ꡐ거대한 물 허벅ꡑ이라고 하였다. 산이 높이 솟아있는 만큼 땅 밑으로 거대한 지하수 층을 형성시켜 사람들에게 최고질의 식수를 제공했다. 이러한 지하수는 지형에 따라서 해안이나 중산간 곳곳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대원들은 용천수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아지트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결국 붙잡혔다.  아버지는 서문비행장에서 토벌대원의 명령에 따라 삽을 들고 자기의 누울 자리 구덩이를 팠다. 죽음을 기다리는 동지들 앞쪽으로 경찰 일개 분대가 겨눠 총 자세로 노려보았다. 아버지 일행도 토벌대 앞으로 일렬로 세워졌다. 쏘아 총. 탕. 탕탕. 탕탕탕. 아버지가 쓰러졌다. 하나 둘 모두 쓰러졌다. 계속 ꡐ겨눠 총ꡑ 명령이 떨어졌다. 쏘아 총. 탕. 탕탕. 탕탕탕. 탕탕탕탕.


                                 27

 

4․3 도민연대 사무실을 찾았다. 그곳에서도 희생자 접수를 받고 있었다. 희생자 신고를 위해서는 65세 이상 연대 보증인 세 사람이 보증을 서거나, 아니면  4․3 연대에서 확인 서명을 받아야 한다. 사무실에서는 희생자 명단을 확보하여 대민 봉사를 하고 있었다. 안경을 낀 젊은 친구가 친절하게 안내를 했다.

“희생자는 언제 돌아 가셨습니까?”

  그의 앞에 의자를 당기고 앉았다.

“49년 10월 2일입니다.”

  젊은이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열심히 자판을 눌렀다.

“돌아가신 장소를 아십니까?”

“저기, 서문비행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참 동안 젊은이를 컴퓨터 모니터를 살피더니,

“돌아가신 분 이름이 있습니다. 10월 2일 명단에 있습니다. 49년 10월 2일, 당시 계엄군 사령부의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했습니다.”

“그럼 신고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예, 분명히 희생자입니다.”


                                 28

                                           

4․3은 죽임의 역사이다. 4․3은 처절한 몸부림의 역사이다. 섬은 죽임이며, 육지는 정복이다. 정복당한 섬에서는 항상 죽임이 뒤따른다. 육지는 갖은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섬과 인연을 맺으면서, 섬을 수탈하고 섬을 짓밟았고, 섬을 능멸하였다. 4․3으로 인한 고통을 하나 하나 열거하기에는 힘이 너무 벅차다. 섬을 향하여 총을 겨누고, 섬을 향하여 칼 부리를 휘두르는 자들을 하나 하나 열거하며, 왜 그들이 그러한 행위를 자행해야 했는지 생각하는 일은 힘겨운 일이다. 아아, 지겨운 세월이여. 아아, 통한의 역사여. 섬에 침입하여 섬사람들을 약탈하고, 섬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던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의 악랄한 행동으로 섬은 찢겨지고, 섬사람들은 고통의 신음소리를 밤새도록 내뱉었다. 육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신음하고 있으며 울분을 삼키고 있다. 섬사람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하며 약탈한 놈들은 육지에서 건너온 놈들이 틀림없다. 그들은 섬사람들을 빨갱이 사냥이라는 미명으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총알 밥으로 만들었다. 낮이나 밤이나 가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빨갱이 누명을 쓰고 죽어갔다. 섬은 역사적으로도 항상 약탈을 당했던 곳이다. 과거 섬사람들은 육지 놈들의 종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항상 죽음의 냄새가 났다. 육지 놈들이 총칼을 들고 몰려와, 섬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광경이 항상 눈앞에 선하게 펼쳐졌다. 구릉과 골짜기 어느 곳이든, 항상 죽음의 냄새가 심하게 풍겼다. 파도까지 죽음의 냄새를 싣고 세차게 밀려들어 사람의 애간장을 녹였다. 4․3 당시, 저 바다를 건넌 정복자들은 항구를 통해 보무도 당당하게 땅을 지긋이 밟고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가고 총을 쏘았다. 정복자들 앞에서 사람들은 우수수 쓸어졌다. 불법적인 계엄령을 선포하여, 섬사람들을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곳곳에서 자행된 학살 만행은 너무 끔직하였다.  가슴이 떨려 4․3 당시 그 피해 지역을 지금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다. 아아, 섬의 모든 곳이 학살 터였다. 정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천혜의 아름다운 관광지  모두가 학살 터였으니,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제부터라도 학살 터마다 안내문을 설치하여, 그곳이 사람들이 무참하게 죽어간 곳임을 밝히고 관광객들이 그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참혹한 역사가 펼쳐졌는데, 해방 당시 한국에서의 미국의 역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미국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팔짱만 끼고 있었을까. 아니다. 미국은 세계를 제패한 대제국이다. 모를 리가 없다. 미국은 분명히 사태가 났을 당시 제 역할이 있었다. 


                                 29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돌아앉아 방바닥에 걸레질만 하였다. 나는 다시 간단한 옷가지만 챙기고 집을 나섰다. 차를 몰고 고향 바닷가를 향하였다. 월촌리 바닷가를 향하였다. 나는 앞으로 4․3 당시 이승을 떠난 영혼들을 위로하고 그 유족들과 더불어 한 많은 세월을 보내리라. 그런데 ꡐ월촌리 식당ꡑ은 문이 잠겨져 있었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바닷가를 빠져 나와 식당이 가까운 구멍가게를 찾았다.  낯익은 아주머니가 가게를 보고 있었다. 

“월촌리 식당 주인이 어디로 가신 줄 아시겠습니까?”

“그 어른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예?”

“식당을 정리하고, 다시 일본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주머니는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고, 그리고 길게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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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관후

2006/05/09 16:27 2006/05/0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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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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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울면 불길한 조짐이 일어난다고 했다. 큰산을 향하여 과, 과하고 까마귀 떼가 탁하게 울부짖어 무슨 큰 일이 일어 날 것만 같았다. 서우봉 기슭에서 계속 울어대고 광장 전봇대에도 새까맣게 앉아 과, 과, 과하며 불길한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 

두 젊은이가 어두운 표정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ꡒ까마귀 울음이 영 마음에 걸리는군.ꡓ

ꡒ그러게 말이야. 기분을 이상하게 긁어놓고 있어.ꡓ

아침에 까마귀가 울면 아기가 죽을 징조라고 했고, 오후에 울면 늙은이가 죽고, 밤중에 울면 역적이나 살인이 일어날 징조라고 했다.

“또 어디선가 집단학살이 이뤄질 모양이군.”

김석웅이 고개를 들어 오름을 올려다보았다.

요즘 들어 까마귀 떼는 무리를 지어, 큰 산 높은 지대에서 서우봉 숲 속으로 내려와 둥지를 틀었다. 나뭇가지로 밥그릇 모양의 안식처도 마련하고, 청록색에 갈색 반점이 있는 알도 낳았다. 마을은 까마귀 천지가 되었다.

예로부터 섬에는 까마귀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염라대왕은 세상 사람들의 수명을 적은 귀중한 문서를 저승사자에게 주었다. 그것을 받아 든 저승사자는 까마귀를 불렀다. 까마귀로 하여금 인간 세계에 내려가 세상 사람들에게 일일이 알리도록 하였다. 그런데 까마귀는 그 귀중한 문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과, 과하며 제멋대로 울어대어 사람들의 수명은 그 순서가 뒤바뀌고 말았다. 아이가 어른보다 먼저 죽었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었다. 제자가 스승보다 먼저 죽었다. 세상만사가 바뀌기 시작했다. 까마귀 떼가 시도 떼도 없이 울어대면서 불길한 징조가 나타났다.

두 젊은이는 한라중학원에 다닌다. 중학원은 해방이 되자 마을 유지들이 설립한 학교다.

ꡒ사태가 심상치 않아.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정말 평등세상은 언제면 올까?ꡓ

진동우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ꡒ소련에 속지 마라, 미국을 믿지 마라, 일본이 일어난다라는 말이 유행이야.ꡓ

김석웅이 되받았다.

두 젊은이는 교실 문고 들어섰다.

다른 학생들도 책상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미군이 섬에 도착하는 날도 까마귀 떼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그 날 마을 광장의 게양대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휘날렸다.

우리의 영원한 우방 미합중국 만세 !

원자폭탄을 만든 미합중국 만세 !

위대한 나라 미합중국 만세 !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만세를 부르고 갈채를 보내며 파도타기를 하듯 넘실거렸다. 일본의 쇠사슬에서 풀려난 것은 오직 미국의 덕분이라며 환호하였다.

만세, 만세, 위대한 미군 만세!

아름다운 나라 미국 만세!

자랑스런 미국은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한반도에서도 일본군을 몰아내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휘관이 제주항에 상륙하였다. 그의 뒤에는 수많은 미군들이 휘파람을 불며 군함에서 내려졌다. 지휘관은 성조기를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그의 목소리는 위엄이 넘쳤으며, 그것이 식민지 백성들에게는 떨림으로 다가왔다. 그의 지시에는 공포감까지 깃들였다. 그는 바로, 섬에 부임한 왕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군중을 향하여 소리를 높였다. 본관의 지휘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이제 섬을 점령하였다. 지금부터 자랑스런 우리 군대가 군정을 실시한다. 군정 기간에 있어서는 영어를 모든 목적에 사용하는 공용어로 한다.

  미국은 새로운 법령을 제정하고 백성들을 옥죄여 나갔다. 식민지 백성 다루듯 사람들을 다루었다. 그러나 미국을 믿지 말아야 했다. 미국은 처음 남한만의 통치에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소련과의 약속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목숨을 영위하려고 눈치 빠르게, 미국을 아름다운 나라라고 침이 마르게 칭송하는 무리들이 생겨났다. 그들 가운데 일본 놈 뒷구멍을 핥던 친일파들도 있었다. 꼭꼭 숨어 움츠렸던 그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슬금슬금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일본 세상이 미국 세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ꡒ이제 북조선에는 갈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어.ꡓ

ꡒ누가 삼팔선을 제 마음대로 그어서 지랄을 하는지 모르겠어.ꡓ

두 사람은 각자  자기 책상 앞에 앉았다.

북조선에는 소련의 붉은 군대가 진주하였다. 그곳에서는 개인의 재산을 국유화하였다. 그 쪽 권력자도 목소리를 높였다. 북조선에 있는 모든 공장과 제조소, 그리고 공작소 주민들과 상업가와 기업가들은 지금부터 나의 명령에 따라 왜놈들이 파괴한 공장과 제조소들을 회복시키라. 새 산업 기업소들의 문을 열어라. 붉은 군대 사령부는 모든 북쪽 기업소들의 재산 보호를 담보하여, 그 기업소들의 정상적 작업을 보장하기 위해 백방으로 원조할 것이다. 북쪽 사람들도 붉은 군대의 명령에 따랐다.

ꡒ결국 한반도는 두 동강으로 갈라지고 말았어.ꡓ

김석웅이 길게 한숨을 쉬며 책을 꺼냈다.

다른 친구들도 웅성거리며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ꡒ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 두 동강으로 뭉개지고 말았어ꡓ

진동우는 일어서서 칠판을 닦기 시작하였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야 해.”

  “그렇지, 자주적 통일정부가 필요하지.”

반도는 일본이라는 한 주인을 섬기다가 하루아침에 두 주인을 섬기는 처량한 신세로 변하고 말았다. 남조선에서는 영어 읽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북조선에서는 공회당마다 붉은 깃발이 펄럭거렸다. 남조선의 수도 서울에서는 이승만을 내세워 새 정부가 들어서는 준비가 한창이었고, 북조선의 수도 평양에서도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작업이 착착 진행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 두 나라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세계 정복의 꿈을 간직한 두  나라는 한쪽씩만의 정복에 자존심이 상하고 말았다. 서로 불쾌하게 생각하면서, 자기들끼리의 약속은 지킬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학교에 나오면 조국의 앞날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섬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행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남의 나라 군대가 들이닥쳐 기세를 부리는지 딱할 뿐이다. 미군이 들이닥치면서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고, 마을에서도 밀고 당기는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ꡒ우리 마을까지 왜 이리 어수선한지 모르겠어.ꡓ

김석웅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일본 오사카에서 공장에 다니다가 해방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ꡒ해방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랫동네에 사는 한 경찰관 아버지가 유격대의 습격을 받고 생죽음을 당하였지. 그는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지. 친일 행각을 일삼았던 경찰관을 죽이려던 유격대원들의 뜻은 빗나갔어. 대신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야. 여기서부터 우리 마을에도 비극의 씨앗은 터지기 시작했어.ꡓ

진동우는 요즘 돌아가는 남평리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는 일제시대에도 마을을 지키며 농사를 지었다.

ꡒ그런데 왜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게 되었지?ꡓ

김석웅은 진동우에게 다시 물었다. 

ꡒ유격대원들은 죽창과 소총으로 무장하고 마을에 내려와 경찰관 집에 불을 지르고 산으로 줄행랑을 쳐버렸어. 경찰관 잡은 방화로 바깥채와 외양간이 불타 버렸지.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것은 동료 경찰관들이었어.

ꡒ그래서?ꡓ

ꡒ그들은 동료 아버지가 살해되자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이성을 잃고 말았지. 그들은 엉뚱하게 마을을 향해 보복할 계획을 세우고, 그리고 행동으로 옮겼지. 경찰 동료들은 복수심으로, 보리밭에 다녀오던 어떤 어머니와 딸을 유격대 연락병이라는 엉뚱한 누명을 씌우고, 팽나무에 매달아 총살하고 말았지. 나무에 매달린 두 여인은 발가벗겨져 있었으며, 음부에는 각각 죽창이 꽂혀 있었어.ꡓ

ꡒ................................?ꡓ

ꡒ마을은 발칵 뒤집히고 말았지. 다시, 격분한 마을 청년 대여섯이 울분을 참지 못하여 이를 갈았어. 기회를 노리다가 이번에는 예배당에 나가는 우익 단체의 총무 부인을 살해하였어. 그녀의 시신도 팽나무 가지에 며칠 동안 걸려 있었지. 그들 청년들은 결국 빨갱이 낙인이 찍혔으며, 일부는 산으로 올라가 유격대와 합세하였지. 그때부터 경찰은 우리 마을을 보복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지.ꡓ

ꡒ어찌 모두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어?

ꡒ그게 경찰은 경찰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갖고 있는 생각이야. 경찰은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어. 그후 경찰관들은 사람들의 성분을 하나씩 조사해 나갔어. 그리고 남평리를 빨갱이의 소굴로 결론을 지었어. 이 사건은 군정청이 서울 정보참모부 본부에 보고된 최초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어. 물론 정보보고서도 대구를 거쳐 서울, 그리고 워싱턴까지 타전되었고. 이 사건으로 자존심이 상한 미군정 당국도 호시탐탐 우리 마을에 대하여 기회를 노리고 있지.ꡓ

ꡒ그런데 요즘  완장을 팔뚝에 찬 낯선 부랑배들이 동네 골목을 누비고 다녀. 그들은 누구야? 놈들은 신작로에서 서성거리며 험상궂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노려보기도 해.ꡓ

ꡒ응, 서북청년단 놈들이야. 산지항에 정박한 미군 함대에서 내려진 놈들이 분명하지. 놈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북한 사투리를 쓴단 말이야. 소위 북조선을 탈출한 반공 일선에 나선 놈들이지. 당국이 그들을 투입시켜 도민들을 억압하고 있지.ꡓ

서북청년단원들은 죽창, 갈고랑이, 장도칼, 엽총을 하나씩 옆구리에 차고 다녔다. 그들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공갈을 일삼았다. 진드기처럼 두세 사람씩 달라붙어서 동네를 쏘다녔다. 집들을 이 잡듯 뒤지면서 빨갱이 새끼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였다. 섬에 숨어 있는 불순분자를 섬멸하기 위하여 북조선에서 내려왔다는 이들은 군정청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군정청은 섬에 연고가 없는 이들을 대거 끌고 와 빨갱이 진압 작전에 참가시키고 있었다.

ꡒ참으로 한심한 세상이 되어버렸네. 해방된 조국이 왜 이 지경이 되었지?ꡓ

ꡒ나도 이제 유격대원이 되어야 하겠어. 산에 오를 거야. 토벌대가 조여오고 있어. 우리 학생들을 붉게 바라보고 있어.ꡓ

ꡒ뭐야? 결국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구나.ꡓ

다른 학생들도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 들었다.

“나도 산에 오른다.”

“나도.“

  사람들은 서북청년단원들이 한두 사람 짝을 지어 나타나면 자갈밭을 일구다가도 골목길 동정을 살피며 도망쳤다. 그들이 더럽고 무서워서 산으로 오르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앞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유격대와 합류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산에 오른 일부 사람들은 이념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목숨이 아까웠을 뿐이다. 서북청년단원이  하루걸러 한번씩 나타나면서 잡혀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집집마다 수색하고, 한 사람씩 빨갱이 누명을 씌워 나갔다. 젊은이들은 성분을 따질 필요 없이 그들의 밥이었다. 초가나 움막, 그리고 짚더미가 마구 태워졌다.

  할 수 없이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보초를 세웠다. 그냥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검은 제복을 입은 경찰이 나타나면 ꡐ검은 개 나왔다ꡑ고 신호를 보내고, 군인이 나타나면 ꡐ노랑 개 나왔다ꡑ 고 신호를 보냈다. 동네 사람들만이 통하는 비밀 암호였다. 서북청년단원들이 너무 추잡스럽고 미워서, 똘똘 뭉쳐 나갈 수밖에 없었다.

ꡒ우리 인민을 위한 세력은 유격대 뿐이야ꡓ

진동우는 입을 굳게 닫았다.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조용하게 퍼져나갔다.


                                           2


  미군은 비행장과 항구를 통해 계속 들이닥쳤다. 원주민을 다스릴 군정청도 설치되었다. 항구에는 미군 함대가 정박하고, 공항 활주로에는 미군기가 내려앉았다.

  미군정청 사령관이 광장의 높은 단상에 올랐다.

  차려!

  사령관님께 경례!

  파란 눈의 젊디젊은 미육군 소령은 연설을 시작하였다.

  여러분들은 함부로 날뛰지 말라. 이기주의로 날뛴다던가, 자랑스런 미 상륙군에 대한 반란 행위, 공공 재산과 모든 기관의 파괴를 하는 경거망동을 삼가기 바란다. 나의 지시에 여러분들은 절대 복종하기 바란다.

  그가 내리는 명령은 감격 그 자체였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쇳소리가 묻어 났다. 그의 곁에는 통역관이 바싹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소령의 영어 연설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통역이 끝나서야 눈치를 살피며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박수만 쳐 대었다.

  사령관이 지프에 몸을 기대고 광장을 떠날 때, 까마귀 떼가 과, 과하며 울어대었다. 그는 섬을 지배한 새로운 군주였다. 그가 지나는 거리에는 경례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를 몰아낸 위인이었다. 검은 안경에 허리에 권총을 차고 지휘봉까지 들었다. 관리들에게 행정 명령을 내릴 때는 위엄이 넘쳤다. 관공서를 방문할 때는 책임자는 물론 하급 관료들도 구십 도로 머리를 굽혔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군들은 노골적으로 사람들의 비위를 거스르기 시작하였다. 네댓 명씩 짝지어 차를 몰고 신작로를 내달릴 때도 있었다. 껌을 씹거나 휘파람을 불면서 거리에서 행패를 부리기도 하였다. 카빈을 어깨에 메고 거리로 나서서 여자들을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거드름을 피웠다. 여자들은 코가 큰 그들이 나타나면 무서워 집안으로 줄행랑을 쳤다. 그들의 거친 행동으로 불안은 더해 갔다.  그러나 그들은 정복자들이 아닌가. 보무 당당하게 세계를 제패한 병사들이 아닌가. 원주민들을 짐승처럼 다루었다고,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인디언 취급하듯 윽박질렀다고 대들 자가 누구인가. 그들은 우리 안에 있는 돼지를 쳐다보듯 경멸하는 눈으로 섬놈들을 쳐다보았다.

미군들의 횡포가 드러나면서 섬사람들의 불만이 차츰 커져 갔다. 시내 농업학교 학생들이 반미 내용이 담긴 삐라를 뿌리고 지하조직이 결성되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에 대한 미군정의 대응도 만만찮았다. 미군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옥죄여 왔다. 미군정이 공포한 법률까지 최대한 동원하였다. 이렇게 되자, 잠시 동안 겉으로나마 반미 분위기가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폭발할 위험은 항상 도사렸다. 성조기는 기세를 떨치며 더욱 늠름하게 펄럭거렸다.

차츰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져, 끌고 당기는 숨막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섬사람들도 두 패로 나뉘어져 갔다. 한패는 미군들을 반만 년 만에 만난 천사라고 미소짓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지나칠 정도로 미군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열심히 영어를 배웠다. 미국은 하느님이 택한 나라이며,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세계를 정복했다고 믿었다. 마을과 동네마다 교회당도 늘어났다. 한약을 달이는 약탕관과 아픈 곳에 꽂는 침술도 비위생적이라고 내던졌다. 침을 땅에 파묻거나 불태우는 경우가 생겨났다.

  다른 패는 미군들을 놈들, 또는 정복자라 불렀다. 길거리에서 양코는 물러가라고 외치기까지 하였다. 당국은 미군정에 반대하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갔다. 어떤 이들은 산으로 올라 이미 조직이 완료된 유격대와 합류하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하나 둘 끌려가고, 이유 없이 죽어 갔다. 썩은 시신 냄새를 맡고 까마귀 떼들이 모래밭과 텃밭으로 몰려들었다.

  산에 오른 유격대원들은 고산 지대에 진지를 구축하였다. 산 중턱에서 그들이 훈련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찬이슬이 내리는 새벽에, 산 중턱에서 총성이 요란하게 퍼져나갔다. 총성은 산 구릉에서 중산간 마을로, 그리고 해안 모래밭으로 계속 번져 나갔다. 산악이나 오름에서 봉화가 활활 타올랐다. 불빛은 섬뜩하게 비쳐졌다. 밤 공기를 뚫고 사이렌 소리도 울렸다. 마이크에서 연설도 흘러 나왔다.

  아아, 무자년 4월 3일 새벽녘이다.

  친애하는 인민 여러분! 전조선 인민이 죽음으로써 배격하는 망국의 5.10 단선을 파산시키기 위하여 섬사람이 모두 일어서야 합니다.

  유격대의 공격은 불처럼 관공서와 극우 단체 사무실, 친일파의 집으로 번져나갔다. 대원들은 먼저 지서와 극우 단체 책임자의 집을 습격하였다. 그들은 일본군이 버리고 간 소총으로 무장하였다. 소총이 없는 대원들은 칼과 낫, 아니면 죽창이나 수류탄, 심지어 폭발물과 곡괭이와 삽까지 들고나섰다. 면 단위, 리 단위까지 그들의 조직 편성을 마친 상태였다. '미제의 주구들을 타도하자ꡑ는 구호도 외쳐대었다. 산과 들, 동굴과 밀림에서부터 중산간 마을, 심지어 해안 마을까지 그들의 행동 반경을 폭을 넓혀 갔다.

  미군은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작전계획을 세워야 했다. 곧바로 토벌대가 육지에서 밀려들어 왔으며, 앞으로 전개될 최후의 진압 작전까지 세워 놓았다. 오직 ꡐ산 사람 토벌ꡑ ꡐ멸공 빨치산ꡑ이란 일념으로 상황을 처리해 나갔다. 경찰대, 국방 경비대, 심지어 살인단까지 동원하였다. 유격대원은 물론 그들에게 동조한 사람, 그리고 무고한 민간인까지 무차별 잡아 가두었다. 소위 미국식 빨갱이 토벌전을 전개해 나갔다.

  밤에는 유격대가 습격하였고, 낮에는 토벌대의 만행으로 섬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갔다. 그렇지만 남쪽 지도자 누구 하나 섬 사건에 대하여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은 미군정이 끝난 다음에도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정파 싸움에만 열을 올렸다. 신문들도 섬을 ꡐ빨갱이 섬ꡑ이라고, 왜곡 보도를 일삼았다.

  토벌대의 행패로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숨을 거두었다. 시신마저 찾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무고한 주민들을 마을 텃밭에 모아 놓고, 빨갱이 가족이라는 누명으로 웅덩이에 쓸어 넣었다. 유격대의 기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도를 더해갔다.


                                      3


철쭉꽃이 피기 시작하자 사람들 가슴도 쓰려왔다.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결코 탓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가까운 서우봉에도 슬픔은 늘 서려 있었다. 아침마다 까마귀 떼 울음이 사람들의 가슴을 쓰리게 했다. 사람들은 척박한 땅을 일구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가까운 허허벌판에서 철쭉은 억새․ 솔새․ 고사리․ 싸리와 더불어 슬픔을 나누었다. 소나무들은 울창한 자태를 뽐내며 울창한 숲을 이루었지만 어딘가 허망한 것만 같다. 고샅마다 숙대나무들이 병풍을 쳤지만 어딘가 허전하게만 느껴졌다. 가까운 들녘에는 냉이와 도라지가 쑥쑥 자라 먹을거리도 풍성했지만 배는 여전히 고프기만 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조약밭을 일구고, 도랑창을 메워 보리씨를 뿌리는 억척스러움을 보였다.

한라중학원의 학습 시간은 열기를 뿜었다. 소문을 듣고 도내곳곳에서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교사들 중에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던 사람도 있었다. 수업은 대학 강의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특히 유승곤 선생이 가르치는 역사와 김철민 선생이 가르치는 철학은 학생들을 사로잡으며 인기를 끌었다. 학교를 개교할 때만 해도 학생들이 넘쳤다. 마당까지 멍석을 깔고  둘러앉아 강의를 들은 적도 있었다.  요즘 들어 지서로 끌려가는 학생들이 자주 생겨나고 경찰서에서도 학교를 요주의로 주목하였다

김철민 선생은 이미 당국에 잡혀가 조사를 받고 있었다.

유승곤 선생이 강의를 마치고 있었다.

ꡒ....................섬의 역사는 항쟁의 역사입니다. 한 마디로 국가 주류에서 물러난 사람들이 섬으로 쫓겨오고 그리고 그들은 섬에서 다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항쟁을 주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섬에서 크고 작은 항쟁들이 자주 일어나 중앙정부를 향하여 돌팔매를 시작하였다. 한 마디로 다비드가 골리앗을 향한 도전이 시작된 것입니다......................ꡓ

유 선생은 학생들을 향하여 진보적인 의식을 불어넣기 위하여 애를 썼다.

ꡒ미제 과자와 우유가 들어온 모양입니다. 우리 몸에는 우리 것입니다.ꡓ

학생들은 정중한 자세로 앞을 주목하였다.

  ꡒ모두들 지혜롭게 행동하십시오. 주검의 냄새가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동네에서도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찰관 부친과, 여인네 두 사람, 그리고 예수교인 하나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벌써 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곳곳이 날송장 판입니다.ꡓ

  학생들은 보자기에 책을 챙기고 모두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유 선생이 교실 문을 나섰다.

  김석웅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한라중학원 자치위원장이다.

  이제 자유토론 시간이다. 

  ꡒ어제에 이어, 계속 토론을 이어가겠습니다. 우리 청년 학도들이 지금의 시국을 인식하고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는 문제는 실로 역사 앞에 떳떳할 수 있는 지식인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말씀하시겠습니까?ꡓ

  한 학생이 일어섰다.

  ꡒ먼저 이 마을에 불어닥친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마을에서 발생한 연이은 살해 사건은.................................. 우익인사들의 개입으로 더욱 노골화되고 있습니다.ꡓ

다른 학생이 손을 들고 일어섰다. 

ꡒ산에 숨어 있는 유격대의 활동을 지지해야 합니다. 마을에서 친일파 경찰 가족을 상해한 일이 무슨 죄가 됩니까? 극우 세력의 가족을 상해한 게 왜 반역이 됩니까? 유격대 주장은 항상 정당합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편입니다. 이미 토벌대의 만행은 시작되었습니다.ꡓ

  혈기왕성한 학생들은 남한만의 선거를 반대하고 있었다. 앞으로 닥쳐 올 사태를 예감하고 공포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마을에는 자치적으로  건국준비위원회가 명칭만 바뀌어 인민위원회로 개편되는 청년동맹도 조직을 완료하였다. 

또 다른 학생이 나섰다.

ꡒ미 군정청 놈들이 서북청년단을 동원하여 포고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군사 재판에 회부하고 있습니다. 국제제국주의 앞잡이 이승만과 김성수 일당을 타도해야 합니다. 남쪽만의 단선을 막아야 합니다. 미국의 식민지화와 그들의 민족 분열 정책을 반대해야 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일제시대에 3`1운동을 주도하여 오일 장터에서 만세를 불렀던 사실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양코배기들이 애국적 민주 인사를 검거하고 투옥시키고 있습니다. 고문까지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어서야 합니다. 마을 청년 몇 사람도 미제 총칼에 대항하여 유격대와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자치 능력으로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앞장서야 합니다.ꡓ

어떤 학생은 흥분하여 팔을 걷어올렸다.

또 다른 학생이 일어섰다.

ꡒ우리 아들딸 형제들은 무기를 들고 일어서야 합니다. 매국적인 단독 선거를 반대하고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우리에게 어려움과 불행을 가져다준 미제와 그 앞잡이의 학살 만행을 제거하기 위하여, 우리의 골수에 스며든 원한을 없애기 위하여, 우리는 궐기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ꡓ

ꡒ일본 놈은 물러났지만, 미국 놈이 더 심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ꡓ

김석웅 다시 입을 열었다.

ꡒ미군의 지시가 없었다면, 해방된 조국에서 3․1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총질을 할 수 있습니까?ꡓ

시내 관덕정에서 발생한 발포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ꡒ미국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ꡓ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ꡒ흰둥이도 있고, 깜둥이 있는 모양입니다.ꡓ

  미군들을 두고 어디에서 들은 이야기도 꺼냈다.

ꡒ원자폭탄을 만든 위대한 나라 군인들이 아닙니까?ꡓ

  비아냥거리는 이야기도 나왔다.

  ꡒ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을 많이 죽였습니다.ꡓ

소소리바람이 학생들 아랫도리를 훑으며 지나갔다.

ꡒ그러나 조선은 우리 나라가 아닙니까?ꡓ

ꡒ예의 범절의 없고 삼강오륜도 모르는 놈들입니다.ꡓ

진동우가 계속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ꡒ시내에 사는 여자가 겁탈까지 당했다는 소문입니다.ꡓ

김석웅도 진동우의 말을 되받았다.

ꡒ한라산 노루를 향해 마구 총질을 한다는 소문입니다.ꡓ

ꡒ놈들이 섬사람들에게 무슨 원한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ꡓ

ꡒ목포에서 오는 여객선에 폭격을 가해 이백여 명을 죽인 놈들입니다.ꡓ

ꡒ군인도 아닌 민간인 여객선이 아닙니까?ꡓ

해방 바로 전 목포를 오고가는 여객선 황화환호가 해상에서 미군 공군기의 급작스런 폭격을 받고 이백여 명의 원주민이 몰살당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요즘 그 사건을 들추어내어 노골적으로 불만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ꡒ양과자를 먹지 말자고 읍내에서 학생들이 외치고 있습니다.ꡓ

ꡒ남조선만의 선거를 반대하고, 통일 정부를 세우자는 구호도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ꡓ

시위 학생들은 미군정의 행정 지시를 무시하고 반미 내용이 담긴 삐라를 거리마다 뿌리고 다녔다. 전봇대에도 유인물이 나붙었다.

ꡒ도민 스스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데 동참하겠다고 집회를 시작하였습니다.ꡓ

ꡒ섬의 주인은 과연 누구입니까?ꡓ

ꡒ왜 남의 땅에서 미군의 설치는지 모르겠습니다.ꡓ

  모두들 앞날이 캄캄하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ꡒ한심하게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가 나서서, 죽어 가는 사람들을 하나라도 구해야 하겠습니다.ꡓ

ꡒ양코배기들은 인명은 제천이라는 말도 모르는 모양입니다. 어제도 이웃 마을에서는 젊은이 여럿을 잡아다가 빨갱이와 내통했다고 보리밭에서 총살을 시켰습니다.ꡓ

  학생들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늘 듣고 있었다.

ꡒ이제 우리가 나설 때입니다.ꡓ

ꡒ그러나 항상 상황을 직시해야 합니다.ꡓ

ꡒ우리가 적극적으로 말려야 했습니다.ꡓ

ꡒ산에 오른 청년들이 경찰관의 부친을 살해한 것이 우리 부락의 화근이 되고 말았습니다. 토벌대들이 우리 부락을 빨갛게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늘 아래에서 사람 목숨이 가장 귀한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ꡓ

ꡒ당국이 못 배운 농군들까지 사상적으로 올가미를 씌우고 있습니다.ꡓ

ꡒ이미 비상경비사령부가 설치되었습니다. 경찰 토벌대가 산과 마을을 습격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부산에 있던 군인들이 섬에 배속되었다는 방송도 들었습니다.ꡓ

  진동우는 라디오에서 들은 정보를 털어놓았다.

ꡒ남로당 도당도 유격대 조직을 강화하여 싸움을 할 모양입니다.ꡓ

ꡒ막판입니다.ꡓ

ꡒ또 생사람들 잡게 생겼습니다.ꡓ

  김석웅이 결론을 내렸다.

ꡒ김철민 선생님이 지서에 끌려갔습니다.ꡓ  

토론은 결론도 없이, 내일도 계속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끝이 났다.


                                            4


  미군정이 들어서자 예배당에도 사람들이 넘쳐 났다. 예배시간에는 코 큰 미군들도 가끔 참석하였다. 일본 세상에서 미국 세상으로 바뀌니, 마국인들이 믿는 하느님이 절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에는 호기심으로 구경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 미군들이 구호물자를 배급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유가루 한 사발이라도 배급받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도 보였다.

  교인들은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아멘 소리를 외쳐 대었다. 단상에는 은백색 계급장을 가슴에  매단 미군 장교 서넛이 어깨를 펴고 의젓하게 자리를 잡았다. 번쩍거리는 소령 계급장을 단 미군이 영어로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삽살개처럼 생긴 통역관이 통역을 해 나갔다. 소령은 미군정청 사령관이며, 장교들은 군정청 관리들이다.

  “.....................우리미국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위대한 나라입니다. 미국인은 온 세계를 하느님의 통치 기구로 만들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결국 이 섬까지 우리의 품에 넣었습니다. 미 국방부의 탁월한 작전 계획은 결국 하느님의 축복으로 일본군을 무찌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간절한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섬기던 마을의 신당을 부숴 버리고, 이 세상의 유일신 하느님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남조선 백성도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결국 일본군은 한국에서 물러났습니다. 이제부터 미국 군대는 창조주 하느님을 거스르는 빨갱이 집단을 추방하기 위해서 온 힘을 기울일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도우실 줄 믿습니다.ꡓ

  소령의 목소리는 빠르고 카랑카랑하였으며, 숨을 멈추고 고개를 치켜올리기도 하였다. 신명이 났는지, 목소리까지 우렁찼다.

  통역관이 되받아 한 마디씩 우리말로 끝맺음을 할 때면, 아멘, 하고 교인들의 음성이 크게 터져 나왔다. 

  ꡒ...........................그분은 피에 젖은 옷을 입으셨고, 그분의 이름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늘의 군대가 희고 깨끗한 모시옷을 입고 흰말을 타고 그분을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입에서는 모든 나라를 쳐부술 예리한 칼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친히 쇠 지팡이로 모든 나라를 다스릴 것입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느님의 분노의 포도를 담은 술틀을 밟아서 진노의 포도주를 짜내실 것입니다. 그분의 옷과 넓적다리에는 ꡐ모든 왕의 왕, 모든 군주의 군주ꡑ라고 적혀 있었습니다......................우리 미군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한반도와 이 섬을 다스릴 것입니다...........................ꡓ

  소령은 파란 눈을 치켜올리며 양손을 번쩍 들었다.

  통역관도 덩달아 목소리를 높이며. 사투리까지 섞어 가며 통역에 열을 올렸다.

  교인들은 쪼그린 자세로 눈을 말똥거리며 아멘, 하고 외쳤다.

  전도사의 알리는 말씀을 전달하는 순서였다.

ꡒ돌아가실 때는 사령관님이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선물을 갖고 가시기 바랍니다.ꡓ

  교인들은 미군 마크가 선명한 우유가루와 밀가루를 한 봉지씩 받았다. 우유가루는 미국에서 가축 사료로 쓰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아무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모두가 배가 고픈 때였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참석자들은 모두 정식 교인은 아니었으며, 대부분 구호 물자를 타기 위해서 큰 걸음을 한 사람도 많았다. 자신에게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억지로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미 군정청 관리들은 예배가 끝나자 시내로 차를 몰았다. 그들은 시내 으슥한 뒷골목에서 술판을 벌이기로 미리 약속이 되었다. 이방인들은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외로움을 느꼈던 모양이다. 사령관 소령과 법무관 대위가 나란히 앉았다. 방첩대 중위와 정보참모부 소위도 마주 앉았다. 통역관도 구석 자리를 차지하였다.

  술시중을 드는 한복 입은 여자들도 들쭉날쭉하였다. 

ꡒ섬놈들은 정말 미개인이야. 흙방에서 잠자고, 돼지에게 사람 똥을 먹이고 있어.ꡓ

소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본토박이 통역관은 얼굴을 찡그렸다.

ꡒ똥을 먹은 돼지를 주식으로 하고 있습니다.ꡓ

대위가 소령의 비위를 맞추었다.

ꡒ나무에도 절을 하는 모양이지?ꡓ

ꡒ바다와 나무, 바위까지 신으로 모신답니다.ꡓ

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여자들은 눈만 끔벅거렸다.

ꡒ미개인들이야.ꡓ

ꡒ그뿐입니까? 한 남자가 집에서 두 여자를 거느리고 사는 경우도 보았습니다..ꡓ

중위가 거들었다.

ꡒ야만인들이야ꡓ

ꡒ미국 신대륙을 개척할 때 인디언들과 똑 같습니다.ꡓ

ꡒ맞아. 아시아의 인디언들이야.ꡓ

  술잔은 계속 채워졌다.

ꡒ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들립니다. 군정청의 눈을 피하여 학생들이 반미 행동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입니다.ꡓ

  대위가 마을에서 수집된 정보를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ꡒ학생들이?ꡓ

  소령이 눈을 치켜 뜨고, 모여 앉은 장교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특히 어느 지역이 문제인가?”

  소령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ꡒ일부 해안 마을과 중산간 지역 곳곳이 유격대와 내통하고 있다는 정보 분석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남평리가 문제 지역이라는 정보참모부의 일일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이유 없이 경찰관 가족과 반공 단체 간부 부인을 살해했습니다. 마을에 사는 고집불통이 중학원 교사 유승곤과 김철민이 유언비어를 유포하면서 사람들을 꼬드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학원 학생 김석웅과 진동우도 위험 인물들입니다.ꡓ

ꡒ유승곤? 김철민? 김석웅? 진동우?ꡓ

ꡒ그렇습니다. 아주 위험한 인물들입니다. 두 선생에 대한 범죄 사실은 이미 이곳 경찰에서 조사하고 있습니다. 김철민은 이미 가두어 놓았습니다. 정보가 새면 유격대와 내통할 수가 있습니다. 현지 경찰이 못하면, 우리가 직접 나서서 조사해야 합니다. 섬놈들은 표리부동하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두 학생도 구속할 예정입니다.ꡓ

ꡒ빨갱이를 잡는 일은 한국 놈들이 더 지독하단 말씀이야. 일전에 서울에서 내려온 어떤 경찰 간부는 섬을 모두 불태워야 한다고 큰 소리를 쳤지.ꡓ

“특히 한라중학원 교사들은 대부분이 사상이 의심스러운 자들입니다. 일제시대 사회주의 운동에 몸을 담았던 친구들도 많습니다.”

“사회주의?”

“섬은 예로부터 유배지라 고집쟁이 양반 나부랭이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 물을 먹은 모양입니다.“

소령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깊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여자들은 술잔에 연거푸 술을 부었다. 귤을 벗겨 사나이들 입안으로 집어넣기까지 하였다.

“반미운동이라.........................사화주의라..................우리 영광스런 미국의 업적도 모르고...........”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빨갱이 사상이 물들기 전에 잡아들여야 합니다.”

“어떻게?”

다시 통역관이 나섰다. 그는 어려운 고비마다 번득이는 대안을 내놓아 미군들에게 신임이 두터웠다.

“놈들은 학생들을 선동하는 빨갱이거나 빨치산과 내통하는 프락치가 분명합니다. 놈들을 잡아들여 미국의 영광스러운 대외정책을 주입시켜야 합니다.”

대위도 달아오른 얼굴을 문지르며 법적인 대응안을 내놓았다. 

“미군정 법령에 군정 위반에 대한 범죄에는, 군정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또는 시위를 조장하거나 조직하고 또는 참가하면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술판은 더욱 무르익어 갔다.

“미합중국의 영원한 번영을 위하여 축배를!“

  밤이 깊어지면서 분위기는 질탕해졌다. 그들의 대화는 음탕스러워 갔다. 장대비는 밤새 계속 쏟아졌다. 남평리 입구 다리 위로 빗물이 넘치고 있었다.   


                                          5

                 

  남평리 한쪽이 불타올랐다. 불은 초가지붕 서너 채를 휩쓸더니 동네로 번져나갔다. 시내가 가까운 곳이라 하늘로 치솟는 불길은 미군 전망대에서 쉽게 잡혔다.

ꡒ불입니다. 간이비행장에서 기다리겠습니다.ꡓ

ꡒ방화 현장은 ?ꡓ

ꡒ남평리가 틀림없습니다.ꡓ

  법무관 대위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튀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사련관 소령은 새벽 공기를 가르며 간이비행장으로 차를 몰았다. 소령은 운전대를 잡자마자, 부드득 이빨부터 갈았다. 빨갱이 짓이 분명해, 미국의 힘을 모르는 어리석은 놈들이야. 임시 방편으로 설치된 간이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헬리콥터는 이미 시동이 걸려 있었다. 탑승을 기다리던 다른 미군들이 부동자세로 구령 소리를 내며 거수 경례를 보냈다. 급히 헬기에 올랐다. 법무관 대위와 방첩대 중위, 그리고 정보참모부 소위가 그의 뒤를 따랐다. 통역관은 보이지 않았다. 출발 신호를 보내자, 헬리콥터는 서서히 움직였다. 기선은 불길이 번져 가는 남평리 방면으로 돌려졌다. 초가들이 불길에 휩싸인 광경이 시야에 펼쳐졌다. 헬리콥터가 두어 번 상공을 휘돌았다.

ꡒ....................................불타는 광경이 너무 아름답습니다.ꡓ

뒷좌석에 앉은 소위가 가죽 가방을 열면서 불타는 사건 현장을 향하여 촬영기 렌즈를 고정시켰다. 그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촬영을 시작하였다.

소령도 망원경을 들어 불길이 솟는 마을로 렌즈를 고정시켰다.

ꡒ기분 나쁜 빨갱이 새끼들........................ꡓ

소령이 중얼거렸다.

푸드득 푸드득 소리를 내며 헬리콥터는 낮게 기선을 잡고, 계속 마을 상공을 날았다. 서쪽 모퉁이에서 피어오르는 불길과 연기는 이방인들에게는 한 폭의 동양화임에 틀림없었다. 하얀 파도가 멀리 떨어진 포구에 넘치고 장면도 시야에 잡혔다. 모두가 점령군에게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차츰 시야가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미군 장교들은 불길이 높게 치솟아 오르는 방화 지점을 쉽게 붙잡았다.

삼십여 명의 사나이들이 초가들을 향하여 횃불을 내던지는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헬리콥터는 불길이 치솟는 마을 쪽으로 기선을 틀었다.

ꡒ저들이 누굴 까요?ꡓ

  대위가 의아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의 질문에는 분명 산에 진을 치고 있는 유격대는 아니라는 뜻이 담겨졌다.

ꡒ글쎄, ............................유격대 냄새가 나질 않아. 산과 연결된 루트는 모두 차단되어 빨갱이들이 내려올 수 없는데.......................부락에 자생한 빨갱이들일까?ꡓ

소령도 망원경을 눈에서 떼며 짐작을 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십여 채의 초가가 불타올랐다.

횃불을 던지던 사나이들이 우르르 마을을 빠져나가는 광경도 보였다. 

ꡒ놈들이 시내로 빠지는 길을 택했습니다. 산길을 택해야 하는데․․․․․․․ꡓ

정말 알지 못할 일이다. 그들이 시내로 향하는 고샅을 택했다는 사실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 아닌가. 항상 상황 분석이 뛰어난 중위가 들뜬 표정을 지었다. 유격대원 옷을 입은 사나이들이 윗동네 고샅을 따라 읍내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ꡒ알 수 없는 일이야.ꡓ

ꡒ현지 경찰이 상황 보고가 있기 전에는 놈들의 정체에 대하여 잠잠해야 합니다.ꡓ

대위도 지상에서 전개되는 상황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ꡒ우리는 분명하게 우리의 목표가 있어. 섬에서 그들끼리 싸우도록 놔두는 거야. 그럴수록 빨갱이들을 솎아 내는 우리의 목표를 쉽게 성취할 수 있지ꡓ

소령도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갑자기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헬리콥터는 계속 마을 상공을 날았다. 필름 돌아가는 소리는 쉬지 않고 들렸다. 경찰차가 마을 입구에 세워지는 모습이 보였다. 삼십 여명의 경찰이 트럭에서 내리고 있었다. 맨 앞에 선 지휘관이 명령을 내리는 모습도 보였다. 경찰 졸개들이 ꡐ엎드려 총ꡑ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전후좌우를 경계하며 총의 안전장치를 푼 졸개들은 발사 명령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모자에 노란 테를 두른 지휘관이 공중을 향하여 총알을 한방 날렸다. 엎드린 졸개들이 무차별 사격을 시작하였다.

ꡒ적이 보이지 않은데 공격을 해?ꡓ

소령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ꡒ예상한 사건입니다.ꡓ

소위가 촬영기에 필름을 갈아 끼우며 거들었다.

ꡒ불쌍한 섬놈들....................... 계획대로 우리 앞잡이 정부를 세워지고, 자기들끼리 이념으로 싸우게 하는 것입니다.ꡓ

ꡒ지금 사건은 경찰이 조작하는 사건일 수 있습니다.ꡓ

정보 장교의 날카로운 상황 분석에 소령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ꡒ조작이라면.......................? 무식한 섬놈들만 당하게 되었군.ꡓ

경찰관들이 쏘아대는 총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조준 목표가 없는 그들의 총질은 무고한 사람들을 향하여 불을 뿜어 대었다. 초가에서 초가로 불길은 더욱 번져 나갔다.

헬리콥터는 마을을 벗어나기 위하여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을은 경찰관들의 난동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그날 초저녁 동구밖에는 스무 개가 넘는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막사에 돌아온 소령은 중위의 전화를 받았다.

ꡒ소령님, 우리가 예상한 사건입니다. 경찰관들이 극우 청년들을 동원해서 유격대원으로 가장, 마을에 불을 질렀습니다. 결국 남평리는 누가 변명을 해도 빨갱이들에게 피해를 당한 어이없는 상황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주민들은 거꾸로 빨갱이들을 원망하겠죠.ꡓ

ꡒ수고했소. 오늘밤 질퍽하게 한 잔 합시다.ꡓ


                                       6 


유승곤이 끌려 간 곳은 색이  누렇게 바랜  오래된 벽돌집이다. 사상의 올가미를 씌우고, 피의자들을 위압하기에 충분한 우중충한 삼층 집이다. 바깥벽은 십 미터 높이의 철근 콘크리트가 두 겹으로 드리워졌고, 백열 전구 몇 개가 건물 입구를 어슴푸레하게 밝혀 줄뿐이다. 전구에는 시커먼 갓이 씌워져 있다.

경찰 트럭이 끼익 하고 소리를 내며 벽돌집 마당에 세워졌다.

초병이 큰 소리로 무어라고 외쳐 대며 빠른 동작으로 ꡐ올려 총ꡑ 자세를 취하였다.

유승곤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그는 온몸으로 엄습해 오는 공포감으로 오금부터 떨었다. 좌우 양쪽에서 팔을 걸고 있는 졸개들과 보조를 맞추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손목을 죄이는 수갑이 거머리처럼 느껴졌다. 숨이 헉헉 막혀 왔다. 좁은 현관문을 밀치고 길쭉한 복도로 들어섰다. 일자형으로 세 사람 정도 비집고 걸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이다.

  졸개들은 저벅저벅 구두소리를 내며 걸었다.

  세 사람은 함께 지하실 계단을 밟았다.

  지하실에는 여러 개의 방이 간이 벽으로 둘러졌다. 어느 방에서인지 아우성 소리가 들려 왔다. 어떤 방들은 임시 취조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곳곳 취조실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ꡒ날 살려줍서.ꡓ

ꡒ아아, 나는 빨갱이가 아니 우다.ꡓ

ꡒ나는 폭도가 아니 우다.ꡓ .

ꡒ잘못 해수다.ꡓ

ꡒ목숨만 살려 줍서.ꡓ

그들이 도착한 곳은 왼쪽 끝에 붙어 있는 취조실이다. 사방이 꽉 막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숨막히는 곳이다. 오른쪽 벽에는 바깥 창 하나가 달랑 붙어 있다. 어림잡아 가로 한 자, 세로 한 자 반 가량의 삼중 창문이다. 바깥에서 볼 수 없도록 단단한 구조다. 어림잡아 다섯 평 정도는 넘을 듯하다.

  처음 졸개들은 눈을 벌겋게 뜨고 유승곤을 노려보았다. 취조실 안은 잠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자세히 보니 한 사나이는 얼굴에 말버짐이 피었으며, 또 한 사나이는 사팔뜨기였다. 말버짐이 꿀꺽하고 목젖으로 침을 넘겼다.

사팔뜨기가 눈을 부릅뜨고 독한 눈썰미를 보냈다.

둘 다 얼굴에 독기가 가득했다.

사팔뜨기가 먼저 다가서더니 정강이를 크게 걷어찼다.

유승곤이 어음하고, 신음 소리를 내면서 나뒹굴었다.

ꡒ늙은 빨갱이 새끼, 엄살부리지 말라우.ꡓ

말버짐이 고함을 질렀다.

ꡒ늙은 빨갱이 두목, 빨치산과 내통하고 있지?ꡓ

사팔뜨기가 징그럽게 쳐다보면서 다시 엉덩이를 걷어찼다. 연이어 귀싸대기까지 갈겨대었다.

유승곤이 괴롭다는 듯 몸을 안쪽으로 비틀었다.

ꡒ일어나라우, 선생 나부랭이야!ꡓ

말버짐이 이빨을 지긋이 깨물며 담배를 꺼내어 사팔뜨기에게 내밀었다.

두 사나이가 뿜어내는 담배 연기가 천장을 가득 메워 나갔다. 벌써 책 상 위에는 소주 여러 병이 놓여 있었다.

사팔뜨기가 말버짐이 건네주는 술잔을 먼저 받았다.

두 사나이가 함께 술잔을 들었다.

사팔뜨기가 재떨이에 담배를 비비며 일어섰다.

ꡒ솔직하게 공산주의자라고 자백을 하라우. 당신을 그냥 죽이고 싶었지만, 빨갱이 두목이라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 당신은 공무 집행까지 방해했어. 그것뿐인 줄 아는가? 미군정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신은 무엄하게 일반 집합 행렬까지 위반했어. 불법을 저지르는 자는 군정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는단 말이라유. 과격한 청년들을 꾀어서 온통 불온사상을 주입해 왔어.ꡓ

사팔뜨기는 유승곤을 바닥에서 일으켰다. 양손을 조이고 있던 수갑을 풀고, 끈으로 양쪽 발과 양쪽 손을 의자에 묶었다. 몸은 의자에 단단하게 조여졌다. 

말버짐이 일어서더니 전깃줄 뭉치를 꺼내고 손가락 마디마다에 전깃줄을 동여매었다. 발가락에서부터 발허리, 무릎도리에서 허벅다리를 거쳐 허리통을 묶어 나갔다.

ꡒ빨갱이 친구, 미국이 발명한 최신식 전기고문 기계야. 지금부터 당신이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과학 문명의 정확성에는 비껴 갈 수 없을 거야. 당신은 후진국 백성일 뿐이냐. 당신은 섬 야만인에 불과해. 그렇지만 우리들은 이북에서 공산당이 싫어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섬까지 왔지라우. 당신, 거짓말 탐지기에 대하여 들어 봤는가라?ꡓ

사팔뜨기는 이상한 모양의 기계를 꺼내 놓았다. 

ꡒ거짓말탐지기로 취조를 받는 피의자에게는 아주 정확한 반응을 읽을 수 있지라. 앞으로 나의 질문에 ꡐ예ꡑ 또는 ꡐ아니오ꡑ라는, 단두 마디로만 대답하기 바란다. 부연 설명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ꡓ

사팔뜨기가 길게 연결된 필름을 서랍에서 꺼내 보였다.

ꡒ거짓말을 할 경우, 탐지기의 그래프 용지는 높은 파동을 일으키지.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기계는 항상 정확해.ꡓ

말버짐이 벽에 붙어있는 전기 스위치를 찰깍! 하고 올리자 거짓말 탐지기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팔뜨기가 의자에 앉았다.

유승곤이 흐트러진 정신을 모았다. 사팔뜨기의 질문에 유승곤의 대답은 예, 아니오, 라는 두 마디로 너무나 간단명료했다.

ꡒ당신은 한라중학원 선생인가?ꡓ

  “예.ꡓ

ꡒ당신의 나이는 마흔 둘인가?ꡓ

ꡒ예.ꡓ

ꡒ당신은 남평리에 사는가?ꡓ

ꡒ예.ꡓ

ꡒ당신은 중학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가?ꡓ

  “예.ꡓ

ꡒ학습 시간에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는가?ꡓ

ꡒ아니오.ꡓ

ꡒ남로당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는가?ꡓ

ꡒ아니오.ꡓ

ꡒ공산 폭동을 일으키기 위해 반미 운동을 목적으로 주민이 결속해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말한 적이 있는가?ꡓ

ꡒ아니오.ꡓ

ꡒ경찰관 부친을 살해한 자들을 알고 있는가?ꡓ

ꡒ아니오.ꡓ

  거짓말탐지기는 제 몫을 정확하게 수행하며 작동하였다.

  유승곤의 입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거친 숨소리는 탐지기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예, 아니오, 라는 두 마디만을 계속하였다.  예. 아니오. 예. 아니오. 예. 아니오. 예. 아니오. 두 마디가 불꽃을 튀었다.

사팔뜨기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ꡒ마지막 습격을 감행한다는 공비들의 집결지를 알고 있는가?ꡓ

ꡒ아니오.ꡓ

ꡒ당신 제자 김석웅과 진동우가 산에 오른 사실을 알고 있는가?ꡓ

ꡒ아니오.ꡓ

ꡒ김석웅과 진동우가 당신의 사주로 빨갱이가 된 사실을 알고 있는가?ꡓ

ꡒ아니오.ꡓ

사팔뜨기가 책상을 강하게 내리치면서, 신경전은 끝이 났다. 물론 질문 자체는 의도적이었다. 아니오, 라고 대답한 부분에는 함정이 깔려 있었다. 

말버짐이 벽에서 전기 코드를 가볍게 뽑았다. 그는 그래프 용지를 뽑아 천천히 읽고 나서 불쑥 앞으로 내밀었다. 결과가 나왔으니 훑어보고, 확인하라는 의사 표시였다.

ꡒ공자 맹자를 가르치면서, 신성한 장소에서 거짓말까지 하는가? 아니면, 이 거짓말탐지기가 엉터리인가? 지금까지 수많은 불순분자들을 다뤄 봤지만,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기계가 거짓말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 당신, 눈을 번쩍 뜨고 그래프를 봐! 지금까지 당신은 예, 아니오, 라는 단 두 마디로 대답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말았다. 당신이 아니오, 라고 대답한 부분에서는 기계가 전혀 진동이 없었고, 높은 파동만 나타났다. 당신이 아니오, 라고 대답한 내용들이 거짓말임이 증명되었다.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당신이 지껄이는 모든 말이 엉터리임이 확인되었다.ꡓ

말버짐이 파동을 일으킨 부분을 가리켰다. 정말이지 아니오, 라고 대답한 부분에는 긴 산줄기 같은 파동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ꡒ당신은 우리를 아주 우습게 보고 있어.ꡓ

  말버짐은 흥분을 참지 못하여 다시 발길로 훈장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유승곤의 몸이 의자에 묶인 상태에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ꡒ위대하고 아름다운 나라 미국이 한반도를 해방시키고, 섬사람들을 도우려는 이유를 당신은 전혀 모르고 있어. 당신은 성조기를 향하여 박수만 치면 후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데, 유언비어나 퍼뜨리고 있어. 미국은 하느님이 선택한 나라야.ꡓ

  우중충한 취조실 분위기가 피의자의 고통을 하나하나 삼켜 나갔다.

  유승곤은 계속되는 고문관들의 발길질을 독한 마음으로 참아 내었다. 온몸이 아프게 쑤실수록 학생들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다.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가 깨었다. 쇠창살 사이로 가는 빛이 새어들었다. 철창 작은 문으로 콩밥과 소금 국이 건네졌다. 숟가락을 집어넣을 생각이 없었다. 갈증이 심하여 소금 국을 한술 들어보았지만 목젖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밤새 잠을 설쳤다. 헛소리를 내면서 몸을 움츠려야 했다.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며 허벅지에서 뒷골까지 쑤셔 오는 고통을 참아야 했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어지러움이 더했다. 놈들에게 흐리멍덩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였다. 놈들이 장막 뒤에 숨어 훔쳐보는 것만 같았다. 삭신이 후물거리고 힘이 빠져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두 사나이가 담배를 피우며 들어섰다. 

ꡒ푹 잤는가?ꡓ

말버짐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ꡒ헛고생하지 말고 마음을 바꾸시지?ꡓ

사팔뜨기는 골난 표정을 지었다.

ꡒ의자에 앉지.ꡓ

유승곤은 의자에 엉덩이를 겨우 붙였다.

ꡒ다시 시작하자. 그날 새벽에 마을이 불탔다. 불을 지른, 짐작 가는 사람이 없는가? 마을에 산사람과 내통하는 작자들이 있다는 정보가 있다. 당신은 그 지역의 본토박이고 영향력이 있다고 알고 있다. 사상이 붉다고 생각되는 놈들의 명단을 불어 봐. 그러면 봐 줄 수도 있지. ꡓ

  말버짐의 목소리가 갑자기 부드러워졌다. 그렇지만 그 내용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유승곤은 마음을 고쳐먹기로 작정하였다. 비록 갇혀있는 신세이지만 그들에게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의 말을 하고 싶었다. 섬 곳곳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오금이 부르르 떨렸다.

ꡒ.........................................미 군정청의 높은 양반들이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섬사람들은 식민지의 악몽을 벗어나자마자 자치 기구를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태극기를 들고 삼일절을 기념하는 사람들에게 총질을 하였습니다. 본토박이들에게 빨갱이 누명을 씌우고, 지금도 총질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찰이 스스로 하는 행동은 아닙니다.ꡓ

두 사나이가 어이없다는 듯 서로 쳐다보았다.

ꡒ그렇지만 미국이 우리를 해방시키지 않았나?ꡓ

말버짐이 말하였다.

ꡒ우리 스스로 일본을 물리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미국의 지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ꡓ

“미국의 지배? 나도 같은 족속이지만 우리는 미개한 백성이다.ꡓ

ꡒ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미국인이 우리를 억압하고 있습니다.ꡓ

유승곤의 목소리는 더욱 의젓해졌다.

ꡒ으음.ꡓ

말버짐이 불쾌한 듯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ꡒ무고한 학살도 중단해야 합니다.ꡓ

ꡒ지독한 놈이로군.ꡓ

  말버짐이 벌떡 일어섰다.

  사팔뜨기도 따라서 일어섰다.

ꡒ벗어! 우리에게 반항을 해?  ꡓ

사팔뜨기가 외쳤다.

유승곤은 주르르 눈물부터 흘렸다. 고문관들 요구대로 순순히 옷을 벗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윗도리를 먼저 벗었다. 바지를 벗고 속옷까지 하나씩 벗어 나갔다. 늑대에게 순종하는 양처럼 평화스런 모습을 띄었다. 팬티 하나만 덜렁 남았다. 앙상한 뼈 마디마디가 전등 아래에서 볼품없이 드러났다. 

말버짐이 다가섰다.

ꡒ다시 말한다. 고문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동네에서 확인된  불순분자 명단을 대고, 유격대의 마지막 공격 날짜와 장소만 불라우.ꡓ

ꡒ불순분자도 모르고, 공격 날짜도 모릅니다.ꡓ

두 사나이는 양을 노려보는 늑대들로 변하였다. 그들은 양어깨를 한쪽씩 붙들고 구석에 놓여 있는 칠성판 위로 쓰러뜨렸다. 노끈으로 발목부터 묶어 나갔다. 무릎과 허벅지, 배를 묶었다. 뼈가 엉성하게 드러난 가슴도 묶었다. 양손도 한 쪽씩 동여매었다.

말버짐이 수건으로 훈장의 눈을 가리고, 코와 입에 타월을 덮었다.

ꡒ이 늙은 빨갱이야, 모든 걸 자백하라우.ꡓ

사팔뜨기가 목청을 돋구었다. 물줄기가 수도꼭지에서 바가지로 쏟아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였다.

  말버짐이 주전자를 들었다. 유승곤 곁으로 바싹 다가서더니 콧구멍과 입으로 천천히 물을 부었다.

ꡒ으으음. 으으음ꡓ

유승곤이 꿈틀거렸다. 비명을 지르고 두 팔과 두 다리를 비틀거렸다. 이 상황에서 죽어서는 안 된다는 굳은 다짐도 필요 없었다.

사팔뜨기가 얼굴에 씌워진 하얀 수건을 걷어 내었다.

ꡒ놈들의 공격 시간과 장소를 말할 수 없겠어?ꡓ

말버짐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달래는 시늉을 하였다.

두 사나이는 지쳐서 맥이 빠진 상태였다.

ꡒ나는 모릅니다.ꡓ

ꡒ이 늙은 빨갱이!ꡓ

두 사나이는 유승곤을 다시 일으켰다. 한 가닥 기대마저 포기한 눈치였다. 

말랑깽이가 주전자를 들고  유승곤의 콧구멍으로 물을 부었다.

ꡒ으으으음. 으으으음. 아악, 아악, 아아 아악.ꡓ

독한 신음이 두터운 벽을 뚫고, 복도로 빠져나갔다. 

콧구멍으로 물을 붓던 말버짐이 주전자 뚜껑을 열었다. 미리 준비된 고춧가루를 한 움큼 집어넣었다. 매운 물을 콧구멍으로 천천히 부었다. 

유승곤은 끙끙하며 쇠 울음소리를 내며 턱 밑까지 침을 질질 흘렸다.

ꡒ빨갱이는 짐승이야. 어떤 짐승이냐고? 뿔이 열 개이고, 머리는 일곱이나 되는 짐승이지. 그 뿔에는 각각 관이 하나씩 씌워져 있어. 그 짐승은 표범과 같고, 그 발은 곰의 발과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과 같지. 그 짐승은 용으로부터 힘과 왕위와 큰 권세를 받았지. 그 짐승이 머리 하나에 치명상을 입고 죽게 되었지만 그 상처가 나았단 말이야. 이것을 본 사람들이 놀래서 그 짐승을 따르게 되었어. 권세를 준다는 용에게도 경배하고 말이야. 사람들은 짐승에게도 절을 하며, 누가 이 짐승을 당해 낼 수 있겠는가, 라며 외쳤지. 바로 이거야. 빨갱이 세상이라는 것이. 이 짐승 같은 놈아.ꡓ

말버짐이 목사가 설교하는 흉내를 내었다. 

취조실 안은 고문관들과 피의자의 땀으로 비린 냄새까지 풍겼다.

두 사나이는 거친 구둣발 소리를 내며 안에서 분주하게 왔다갔다하였다.

유승곤은 짙은 가래를 힘겹게 뱉었다. 이게 며칠 째인가, 날짜 지나는 줄도 잊어 버렸다.    말버짐이 거친 쇳소리를 내었다.

ꡒ우리는 수많은 섬놈들을 다뤄 봤지만, 너같이 지독한 놈은 처음이야. 김철민이라는 놈하고 말이야. 지금 김철민도 옆방에서 심문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섬놈들이 믿는 옥황상제가 보호해서 이렇게 지독한가? 섬의 반란도 끝이야. 당신들은 운이 좋았어. 잡히면 모두 총알 밥인데. 그래도 당신들은 목숨이라도 붙이고 있잖아. 당신이 알고  있는 놈들의 마지막 모의 장소만 실토하면 살려주지.ꡓ

ꡒ모릅니다.ꡓ

목소리도 기어들었다.

ꡒ황세왓인가? 아니면 관음사 입구? 놈들은 마지막으로 발악 할 꺼야. 이제 독 안에 든 쥐야. 산악 지도를 살펴봐도 흩어진 잔당들이 집결할 수 있는 장소는 뻔해, 모의 장소를 불어 봐! 못된 놈!ꡓ

말버짐이 구둣발로 복부를 걷어찼다.

유승곤은 욱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ꡒ인간적인 대접이 필요 없는 늙은이로군.ꡓ

두 사나이의 발길질이  연달아 정강이를 향했다. 몸뚱이가 다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들은 뼈만 앙상한 늙은 몸뚱이를 오랫동안 구둣발로 짓눌렀다. 그리고 나서 다시 칠성판 위에 눕혔다. 

말버짐이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로 전깃줄을 끼워 나갔다. 익숙한 솜씨였다. 

사팔뜨기도 붕대로 엄지발가락과 발등을 동여매었다.  전기 고문을 시작할 차례였다. 전기 충격을 몸에 가하기 전에는 물세례가 필수적이다.  미리 몸에 충격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몸에 물을 붓는 것이다. 속옷까지 홀랑 벗기면 외음부가 터져 피가 흘러도 사전에 숨길 수가 있다.

유승곤이 계속 끙끙거렸다.

ꡒ순순히 불어. 불기만 하면 돼. 마지막 집결지가 어디냔 말이야.ꡓ

말버짐이 처음부터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찰칵, 하고 스위치 작동 소리가 들렸다. 살갗을 옥죄이는 전류가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전류가 온몸에 퍼지면서 고통은 서서히 다가왔다.

ꡒ아, 아아, 아.ꡓ

유승곤이 몽롱한 상태에서 소리를 질렀다. 귀가 잘려 나가고, 코가 삐뚤어지고, 갈기갈기 살점이 찢어져 나가는 듯한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고함을 질렀지만, 입 밖으로 소리가 나가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고문관들의 거친 숨소리만 귓가에서 맴돌았다. 왼발이 동강나고, 오른발이 잘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몸이 모래알처럼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바로 죽음의 나락으로 빠지기 직전이었다. 이대로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전류는 처음에 짧게 흘렀다. 짧게 흐르다가 길게 흐르고, 약하게 흐르다가 강하게 흐르면서 몸을 갈기갈기 부숴 놓았다. 처절한 외마디가 벽에 부딪히고 흩어졌다. 맥빠진 비명이 눅눅한 공간에서 흩어졌다가 모아졌다. 전류가 잠시 멈추었다.

말버짐이 기분 나쁜 설교가 이어졌다.

ꡒ빨갱이는 짐승들이야. 짐승이 나라를 차지하면 어둠의 세계가 되지. 그리고 사람들은 괴로움을 못 이겨 자기들의 혀를 깨물고, 나라는 무너지고 마는 거야.ꡓ

유승곤은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말버짐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사팔뜨기도 숨을 몰아쉬며 담배를 길게 빨았다.

옆방에 잡혀온 김철민 선생 역시 고문에 시달리고 있었다. 


                                           7


  구금자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계속 늘어났다. 연루자들에 대한 재판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열렸다. 판결 없이 목숨을 잃은 경우도 생겨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연행자 대부분이 재판에 회부되는 수모도 당하였다. 연행자들이 늘어나면서 재판은 형식으로 흘렀다. 초토화 작전이 진행되면서 재판을 하지 않고 즉석 총살형이 이뤄지기도 하였다.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재판관과 검찰관은 대부분 미군들이 전담하였다. 통역관들이 법정에서 의사 소통의 중책을 맡았지만, 숫자가 너무 부족하여 당국은 애를 먹었다. 

  유승곤 김철민 두 사람이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두 사람은 같은 건물에서 조사와 고문으로 시달렸지만, 서로 모르고 지내왔다. 양손에 수갑이 묶인 채 법정으로 들어서면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한참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방청석을 메운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주심을 맡은 미군 대위와 부심을 맡은 중위 두 사람, 그리고 검찰관 대위가 자리를 잡았다.

삽살개 통역관도 자리에 앉았다.

담당 서기의 구령에 따라 방청객들까지 일어섰다. 모두 벽에 걸린 성조기를 향하여 손을 들고 경의를 표했다.

두 피고인에 대한 심리가 진행되었다.

호명에 따라 유승곤이 먼저 피고인 석에서 일어났다.

주심 대위가 입을 열었다.

통역관이 한 마디씩 되받아 나갔다.

ꡒ....................................기소 내용을 요약하면 피고인 유승곤의 범죄 내용은 재 조선 미육군사령부 법령 위반에 대한 범죄로, 관계 관청의 명령 요구에 불복종한 행위입니다. 주둔군인 또는 그 명령 하에 행동하는 자에 대한 적대 강박 행위, 또는 그러한 태도에 해당하는 범법 행위를 자행하였습니다. 그럼 사실 심문에 들어가겠습니다. 검찰의 심문이 있겠습니다.ꡓ

검찰관 대위가 방청객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ꡒ......................피고 유승곤은 학생들로 하여금 진보사상을 갖게 하였으며, 그들로 하여금 자위대에 가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김석웅 김철민 등 다수의 학생이 산에 오르는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이는 미군정 법령을 위반하는 범죄 행위입니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의 처형에 대하여 항상 불만을 표시하였고, 경찰관들의 정당한 행동을 비하하는 행동을 저질렀습니다................................ꡓ

신문이 끝나자, 주심이 대위가 피고인 진술을 요구하였다.

유승곤의 눈은 움푹 들어갔고, 몰골도 볼품없이 앙상하였다.

ꡒ...........................제가 왜 이 법정에 섰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새로운 사상과 역사를 주입시켜 조국에서 봉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어째서 죄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당국은 젊은이들에게 빨갱이란 누명을 씌워서 잡아 가두고, 총살을 시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난 며칠 동안 지하실에서, 사람이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심한 고문까지..................................ꡓ

방청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대위가 유승곤의 말을 가로막았다.

ꡒ피고인 진술을 마칩니다.ꡓ

대위가 김철민을 호명하였다.

방청석이 다시 웅성거렸다.

ꡒ...................................다음은 피고인 김철민 차례입니다. 김철민의 범죄 내용은 제조선 미육군사령부 주둔군에 의하여 해산을 당했거나 불법이라 선언을 받은 주둔군의 이익에 반하는 단체 운동을 지지한 행위입니다. 그리고 허가 없는 일반 집합 명령 또는 시위 운동의 조직, 조장, 원조 또는 여기에 참가한 범법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검찰관의 신문이 있겠습니다.ꡓ

검찰관 대위가 다시 일어서서 김철민에 대한 기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방청석은 다시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ꡒ.......................피고인 김철민은 교사라는 직업을 빙자하여 밤중에 학생들을  모아 놓고 범법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최근에 사형 당한 공산주의자들의 행동에 정당성이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순진한 양민들을 충동질하였습니다. 이는 분명 미군에 대항하는 소위 불법 단체를 조직하고, 조장하는 행위에 해당됩니다. 특히 피고인은 군정청이 집회에 관대함을 역이용하여 교활한 방법으로 양민들을 자극해왔습니다..............................ꡓ

  재판은 초고속으로 진행되었다.

  통역관도 이마의 땀을 닦으며 열심히 영어로 되받았다.

  피고인 김철민의 진술이 이어졌다.

  “............................세상에는 어떤 사람이 저지른 행동이 죄가 될 수도 있고 칭송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행동이 서로 상반된 평가를 받는 것은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지금 미국은 제국주의 속성으로 작은 나라를 못살게 굴고 있습니다..........................”    

법관 석에 앉은 재판관 주심과 부심은 물론 검찰관까지 통역관의 통역 내용에 귀기울였다. 

일주일 후 다시 열린 선고 공판에서 유승곤은 체형 3년, 김철민은 체형 5년을 선고받았다.   며칠 후 두 사람은 바다 건너 목포 형무소로 끌려갔다. 두 사람을 비롯한 섬사람 수십 명이 목선에 실려 형무소가 있는 목포항을 향할 때, 산지항에 세워진 미군 함대에서는 미국 노래 ꡐ아름다운 나라ꡑ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8


  한밤중에 트럭 한 대가 한라산 중턱에 나타났다. 운전사는 남이 볼 수 없는 으슥한 곳에 차를 세웠다. 지휘관이 먼저 차에서 내리고, 토벌대원들도 따라서 내렸다. 모두 카빈을 들고 좁은 산비탈을 돌아 구릉으로 들어섰다. 그곳을 한참 뒤지니 작은 동굴이 하나 나타났다.

  지휘관이 앞장서서 동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동굴 안을 향하여 총을 겨누었다.

  지휘관이 스피커를 들고 안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모두 손을 들고 밖으로 나와라.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

  “김석웅과 진동우는 항복하고, 우리 경찰에 머리를 숙여라.”

  동굴 안에서 밖을 향하여 총을 두어 번 날렸다.r

  탕, 탕탕, 탕탕탕, 탕탕탕, 탕탕탕. 

  잠시 침묵이 흘렀다.

  경찰관 서넛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시신 여럿이 가지런히 벽을 향하여 누어있었다. 그들 중에는 김석웅과 진동우도 끼여 있었다.

  경찰관들은 시신 여섯을 트럭에 싣고 밤길을 향하여 시동을 걸었다.


                                   9


  마을 본향당에서 초혼 굿이 열렸다. 남평리  사람들은 당신을 수호신으로 모셔 왔고, 당신을 모신 곳을 본향당이라 불렀다. 그리고 본향당에서 굿을 이끄는 무당을 심방이라 불렀다. 당신은 사람들의 먹고사는 일, 살고 죽는 일, 아프고 어려움을 당하는 일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특히 지금 펼쳐지는 굿은 초토화 작전으로 목숨을 잃은  김석웅과 진동우 그리고 저 세상으로 떠난 많은 젊은이들을 위한 굿판이다.

  무당 옷으로 온몸을 울긋불긋 치장한 심방은 근엄한 모습으로 천천히 일어섰다. 남색 쾌자 위에 분홍색 도포를 차려 입고, 거기에다 갓을 쓴 눈부신 차림이다. 우뚝 선 심방의 눈에서는 광채가 일었으며, 제사장답게 중후한 멋까지 풍겼다. 심방이 땅 바닥에 깔려 있는 멍석으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먼저 천지 만물을 다스린다는 옥황상제에게 머리를 깊게 조아렸다. 큰절을 올린 다음 고개를 천천히 돌리고, 둘러앉은 사람들을 한 사람씩 훑어 나갔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이 듬뿍 담긴 따뜻한 눈길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찌그러진 얼굴들을 하나씩 정성스레 살펴 나갔다.

  구경꾼들 모두 숨을 죽였다. 쥐 죽은 듯 조용한 상태에서 가끔 꿀꺽 침을 삼킬 뿐이었다.    한쪽 구석에서 박수무당이 징을 크게 울렸다. 그 소리가 어둠에 쌓인 오름을 넘어 수평선까지 퍼져 나갔다. 징은 몇 변인가 계속 울렸다.

  심방이 양어깨를 들먹거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옥황상제를 불렀다.

ꡒ옥황상제님, 어디에 계십니까? 하늘에 계십니까, 땅에 계십니까? 대답해 주십시오. 당신이 계신 곳을 찾아 어진 백성들 저 바람 부는 벌판을 달려왔습니다...................................오늘 사연을 이르는 이유는 우리 동네 젊은이들이 당신의 부름 받고 이렇게 우뚝 당신 앞에 섰습니다. 김석웅은 너무나 총명한 학생입니다. 진동우도 너무나 앞이 창창한 학생입니다. 두 젊은이는 오직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였습니다. 좋은 세상 만들려다 총을 피하여 산으로 올랐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입니까?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들이 세상과 하직하다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토벌대의 기습에 목숨을 잃다니................ꡓ

심방은 푸짐하고 울긋불긋한 술이 여러 갈래로 달린 신 칼을 높게 들어올렸다. 하늘을 향해 흔들어 대는 신 칼이 하얀 달빛을 받고 번득거렸다. 화려하게 차려진 제상 앞에서 칼춤 판을 벌여 나갔다. 느렸다가 다시 빨라지는 춤사위가 달빛 아래서 섬뜩하게 느껴졌다. 어둠에 묻혀 버린 산을 향하여 양팔을 크게 벌리기도 하였다. 참혹하면서도 장엄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자태는 참으로 눈부셨다.

  어둠을 가르면서 박수무당이 징을 울렸다. 징소리의 긴 여운이 수평선을 향하여 아픈 날갯짓을 폈다. 사위는 쥐 죽은 듯 침묵으로 빠져 들어갔다.  징소리에 이어, 북소리 꽹과리소리 장구소리가 어우러져 어둠을 갈라 나갔다. 모든 오름들이 오들오들 떨었다. 어둠별 하나가 하늘에서 흔들거렸다.

한참 후 새끼무당 둘이 서툰 몸짓으로 멍석 위로 걸어나왔다.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촛대에 꽂힌 두 개의 초에 불을 붙였다. 푸시시, 하면서 초가 타 들어갔다. 그제야 겨우 사람의 얼굴을 분간할 수 있게 사방이 어렴풋이 밝아졌다. 촛불이 계속 타 들어가면서, 밤바다가 사람들 시야로 다가섰다.

  장대처럼 멍석 가운데 서 있던 심방이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신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마당에 원을 그려 나갔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숨을 몰아 쉬며 둥그렇게 그려 나갔다.

  깊은 어둠을 깨며 징소리가 다시 울렸다. 삼 백 예순 오름들이 다시 흔들거렸다.

  구경꾼들은 계속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들은 눈을 끔벅거리며 오들오들 몸을 떨었다. 심방의 몸놀림 하나 하나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침묵으로 응시하였다. 마파람이 밀어닥친 신당 주위는 음산함까지 느껴졌다. 구경꾼들은 신당에서 주검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주검의 냄새로 코가 이미 절었는지 몰랐다. 서글픈 한숨을 내뱉으며, 속을 태우고 있었다.

  심술궂다는 마파람이 휩쓴 다음이라, 먼 밤바다에도 적막감이 쌓여 있었다. 선들선들 부는 바람에 신당 뒤쪽 대나무 숲에서 잎사귀들이 흔들거렸다. 거친 물살에 하얀 파도가 심하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가까운 오름에서 교오옥 교오옥, 하고 동박새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까마귀 떼도 과, 과, 하고 울어대었다.

  무악이 멈추고, 심방은 다시 고개를 하늘을 향해 치켜올렸다. 밤 공기를 깊숙하게 들이마시고 별들을 하나하나 헤아려 나갔다. 본풀이가 한 소절씩 튀어나왔다.

ꡒ.................................거룩한 섬땅 떠난 영혼들아 이리 나오너라! 맨발로 뛰어나와...............ꡓ

  곡이 세 번 계속 이어졌다. 목젖을 울리며 튀어나온 곡소리가 밤바람을 멈추게 할 정도로 음산하였다.

ꡒ...............................슬픈 영혼들아 맨발로 뛰어 나오너라!..........................................ꡓ

  구경꾼들은 어느 새 각자 자신의 영혼을 갈구하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바라는 애 타는 눈짓으로 심방의 거동을 하나하나 살피며 숨소리를 낮춰 갔다.

  심방이 제단 앞으로 다가섰다. 매무새를 가다듬고, 엄숙하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서 멍석에 원을 그려 나갔다. 빠른 발 동작으로 여러 개를 더 그렸다. 요령을 흔들며 날렵한 춤가락도 곁들였다. 마치 봉황이 훨훨 나는 듯 했다. 북소리, 꽹과리소리, 장구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손끝과 발끝, 온몸 부분 부분들을  움직이며 미세한 동작에까지 정성을 모았다. 죽은 육신이 부활하여 함께 덩실거리듯, 사람들의 넋을 빼앗아 가는 별난 몸놀림이었다. 가볍게 땅을 밟아 나가는 춤사위는 바로 신비로움이었다. 심방이 숨을 몰아쉬고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던 선무당 둘이 밤바람을 일으키면서 멍석을 지긋이 밟으며  심방 뒷자리로 다가서더니, 셋이 함께 무릎을 꿇었다. 심방이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이마를 갖다 대었다. 선무당들도 그 동작을 따라 하였다. 땅을 하늘처럼 섬긴다, 땅이 거룩하다, 땅위에 사는 사람들이 하늘처럼 소중하다. 심방을 따라 두 선무당이 엎드린 채 땅바닥을 혀끝으로 핥아 나갔다. 땅을 하늘처럼 섬긴다, 땅이 거룩하다, 땅위에 사는 사람들이 하늘처럼 소중하다, 라는 의미가 깔려있는 행동이다.

  이번에는 셋이 함께 일어서더니 손들을 동시에 번쩍 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하늘 아래 모든 잡귀들을 불러모으는 동작이다. 처음에는 왜놈 귀신을 불러모았다. 다음에는 양코 귀신을 불러모았다. 섬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는 몽고 귀신도 불러모았다. 양반 귀신도 불러모으고, 도둑 귀신도 불러모았다. 권력 귀신도 불러모았다. 땅 위의 모든 잡귀를 불러모았다. 한지에 잡귀들을 한데 모았다.

다음은 성냥을 켜고 한지에 조심스럽게 불을 붙였다. 불길이 가볍게 솟아오르면서 잡귀들이 재가되어 어둠을 향하여 너울너울 날아갔다. 심방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지고 부드러운 몸짓까지 띄웠다. 달빛을 온몸에 받으며,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정이 듬뿍 깃들인 눈길로 살펴 나갔다. 두 눈을 사방으로 여러 번 돌리더니, 짚신 발목에 힘을 모아 땅바닥을 힘주어 밟았다.

구경꾼들은 굳게 닫혔던 마음을 천천히 열어 나갔다.

심방의 본풀이가 이어졌다.

ꡒ..................................상제님, 상제님, 옥황상제님. 지금 어디에 계시나이까? 상제님, 상제님, 옥황상제님. 우리 소원 들어주소서. 상제님. 상제님, 옥황상제님. 산에서 죽은 영혼 위로하소서. 모래밭에서 죽은 사람이 바다 귀신 되었습니다. 불쌍한 바다 귀신 위로하소서. 죽어 저승길 못 찾아 황천길 헤맵니다. 흩어진 영혼 불러모아 정성 함께 받으소서. 산에서 죽은 산귀신들, 길 잃어 물 한 사발 못 먹었나이다. 상제님, 상제님, 옥황상제님. 잡귀를 거둬 주소서. 양놈 귀신을 가둬 주소서. 비옵니다. 비옵니다. 양놈 귀신 물러나게 하소서..............진동우의 죽은 영혼 달래주소서..............................ꡓ

  심방은 마디마디에 울음을 섞어 가면서 어깨를 들먹거렸다.

  구경꾼들도 넋을 빼앗긴 듯 훌쩍거렸다. 모든 사람의 울음소리가 물결을 이루어 먼 물 마루에 닿는 듯 했다.

  징소리가  세 번 울렸다. 그 소리가 멀리 울려 퍼지자, 꽹과리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먼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어우러졌다.

  구경꾼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하나씩 둘씩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을 흔들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어 나갔다. 무악은 가라앉았다가 일어서면서 허공으로 내달렸다.

  심방은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하늘로 번쩍 쳐들었다. 두 눈에서 광채가 일었다. 이마에서 땀이 비오듯 흘러 내렸다. 원통한 섬 귀신들이 이 자리에 모였으니 상제님 도움으로 잡귀신 몰아내자고, 목소리에 정성을 담았다.

  선무당 둘이 일어서서 제단을 마당 입구로 옮겼다.

  다른 무당들도 심방을 따라 일어섰다.

  모든 악기가 소리를 내었다.

  모든 사람이 소리를 따라  대나무가 꽂힌 이승 길을 밟아 나갔다.

  심방이 옥황상제와 영혼의 대화를 다시 열었다. 얼굴은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고, 땀은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ꡒ................................저승 문을 열어라. 저승 문을 열어라. 김석웅과 진동우가 너희들을 만나러 왔다. 섬 떠난 영혼 만나러 한라산 최고봉 부악을 넘어왔다. 그대들 문 열고 걸어 나와라. 문을 열고 어서 보자. 잊혀진 얼굴 다시 보자. 피 흘리던 몸뚱이 다시 보자. 그대들 사립문 열고 나와라, 그대들 넝쿨 헤치고 나와라. 저승문이 높으면 얼마나 높은가. 이제 저승문을 열어라. 어서 열어라. 이승에서 저승 가는 길이 너무 멀구나. 너희들 섬 떠나서 아무 소식 없구나. 네가 나비 되어 저승으로 날아가니, 내가 나비 되어 다시 왔노라. 남평리 사람 왜 죽었는가. 북촌리 사람 왜 죽었는가. 위미리 사람도 억울하다. 함덕리 사람도 억울하다. 저승문을 어서 열어라. 너희들 얼굴 보러 내가 왔노라. 모래톱에서 죽은 영혼 어서 오너라. 정방 폭포에 떨어진 영혼 어서 오너라. 어서 오너라. 연병장에 묻힌 영혼 어서 오너라. 저승 문 열어라. 총소리 들린다. 저승 문 열어라. 바람이 분다. 마파람 불어온다. 온갖 잡귀 물러가라. 너희 잡귀들 웬 총질이냐................................ꡓ

  심방은 눈물을 펑펑 뿌려 나갔다. 땀과 눈물로 온몸이 범벅이 되었다.

  ꡒ................................옥황상제님 비옵니다. 옥황상제님 비옵니다. 김석웅과 진동우, 저승길 곱게 가게 하소서. 이승에서 평화 누리게 하소서. 모든 세상 사람 함께 살게 하소서....................ꡓ

가슴을 후비는 징소리가 다시 울렸다.

선무당, 박수무당, 구경꾼 모두 일어섰다.

징소리 따라 북 소리․ 꽹과리 소리․ 장고 소리가 어우러졌다.

하늘도 울음소리를 내는 듯 했다.

두 선무당이 광목을 어깨에 메고 한가운데로 나섰다. 광목을 마당 가운데를 가로질러 넓게 펼쳤다. 광목이 넓게 펼쳐졌다.

다시 무악이 울렸다. 구경꾼들도 무악에 맞춰 어깨를 들썩거렸다. 두 패로 나뉘어 각자 광목을 붙잡고, 두 갈래로 반듯하게 길을 만들며 갈라졌다. 광목을 따라 훤한 길이 뚫렸다.

심방이 양손에 촛대를 들고 갈라진 길 맨 앞에 섰다. 느린 동작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 나갔다. 새 길을 예비하듯, 광목 길을 훨훨 걸어 나갔다. 마당 밖 큰길까지 나섰다. 모두 큰길에 나서자, 심방이 양손을 번쩍 들었다.

  구경꾼들은 막힌 가슴이 한 가닥씩 풀리는 듯 했다.

ꡒ좌익과 우익이 모두 하나 되게 하소서, 옥황상제님ꡓ

또 징소리가 울렸다.

구경꾼들도 따라 외쳤다.

ꡒ모두 하나 되게 하소서, 옥황상제님ꡓ

또 징소리가 세 번 울렸다.

구경꾼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을 지서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ꡒ.......................................아하 아하아요, 에헤헤에헤에요. 이월이라 열 나흗날 영등 할머니 가시는 날에, 아하 아하아요, 에헤헤 에헤 에요...................김석웅과 진동우 가시는 길에 아하 아하아요................ꡓ

선무당 하나가 선소리를 뽑았다.

구경꾼들이 후렴을 잇는 소리가 밤 공기를 타고 물 마루를 넘었다.

굿판은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영혼을 위무하고, 저승으로 안내하는 굿판은 마을 구경꾼들의 생각을 계속 하나로 모았다. 한데서 떠난 죽음을 위하여 간절하고 애절한 본풀이가 계속 이어졌다. 

ꡒ.............................................어느 누구의 혼신은 찾았으나, 어느 누구의 혼신은 찾을 수 가 없습니다.............................설운 어머님아, 이런 불효 자식이 어디 있습니까. 어머님아, 어머님아,....................................형님아.............................나 행상 매어 준 동네 삼촌네, 내가 삼촌네 죽거든 행상을 매려고 했는데, 이거 어쩐 일입니까. 고맙습니다.........................늙은 어머님은 살아 계십시오. 살다가 목숨 다되어 저승에 오면, 저승 문에 섰다가 내가 어머님 손목 잡고 인도하겠습니다.....................이제 김석웅은 떠납니다. 진동우는 떠납니다....................................ꡓ

심방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본풀이도 심상치 않게 전개되었다.

제상 앞에 켜진 두 개의 촛불이 펄럭거렸다. 당국의 눈을 피하여 계속 되는 초혼굿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도 몰랐다. 누가 당국에 잡혀갈지도 아무도 몰랐다. 


                                         10

                                                            

  관광서가 즐비한 시내는 경찰 손길이 쉽게 닿는 지역이었다. 산에서나 다른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던 지하 활동이나 반미 활동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늘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였다. 간혹 전봇대에  삐라가 한두 장 붙여지는 정도다. 새로 출발한 이승만 정부는 그 위상을 정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반쪽 정부 대한민국은 반공 국가로 그 위상을 높여 나갔다. 미군도 점차 철수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본국으로 서울로, 새로 창설된 미군 부대가 있는 남쪽 곳곳으로 옮겨갔다. 밤마다 술 취한 미군들로 흥청거렸던 주점 골목도 한산해지기 시작하였다. 으슥한 골목 어귀마다 미군과 조선 여인이 술값 시비로 말다툼을 벌이던가, 아니면 몸값 흥정이 뒤틀려 생기는 고함소리도 줄어들었다.

  미군 장교들과 통역관의 마지막 술자리는 흥이 넘쳤다. 미군들이 그들 목표의 한 몫을 섬에서 완수하고 떠나는 축하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물론 통역관도 지방 정부 요직에 발탁되어 분위기는 사뭇 기쁨이 넘쳤다. 출세 길을 향하여 그의 발판을 굳히면서 직제가 개편된 도청 재산과장 자리를 차지하였다. 

ꡒ우리들의 승리를 위해서 건배!ꡓ

ꡒ미국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 건배!ꡓ

ꡒ이승만 각하의 만수무강을 위해서 건배!ꡓ

“대한민국의 영원한 번영을 위하여 건배!”

모두를 한마디씩 가들었다. 술잔 부딪히는 소리도 명쾌하게 들렸다. 남자들 사이에는 한복을 입은 여인들이 끼여, 분위기를 북돋았다. 바다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전복, 소라, 오징어가 술상 접시에서 꿈틀거렸다. 밤이 깊을수록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었다. 지하실에서 두 사람을 고문한 고문관들도 경찰 간부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먼 수평선에 내려앉은 어둠은 섬사람들의 아픔을 숨기고, 섬 한복판에  버틴 산에도 피 냄새가 지워지지 않고 아침 햇살만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운 남평리 하늘에도 오랫동안 먹구름이 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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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관후

2006/05/09 16:24 2006/05/0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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