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허능창 어허능창, 어화로다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늘 하루 혼자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검은오름아, 민오름아, 밝은오름아, 천아오름아, 어화능창 어화로다. 청산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등장 가세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하느님의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당오름아, 세미오름아, 검은이오름아, 아부오름아,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던 길로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허능창 어허능창, 어화로다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어머니 주위를 드리우고 있다. 여든이 넘었으니 으레 그러리라 여기고, 그녀의 통과의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주위 누구도 그녀에게 밀어닥친 마지막 종장을 뒤로 제쳐두고, 엉뚱한 곳에 정신이 팔려있다. 그것은 요즘 들어 더욱 심해지는 그녀의 치매 때문이리라. 나와 아내는 물론이거니와, 진정 우리 집안의 어르신이며 아버지 역할까지 도맡아 하는 큰아버지도 마찬가지이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주위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더 심해 가는 어머니의 미친 행동-옳고 그름을, 같고 다름을 가리지 못하는 치매현상-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문제다. 그녀의 흐트러진 행동이 심해지면서, 기억력도 유난히 떨어지고 있다. 혼자 앉아서 하나 둘, 하며 셈을 하다가도 다섯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한다. 의사는 그녀를 진찰하더니 보속현상이라는 어려운 말을 썼다. 보속이 뭐냐고 내가 재차 묻자, 보속이란 일정한 말과 행동을 하는 충동이 존속하면서, 똑같은 말과 행동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원까지 동행한 큰아버지는 내가 죽을 놈이야, 엉뚱한 소리를 토해 내면서 선 기침을 했다. 큰아버지는 나에게 항상 큰 바위이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더욱이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마을 비석거리로 나서는 것이 요즘 생활이다. 오늘도 그곳을 서성거리다가 돌아온 것이 분명하다. 어째서 혼이 빠지면서부터 비석거리를 찾는단 말인가? 글자가 거의 마멸되어 누구의 비석인지도 모를 정도로 풍상을 이겨 온 비석 돌들을 이리저리 살피거나 쓰다듬다가, 허탈한 표정으로 대문을 열고 그냥 들어선다. 대체 사람들이 지탄받는 옛 탐관들의 불망비나 선정비에 무슨 미련이 있단 말인가.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그녀는 난간으로 올라서며 부루퉁한 표정까지 지었다. 비석거리에 다녀오십니까? 마루로 들어서는 그녀에게 짐짓 물었다. 자네 부친 거기에 계신 줄 알아서 가보니까 안 계셔. 또 딴소리다. 그녀는 매일 아버지의 흔적을 찾고 있다. 오십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승에 계신 분이 어떻게 비석거리에 나오시겠습니까? 이제 그만 하십시오. 추워지고 있습니다. 아니야, 자네 부친이 거기로 오신다고 하셨어, 그렇지 않으면 석 삼자 표시라도 그려 넣는다고 하셨어. 그것은 오십 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오십년 전 약속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되살리려고 하고 있었다. 당시 아버지가 한 다짐-내가 살아 있다면 가운데 비석에 석 삼자 표를 해 놓겠다-을 되살려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미친 탓이리라. 그녀는 마루를 건너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아아, 한참 동안 아무 기척이 없다가 목청을 내어 불러 대는 상여 노래를 계속 중얼거리리라. 어화능창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아버지는 농업학교 교실에서 해방의 기쁜 소식을 들었다. 6학년 졸업반이었다. 세상이 변하면서 생각 없이 온갖 잡것이 밀어닥쳐, 무엇이 붉고 무엇이 흰지 모르던 어두운 시절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는 시골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읍내 무근성에서 큰아버지와 자취를 하였다. 큰아버지는 미군정이 법령에 따라 설립한 경찰에서 근무를 갓 시작한 신참 내기 순경이었다. 큰어머니도 농사를 지으며 고향을 지켰다. 고향이 읍내와 가까운지라, 별 불편 없이 생활하였다. 어머니와 큰어머니는 번갈아 가며 쌀과 땔감과 김치를 등에 지고 줄곧 자취방으로 날랐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그러나 해방을 맞은 섬사람들은, 또 다른 갈등을 낳을 조짐을 곳곳에서 내비쳤다. 본토와 일본에서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구는 급격히 늘어났고, 농업 생산력은 급격히 떨어져 식량난에 허덕거려야 했다. 주식인 보리농사까지 대 흉작을 기록하였다. 해방 전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으니 오죽하랴. 사람들은 뭍에서 바다로 일터를 옮겨갔다. 톳과 우뭇가사리 미역을 채취해 먹으면서 목숨을 이어갔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식량난은 농사가 흉작인데도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미군정의 정책 부재라고 믿기 시작하면서 불만이 터져 나갔다. 미군들은 그들이 그처럼 믿던 자유 시장경제를 일단 취소하고, 일제가 시행했던 곡물 수집제도를 부활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그렇지만 도민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미군정의 정책에 맞서 곡물 수집 거부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배고파서 못살겠다. 여기에는 물론 학생들이 앞장섰다. 사나흘이 지나기가 무섭게 쌀값이 배로 폭등하고 서민들의 생활은 생지옥 도탄으로 신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기아에 허덕이게 되었으며 쌀을 달라는 아우성은 날로 높아 가기만 하였다. 해방은 바로 배고픔이었다. 이러한 어려운 사회상은 읍내 거리에 나서면 더욱 실감이 났다. 소위 무산대중이 주로 이용하는 읍내 어느 식당에는, 오전부터 남녀노소는 물론 어린아이를 부둥켜안은 가여운 여인들이 찬바람을 맞으며 한 끼를 구하려고, 길가에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을 이어갔다. 모리배는 늘어가고 선량한 사람들은 도탄에서 신음하였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결국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1947년 8월 15일 정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관덕정 마당에 울려 퍼졌다. 골목골목에 숨어 있던 학생들이 미국 물러나라! 고 외치며 뛰쳐나왔다. 주로 농업학교와 고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구호와 함께 삐라도 대량 살포하였다. 삐라는 미군정 당국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학생들은 계속 골목에서 뛰쳐나왔다. 벼락 시위였다. 돌멩이에 삐라를 말아 뭉치가 되게 만들고, 그것을 생고무 줄에 여러 번 감고 공중으로 던지며 구호를 외치다가 곧 분산 도주하였다. 거기에는 중학생과 어린 초등학생까지 끼어 있었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미국을 믿을 수가 없다. 배고파 못살겠다. 통일정부 수립하자. 학생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아버지는 그 데모의 주모 학생이었다. 그 관덕정 삐라 사건으로 아버지는 결국 경찰에 잡혀가는 신세가 되었다. 경찰관이 된 큰아버지가 백방으로 힘을 써 봤지만 막무가내였다. 열 여드레 동안 철창신세를 졌다. 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하였다. 배가 불기 시작한 어머니는 유치장으로 면회를 갔다. 그 뱃속의 아이가 바로 지금의 내가 아닌가. 그런데 석방되어 철창 밖으로 나온 후 아버지는 누구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고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어머니도 찾지 않았으며 묵은성 자취방에도 발을 끊었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한라산에 진지를 구축한 유격대와 합류하기 위하여, 밤길을 타서 산으로 올라갔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형제는 비록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라졌지만, 당시 상황으로 봐서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사상으로 올가미를 씌울 줄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라져도 별일이 없을 줄 알았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전화벨이 울렸다. 김 선생님, 모친께서 비석거리에 쓰러 지셔서 지서로 모시고 왔습니다. 얼른 이리로 나오십시오. 입에 거품까지 물고 계십니다. 서로 눈인사를 하고 지내는 마을 지서 주임이 수화기에서 건네는 내용이다. 고맙습니다. 백부님께서도 여기에 와 계십니다. 그렇습니까? 금방 그리로 가겠습니다. 어머니는 또 비석거리로 나가서 일은 저지른 모양이다. 지서에서도 큰댁에 먼저 전화를 건 모양이다. 큰아버지는 아버지가 없는 나에게 아버지나 마찬가지다. 나를 친자식 마냥 대하였으며 늘 마음을 놓지 않고 돌봐 주었다. 어머니에게도 너무 극진하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늘 옆에 있다. 나는 얼른 윗도리를 걸친다. 아내는 대문을 나서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며 시어머니가 일을 벌였구나, 하며 한숨을 지었다. 헐떡거리며 지서에 가보니 어머니 등에는 그래도 홑이불이 덮여있었다. 큰아버지는 나무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나를 보자 반가운 눈치다. 얼른 등에 업게나. 큰아버지가 앞장을 서고, 나는 어머니를 업고 뒤를 따른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무자년 그 해, 사월 초하루 어스름 녘이었다. 어머니가 오들오들 떠는 어둠별을 헤아리며 부엌에서 나왔다. 소소리바람이 매섭게 살 속으로 스며들었다. 밖은 생각보다, 바람이 불어 차고 매웠다. 그녀는 남산같이 부른 배를 움켜잡고 뒤뚱거리며 장항 굽으로 향하였다. 장항들은 대나무 숲 바로 안쪽에 놓여 있었다. 겨우 된장 항아리를 눈짐작으로 찾고,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바로 그 때였다. 숲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사람 낌새가 틀림없었다. 덜컹 겁부터 났다. 소리 나는 쪽으로 귀를 바싹 기울였다. 다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섬뜩했다. 긴장을 풀지 않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토벌대 놈들이 아닐까. 아버지가 집에 찾아올까 봐, 놈들이 감시를 한다고 누군가가 들려준 말이 번득 스쳐갔다. 여보. 아버지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여보. 산으로 올라갔다는 아버지가 분명했다. 덜컹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버지가 대나무 숲을 헤치고 얼굴을 비죽 내밀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손짓을 보냈다. 숲으로 들어오라는 신호였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아버지의 몰골은 너무 볼품없었다. 턱수염이 산 폭도 형상 그대로였다. 토벌대들의 눈을 피해서 어떻게 집까지 찾아왔을까. 어머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얼른 잔걸음으로 숲으로 들어갔다. 곧 떠나야 돼. 앞으로 이틀 후, 사월 초사흘 새벽에 사건이 벌어질 거야. 새벽 두 시야. 꼼짝 말고 집에 있어야 돼. 그리고 한 사나흘 지나거든 비석거리에 나가 봐. 가운데 비석에 내가 석 삼자를 그려 넣을 거야. 그걸 확인하면 내가 살아난 줄 알고, 그 표시가 없으면 죽은 줄 알고 제사라도 지내 줘. 잠시 침묵이 깔렸다. 여보, 잠깐 방으로 들어갑시다. 그럴 시간이 없어. 아버지는 어머니의 솟아오른 배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여보, 옷이라도 갈아입고서 가요. 어머니는 눈물을 찔끔거렸다. 지금 읍내로 가 봐야 돼. 형님을 만날 생각이야. 우리 산군들이 초사흘 새벽, 온 섬을 덮칠 거야. 읍내 경찰서와 마을 지서들, 그리고 우익 반동분자들을 박살낼 거야. 앞으로 인민대중이 주인이 되는 그런 공평한 세상이 올 거야. 그때까지 반동분자들이 발악하겠지. 당신은 친정에 가서 몸을 피하고 있어. 토벌대가 마을을 덮칠지 몰라. 어머니는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였다. 여보, 잠깐만. 어머니는 집안으로 얼른 들어가더니 옥양목으로 만든 겹두루마기를 들고 나왔다. 남편이 결혼식 날 입었던 고동색 두루마기였다. 산에서 추우실 겁니다. 고마워. 해산날이 가까웠으니 몸조리 잘해야지. 남편은 두루마기를 받자마자, 번개처럼 대숲을 빠져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어머니는 넋 빠진 채 우두커니 서서 어둠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머니는 자리에 드러눕더니, 꿈쩍하지 않았다. 시간에 맞춰, 아내가 들여놓는 미음을 끼니마다 한 두어 모금 들이킬 뿐, 벽장만 바라보고 누워 있다. 바깥나들이는 아예 접어두고, 늘 읊조리던 어화능창 어화로다, 를 반복할 뿐이다. 덩달아 끙끙거리는 신음 소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졌다. 죽음이 다가서고 있음이 분명하다. 며칠 후, 큰아버지가 사랑에 누워 있는 그녀를 안방으로 옮기라고 일렀다. 가족들이 요 네 귀를 잡고 어머니를 옮기고 나서, 머리를 동쪽으로 눕혔다. 아내는 어머니가 늘 신고 다니던 코고무신을 대문 쪽으로 돌려놓고, 지팡이는 입구에 세워 놓았다. 그녀의 운명을 기다리는 일만 남아있다. 그렇지만 저승 문으로 떠나는 일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아내는 어머니 곁에 붙어 앉아서 미음을 한 숟가락씩 떠 먹이기 시작했다. 입술이 마르지 않도록 죽을 발라야 하네, 마르면 저승길에서 목이 마르게 되어 있어.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큰아버지가 아내에게 자상하게 이르는 말이다. 나는 그저, 그녀가 저승으로 가는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갑자기 무서움을 느꼈다. 얼마쯤 지나면 그녀의 운명이 눈앞에 펼쳐지리라. 눈동자도 흐릿하게 초점을 잃게 되리라.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눈만 감으면 한 많은 세상과 이별하게 되리라. 누가 말했던가. 죽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을수록, 슬픔도 더 크리라고 말이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소식을 듣고 이웃과 친족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들도 어머니의 운명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숨넘어가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웅크리고 앉아 있을 태세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나는 앞으로 닥칠 슬픔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여러 날을 지새운 탓인지 두 눈이 움푹 들어가고 몰골도 더 지저분해졌다고, 옆에서 누군가 일러주었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의 인사 치례리라. 목도 쉬었으며 움직일 기력조차 없다. 그렇지만 아내는 어머니의 깡마른 손을 꼭 잡고 앉아 있거나 미움을 입술에 바르거나 하는 일을 쉬지 않고 반복하였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큰아버지가 안방에서, 서울에 있는 종형에게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숙모가 심상찮다. 나도 덩달아 아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할머니가 운명하실 것 같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늘 하루 혼자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대나무 숲에서 어머니와 헤어진 아버지는, 큰아버지가 사는 읍내로 향하였다. 밤길은 너무 적막하였다. 하늘에 떠 있는 별들도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아버지는 묵은성 자취방을 행하여 줄달음쳤다. 밤 열 시를 넘긴 시간에 묵은성 물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취방은 큰길에 위치하여 나름대로 훤한 터라, 다른 사람의 눈에 띌 염려가 있었다. 들키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했다. 살금살금 낮은 울담으로 다가서서 마당으로 펄쩍 뛰어 내렸다. 큰아버지는 초저녁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여닫이창 가까이 다가섰다. 문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들겼다. 집주인은 안채에서 잠들고 있어, 사람이 들어선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늘 하루 혼자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형님, 접니다. 처음은 대답이 없었다. 깊은 잠에 빠진지라, 바깥 낌새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형님, 접니다. 숨죽이고 다시 불렀다. 큰아버지는 잠결에,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듣고,. 번득 잠을 깨었다. 삐라 사건으로 유치장에 들어갔다가 나와 행방불명된 동생 목소리가 분명했다. 반사적으로, 머리맡에 풀어 넣은 권총을 잡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일을 대비하여 항상 준비는 철저해야 했다. 문고리를 쥐고 문을 살짝 열었다. 숨죽이고 문틈으로 바깥 동정을 살폈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담벼락에 나타났다. 형님. 다시 들렸다. 동생 목소리가 분명했다. 움직이는 낌새가, 간데온데없이 사라진 동생 거동이 틀림없었다. 급히 총을 거두고 문밖으로 나왔다. 신발을 꿰고 얼른 그림자가 움직이는 쪽으로 다가갔다. 동생의 손을 붙들고 대문 밖으로 나왔다. 집주인이 눈치 채면 큰일이었다. 너, 생각대로 폭도가 되었구나. 큰아버지가 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 폭도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형님은? 반동분자가 아닙니까? 아버지의 반응은 단호하였다. 너, 귀순해라. 자수하면 목숨만이라도 붙일 수 수 있어, 내가 약속하마. 동지들을 배신하란 말씀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이제 미국 세상이야! 미 제국주의자들의 조국 분단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제발, 나와 함께 지서에 가서 자수하자, 목숨은 붙어 있어야 하느니라. 미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친일파와 우국 인사도 총알 밥이 되어야 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유격대가 행동을 개시합니다. 사월 삼일 새벽 두 시입니다. 내일 자정이 지나면 완전 무장한 산군들이 곳곳에 잠복하였다가 기관총과 박격포로 중무장한 반란 군인들과 합류하여 경찰서와 도내 지서들, 그리고 우익 반동분자를 제거할 것입니다. 그 말을 하러 왔습니다. 제발, 내일은 경찰서로 나가지 마십시오. 큰아버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지만 이미, 모슬포에 주둔한 9연대 소속 군인들까지 산군과 합류한다는 정보를 듣고 있었다. 그렇지만 풍문에만 듣던, 동생이 산군의 일원임을 확인하고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너희 폭도들은 결국 개죽음을 당할 것이며, 너희들이 원하는 이상 국가는 결코 세워지지 않아. 미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와 무기를 소유하고 있어. 제발 제 말을 잊지 마십시오. 초사흘 새벽입니다. 아버지는 말을 마치자마자 번개처럼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형은 동생의 뒷모습을 넋 빠진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어둠 속으로 젊은 산군이 사라져 갔다. 그러나 사월 삼일 새벽, 산군은 섬 마을 지서마다 수류탄을 던져 박살을 내었지만, 읍내 습격은 포기하였는지 오히려 평온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읍내에는 군인과 경찰들이 상주하고 있어, 공격을 포기했으리라. 오늘 하루 혼자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둠이 깔리자 일가 친족들이 사랑과 마루, 마당까지 꽉 메워 나갔다. 서울에 사는 종형도 대학에 다니는 아들도 마지막 항공편으로 도착하였다. 모두들 어머니의 운명을 통상의례로 받아들이고 덤덤하게 자신이 할 일을 서두르고 있었다. 오늘밤을 넘길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이미 장례 준비에 들어간 분위기이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큰아버지가 마당을 휙 둘러보더니, 무겁게 입을 연다. 원미를 입으로 넣어보게. 운명할 시간인데 월 꾸물대는가? 아내에게 이르는 말이다. 큰아버지의 말뜻대로 앞으로 치러야 할 모든 장례 절차를, 자신이 주도한다는 의도가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나무랄 사람은 없다. 실질적으로 모든 일에 있어서 지금까지 아버지 역할을 해 오지 않았는가. 아직 이릅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보겠습니다, 백부님. 내가 처음으로 고집을 부리자, 큰아버지는 한발 물러서는 눈치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머니의 목숨은 너무 질긴 것이 아닐까. 너무 오래 산 것이 아닐까. 아내는 꿀과 소주를 탄 죽을 숟가락으로 떠서 한 숟갈 한 숟갈 정성을 불어넣으며 어머니 입을 벌려 나갔다. 끄르륵 끄르륵, 죽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정말 이럴 수가 있는가? 눈을 감을 줄 알았던 어머니의 눈동자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숨결까지 가늘게 떨며 팔딱거렸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으으음… 으으음… 가벼운 신음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안방으로 모아졌다. 아내의 숟가락 놀림도 빨라졌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생기를 찾으며 되살아났다. 나 저승에 못 가고 돌아왔다! 그녀가 사흘만에 입을 열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기까지 하였다. 나 저승 문에서 돌아왔다! 신랑이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빨갱이는 저승에서도 받아주지 않은 모양이야. 아, 봉분이 없다고 돌려보낸 것이 틀림없어. 신랑 헛봉분이라도 만들어야 손잡고 함께 가지. 모두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큰아버지도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두어 번 헛기침을 하였다. 아주버님, 내 숨 거두거든 내 곁에 우리 신랑 봉분도 쌓아 주십시오. 헛봉분이면 어떻습니까. 신랑 손잡아 저승 문으로, 같이 들겠습니다. 네, 어머님. 멈칫거리는 큰아버지대신, 내가 대답하였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십 년 세월을 빨갱이 마누라로 살아온 분이 아니던가. 내가 빨갱이 새끼로 살아온 것은 아무 것도 아니리라. 그녀가 눈이 쉬 감기지 않은 것은 원한 맺힌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러리라.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그녀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일어나, 가족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말하였다. 그러고 나서 조용히 세상과 하직하였다. 나는 두 손으로 조용히 어머니의 눈을 내리 쓸었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큰아버지 헛기침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일가 사람들은 망인의 유언대로 아버지 봉분에 대하여 의논을 시작하였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헛봉분이라도 쌓고 비석이라도 세워야 하겠습니다. 나는 큰아버지 눈치를 살폈다. 큰아버지는 계속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합시다. 다른 친족 어르신들이 먼저 어머니 유언에 동의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나는 큰아버지 눈치만 살폈다. 그의 무거운 입은 한참 열리지 않았다. 백부님이 결론을 내리셔야겠습니다. 내가 다그치자, 마지못해 나섰다. 그거 안돼. 내 동생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밝힌 다음에 제사라도 지내야지. 혹시 아는가? 살아서 북쪽에라도 넘어갔는지? 일본으로 피한 사람들은 조총련에 가입하여 북조선으로 갔다는 말도 있어. 어화능창 어화로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큰아버지가 결론을 내렸다. 그 말이 떨어진 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청산 백옥이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산으로 오르는 길은 막혀 버렸다. 군과 경찰은 산 폭도 섬멸이라는 합동토벌 작전을 자행했다. 산군 최후의 보루라는 산 아지트까지 집중 공격하여 박살내기 시작했으며, 산군도 마지막 발언으로 이에 대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한라산 능선에는 수십 명의 산군이 집단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렇지만 나뭇가지에 여자용 흰 저고리를 메어 달고 투항하는 산군도 생겨났다. 청산 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청산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큰아버지는 토벌대 분대장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상급 부대에서 한라산 능선을 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어승생악 깊은 골짜기에 자연 동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졸개들은 분대장의 명령에 따라 숨을 죽이고 동굴을 향하여 살금살금 앞으로 나갔다. 순간을 놓친다면 죽음밖에 없었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순간을 놓칠 수가 없었다. 분대장이 발포 명령을 내렸다. 탕, 탕, 탕탕, 탕탕탕. 총소리가 콩 볶듯이 산골짜기를 흔들었다. 청산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사격을 계속하라! 동굴 안으로 진격하라! 잠시 후 대원 서넛이 안으로 몰려갔다. 그들은 축 늘어진 시신 하나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왔다. 청산 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한 놈밖에 없습니다. 죽은 산군은 학생 티를 갓 벗은 이십대 초반 젊은이였다. 유별나게, 몸에는 두툼한 두루마기까지 걸쳤다. 온몸에 피가 낭자하여 볼 나위조차 없었다. 비품과 서류를 지키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분대장이 앞으로 나섰다. 고개를 들어올리게. 졸개 하나가 젊은 산군 모자를 벗겨 내고 머리를 양손으로 바쳤다. 으음…분대장이 긴 신음을 토했다. 그리고 등을 돌리고 한라산 부악을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시신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 차에 싣게. 아는 사람입니까? 왜, 잔소리가 많은가? 아닙니다, 다만… 시신을 공동묘지로 옮겨서 가봉분을 해 두게. 나중에 그 위치만 나에게 말해주고. 청산 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동굴 안에서 사살된 산군은 동생이 분명했다. 물론 시신을 처리하라고 명령을 내린 분대장은 형이었다. 청산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검은오름아, 민오름아, 밝은오름아, 천아오름아, 어화능창 어화로다. 당오름아, 세미오름아, 감은이오름아, 아부오름아, 어화능창 어화로다.


  청산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헛봉분이라도 쌓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한 많은 세상을 뜬다. 그렇지만 일가 친족들은 큰아버지 뜻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처럼 고집을 부리는데 막을 수가 있겠는가. 이 집안 어르신네가 아닌가. 그렇지만 가족들은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헛봉분 문제는 없었던 일로 그냥 묻어 두고, 장례를 치르기로 한다. 큰아버지가 헛기침을 하자, 밖에서 있던 조카 둘이 안방으로 들어선다. 양쪽에서 시신을 들고 머리를 북쪽으로 가게 반듯하게 눕힌다. 시신이 편안하게 자리를 잡자, 큰아버지가 하얀 솜으로 망자의 입, 코, 귀를 막는다. 입을 꽉 다물도록 얼굴을 바로 한 다음 머리도 반듯하게 괸다. 그리고 아내에게 팔과 다리를 주무르게 하더니, 망자의 배 위에서 오른손을 왼손 위로 가지런히 얹어 놓는다. 그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삼을 꺼내더니 망자의 어깨와 손과 무릎과 발목을 흐트러지지 않게 묶어 나간다. 큰 숨을 몰아쉬면서 홑이불을 시신 머리끝까지 덮는다. 그리고 병풍으로 시신을 가린다. 정시가 시신에 덮었던 적삼을 다시 든다. 망인이 늘 입던 나들이 적삼이다. 마당으로 나서서 동네는 기다렸다는 듯 지붕 용마루로 천천히 올라 북향을 향하여 우뚝 선다. 왼손으로 그 적삼의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 옷 허리를 잡아서 치켜올리며, 청주한씨팔십복! 하고 아주 익숙한 솜씨로 세 번 외친다. 누군가가 따라서, 청주한씨팔십복! 하고 외친다. 그 소리도 세 번 반복된다. 까마귀 한 마리가 먼 산을 향하여 푸드득 날아간다. 청산 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던 질로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벌초 때 마을 공동묘지에서, 그것도 밤중에 낫을 들고 풀을 베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공동묘지 동쪽 끝 무덤에서 혼자서 흥얼거리며, 벌초를 한다는 것이었다. 미친 사람처럼 봉분에 올라가 가시나무와 칡넝쿨, 잡초들을 잘라 내어 차곡차곡 쌓아 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큰아버지가 틀림없다고, 알동네 선배가 알려주었다. 자네 백부가 틀림없어. 그럴 리가 있습니까? 몇 년 전에도 제사를 지내고 오다가 어화능창, 하고 노래를 부르며 풀을 베는 자네 백부님을 보고, 형님 아니십니까? 하고 내가 불렀지. 그런데 눈 깜짝 할 사이에 사라지셨어. 내가 헛것을 본 것일까? 하필이면 왜 제 백부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 아니던가. 큰아버지는 분명 상여 노래를 구슬프게 부르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공동묘지에서 누구 무덤을 다듬는단 말인가. 어화능창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늘 하루 혼자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청산 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등장 가세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하느님의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하느님의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던 질로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그런데 말이야, 몇 년 전 벌초 때인가? 매년 당할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엘 가 보았죠. 분명히 방금 잡풀을 벤 흔적이 남아 있고, 무덤 앞에는 ‘學生金海金氏之墓’라는 돌비석이 있더란 말씀이주. 자네 집안이 김해 김씨 아닌가? 알 동네 선배가 전해 준 말을 듣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얼마 동안 마을을 조리다가 날짜를 잡고 그 곳을 찾아가서, 그 봉분이 김해 김씨의 묘임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저 세상으로 떠난 김해 김씨가 어디 한두 사람인가. 세상에 쌓이고 쌓인 것이 김해 김씨 아닌가. 그리고 우리 집안이 김해 김씨라서, 혹시 먼 친척 분 벌초라도 큰아버지가 하는 것이 아닐까. 큰아버지가 집에 들렀을 때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밤중에 공동묘지에 나가신 일이 있습니까? 내가 물으니 미친 소릴 하는구먼, 하며 고개를 획하고 돌려 버렸다. 능청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힐끗 노려보며 얼굴까지 붉히고 있었다. 오던 질로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김해 김씨 저승길 가네, 어화능창 어화로다. 청주 한씨 저승길 가네, 어화능창 어화로다.


  등장 가세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정시와 큰아버지가 안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저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우두커니 서서 두 사람을 지켜본다. 이 마당에 내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내가 나서서 무엇을 지껄인단 말인가. 정시와 일꾼 두엇이 어우러져 숨을 몰아쉬며, 향탕수로 시신을 씻고, 수의를 속옷부터 차례로 입혀 나간다. 그 절차가 너무 종교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이렇게 해서 이런 절차를 밟고 망인은 이승을 뜨고 저승으로 가는구나. 그들은 망인의 손톱, 발톱, 머리털을 하나하나 잘라낸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주머니에 집어넣고 왼쪽, 오른쪽을 일일이 표시해 나간다. 저승 가는 일이 이승보다 더 질서정연하게 느껴진다. 시신에 복건을 씌우고 멱목으로 눈을 싸고 악수로 손을 싼다. 다음 버선과 천으로 만든 신을 신기고 저고리, 두루마기, 중치막, 도포 깃이 구겨지지 않게 펴고 행전을 두르고 도포 끈을 매어 나간다. 숨막히는 시간이 착착 흘러간다. 언제 수의를 다 입혔는지 염포 위로 시신을 옮겨 놓는다. 시신에 다시 염포를 적당히 잘라 시신 밑으로 넣어 여러 결로 묶어 나간다. 마당에 널려 있던 관이 방으로 들어간다. 관에 지요를 깔고 베개를 놓고 시신을 안으로 옮긴다. 망자의 적삼과 말린 흙을 백지에 싸서 시신이 움직이지 않게 빈곳을 메운다. 관을 덮고 나무못으로 박는다. 관 밑에 나무토막으로 받친다. 아, 아, 이렇게 하직하는구나. 나는 큰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머귀나무 상장을 든다. 내 옆에 아들이 선다. 상에 원미를 올리고 제주를 부어서 분향하고, 상주들이 곡을 시작한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등장 가세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무자년 아픔 가슴에 안고 저승으로 떠나요, 차사님아, 차사님아, 애 이승에서 할 일 다 못하고 떠나니 내 부끄러워 어찌 내 낭군 만나리요.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등장 가세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등장 가세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장례일 아침이다. 집 앞 공터에서 상두꾼들이, 바지런히 움직인다. 복친들이 하관 시간에 맞추기 위하여 운구를 서두른다. 그리고 시신을 상여로 조심스럽게 옮긴다. 안방에서 큰아버지가 어디서 났는지 사금파리를 깨고 그 자리에 향을 피우게 한다. 명정과 영위와 만사가 펄럭인다. 그 뒤를 울긋불긋한 상여가 따라 나선다. 상여에는 굵은 답포가 길게 매어져 있다. 나를 중심으로 큰아버지 아내, 조카들, 일가 친족들이 따라 나서고 조객들이 답포를 불끈 잡는다. 장사가 집을 향하여 상여를 반쯤 내리게 하면서, 하직이오, 를 세 번 외친다. 하직이요, 하직이요, 하직이요, 어야~어~야로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어야 어~야로다. 인생 한번 죽어 지나면 어야 어~야로다. 사람 한번 죽어 지나면 어야 어~야로다. 또다시 오지는 못하리라 어야 어~야로다. 서우봉아 잘 있거라 어야 어~야로다. 일가친척을 다 버리고 어야 어~야로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어야 어~야로다. 공동 산천이 얼마더냐 어야 어~야로다. 일가친척을 다 버리고 어야 어~야로다. 탕근 방에 갈 때는 친구도 많더니만 어야 어~야로다. 공동묘지는 나 혼자 뿐이로세 의야 어~야로다. 상여는 길을 찾아, 공동묘지로 향한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목적지를 향하면서 흔들거린다. 장지로 결정된 동쪽 끝이다. 상두꾼들이 상여를 바닥에 내려놓고, 조객들도 잡았던 답보를 내려놓는다. 제수를 준비하게. 큰아버지가 나를 쳐다본다. 아내가 얼른 술과 과실과 포를 준비하고 큰아버지를 따른다. 동네 선배가 이야기한 ‘學生金海金氏之墓’라는 묘비가 세워진 곳이다. 바로 장지 옆이다. 상이 차려지고, 나와 아들이 두 손을 모으고 절을 한다. 그러나 나는 묻지 않는다. 이미 이 묘가 아버지 묘라는 사실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리를 잡고, 그 아버지 묘 옆에 어머니 봉분을 쌓을 준비를 서두른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어화능창 어화로다. 장지에서 돌아온 조객들은 상주에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간다. 가까운 친족들과 이웃들은 저녁 굿을 보려고 자리를 잡는다. 굿은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사람들은 구경하는 관객이 아니라, 주인공 배우가 되어야 할지 모른다. 단골 심방이 귀양 풀이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마당에는 멍석 여러 장이 길게 펼쳐진다. 섬에서 귀양 풀이란, 장사를 지내고 나서 죽은 영혼을 무사히 저승으로 보내는 의식을 말한다. 이제 차사상과 영혼상을 차려 지리라. 무명을 감은 큰 대도 세워 지리라. 탁상에는 시루와 메와 쌀, 그리고 잔 세 개와 향로가 진열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수심방과 소미역이 북과 장고와 요령을 들고 마당 가운데로 나서리라. 굿판이 벌어지면 수심방이 망자의 영혼을 불러 생전의 심회를 털어놓으리라. 죽을 때의 마음과 저승으로 가면서의 심정을 풀어나가리라. 죽은 영혼의 이야기가 심방의 입을 빌어 사람들에게 사설로 되풀이되리라. 어화능창 어화로다.

  …… 공신은 강신은 일직이 본을 가르니, 공신전에 강신 전에 말씀 올립니다. 무자년 사월 초사흘 됩니다. 나라를 가르옵기는 난산국도 아니옵고 달단국도 해토국도 아니외다. 안남국, 두만강, 몽고 대천 십이제국입네다. 사해 안도 열 두 나라, 사해 밖도 열두 나라, 강남 가면 천자지국이옵고 일본은 주년지국이웨다. 천하해동 조선은 남방 팔도 이남이 되옵니다. 그리고 제주 절도 사백 리입니다. 물은 보니 남해요, 산은 보니 영주 한라산, 산천 영기 소림당, 어승악은 단골 머리 아흔 아홉 골 되옵고, 한 골이 없어 곰도 왕도 범도 신도 못나던 요 섬중되옵네다. 저 산 앞에 당도 오백, 이 산 앞에 절도 오백이 됩니다. 영천 이형상 목사 시절에 당도 오백 불사르고, 절도 오백 파산시킨 섬이옵고, 부처 한쪽 갈라다 동양 삼국 절 당을 마련하던 섬이외다. 고의왕, 양의왕, 부의왕, 고량부 삼성이 모흥혈로 솟아나 도읍 하던 나라입니다. 세 사람은 거친 두메에서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더니, 하루는 자줏빛 흙으로 봉한 나무상자 하나 떠오름을 보고 나아가 이를 열었더니 안에는 돌 상자 있는데, 붉은 띠를 두르고 자줏빛 옷을 입은 사자도 따라왔습네다. 상자를 열어 보니, 속에는 푸른 옷을 입은 처녀 세 사람과 망아지 송아지와 오곡 씨앗이 있습니다. 사자가 말하기를, 저 이웃나라 임금께서 세 따님을 낳으시고 말씀하시되, 서해 산기슭에 신자 세 사람이 강탄 하시어 장차 나라를 열고자 하나 배필이 없으시다 하시고, 신에게 명하여 세 따님을 모시라 하여 왔습네다. 마땅히 배필을 삼으셔서 대업을 이루소서, 하고 사자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날아가 버렸습네다.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 세 사람은 나이 차례로 따라 나누어 장가들고, 물이 좋고 땅이 기름진 곳으로 나아가 활을 쏘아 거처할 땅을 점치었습네다. 비로소 오곡 씨앗을 뿌리고 소와 말을 기르게 되니 날로 백성이 많아지고 부유해 갔습네다. ……옛날 옛적 나라가 태평 성대할 때, 대정으로 가면 대정 현감, 정의로 가면 정의 현감 마련합고, 제주 판관, 항파두리 조방장 명월 만호 설연합고, 삼 고을 사 관장 마련합던 요 섬중 뒈옵네다. 면은 갈라 십 삼면, 마을 갈라 백 리입니다. 제주목 관할에 동으로 신촌현, 함덕현, 김녕현이 있습니다. 마을 동네는 갈라 보난 아무 동네, 큰길 들러 작은 길 생겨, 어느 골목 곱이 첩첩 들어서면 저 올래는 올래 문자. 집에 드니 집 가자. 앞마당은 서우봉 뒷마당은 한라산, 좌우 청룡 몸에 진 사람이 되옵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 모두가 거짓과 꾸밈이 없이 덕을 지녔다는 함유일덕입네다. ……설우신 영혼님, 성은 청주 한씨로 여든 둘 나는 해 기묘년 시월 상달 유시 들어서, 차사님 앞을 사고 죽어 명왕 갔습네다. 세경땅에 엄토감장 시며놓고 세 배 지어 연신맞이, 새 집 지어 성주 낙성, 사람 주어 귀양 풀이법 있습니다. 귀양 풀이 올립니다. ……설우신 영혼님, 명왕 가시는 길에 사내 아기는 쉰, 며느리 마흔 여덟에 큰손자 셋 손자 막내 손자, 축원하는 공신됩네다. 이 축원 올리면 어지신 영혼님 데리고 가던 차사님아, 저 인정 걸거든 많이 받아 좋은 곳으로 데려 가시옵소서. 내 낭군, 오십 년 전 이승 떠난 내 낭군, 저승길 못 찾아 헤맵니다. 좋은 곳으로 데려가십시오. 그 시절 죽은 동네 어른, 동네 삼촌 모두 모두 좋은 곳으로 데려 가십시오. 이렇게 하여 귀양 풀이 초감제 차례가 되옵니다. …… 어느 누가 울리는 축원 원정 하옵거든 성은 한씨, 나이는 여든 둘, 축원 원정하옵니다. 어떤 일로 이러한 축원 원정 하옵거든, 밥이 없고 옷이 없는 이 원장 아니 와, 옷과 밥은 얻어도 밥이옵고, 빌어도 옷입니다. 우리 낭군 질 잘못 들어, 빨갱이 물들어, 얼굴도 빨갛고 옷도 빨갛고 마음도 빨갛습니다. 옛날옛적 공자 성인 법으로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가장 귀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 목숨밖에 귀중한 게 있으리까. 천금보다 중하고 만금보다 중한 것은 인간 사람의 목숨이라, 인간 목숨은 토란잎에 이슬 같은 인생이 되옵니다. 빨갱이도 사람입니다. 빨갱이 목숨도 사람 목숨입니다. 어제 청춘 오늘 백발, 아차 잘못 되고 보면 낙낙 장송 들어 진토 집을 삼고 두견새 벗을 삼아 진토 낙낙 되고 보니, 몇 천년이나 몇 백년이 되어도 돌아 환생 못하는 법입니다.  우리 인간 탄생할 때 아버님의 뼈를 빌고 어머님의 살을 빌어 인간으로 태어나, 명과 복은 칠월 성군과 제석님에 빌어 탄생하고, 칠십고래희 팔십이 정명이라 하되, 잠든 날 잠든 시, 병든 날 병든 시 근심 수심 다 버려, 단 몇 년을 지날 수 있으리까. 옛날 성인 지법으로 봄 풀은 연연록이고, 왕손은 귀불귀법으로, 산천초목은 구시월 단풍집니다. 잎사귀마다 지었대도 명년 춘삼월 호시절 돌아오면 파릇파릇 제 몸 자랑해야 돌아 환생하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백발 같은 부모 조상 내버려두고, 어린 가속을 내버려두고, 옷의 앞자락 따르는 자식을 내버려두고 간들 인간을 한 번 돌아볼 수 있으리까. 강남 천자국 서양 각국 떠난 님도 돈을 벌면 부모 형제, 사랑하는 처, 어린 자식을 생각하여 고향에 돌아옵니다. 그러나 모자 기축 년에 떠난 님들은 소식이 없습니다. 그 길 따라 오늘 떠납니다. 우리 인생 한 번 가면 천길 백길 파면서, 통곡한들 돌아올 수 있으리까. 산지 조종은 수지 태산이요, 산이 높아 못옵네까? 물이 깊어 못옵네까? 산이 높으면 비행기 타서 지나올 수 있고, 물이 깊어 못 오면 사공을 거느려 올 수가 있는데, 우리 인생 저승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목숨입니다. 그 시절 섬 떠난 영원을 위하여 어떤 원정을 올립네까. 청원한 섬놈은 청원한데로 원정을 올리옵고, 원통한 섬놈은 원통한데로 원정을 올립니다. 가련한 섬놈은 가련한 대로 원정을 올립니다. 청원하고 원통하고 가련한 원정을 올립기는, 무자년 사월 초사흗날 훨훨 타는 봉화로 마음 병이 들어 약방 약도 허사되옵고, 의원 의술도 허사가 되옵니다. 갑갑한 사람 송사 갚고 목마른 인간 샘 파는 넋으로 아는 신녀 문복을 지내오니, 어떤 조상 어떤 영신에 걸린 괘가 된 듯 하다고 하여서, 강남서 들어온 애책력 일본서 들어온 소책력 우리 나라 만세력 걷어잡아, 초장 걷어 초파일 이장 걷어 두고 신에게는 하강일 생인에 생기 복덕 제 맞은 날 받았습니다. 성은 청주 한씨로 여든 둘 나는 해 기묘년 시월 선달 유시가 들어서, 차사님 앞을 사고 죽어 명왕 갔습네다. 내 사랑하는 낭군 오십 년 전 무자년 동짓달 스무 이렛날 저승길 들어섰습네다. 이제 반 백년 지나 바쁜 택일하여옵기, 석 달 열흘 백일 지극 정성은 못 올립고 칠일 지극 정성까지도 못하였습네다. 내 낭군 대나무 숲에서 건네주던 단 한 벌밖에 없는 두루마기 걸쳤습네다. 이제 몸단장하여 굿할 준비가 되옵고, 저 올래에 금줄 황줄 흑토 황토 다리 놓아 전생에 팔자 궂은 신의 형방 상신충, 어느 누구 초헌관 초집사를 삼아 몸 받은 당주문 열리옵고, 제석궁에 신의 소무 열둘 거느려, 어진 조상을 거느려 하늘같은 신공신상, 책상 같은 신공신상, 신방의 등에는 산범 같이 걸머지워, 천상 천하 노는 신을 청하여 김해 김씨 주당 소원의 축원을 올리자 하옵니다. 아비 얼굴 모른 자식 손잡고, 대나무 숲에서 헤어진 각시 손잡고, 비석거리에 나섭니다. 오십 년 세월 흘러수다. 방구들 안 탁상 위에 사람 모양으로 만든 종이를 댓가지에 달고, 종이로 만 귀한 돈을 모으고, 제물제향 우 버리고 좌 버려, 초감제로 천상천하 무변대천 영실당 노는 신이나 산과 물에 놀던 신, 남산 돌굽 마다 놀던 신, 무주공지 구름질 바람질에 놀던 신, 거울 없고 신령 있는 신위님, 얼굴 기상 육신 모른 신, 초감제로 신 모으려고 합니다. 어느 신 위주 하여 청하리까. …… 초 제일 진강대왕, 제이 초강대왕, 제삼 송제대왕, 제사 오관대왕 내려서서 상 받으십서. 제오는 염라대왕, 제육은 변성대왕, 제칠은 태산대왕, 제팔은 평등대왕, 제구에 도시대왕, 제십에 전륜대왕, 목숨 잡은 시왕님전 내려서서 상 받읍서. 열 하나 지장대왕, 열 둘 생불대왕, 열 셋 좌두대왕, 열 넷 우두대왕, 열 다섯 신의동자 죄판관, 열 여섯은 사자대왕 상 받읍서. 옥황사자 부원사자, 지부차사 일주님, 옛날차사 방나장, 저승차사 이원 나장, 이승차사 강님나사, 산소 털 흑두전립, 일광전 접두루막, 남수화지지 붉은 쾌자, 붉은 쾌자 품에 품어서, 붉은 천 옆에 차고 앞으로 나르는 용처럼, 뒤로 임금 왕처럼, 활처럼 꾸부러진 길, 살대같이 달려들어 인간 혼신 데리어 가던 어진차사 관장님아, 성은 한씨 여든 둘, 돌고 가던 차사님 내려서서 상 받읍서. 우리 서방 빨갱이 서방 죄랑 있거든 사하고 벌이랑 씻겨 풀어줍서. 김해 김씨입니다. ……신의 제자 이 삼방 나서며 들어앉아 어진 차사관장님 면천 같은 하늘님전 잘잘이 비옵니다. 하나 지장, 두개 생불, 셋에 좌두, 넷에 우두, 열 다섯 신의 동자 문서 잡은 재판관님, 앞으로 본은 김해 성은 김씨가 가시는 길, 설운 영혼 가시는 길, 고이고이 인도하여 주옵소서. 고조부에 고조모님 가시는 길, 증조부에 증조모님이 가시는 길, 당조부에 당조모님 가시는 길, 아버님 어머님 가시는 길, 친정 아버지 친정 어머니 가시는 길, 삼촌 사촌 오촌 육촌 칠 팔촌들 가시는 길, 죽어 명왕 가신 길, 초군군 이군문 삼삼 도군문에, 저 인정 많이 걸건 설운 영혼님, 고이고이 돌고 가십시오. …… 이렇게 하여 비오니 건 구름도 넘어 오십시오, 바람 산도 넘어 오십시오, 구름 산도 넘어 오십시오, 영혼 뒤로 만나시던 영혼님들, 이팔청춘 죽고 간 설우신 아가씨들, 모두 상 받아 신내립서. 신촌 사람, 조천 사람, 함덕 사람, 송당 사람, 어진 영혼님 달고 가던 차사 관장님네, 모두 모두 상을 받아 저승으로 좋은 곳으로 잘 인도하십시오. 불쌍한, 성은 한씨 여든 둘 아무 죄도 없습니다. 서방 미워한 죄밖에 없습니다. 우리 식구 남겨두고 산으로 오른 서방, 저승길 밝혀줍서. 불쌍한 영혼입니다. 저승 명왕 고이 들어갑서. 상청 들어 상마을이야 쉬우리까. 중청 들어 중마을, 하청 들어 하마을에 오르십시오. 이렇게 하여 빌어 가며 이 집안에 영장 났다고, 넋이 나가던 문전 지신 상 받으십시오. 토지지신 상 받으십시오. 성조지신 조왕지신 상 받으십시오. 제오방 제토신 넋 나간 일, 혼난 일 모두 막아주십시오. 오도롱 사람 죽어서 상제에 넋 난 일, 가시리 사람 죽어서 상제에 넋 난 일, 북촌 사람 죽어서 상제에 넋 난 일들 모두 막아주십시오. 우리 서방 한라산 굴속에서 넋 난 일도 모두 막아주십시오.  …… 초감제로 모은 신전 초신맞이 모았습니다. 초신맞이 모은 신전 떨어진 신도가 있을 듯하여 초상계로 모아 우 앉히고 좌 앉혀서 제물제향 벌였습니다. 초공신으로 집안의 지극 정성 받으십시오. …… 신중에는 천지천황, 천지지황, 천지인황 공신 받으십시오. 불쌍한 영혼 성은 한씨 여든 둘, 우리 서방 나와 같이 지옥 들게 말고 저승 좋은 국으로 살려내어 가십서. 일각을 살려내어 갑서. 사나 사나 살려내어 가십서. 날로 달로 살려내어 가십서. 성은 김씨입니다. 김해 김씨입니다. 날로 달로 살려내어 가십시오. 영혼 영계님 돌고 가던 차사님아 관장님아. 우리 서방님 데리고 갑서. 불쌍한 서방, 멋을 몰라 길 잘못 들었습니다. 빨갱이 되었습니다. 범죄랑 있거든 사악 합서. 벌이랑 풀려 데리고 가십시오. 서홉 서미 원미죽으로 청감주로 소주로, 온도 천량 지전도 만량 인정 많이 걸거든, 사나  사나 사나가십시오. 칭원한 일 원통한 일 걷어 걷어 걷어서 갑서. 사나 사나 사나가십시오 사나 온다.  …… 불쌍한 서방님아 명이 그만 이라서 가지셨습니까? 나 오십 년 간 청상과부로 살았습니다. 아들 하나 있는 거 빨갱이 새끼로 살았습니다. 초수렴에 어떻습디까? 대수렴에 어떻습디까? 입으로 쓸데없는 소리만 해수다마는 칭원한 일이랑 풀어서 가십시오. 동관시에 가려고 하니 어떻습디까? 하관시에 달이나 나왔습니까? 봉토 시간에나 용미 계절에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엄토감장 천년만년 지탱이나 될까요? 칭원한 일, 원통한 일 다 풀어 갑서. 끝에 문전으로 도진 할 때랑 소원 담긴 것 혼 든 것 다 불살라 올리겠습니다. …… 영혼님에게 심방 입을 빌어 분부 문안 올립니다. 설운 서방님아 칭원한 생각 마십시오. 낭군 스물 한 살, 할 수 없이 죽어서 저승 갔습니다. 그 시절 무자년에 출행할 때 차사님이 길을 안내하여 저승을 떠났습니다. 이제 쉰 넘은 아들놈 내 제사상 당신 제사상 함께 올린다니 내 낭군 손잡아, 오십 년만에 저승길이라도 가집니다. 눈을 감아서 저승을 가려고 하니 악마 같은 세상살이 생각하면 한이 없습니다. 낭군님아 조금도 원통하게 생각 마십시오. 시아주버님아, 형님 가슴에 불지르고 떠난 동생 아닙니까?. 형님전 섭섭한 생각하지 마십시오. 설운 형님 믿고, 설운 조카, 설운 아들 며느리 믿어서 같이 저승 떠납시다. 우리 먼저 저승 가는데 천만 죄만 갔습니다. 우리 시아주버님 오래오래 살다가 저승 오십시오. 우리 내외 초군문에 섰다가 상봉하여 만단 정회하오리다. 아이고 아이고, 친족 어르신네, 이웃 어르신네 이 못난 부부 위하여 귀양 풀이까지 하여주어 너무 고맙습니다. 어르신네들 저승에서 상봉하면 내 공 갚아 드리리다. 아이고 아이고, 설운 사람들아, 설운 세상 원망 말고 같이 손잡고 서로 안신 잘 시켜 주십시오. 가슴이 얼마나 아플 것입니까? 서로 안심시키고 서로 봉양하면서, 살고 계십시오. 설운 시아주버님아, 설운 장조카야, 시아주버님 손에 내 낭군 저승문 들었으니 편안합니다. 시아주버님아, 내 아들. 내 손자 이승에서 사람 대접받게 돌봐 줍서. 우리 낭군 제삿날 따뜻한 메 그릇과 향이라도 피워주십시오. 부탁입니다. …… 인정 사정 잔 들어가며 여든 둘 이네 몸, 아들 전에 분부입니다. 하느님 덕은 천덕이고 부모님 덕은 구천만덕이라. 부모 덕은 몇 백년이나 갚아도 갚을 수가 없는 부모공 아닙니까? 내 낭군 일찍 세상 하직하여 못 갚은 공, 저승길이나 치워 닦아서 공 갚아 드리려 하는데, 이 짓이 무슨 짓인고, 봉분도 못 찾고, 술잔도 못 올리고, 불쌍한 영혼 구천을 헤매는데 자식 마음이야 오죽 하리까. 그렇지만 낭군 손잡고 저승길 가니, 설운 며늘아가야 오늘은 저승길을 치워 닦아준다고 하니, 고운 길로 들어서노라. 설운 며늘아가야, 김해 김씨 집안에 시집와서 시아버님 사랑 한 번 못 받고, 자손 하나 나면서 살아 준 것도 너무나 고마운 사실인데, 이게 무슨 일인고? 저승 가는 길이 막막하구나. 며늘아가야……


  전화벨이 울린다. 지서 주임이다.

  “김 선생님, 큰아버님 어떻게 되신 것 모르십니까?”

  “그런데 웬일이십니까?”

  “자살입니다. 지서로 나오십시오.”

  “네?”

  주임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부리나케 지서로 달려간다.

  지서 주임이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있다. 나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엉덩이를 붙인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이가 지긋한 분이 농약을 먹고 자살을 하다니… 집안에 무슨 복잡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

  “우환입니다. 모친 장사를 지내고, 며칠이 지났다고……”

  오토바이가 공동묘지 입구에 세워진다. 동쪽 끝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도 눈에 띈다. 수사관들이 눈을 번쩍거리며 시신 주위를 맴돌고 있다.

  “김 선생님, 자살입니다. 유서도 남겼습니다.”

  가죽 점퍼 형사가 하얀 봉투를 내민다.

  “오십년 전, 형님이 동생을 죽였다는 내용입니다.”

  형사는 말끝을 흐리며 나를 힐끗 쳐다본다.


  어허능창 어허능창, 어화로다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늘 하루 혼자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검은오름아, 민오름아, 밝은오름아, 천아오름아, 어화능청 어화로다. 청산 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등장 가세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하느님의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당오름아, 세미오름아, 감은이오름아, 아부오름아,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던 길로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허능창 어허능창, 어화로다 어화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김관후

2006/05/09 16:19 2006/05/09 16:19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kimgwanhoo.pe.kr/tt/rss/response/39

그리운 섬

 

                                그리운 섬


  섬을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할까. 둘레가 물로 둘러싸인 육지가 섬이다, 라는 단순한 의미로 대답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섬에 대하여 어떤 기억을 갖고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볼까. 된 하늬가 모진 바람으로 불고, 자오록한 물 마루로 작달비가 몰아치면, 직박구리라는 얼른 서우악 동굴로 숨어 버린다. 섬 하나가 가슴속에 남아 자글거리면, 그것은 누구에게 넘길 수 없는 아스라한 아픔일 수밖에 없다. 섬은 항상 바다 위에 떠 있어, 그 자태가 흔들릴 것만 같고, 위험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섬을 그리워하기 시작하면서, 섬으로 돌아가기로 마을을 굳힌 후부터, 밤마다 가위눌림에 시달려 왔다. 섬이라면, 제주 섬을 지극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 섬 함덕 마을이 떠오르고, 할머니가 그리워진다. 섬을 향한 그리움은 배죽배죽 서울 한 복판에서 나를 약올릴 때가 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섬에는, 내가 떠나온 후 할머니 혼자서 집을 지켜왔다. 할머니의 부음을 받고, 섬을 떠난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았던 섬, 넋빠진 함덕 마을, 철저하게 죽음을 준비하고 저 세상을 뜬 할머니의 결백 성이 지금도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게 한다. 할머니는 당신이 사후 장례를 생각해서일까, 자신 스스로 죽음에 대한 준비를 마치고, 아버지를 따라가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아버지의 이맛전도 제비턱도 허리통도, 아무 것도 본 일이 없다. 내 한 살 때 아버지는 죽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수의라든가, 안찝과 개판까지, 살았을 때 완벽하게 준비하였다. 지요도 만들어 두었다. 그것뿐인가, 묏자리를 미리 봐 두고 가봉분까지 쌓아 두었다. 자신의 무덤이 들어앉을 자리를 둘러싼 도래솔도 심어 놓았다. 미리 장례 준비를 해 둠으로써, 나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엄격히 다스리고 저 세상으로 떠난 것이다. 섬에서 호상옷이라고 부르는 할머니의 수의는 이 세상에서는 변변치 못하게 살지만 영원히 가는 저 세상에서만은 편안히 살아 보려는 듯 화려하게 꾸몄다. 재료도 최고급품 명주였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어릴 적 매일 집에 자주 들르던 단골무당 삼신 할머니를 만났다. 내가 고향집에 들이닥쳐서 보니, 그녀는 할머니 관머리에 앉아 있었다.

  ꡒ좀체, 운명한 늬 할망의 눈이 감겨지지 않았어. 원한이 맺힌 일이 너무 많은 때문이주. 그래서 내가 사정하는 말을 했주. 서울에 사는 손자와 의논해서, 늬 아방 헛봉분을 만들겠다고 했어, 아들이 밖에서 죽어, 거릿송장이 없지 않수꽈, 헛묘라도 만들어 아들 망자를 위로허쿠다, 했지. 그리고 고이 눈을 내리쓸었지. 그제야 눈을 감더군.ꡓ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아버지의 헛묘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거릿송장이라 함은, 아버지 시신을 말한다. 그 시절, 섬에서 총소리가 요란하던 시절, 날송장이 눈을 뜨고 노려보던 시절, 아버지는 저 함덕 모래밭에서 토벌대에게 총살당하고, 서우악 앞 바다에 수장되었다고 확인되지 않은 소문만 듣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ꡐ폭도 새끼ꡑ라는 별명을 붙이고 다녔다.

  그리고 섬! 하면 떠오르는 아픈 기억의 파편들은 무수하다. 달구 노래가 내 귓전을 항상 맴돌던 기억도 난다.


어허렁 달구 어허렁 달구,

삼세번 소리에 들고 놓자 어허렁 달구,

사공 아이 소리끗 보멍 어허렁 달구,

좌골를디 좌골르곡 어허렁 달구,

우골를디 우골라 줍서 어허렁 달구.

동네 사람들이 부르던 달구 노래다. 행상 노래가 내 귓전에 들릴 때도 있다.


저승 질이 멀다드니 창문 밖에가 저승이로다.

야에 ~ 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저승 질이 멀다 드니 창문 밖에가 저승이로다.

야에 ~ 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눈을 감고, 이 지구상의 수많은 섬이 이름을 나열한다. 이것도 섬으로 돌아가기로 마을을 굳힌 후부터 생긴 버릇이다. 나는, 그 수많은 섬들의 아픈 역사를 하나하나 더듬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면 섬 하나 하나가 간직한 아스라한 아픔이 밀려온다. 그래서 나는, 섬은 죽음이다. 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육지는 정복이다. 정복당한 자는 죽음이 있을 따름이다. 특히 제주 섬 갯가에는 어디를 가든 늘 죽음의 냄새가 풍겼다. 항구를 통하여 정복자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섬 땅을 밟아, 섬사람들을 정복했다, 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섬을 생각하면 굿거리 장면이 나타나고, 쭉 늘어진 날 상가가 나타난다. 곡소리가 들린다. 아아아,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섬이라면, 아메리카의 도마니카와 자마이카가 떠오를 수 있을 것이고, 알래스카의 코디악도 상상할 수 있다. 태평양의 서사모아와 하와이, 타히티나 타스마니아도 생각할 수 있다. 오키니와도 섬이며, 하이난도 섬이다. 크레타, 시실리아, 코르시카도 섬이다. 울릉도, 홍도도 섬이며 우도, 마라도, 가파도도 섬이다. 우도와 마라도와 가파도는 제주 섬에 속한 또 다른 아픈 섬일 따름이다.

  지난밤 가위눌림 때문에 머리가 지근거리는 아침, 제주 섬이 다시 떠오르면,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 ꡐ육지 놈ꡑ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섬사람들 모습이 생생하다. 섬에서는 육지에서 건너온 사람들에게 ꡐ육지 것들ꡑ이라고 욕을 했다. 섬은 너무나 오랜 세월 육지에 의하여 수탈을 당하고 살았다. 지구상의 모든 섬들이 제주 섬처럼 육지에 의하여 고통을 당하였다. 그래서 섬은 죽음이고, 육지는 정복이다, 는 것이 나의 섬에 대한 명제이다. 다시 섬! 하고 부르짖는다. 섬에서는, 태양이 눈부시도록 맑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 석양이 저무는 매혹적인 함덕 해변에서 상징되는, 신비와 환상을 생각할 수 도 있다. 그리고 흔들리던 거룻배와 음절이 정확한 소리를 내던 똑딱선도 덧붙일 수 있다. 분명히 섬은, 섬만이 간직한 신비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섬은 세월과 역사 속에서 고통을 인내하고 용서해 온 관용도 품고 있다. 섬은 한반도의 끝이요, 그래서 사람들은 비행기가 없던 시절에, 단절의 삶에 익숙해 있었다. 옛날 대륙의 시대에 섬사람들은 그 지리적 격절성과 변방성 때문에 소외와 폐쇄로 얼룩진 인고의 세월을 관용하면서, 그러나 생존을 위한 강인한 진취성을 살려왔다. 그래서 강인과 진취를 간직하고 살아야 했으며, 또한 폐쇄와 소외라는 정서도 품에 안고 살아야 했다. 섬은 관념어를 거부하고, 그냥 섬으로 남기를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 참혹한 아름다움을 위하여, 결국 나는 그 섬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제주 섬에는, 낚시와 낚싯밥, 뭇과 삼태그물을 싣고 새벽 물길에 고기잡이 나간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았다, 로 시작되는 처절한 전설이 있다. 이 전설은, 바다에서 길을 잃은 아버지의 도피처로 이어도를 설정하였다. 이어도는 아버지가 죽은 후에 인식하는 유토피아이다. 닻을 올리고 새벽에 고기잡이 나간 지아비가 점점 강해지는 폭풍우와 함께 돌아오지 않을 때 그 아내는, 그리고 그 가족은 먹구름이 삼킨 물 마루를 바라보며 그냥 절망만 했을까.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남편의, 아버지의 죽음을 그냥 믿어야만 했을까. 잠시 풍랑을 피할 수 있는 도피처를 상정하고 되고, 끝내 돌아오지 않을 때에는 가상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애절한 곳, 섬에서 상상할 수 있었던 또 다른 곳이 바로 이어도이다. 이어도는 외로움과 아픔을 견뎌 내는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스스로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이다. 이어도는 삶과 자연에 대한 저항과 원망을 감싸고 용서하여, 평화로 화해하는 오히려 신성한 장소하고 할 수 있다. 이어도가 있기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근면성을 일구어 내었다. 항해술과 선박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 돌변하는 바다의 기상 악화는 수없이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살아 있는 가족에게는 미완의 숙제가 남아 있었다. 섬사람들의 단절과 슬픔이 숱한 사연을 안은 채 그것들이 하나하나 쌓여, 보다 고귀한 영역으로 승화된 구역이 바로 이어도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그 쓰라린 시절에, 이어도를 가슴에 품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자신의 아들, 나의 아버지는 소문대로 바다에 수장된 것이 아니라, 이어도로 건너갔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삼신할머니에게 간절한 부탁을 남기고, 자신의 죽음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떠난 것이리라. 섬사람들은 바다를 지금도 바다 밭이라 부른다. 바다 밭이란, 바다가 밭처럼 섬사람들에게 식량을 대준다는 뜻을 담는다. 바다로 태왁을 메고 나가서나, 고깃배를 타고 나가면 바다는 많은 먹거리를 준다. 밭을 가꾸듯이 바다를 다스리고, 이용하였다. 할머니의 생각은 한마디로 바다 밭으로 나간 아버지가 뱃길을 잃고, 도피처를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망망대해에서 헤매었을 것이며, 결국은 이어도에 안착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믿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일부러 그렇게 가상하면서 스스로 위로를 했는지 모른다.


  결국, 가위가 심하게 눌리던 밤을 보낸 후, 나는 제주 섬으로 돌아가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할머니가 이어도를 상상하던, 바로 내 고향 섬으로 말이다. 도대체 섬에 무슨 미련이 남아 있어, 그처럼 섬으로 돌아가려고 발버둥을 쳤는지, 묻지를 말라. 뼈를 추스르는 아픈 파돗소리, 자갈밭을 괭이질하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사람 뼈다귀들. 사촌은 이 쪽 육촌은 저 쪽으로 갈라져 서로가 토라진 친족들. 폭도 새끼라고 측은한 모습으로 쳐다보던 동네 아낙들. 한밤 내내 내쉬는 할머니의 한숨소리. 도대체 섬으로 무얼 하러 간단 말인가. 그렇지만 요 몇 년 동안 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안달이 나 있었다. 그 지긋지긋한 섬으로, 용서하지 못할 섬으로 돌아가리라. 그리고 나의 귀향 준비는 완료되었다.

  물론 고향! 하면, 할머니 생각이 가슴 중심부를 짓누른다. 그 시절, 식구라야 할머니와 나, 단둘뿐이 아니지 않은가! 아버지는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고, 어머니는 가출하여 소식이 없었던 시절, 나는 두 분이 분명 이어도에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ꡒ어멍 아방, 어디간?ꡓ

  어린 내가 할머니 무릎 위에 누워서 물었다.

  ꡒ어딜 가긴, 어딜 간단 말이니. 아방은 이어도에 갔지.ꡓ

  늘 하는, 할머니의 대답이었다.

  ꡒ이어도는 얼마나 멀어? 그럼 어멍은?ꡓ 

  다시 물었을 때, 할머니는 자신의 며느리, 나의 어머니에 대한 답변은 피했다. 아버지가 잡혀가고 얼마 지나자, 어머니는 온데 간데 말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북에서 온 토벌대 부인이 되었다는 소문만 나돌았다.

  ꡒ이어도는 얼마나 멀어?ꡓ

  내가 다시 물었다.

  ꡒ하늘보다 더 멀지.ꡓ

  할머니의 대답은 늘 그랬다.

  나는 아버지를 기다리던, 지금은 할머니조차 없는 바로 그 섬으로 가기 위하여, 항공권을 구입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늘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섬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나 많았다. 항공권 구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사람은 낳아서 서울로, 말은 낳아서 제주 섬으로, 라는 말이 뒤바뀌고 있었다. 제주도로 제주도로, 사람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섬을 떠날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너무 가난하여 너무 외로워, 그러나 출세를 위하여 섬에서 탈출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이제는 관광을 목적으로, 혹은 땅을 사려고, 호텔을 지으려고, 콘도에 들르려고, 자전거 하이킹을 하려고, 섬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서울 시민 모두가 섬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 옛날 섬에는, 출육금지령까지 내려졌다는 그 오랜 기록이 무색하게 변하고 있었다.

  섬으로 돌아간다는 나의 결심은 너무 단단하였으며, 결국 제주 행 항공권 쟁탈전에서 승리하였다. 섬을 떠나, 서울 바닥에서 발붙인 지 삼십 년이 지났는데, 이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시민이 된지 삼십 년이 지났는데, 항공권 하나쯤이야, 쉽게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여행사에서 영업이사를 하는 대학 동기에게 전화를 했더니, 항공사에서는 한 장도 없다는 항공권을 사무실에 배달까지 해주었다.

  나는 이미 출판사에 사표까지 제출한 상태였다.

  ꡒ그만 두신다구요, 아니 고향으로 내려 가신다구요? 부럽습니다. 이제 파도소리 들으며 소설을 쓰시겠네요.ꡓ

  출판사 사장은 사표를 이미 짐작이나 한 듯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사표를 제출한 다음 날 회사 게시판에는 후임 편집장이 선임되어, 공고까지 하였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대수로운 일인가. 나는 이제 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집에는 딸만 혼자 남겨 두고 떠나기로 하였다. 뭐 서울이 싫어서, 맑은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섬이 좋아서 떠나는 것은 결코 아니지 않은가. 지금 식구도 단둘뿐이다. 생각해 보니 아내가 죽은 이후 우리는 단 둘이서 칠 년을 살아왔다. 딸은 이제, 혼자서 충분히 자기 삶을 꾸려 나갈 것이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 때, 할머니가 나를 믿듯이, 나는 딸을 믿고 있었다. 대학 졸업반, 한 때 운동권 활동이 빌미가 되어, 마흔 닷새 동안 교도소 신세도 진 경험이 있는 내 딸. 내가 감옥에 있었을 때는 쉬지 않고 면회를 신청하여 책과 차입금을 교도소 창구로 들이 내밀던 딸이다. 그러니까 우리 부녀는 전과자들인 셈이다.


  ꡒ아버지는 다시 서울로 돌아오시는 거죠? 너무 외롭고, 괴로우신 것 같아요. 섬에서 지내시다 보면, 어머니 생각도 잊으시고, 글쓰기에 전념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ꡓ

  딸은 결코 섬을, 고향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서울을 고향이라고 말해왔다. 딸은 내가, 이미 저승으로 떠난 아내 때문에 늘 괴로워하는 줄 알고 있었다.

  아내는 칠 년 전에 죽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선배의 소개로 아내와 맞선을 보고, 그리고 결혼을 하였다. 만일 할머니가 살아 있다면, 육지 년은 안 된다고 거절을 했을지도 몰랐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처갓집에 들렀다. 아내가 가족 사진첩을 내밀며, 구경을 하라는 눈짓을 내게 보냈다. 퇴근하고 돌아올 장인어른을 기다리며, 사진첩을 한 장씩 넘겼다. 그런데 너무 놀라운 사실을 알고, 나는 부랴부랴 처갓집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오랜 세월로, 색이 바랜 사진 한 장이 내 눈길을 끌었다. ꡐ제주도 토벌기념ꡑ이란 사진 설명이 붙은 흑백사진으로, 제복을 입은 삼십 여명이 각자 총을 들고 관덕정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청년 시절의 장인어른도 맨 뒤쪽에 서 있었다. 결국, 나의 결혼생활은 초장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으며, 아내와 처갓집 식구는 전혀 처가댁을 찾지 않은 나를 의심하는 눈길로 바라보았으며, 아내는 나의 이상한 결벽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내가 죽은 밤부터, 어릴 적 가위눌림이 다시 도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섬을 소재로 하여, 소설집을 한 권 세상에 내놓았다.

  ꡒ소설가 선생, 당신 고향이 어디요?ꡓ

  내 소설집이 출판사에서 전국의 책방으로 뿌려지고 며칠 후, 출판사로 험상궂게 생긴 가죽잠바 사나이가 방문하였다. 임의동행 형식으로 가죽잠바에 의해 끌려간 곳은 어느 우중충한 건물의 지하실이었다. 아침마다 가죽잠바가 기다리는 취조실로 끌려가 심문에 응해야 하는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ꡒ제주 섬입니다ꡓ

  ꡒ빨갱이 섬 출신이군. 당신과 당신 가족의 전력을 조사해 봐야겠어.ꡓ

  ꡒ……?ꡓ

  사나이는 캐비닛에서 서류를 꺼내서 뒤적였다.

  ꡒ자식! 빨갱이 자식이구먼. 빨갱이 자식이 빨갱이 소설을 써?ꡓ

  나는 결국 기소되어 교도소로 끌려갔으며, 실형을 받아 여섯 달 동안 독방 신세를 졌고, 내 소설집은 판매 금지처분을 받았다. 요즘 들어서야 그 소설은 해금되었고, 책방에서 꽤 팔려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섬을 그리워하기 시작하면서 글이 전혀 씌어지지 않았다. 잡지사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 소설 한 편 발표를 못했다. 섬으로 가면, 결코 서울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며, 글을 영원히 포기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그 음습한 섬이 너무 강하게 나를, 왜소한 소설가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지 못 할 것 같은 기분이 엄습하였다.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섬이 그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하실 가죽잠바가 말하던 붉은 섬으로 나는 이미 출발하고 있었다. 삼십 년 전에 떠나온 섬. 오로지 할머니의 부음을 듣고 한 번 들렀던 내 고향 섬. 그리고 함덕리. 내 고향 섬. 그리운 섬. 그 곳으로 나는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내가 왜 내가 섬을, 무슨 염치로 찾아간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섬에서 풍겨오는 죽음의 냄새를 수도 서울에서는 맡을 수가 없어서 찾아가는 것일까. 죽음의 냄새가 서울 한복판까지 풍겨 왔다. 섬이 그립고, 섬에서 풍겨 오는 죽음의 냄새가 그리웠다. 섬은 죽음이다. 육지는 정복이다. 그렇다면 정복당한 곳에 사는 섬사람의 운명은 죽음뿐이다. 그 시절, 섬에서 불어오는 갯바람은 항상 죽음의 냄새가 풍겼다. 항구에 정박한 LST에서 내려진 정복자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섬땅을 군홧발로 밟았다. 그들은 섬사람들을 정복했다. 지금은, 비행기로 섬 공항에 도착하여 돈으로 섬을 정복하고 있다. 총 대신 돈으로 섬땅에 금을 긋고, 그 시절 살육을 당하던 관광지에서 히히덕거리고 있다. 그래서 땅값은 계속 오르고 있었다.

  지하실 가죽잠바가 지껄이던 말이 되살아난다.

  ꡒ섬놈이 서울 바닥에서 지랄이군!ꡓ


  나는 김포공항을 출발하는 마지막 항공편에 예약을 하였다. 출발 시각은 오후 20시 45분.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며, 공항 로비에서 여객 보관용 국내 여행 항공권을 읽어 내려갔다. 선명한 항공 회사 마크와 함께, 성명 구간운임편명월일출발 시각 예약란과 함께 항공권을 구입한 여행사 고무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당시, 나는 생전 처음으로 산지항에서 여객선에 올라, 서울을 향하여 섬을 떠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였다. 할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항구에 정박한 여객선에서 눈물을 질금질금 삼켰다. 목포로 출항하는 여객선은 예상대로 미함정을 개조하여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보통 야간 운행인 여객선이, 이상하게도 그날은 주간 운행을 하였다. 여객선이 항구를 출발하는 시간은 정각 10시.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짙은 안개가 눈앞을 가리는 농무기라, 안전을 생각하여 주간 운행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산지 항에서 손을 흔들던 할머니는 저승으로 떠났다. 일곱 시간 이상을 뱃멀미로 구토를 하며 힘들게 목포항에 도착하였다. 목포 역에서 다시 완행선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였다. 그 때 나는, 만일 여객선이 뒤집혀진다면,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바다에서 죽어갈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공상을 하고 있었다.

  ꡒ이제 고향도 섬도 잊어 불라.ꡓ

  할머니가 산지항 여객선 터미널에서 손자에게 건네는 마지막 이별사였다.

  ꡒ…………ꡓ

  ꡒ영영 돌아오지 말라. 내가 죽었다는 소식 들어도, 절대 돌아오지 말라. 넌 이제 섬놈이 아니여.ꡓ

  ꡒ…………ꡓ

  할머니는 화폐 몇 장을 손에 꼭 쥐어주며, 몇 번이고 다짐하였다. 할머니의 말뜻을 이해했는지, 어른이 된 다음에야 깨달았는지, 지금도 분간을 할 수가 없다. 섬으로 돌아오지 말고, 육지 놈이 되라고 일러준 깊은 속마음을 왜 모른단 말인가. 그처럼 신신당부하던 그 부탁을 허물어뜨리고, 나는 결국 섬으로 돌아가고 있다.

  비행기 안은 신혼부부 물결로 출렁거렸다. 나는 좌석 번호를 찾았고, 의자에 앉자마자 다시 항공권을 살폈다. 다시 항공권 뒷면으로 눈길을 쏟았다. 계약조건. 그렇다. 승객들은 항공사와 계약을 하고, 자신의 몸체를 비행기에 맡긴다. 조건 내용에 포함된 무서운 경고가 눈길을 끌었다. 여객의 사망이나 상해에 대한, 항공의 배상 책임은 여객 1인당 소송비 및 제 경비를 포함하여 국제통화 기금의 특별인출권인 SDR 100,000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입증된 손해 액으로 제한됩니다. 그렇다. 하늘에서의 죽음도 가능하다. 가슴이 떨렸다. 아버지가 그 시절, 바다에서 죽었다면, 나는 하늘에서 죽을 수도 있으리라. 내가 탑승한 비행기가 사고를 낸다면, 편안하게 죽을 수 있다. 내가 죽는다면, 내 유일한 핏줄 내 사랑하는 딸은 어떻게 살아갈까. 나의 시신에서도 죽음의 냄새가 날까. 그 냄새를 맡고 딸이 무어라고 울부짖을까.

  그 시절, 섬에는 항상 죽음의 냄새가 갯바람과 함께 코를 후볐다. 갯벌에서도, 모래톱에서도, 콩밭과 보리밭에서도 죽음의 냄새가 서려 있었다. 섬 어디에서도 죽음의 냄새가 풍겼다. 그 냄새가 지겨워 섬을 떠났다. 그런데 다시 그 냄새를 맡기 위하여 섬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섬에서 죽어, 내 죽음의 냄새를 바다로 풍기기 위하여 일부러 찾아가는지 모른다.


  고등학교 졸업 시기가 가까웠다.

  담임선생님이 상담실로 불렀다.

  ꡒ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할 뜻이 있다고?ꡓ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ꡒ네, 할머니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선택했습니다. 집에는 할머니 혼자뿐입니다.ꡓ

  ꡒ내 말을 명심하고 듣기 바란다. 너는 성적도 뛰어나고 웬만한 대학은 다 붙을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육군사관학교냐? 작년에도 너의 선배 중에 여섯 명이 육사 1차 필기시험에 합격을 했는데, 다섯 명이 떨어졌다. 다 집안 내력 때문이다.ꡓ

  선생님은 내 집안 내력을 이미 파악하였고, 그래서 설득에 나서고 있었다. 나에게서 내 아버지의 죽음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나는 어째서 육사에 입학한다는, 그런 엉뚱한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물론 육사 원서는 휴지 조각이 되었다.


  비행기에 탑승한 후에도, 계속 죽음을 상상하였다. 마치 자살하러 섬으로 향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멀리서 어렴풋이 섬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여객기는 정상적으로 착륙하기 위하여, 그 루트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상상은 분명히 죽음에 머물러 있었으며, 거기에 비행기를 대입시키고 있었다. 분명히 여객기는 강한 하늬바람을 타고 약간씩 흔들거렸다. 정상적으로 하강한다는 느낌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섬 하늘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에 착륙하기 위하여 여객기는 굉음을 내며 비행고도를 완만하게 낮추었다. 나의 망측스런 공상은 계속되었다. 일부러 눈을 감고 의자에 깊숙이 파묻혀 보았다. 제주 공항에 도착 직전이라는, 여승무원의 안내 방송이 나긋나긋하게 들려 왔다. 만일, 제주 공항의 계기착륙 장치 중에서 비행기가 적정고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활공각유도장치가 만일, 그 움직임이 중지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만일, 당장 조종사가 피곤하여 육안으로 그 특유의 고도 작동이 불가능하다면, 그래서 창 너머 육안으로 고도를 확인할 수 없다면, 잠시 후에 비행장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나의 엉뚱한 상상을 비웃기나 하듯, 비행기는 섬땅으로 너무 쉽게 접근하였다. 이미 랜딩기어가 내려지고 있었다. 비행기가 내려앉는 이 공항이 그 시절에,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하던 그 시절에, 엄청난 살육 장이었던 사실을 아름다운 신혼부부들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년에 이 백만이 넘는 관광객이 활주로를 가볍게 밟고 있다.

  그리고 일반 상식으로 조종사가 착륙을 시도하는 결심 고도는, 계기 착륙일 때 2백 피트 정도다. 육안 착륙일 때 5백 피트 이상에서 조종사가 결정해야 하는 것도 상식이다. 이상이 있다면, 조종사는 당장 관제탑에 비상사태를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기체에 뭔가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면, 조종사는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승객은 조종사를 전혀 볼 수가 없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어이없게도 죽음을, 비행기의 추락을 계속 상상하고 있었다. 나의 상상은 무법자 마냥 종횡무진이다. 마른번개가 치고 마른천둥이 운다면, 폭풍우가 몰려온다면, 소나기구름 속에서 발생한 돌발적 난기류가 일어난다면, 비행기가 추락할 수도 있다. 섬에는 육지에서보다 비와 바람이 많다. 비행기가 추락한다면 물론 모두 죽을 것이다. 그 시절에도, 섬에서는 항상 주검의 냄새가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갑자기  소나기구름이 일어, 소나기가 내리친다면, 구름이 진행하는 뒤쪽에는 상승기류가, 앞쪽에는 하강기류가 생길 것이 분명하다. 상승기류 속에서 비행기는 연이 바람을 맞아 올라가는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하강기류가 생긴 곳에서는 비행기를 떠받쳐 주는 힘인 양력이 떨어질 것이다.

  내가 상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비행기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착륙을 시도하였다. 내 귀에 들려오는, 기체가 너무 낡아 덜덜거리는 소리가 너무 불안하다. 주위를 살펴봐도 기내 시설물은 낡은 중고차와 다를 바가 없다. 유리창으로 활주로 3㎞ 전방에 도두봉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도두봉, 섬 머리라는 뜻. 만일 이 숨막히는 순간, 만일 조종사가 한 차례 두 차례 착륙을 시도하다 실패한다면, 다시 세 번째 착륙을 시도하다 실패한다면, 나의 상상은 기막히게 들어맞을 수 있다. 만일 조종사가 짙은 구름 때문에 갑자기 도두봉이 불쑥 나타나, 비행기 고도를 높인다면, 꼬리 부분이 도두봉 정상에 걸리고 만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공항 인근 날씨가 갑자기 변하여, 당장 강풍과 함께 비가 내리고 구름이 끼어 착륙 조건이 불량해진다면, 만일 섬 공항이 태풍의 간접 영향으로 흐려지고 폭우가 쏟아진다면, 승객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역시 상상을 비웃기나 하듯, 기내에 있는 승객들은 벌써 내릴 준비를 서둘렀다. 모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만일 지금이라도 순간적으로 열대성 소나기가 쏟아지듯, 갑작스럽게 발생한 돌풍에 휘말린다면, 그렇게 된다면, 기내는 수라장이 될 것이며, 잠시 후 수백 미터나 흩어져 나뒹구는 산산 조각난 기체들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아찔하다. 어째서 섬은 나에게, 얼토당토않은 상상력을 끄집어내게 하고 있을까. 기자들이 달려올 것이다. 온 세계로 생생하게 보도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엄청난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나는 섬땅을 무사하게 밟을 수 있었다. 죽음의 냄새가 나를 불러드린 섬땅이다.


  아아, 그리운 섬. 그리운 고향 마을.

  나는 결국 섬에 도착하였고, 내 고향 마을 함덕리 모래밭 입구에 있는 여관에 몸을 맡겼다. 첫날밤을 넘기고 아침을 맞았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텔레비전 스위치를 눌렀다. 엊저녁 심한 숙취로, 어둠이 아직 걷히지 않은 새벽에 일어났다. 늘 하던 버릇대로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밖에서 장대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 뉴스가 끝나면 통상적으로 날씨를 예보할 시간이다. 여자 아나운서가, 섬을 향해 북상중인 태풍이, 오늘 섬 해안으로 상륙하여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전한다. 태풍은 중심 최대 풍속 38m, 반경 1백70㎞ 이내에는 초속 25m, 3백60㎞ 이내에는 초속 15m의 강한 비  바람을 동반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 숫자로 태풍을 어떻게 상상한단 말인가. 태풍이 오후 아홉 시 현재 섬 남쪽 약 5백50㎞ 해상에서 시속 14㎞로 북상중이며, 오늘 새벽 세 시쯤 섬 해안에 상륙했고, 오전 아홉 시쯤 한반도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여자 아나운서는 고운 목소리를 내뱉는다. 기상청은 이미 제주도 남쪽 해사에 태풍경보, 제주도와 남해 먼 바다에 태풍주의보를 각각 내려졌다고 덧붙인다.

  태풍은 여관까지 휘몰아쳤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처량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익숙한 가락이었다. 여인네가 부르는, 행상 노해가 틀림없었다. 사람이 죽었을 때 섬에서 불려지던 민요다. 그런데 꼭두새벽에, 나는 귀에 익은 노래를 이 고향 바닷가에서 들을 수 있다니, 가슴이 덜컹거렸다.


  이산 저 산 양산간에 울고야 가는 건 곡소리로다.

  야에 ~ 어허이어허야 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나도 이제 청충일러니 오늘이애 백발은 더욱 설코나.

  야에 ~ 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나는 술을 마신 뒷날 아침마다, 냉수를 찾는 습관이 있다. 노래도 궁금하여 방문을 열고, 식당을 겸하고 있는 홀을 향하여 걸어 나왔다. 행상 노래는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여관 주인이 부르는 노래가 분명했다. 여인이 태풍과 함께 장마비가 쏟아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식당 의자에 걸터앉아 민요를 뽑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이제 오늘 성턴 몸이 저녁나절에 벵이나 들어

  야에 ~ 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부르나니 어머니요 찾는 것이라 냉수로구나.

  야에 ~ 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인생 한번 죽어지면 세상 만사가 허사로구나.

  야에 ~ 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등장 가자 등장을 가자 하나님 전에다 등장을 가자.

  야에 ~ 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늙으신 양반 좇지를 말지 젊으신 홍안을 꺼끄지마라.

  야에 ~ 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어떠한 연유로 등장을 가나 이러한 연유로 등장을 가나.

  야에 ~ 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저승 질이 멀다 드니 창문 밖에가 저승이로다.

  야에 ~ 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산에 올라 옥을 캐니 이름이 좋아서 맹산이로다.

  야에 ~ 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인생 인생 불쌍한 인생 한 번 어처 죽어지면 허사로구나.

  야에 ~ 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동네 여러분들 수고 많이 하시오 이 은혜도 백골난망이로다.

  야에 ~ 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오늘 하루 놀아 보면 영원히 또다시 못 만나리라.

  야에 ~ 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나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지난밤에도 가위가 심하게 나를 눌렀다. 내 인기척에 여인이 노래를 멈추고 돌아보았다. 그리고 얼굴을 붉혔다. 하얀 스웨터에 검정색 긴치마를 입은 얼굴이 갸름한 여인이다. 어젯밤은 취중이라 잘 살필 수가 없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냉수부터 청하였다. 밖을 보니, 하얀 모래밭을 향하여 높은 파도가 하얀 포말을 만들며, 달려들고 있었다. 시커먼 하늘이 터진 듯 장대비도 쏟아지고 있었다. 해수욕장에 있던 향토 음식점의 텐트들은 철거되었고, 야영객과 피서객도 떠난 지가 꽤 오래 된 늦여름이다. 모래밭 가까운 포구에는 거룻배 서너 척이 심하게 흔들거리는 광경이 시야로 들어왔다.

  ꡒ큰 사발로 듬뿍, 부탁합니다.ꡓ

  나는 어제 제주 공항에 도착한 후 지방신문 사회부장을 하는 고교 동창생을 불러내어 질펀하게 술을 마셨고, 그리고 그와 헤어진 후 택시를 타고 이곳까지 달려왔고, 여기 별장여관을 찾아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동창 놈과 주로 43과 죽음,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논쟁을 벌인 기억도 났다.

  여인이 잠시 후에 물 사발을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ꡒ고맙습니다.ꡓ

  ꡒ태풍 경보가 발효된 모양입니다.ꡓ

  여인의 아주 차분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다. 그리고 천천히 나를 쳐다본다.

  ꡒ제가 지난 밤 몇 시쯤에 이 곳에 도착했지요?ꡓ

  나는 행상 노래를 부르던 주인 여자에게, 말을 붙이고 싶었다.

  ꡒ자정이 넘은 시간입니다. 어떻게 이 여관을 찾으셨죠? 저는 선생님을 알고 있습니다.ꡓ

  ꡒ저를?ꡓ

  나도 놀라면서, 그녀가 매우 낯이 익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하였다.

  여관은 어젯밤 술집 주인이 일러주었다.

  ꡒ김진우 선생님이죠? 우리 함덕리가 낳은 김진우 선생님. 저도 ꡐ그리운 섬ꡑ이란 소설은 아주 감동적으로 읽었어요. 바로 함덕리가 무대지요.ꡓ

  ꡒ아. 그거요.ꡓ

  나는 부끄러웠다.

  ꡒ그리고 저는 선생님의 초등학교 일년 후배예요. 선생님이 어린이 회장에 출마하여 소견 발표를 할 때 얼마나 열심히 박수를 쳤는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졸업식장에서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하기로 예정된 김진우 졸업생이 나타나지 않아, 졸업식장이 웅성거리던 기억도 생생합니다.ꡓ

  자유당 시절, 초등학생들은 늙은 대통령이 섬을 방문하는 날이면, 하루 종일 신작로에 나가 대통령이 지나가는 차를 기다리다가, 차가 나타나면 태극기를 흔들며 ꡐ대통령 이승만 만세ꡑ를 외쳤으며, 대통령의 만수무강을 빌었다. 집에 돌아오면, 왜 그 놈에게 태극기를 흔들었냐고 할머니가 역정을 내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남포동 아래서 손을 호호 불며 밤을 새우며 공부를 했다. 아버지가 그리워서, 어머니가 그리워서, 불도두개로 심지를 돋우며, 공부에 열중했다. 육학년이 되자 나는 전교 어린이 회장에 출마하였으며, 그리고 압도적으로 당선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수석 졸업하는 학생에게는 항상 교육감이 졸업식장에 참석, 교육감상을 수상하는 것이 전례였다. 분명 나는 수석 졸업에 어린이 회장이므로, 교육감상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졸업을 며칠 앞두고 담임선생님이 불렀다.

  ꡒ상심하지 마라. 네가 받기로 되어 있던 교육감상이 보류되었다. 이유는 캐묻지 말라.ꡓ

  할머니는 이 사실을 전해듣고 이빨을 부드득 갈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의 출신 성분이 문제가 되었다. 그 해 사월 아버지가 사상 활동을 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토벌대에게 잡혀 함덕백사장에서 총살을 당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시신이 수장되었다는 헛소문 말이다.

  ꡒ언제까지 될지 아직 모르지만, 며칠 동안 여기에 묵어도 되는가? 식사까지 준비해 주면 더욱 고맙고.ꡓ

  나는 주인 여자, 초등학교 후배에게 이미 반말을 쓰고 있었다. 밖에는 장대비가 계속 내리고, 나는 여자에게 행상 노래를 한 번 더 부탁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한 달 후, 나는 여관 주인과 새살림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물론 여인도 동의했다. 서울에 있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기다리지 말라고, 그리고 아버지는 곧 재혼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전화기에서 딸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여인은 이불 속, 내 품에서 흐느꼈다. 그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밀항선을 타고 큰아버지가 있는 대판으로 건너갔다. 대판에서 봉제 공장에 다녔고, 일본인과 결혼했다가 실패하여, 몇 년 동안 공장일을 계속하다가 나이가 들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섬이 그리워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바닷가에 여관을 짓고, 매년 관광객이 몰려드는 여름 한철 재미를 겨냥하여 장사를 한다고, 과거사를 펼쳤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함덕모래밭에서 그 시절 총살을 당했으며, 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서우악 앞 바다에서 수장되었다는 소문만 들었다고 흐느낀다. 그녀는 늘 서우악 앞 바다를 바라보며 행상 노래를 부르며, 아버지의 영혼을 위로한다고 울먹였다.

  여인이 내 귓불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ꡒ당신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의 헛묘를, 따뜻한 햇볕이 드는 서우봉 자락에 마련해요.ꡓ

  며칠이 지나자, 나도 행상 노래를 거의 완벽하게 부르게 되었으며, 그리고 서울에 있는 딸로부터 ꡐ아버지 재혼을 축하드립니다ꡑ로 시작되는 축하 편지도 받았다.

  태풍이 그치고 붉은 노을이 백사장을 온통 물들인다. 어째서 섬에 내리쬐는 석양은 참혹한 붉은 색을 나타낸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붉은 노을을 바라본 것은, 내일 아침 이 여인과 더불어 푸른 바다를 바라보기 위함일까. 그리고 나는 가방 속에 묻어 두었던 원고지를 꺼내고, 정중하게 앉았다. 글쓰는 일이 슬슬 풀릴 기분이 들었다. 밤마다 나를 옥죄이던 가위눌림도 이제 사라지고 말았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김관후

2006/05/09 16:18 2006/05/09 16:18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kimgwanhoo.pe.kr/tt/rss/response/38

당신에게

 

                                    당신에게


이 곳도 섬입니다. 고향 섬이 그리워질 다른 섬입니다. 밖에는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며칠째 비가 내리는지 헤아리기에도 숨이 찹니다. 비가 너무 오래 내려 그 날짜를 손가락으로 꼽을 수조차 없습니다. 그럴 기력조차 없는가 봅니다. 가뭄더위가 물러나자 장마가 진지도 오래됩니다. 건들건들 부는 바람처럼 덧없이 지난다는 음력 팔 월이 멈춰선 듯 합니다. 유리창 너머로 바다가 거친 파도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유리창을 작달비가 마구 할퀴고 지납니다. 엊저녁에는 번득이는 벼락불이 심장을 긁고 지나가서, 그게  죽음을 재촉하는 전령사인가 했습니다. 아침에는 태풍이 지난다는 텔레비전 뉴스도 있었습니다.  하루빨리 죽음이 덮쳐, 저승으로 보내 주기를 진정 마음속으로 빌어 봅니다. 그런데 그것까지 제대로 되지 않은가 봅니다.

저는 지금, 북쪽 창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병실 침대에 평온하게 누워있습니다.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살아 있어야 할 날들이 얼마나 될지 모릅니다. 앞으로 살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야말로 고독하고 괴롭다는 사실만은, 캄캄한 감옥에서 이미 깨달았습니다.

칠십 인생을 마감하면서, 제일 먼저 편안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번개처럼 밀어닥친 병마야말로, 바로 평안이었습니다. 집에서 쓰러진 순간, 아들은 얼뜬 사람이 되었고, 저는 이미 산송장으로 변해있었습니다. 혓줄기가 까칠하고 머리꼭지에서부터 목과 목덜미  이맛살 허리통 뱃가죽 몸통뼈 사타구니 등성마루가 아파 왔으며, 소화가 되지 않아 산똥까지 쌌습니다. 제가 쓰러지던 날, 집에 있던 아들과 며느리가 급하게 저를 들것에 올리고 구급차에 태웠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응급실로 실려가면서 오랜만에 들을 수 있었던 사이렌의 울림이, 이상한 떨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지막 운명을 예고하는 그 소리가 속력을 내며 달리는 구급차의 엔진소리에 파묻혔지만, 덜커덩거리는 차안에서 그 시절 고향에서 들었던 소리가 분명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만은 너무나 평온하였습니다. 그 시절, 고향 섬에서 들었던  사이렌 소리인지 구급차에서 울리는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저승으로 편안히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이렌 소리가 지금 병실 안까지 밀려오는 듯 합니다. 그 소리가 죽음을 알리며 가슴팍으로 밀려드는 듯 합니다. 죽음을 향한 숨막히는 상황을 그 소리가 잠재우고 있습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숨막히던 그 시절,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토벌대장이 미군 지프에 몸을 실어 졸병들을 이끌고 마을에 도착한 날도, 분명 날선 소리가 들리는 날이었습니다. 그 사나운 울림은 마을이 토벌대의 습격을 받았다는 엄숙한 신호이기도 하였습니다. 너희들은 꼼짝 말고 동구 밖으로 손들고 나오라는, 거센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붉은 물이 들었으니 죽음을 각오하라는, 토벌대장의 엄숙한 경고 명령이 내래졌습니다.

아아, 당신은 기억할 수 있습니까. 사건이 터진 날 당신은 친정에 볼일이 있어 해안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뱃속에는 한 달이 넘을까말까 한 아이가 숨쉬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현장에 없어서 두 목숨을 건졌습니다. 당신도 알지만 빨갱이 섬을 불태우라는 초토화 작전에 따라, 토벌대는 산사람을 차단하기 위하여 중산간 마을부터 들쑤셨습니다. 마을은 불바다가 되었고 사람들은 아우성을 질렀습니다. 하필이면 당신이 친정으로 내려간, 그 순간을 맞추고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그런데.......그 아이는...지금 섬을 떠난 당신 첫 남편의 유일한 핏줄인 그 아이는, 당신 뱃속 그 아이는 지금 나이가 쉰을 넘겼겠군요. 세월이 그렇게 흘러버렸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느냐고, 당신을 질문할지 모릅니다. 차츰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난리를 피하여 사람들은 처음 마을 뒤쪽  대나무 숲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꼭꼭 숨어서 초가들이 훨훨 불타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며 이빨을 갈았습니다. 당신 집도 훨훨 타고 있었습니다. 

그 날 밤이 깊었습니다. 총소리도 그쳤습니다. 아우성도 멀어졌습니다. 토벌대원들이 물러난 낌새를 알아차리고, 사람들은 불길이 휩쓸고 간 동네로 살금살금 내려왔습니다. 당신 남편도 터덜터덜 사람들을 따라 내려왔습니다. 집은 다 타고 재만 남았습니다. 불타 버린 집 마당으로 황소바람이 세게 불어대고 있었습니다. 자오록하게 피어오르던 연기가 흐릿하게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신 남편은 배가 고프고 해서 부엌 자리부터 뒤적였습니다.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무쇠 솥까지 두 쪽으로 쪼개져 있었습니다. 당신 남편은 다시 숨어들어 갈 준비를 차려야 했습니다. 갈곳은 터진궤라 불리는 가까운 으슥한 굴뿐이었습니다. 동네사람들 대부분이 눈짓으로 합의하고, 그곳으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사이렌이 또 울렸습니다. 터진궤를 향하여 다시 총소리가 요란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겁을 집어먹고, 와들와들 떨고 있었습니다. 들키는 날에는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샛별이 오돌오돌 떨고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따르르르,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굴 안은 이미 아비규환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 때 굴에서 죽은 사람이 아마 아흔 사람이 넘었을 것입니다. 총소리가 그치고 토벌대가 떠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구덩이를 파서 시신들을 임시로 묻고, 나무에다 이름을 적어두었습니다. 이 시신들을 나중에 연고자들이 찾아다가 묻었다고 들었습니다. 굴에서 희생된 날은 분명, 음력으로 시월 스무 엿샛날입니다. 맞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물론 당신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토벌대원들이 굴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기기 바로 직전에, 먼 고샅에서 한 대원이 헐레벌떡 달려왔습니다. 그는 총을 든 대원들에게 손짓하면서 사격을 중지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당신 남편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습니다. 그 운명의 순간에 당신 남편은 살아 날 수 있었습니다. 엉금엉금 굴속에서 기어 나오자마자 굴밖에 세워진 미군 지프에 급하게 태워졌습니다. 지프는 사이렌을 울리며 읍내 쪽으로 향하여 시동을 걸고 달렸습니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당신은 친정 집에서 제사를 지낸 후, 마을이 불탄 사실을 알았습니다. 오직 남편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까운 경비대 사무실로 헐레벌떡 뛰었습니다. 그리고 경비대원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애원하였습니다. 남편만 살려주십시오. 무슨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당신의 미모에 반한 토벌대원은 애걸복걸하는 당신의 청을 들어주었고, 그래서 남편을 살렸습니다. 친정 아버지가 사위를 위하여 내놓은 돈 꾸러미를 뇌물로 받치기도 하였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토벌대원은 평안도에서 삼팔선을 넘어온 반공 투사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느냐고, 당신은 어리둥절할 수 있습니다.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토벌대원은 몇 년 전에 죽은 당신의 두 번 째 남편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첫 남편과 어이없는 이별을 하고 두 번 째 남편에게로 갔습니다. 오직 첫 남편을 살리자는 일념 때문입니다. 덴데 털은 안 나는 법입니다. 그것이 끝이고 막힘이었습니다. 둘 사이에는 출렁이는 바다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섬과 육지를, 섬과 섬을 막는 거센 파도가 넘칠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느냐고, 당신은 다시 질문할 것입니다.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후 영영 소식이 없는 첫 남편은 육지형무소에서 죽은 줄 알았습니다. 당신은 매년 제사상에 메밥을 올리고 향을 피웠습니다.  

여기는 제가 사는 섬입니다. 당신이 사는 그 곳도 한반도의 가장 변방에서 숨쉬는 섬입니다. 이 곳은 이 섬의 유일한 종합병원입니다. 이제 사이렌도 멈추었습니다. 제가 응급실로 실려오던 날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들것이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들려오는 소리는,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응급환자들의 아우성이었습니다. 그 소리가 사방을 뒤흔들었습니다. 연이어 내 귓전으로 듣지 못하던 소리가 밀어닥쳤습니다. 요란한 소음과 번쩍거리는 조명, 그리고 신호등, 펌프소리와 기계소리, 환자들의 시끄러운 말소리. 모두가 혼미 상태에 빠진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를 무사히 견디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려 저에게 살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이 갔습니다.

저는 비록 병원 침대 신세를 지고 있지만, 앰뷸런스 호송이 얼마나 아찔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살아나 생각해 보니 너무나 아찔합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이 주위를 빙 둘러쌌습니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의사, 인턴과 레지던트, 수혈 병을 든 간호사, 심전도를 재려고 전기 심전계를 가동시키는 의료진이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말소리만이 어렴풋이 들렸습니다.

한참 후에 제 아들과 의사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제 병세에 대해 서로 의논하는 소리가 귓전을 빙빙 맴돌았습니다. 저에게는 묻지도 않고, 이러저러한 결정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한마디 할 수가 없었습니다. 두 입술이 꽉 붙어 있어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팔뚝에 진정제를 놓기 위하여 간호사가 주사 바늘을 꽂은 상태였습니다. 저는 점차, 그러나 확실하게 물건 취급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더 이상 인간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사치였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지긋지긋한 사이렌이 멈추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그곳 섬에서는 무고한 섬사람들을 죽이는 총소리만 들렸습니다. 저승으로 보내는 소리였습니다. 날송장은 동네 어귀마다 쌓였고, 집집마다 단골무당의 흐느적거리는 소리가 밤새는 줄 몰랐습니다. 주검은 쌓여가고 무당들의 자리걷이는 계속되었습니다. 동척회사에 끌려가 변방의 섬과 영원한 이별을 고한 당신의 남편, 그 사람의 심정은 과연 어떤 상태였을까요?  동척회사에 갇혀있는 사람들도 죽음 직전에 직면하였으니까요. 곳곳에서 끌려 온 사람들은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살려달라고 말입니다. 


  당신의 첫 남편, 그 사람은 그 날 새벽 산지항 가까운 동척회사로 끌려갔습니다. 목숨 하나만이라도 구한 것은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그는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졌고, 앞선 지프는 계속 사이렌을 울려대면서 달려나갔습니다. 그 사이렌 소리는 심장을 마구 짓이겼으며, 그래서 너무 지긋지긋하게 느껴졌습니다.

  트럭은 동척회사 마당에 세워졌고, 곧장 창고에 감금되었습니다. 창고마다 끌려온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습니다. 곳곳에서 오금을 조이게 하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모두 빨갱이 누명을 쓰고 개죽음을 당하게 됐다고, 서로가 확실치 않은 정보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늙은 할망구에게, 섬사람들이 치를 떠는, 기억조차 하기 싫은 그 사태를 지금 들춰내는, 제가 대체 누구냐고요?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그 남자의 삶의 흔적을 더듬어 나갈 뿐입니다.

그 사람은 동척회사에서, 피의자들의 갖가지 고문을 당하고 있음을 금방 눈치로 알았습니다. 고문하는 자와 피고문자에 따라 그 정도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한 사람씩 부르거나 여럿이 불려나가면 지하창고에서 몽둥이나 총 개머리판, 혹은 가죽띠로 마구 패거나 천장에 매어 달았습니다. 한 쪽 눈이나 두 눈 다 병신이 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리를 절룩거리는 사람도 생겨났습니다. 빨갱이라 자백하라는 심문이 너무 치욕적이었습니다. 고통에 못 이겨 하지 않은 일을 그대로 인정해야 했습니다. 나는 빨갱이입니다, 라고 거짓 자백이라도 해야, 목숨이라도 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피의자들은 또 형식적인 재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군인 장교들로 판사, 검사, 변호사의 구색도 맞추고 있었습니다. 미군 장교가 재판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한 번에 몇 명씩 이름을 불러 재판을 하는데, 변론 권이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악착같이 숨겼던 사람은 형기를 덜 받았습니다. 죄명은 주로 그 당시 미군정 경비법 위반 혐의였습니다.

  사실, 말씀드리면, 들것으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다는 사실은 죽음의 첫걸음이나 다름없습니다. 중태에 빠진 환자를 입원시켜 생명을 건지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 죽게 되어 병원으로 실려 가는 환자와, 집에 남아서 임종을 맞는 식구를 대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병원에 오기 전부터 솔직히, 죽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제가 죽음 직전에 이르자, 저의 생각을 말할 권리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참으로 섭섭하고, 한편으로는 답답하였습니다. 제가 입원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언제, 어디에 입원할 것인지는 제가 정할 문제였습니다. 죽음 직전의 저에게도 감정이 있고, 소원이 있고,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 의사를 관철시켜 죽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아들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결코 주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겠지요.

  저는 솔직히 고향 사람들이 늘 입던 옷으로 깨끗한 겉치장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얀 세모시로 만든 바지저고리를 입고, 하얀 버선을 신고 가뿐하게 저승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상늙은이로 가벼운 마음으로 옥황상제를 맞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의식을 회복하면서, 갈수록 기계화되고 비인간화되는 의료진에 대하여 불만을 터뜨리고 싶었습니다. 그럴 수조차 없음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잘 갖추어진 최신 시설은 말로는 좋습니다만, 저를 본질로 끌어들이지는 못했습니다. 최신 설비와 기계에 의존하는 태도부터가, 우선 가까이 임박한 두렵고도 불쾌한 죽음을 절망적으로 기피하는 수작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럴 때는  정신이 아찔하였습니다. 단말마로 괴로워하는 한 인간의 얼굴보다도 의료기의 신호등이나 바늘을 들여다보는 일이 속 편하다는 그런 생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저는 솔직히, 당신이 계신 섬에 가서 죽고 싶었습니다. 이제야 말씀드리지만 그 곳이 내 고향 섬이니까요. 저가 있는 이 섬이 정말 싫었습니다. 솔직히 이런 상태에서의 죽음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왜 가족이 함께 오순도순 살던 이 섬이 싫다는 것일까요? 그 섬에 제 숨결이, 제 조상의 넋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요?  이곳 섬은 잠시 풍랑을 피한 도피처일까요? 이 곳 섬사람들도 외로움과 아픔을 견디고 살아가지만, 고향 섬사람만큼 정이 가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섬은 똑같이 단절과 슬픔의 숱한 사연을 안은 채 하나하나 쌓여 고유한 영역으로 승화되는데, 그 곳을 죽음 직전에 찾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당신 남편은 죽음을 향하여 뭍으로 끌려가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지금 밖에서 내리는 장대비도, 그 섬에서는 흙비로 내리고 있겠지요.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게 여년묵은 기분입니다. 그 섬이 그립습니다, 지금. 

그러니까 당신의 첫 남편, 그 남자가 육지형무소로 끌려간 것은 이른봄이죠. 동척회사에서 달포 반정도 수감되었다가, 다른 사람과 달리 재판을 하는지 마는지 형식적인 재판을 받고 배에 실려졌습니다. 생각하면 굴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는 사실만도 다행이었습니다. 물론 당신 덕분이죠. 당신의 부탁을 받은, 평안도 출신 경비대원이었던, 저 세상 사람으로 변해버린 당신의 둘 째 남편 덕분이라고 말해야 하겠죠. 솔직히 저는 그것까지밖에, 그 이후로는 모릅니다.

배는 육지를 향하여 속도를 내었습니다. 육지형무소로 끌려가는 것은 바로 죽음을 향한 행로였습니다. 열 시간만에  목포항에 도착하였고, 다시 열차에 실려졌습니다. 밤중에 내려진 곳은 대구 형무소였습니다. 몇 명이 섬에서 끌려갔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형무소는 우중충한 사 층 건물이었습니다. 일제시대부터 사용했던 감옥이었습니다. 미군정 당국은 감옥을 일부 손질하여 쓰고 있었습니다. 방 하나가 두 평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한 방에 열 다섯에서 스무 명 정도가 수용되었습니다. 섬사람들도 여섯 명에서 일곱 명씩 나뉘어서 끌려 들어갔습니다. 철저하게 사상범으로 분류되어, 특별한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 지방의 잡범들과 같이 수용되었습니다.

식사시간에는 깡통에다 밥이 나왔습니다. 밥은 일 등급, 이 등급, 삼 등급으로 급수가 매겨졌습니다. 목공이라든지, 옷 수선, 벽돌쌓기 기술이 있는 죄수들은 특별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는 농사짓는 것밖에 몰랐습니다. 기술이 있어야, 밖에서 일하면서 밥도 나름대로 충분히 먹을 수 있었는데, 그 축에도 끼지 못했습니다.

물론 형무소에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부지기수로 죽어나갔습니다. 대부분 병 때문이었습니다. 무더위 속에 옴이나 이름도 모를 병에 걸려 아침 기상시간에 일어나지 않으면 시체로 변해 있었습니다. 시신들이 매일 들것에 실려 밖으로 치워졌습니다. 사람들을 총살시킨 사례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 기막힌 사연을 하나하나 여기에 다 써넣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느냐고 당신은 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 곳에서, 이미 칠 년형을 언도 받았다는 사실을 간수로부터 들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에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사실을 듣지 않을지라도, 자기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병세와 처지를 비밀로 덮어두고자, 주위 사람들의 침묵을 가장한 철저한 모의에 관하여, 대부분 마음속에서 반발하고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환자와 드러내놓고 의논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자기를 회복시킬 능력이 없음을 정직히 토로하지 않은데 대하여 속으로 큰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죽음 직전의 그들의 눈빛만 보아도 이런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과연 죽음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요? 죽음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요?  그 영역은 음부에서 죽음의 권세가 지배하는 것입니다. 음부는 사람이 죽은 후에 축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바다나 혹은 광야까지 포함할 수 있습니다. 삶이 감소하면서 죽음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곳으로 간 자가 다시는 땅위에 돌아오지 못하는 장소입니다. 땅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전혀 소식이 두절되어 있는 무지와 무의식의 세계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장소라는 관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죽은 자들이 죽은 후 지식은 갖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지식도 갖고 있다는 관념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들에게 고난과 괴로움을 주는 불행의 장소라는 관념입니다. 인간들이 기쁨의 낙을 누리지 못하고 오직 유랑하는 운명에 매여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고향 섬사람들은 이렇게 노래불렀습니다.


  인생 한 번 죽어지면 다시 못 오는 세상에

  아헤에에 허허이 허어이 허어야허야 얼얼얼 거리고

  염불이라 먹던 밥의 술 곱아 놓고 입던 옷을 다 벗어두고

  아헤에에 허어이 허어이 허허야허야 얼얼 거리고 염불이라

  저승길이 멀다해도 창문 밖이 저승길이여

  아헤에에 허허이 허어이 허허야허야

   

  아아, 그렇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도 이승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창조주와의 단절이며, 창조주의 버리심이요, 창조주의 잊으심입니다. 당신의 첫 남편도 그곳을 향하여 아무 이유 없이 강제로 끌려간 것입니다. 비록 살았지만 그  삶 자체가 저승 살이었습니다. 저도 그곳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그 자체가 저승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죽고 싶다고 말했습니까? 거짓말입니다. 저는 죽음을 앞에 둔 환자들의 모습에서 또 다른 삶의 모습들을 보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겪는 일들이 성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참기 어렵고 말로 형언할 수 없이 괴롭습니다. 홑이불이나 담요를 덮고 있는 응급 환자의 사정을 좀더 생각한다면, 주위 사람들이 법석을 떨며 환자에게 시술하는 행위를 차라리 중단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들에게 죽을 자유를 줘야지요. 저는 이제, 휴식도 평안도 인간다운 품위도 필요치 않습니다. 죽고 싶습니다.

세상이 뒤바뀌었습니다. 그 사람이 갇혀있던 형무소 옥문이 열렸습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서 인민군이 형무소로 갑자기 들이닥친 것입니다. 그들 때문에 죄수들을 어떻게 처리하지 못하고, 간수들이 옥문을 열어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간수들은 줄행랑을 쳤습니다.  안에 남아있는 섬사람이 대충 이백여 명이었습니다.

당신의 첫 남편, 그 남자도 정신없이 도망을 쳤습니다. 혼자서 산길을 헤매었습니다. 사흘 낮 사흘 밤 고픈 배를 움켜쥐고 하늘을 지붕 삼아 무작정 걸었습니다. 목적지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눈앞에 Y자 길이 나타났습니다. 그 삼거리에서 자신이 갈 방향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갈림길이라고나 할까요. 북으로 가느냐, 아니면 남으로 가느냐,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한 갈래는 북으로 통하고 있었고, 다른 갈래는 남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랫동안 망설였습니다. 결과는 뻔했습니다. 고향에 가본들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념이고 뭐고, 북쪽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운명일까요? 그 사람이 거리에서 어정거리던 순간 미군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자유의 투사라는 미군에 끌려 부산 형무소로 이송되고, 다시 철창 안에 갇혔습니다. 참으로 기막힌 일은, 영도가 가깝다는 그 곳에서 대구 형무소에서 탈출한 섬사람들 이십 여명과 다시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그 반가움은 뭐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부산에서는 여수· 순천 사건으로 연루되어 온 사람들과 같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들 대부분도 형량이 무기형이거나 이 십 년 아니면, 낮아야 십 오 년 정도였습니다.   

부산 감방 역시, 세 평은 넘고 네 평은 조금 못 미치는 세 평 팔 호쯤 될까말까 하였습니다. 한 방에 마흔 명 정도가 함께 갇혀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죄수가 너무 많아 반으로 나눠 번갈아 가면서 잠을 잤습니다. 형무소 규칙으로  취침 시간에 잠을 안자면, 그것조차 문제삼았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이 겹쳐 잘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다른 방법을 써 보기로 했습니다. 방을 가운데로 나누고  네 줄로 사이사이에 끼이는 방법입니다. 여름에는 열어놓은 감방 문으로 모기떼가 몰려오다가, 안의 열기 때문에 되돌아갔습니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먹는 물도 형편없었습니다. 오줌 싼 것을 받아 마실 정도였으니까요. 

부산에서도 대구와 마찬가지로 미결수와 환자들까지 총살을 시켰습니다. 원칙도 없었고 순서도 없었습니다. 하루는 간수들이 우르르 몰려와 감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씩 수갑을 채웠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끌고 가 모두 총살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역시 늘 최후라고 생각했습니다. 밤마다 번뜩번뜩 죽음이 스쳐갔습니다. 형무소에서 죽는다는 게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또 기적이라면 기적일 수 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행히도 상부의 지시에 따라 막무가내  총살형이 중지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총살이 없었습니다. 당시 그러한 중지 명령을 누가 내렸는지, 아직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 사람의 운명은, 그처럼 질기고 모진 것일까요? 다시 그 사람은 마산 형무소로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떤 늙은이가, 병석에서 수다떠는지 어안이 벙벙하실 줄 압니다. 제 얘기를 인내를 갖고 들어 주신데 대하여, 무어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세상살이가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다시 처음 이야기로 되돌아가겠습니다. 저는 한달 전 아들에 의하여 강제로 응급실로 끌려왔습니다. 병원에 가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저를, 아들은 결국 내 침침한 방에서 끌어내고 말았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항상 이 늙은이 때문에 고생입니다. 이곳 안 사람은 세상을 뜬지 이태가 지났습니다. 이 곳 안사람이냐고요? 아아, 당신도 그 곳 바깥 사람과 천생 연분을 나누신 지가 오십 년이 지났지요. 이래도 짐작이 가지 않으십니까? 나중에 만난 당신의 바깥 사람도 몇 년째 앓다가 세상을 떴지요.

저야 괜찮지만, 아들 때문에 경찰서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제 과거 죄상을 없애준다고 하기에, 사상범으로 남아있는 흔적을 씻어보려고 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사상범이냐고요.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처리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렸습니다. 그리고 담당 경찰관이 빨갱이 취급을 했습니다. 당신 빨갱이 섬 출신이군. 신원조회를 해보니 온통 붉은 물이야. 참으로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사상범으로 남겠다고 호통치고, 그대로 나와버렸습니다. 저 같은 놈이 사상범이면 어떤 사람이 사상범이 아닙니까. 제가 무슨 사상에 물들여 있기에, 죄를 덮어씌우는가 말입니다. 섬사람들은 모두 빨갱이란 말입니까? 당시 사람들을 저를 폭도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폭도가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 아들도 제 과거에 대하여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속으로 애만 태우며 살아갑니다. 아들이 안쓰럽습니다. 저 때문에 연좌제에 묶여, 공부는 대학까지 했습니다 마는, 공직에는 꿈도 못 꾸고 뱃일이나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곳 섬에는, 강한 하늬바람으로 포구마다 배가 정박하고 육지와 연결되는 비행기도, 연락선도 끊어진 상태라고, 어렴풋하게나마 텔레비전 뉴스에서 들었습니다. 이곳 섬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원에서 아들은 늘 제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의사는 그 기능을 다해 가는 저의 맥박과 심박도, 심전도와 폐동맥의 기능, 분비물과 배설물에만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으로서의 저의 제반 사정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럴 때는 섭섭한 마음까지 듭니다. 제가 힘이 있다면, 모두 때려부수고 싶지만 제 발버둥질도 무위로 끝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끌려간 곳은 마산 형무소입니다. 거기서도 수감자들이 병으로, 총살형으로 죽어갔습니다. 죽임을 당할 이유가 없었는데, 청소를 잘못해도 끌고 나가 총살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몸에 옴이 올라 병 감방에 수감된 적이 있습니다. 목욕은 물만 끼얹는 정도였습니다. 그는 옴 환자여서 오랫동안 소독 물에 담가 앉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병 감방의 감방장이 되었습니다. 감옥살이에 이력이 붙었으니까, 당연한 순서였습니다. 당신이 잘 알고 있듯이 그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여립니까. 병 감방의 환자들을 위해 특별히 고등어 몇 토막이 환자 밥이라고 하여 나왔을 때, 이를 공평하게 배분해 주는 것도 큰 고민이었습니다. 자기는 고등어를 입에도 대지 않고 상태가 심한 환자들의 순번을 정해놓고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병 감방에 새로 들어온 깡패 같은 놈이, 환자 밥을 감방 장이 착취해 먹는다고 간수에게 일러 바쳤습니다. 이 못돼먹은 깡패의 고자질로, 그 사람이 간수에게 끌려갔습니다. 오히려 간수가 깡패를 발로 차 다시 감방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섬사람을 뭐로 보느냐는 것이, 간수의 평소 생각이었습니다. 그만큼 섬사람들은 단체 생활에 목숨을 걸었고, 또한 간수들도 주로 사상범으로 잡혀온 섬사람들이지만 결코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또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죄수들의 식사 이야기입니다. 원래 감방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쌀이 이십 프로, 보리가 이십 프로, 잡곡이 육십 프로가 원칙으로 되어 입니다. 거기에다 등위까지 매겨졌습니다. 일 등 밥에서  오등 등 밥까지 있었습니다. 감방 밖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일 등 밥을 나눠줬고, 그냥 감방에 앉아 있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오 등 밥을 나눠줬습니다. 구분은 양으로 따졌는데, 일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많은 양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콩이 떨어지고 보리까지 떨어지는 바람에 쌀밥만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쌀밥만을 먹다 보니까 모두 몸이 붓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배에 물집이 생기고, 그 물집이 아랫도리까지 내려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 부기가 겨우 가라앉았습니다. 형무소에 들어오기 전부터도 환자였던 어떤 사람은 밥 냄새가 너무 역겨워, 냄새가 지독한 변기 통에 앉아 밥을 먹기도 하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병 감방의 환자들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변기 통에 앉았다가 그대로 꼬꾸라져 죽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상사 계급장을 단 군인이 나타났습니다. 섬사람들을 모두 모이라고 했습니다. 당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써서 제출하면, 그 내용을 본부에 보고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섬사람들은 식사에 불만을 토로하며, 영양 실조 상태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썼습니다. 그 후 가끔 콩국을 끓여 주었습니다.

하늘이 도왔는지 그 사람은 재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감형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결국 석방이 되었고, 고향 섬이 아닌 다른 섬을 찾았습니다. 거기서 여자를 만났고, 살림을 차렸습니다. 그 사람은 고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서신을 마무리해야 하겠습니다. 되지도 않은 글을 끈질기게 읽어 주신데 대하여, 고마운 말씀부터 드립니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놀라고 계실 고운 모습을 그려봅니다. 곱게 늙고 계실 당신을 말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렇게 상세하게 아시냐고, 질문을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정신없이 달싹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탁, 터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용서부터 빕니다, 사랑하는 당신. 지금까지 말한 그 사람이 바로 접니다. 짐작을 하셨습니까? 너무 긴 세월이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당신의 죽은 남편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왜 원망을 합니까? 제 운명의 은인인 분을, 제 인생의 한으로 알고, 저승까지 그 아픔을 가슴에 안고 가야지요. 또 알고 계시죠? 당신 뱃속에 있던 당신의 큰아들의  친 아비는, 바로 저라는 사실을.

왜 느닷없이 편지를 했느냐고, 그냥 조용히 병원에서 이승으로 떠나지 않고, 다 늙어빠진 노인네가 불쑥 나타났느냐고, 제가 사는 섬에도 자식이 있는데, 미안하지도 않느냐고, 당신이 원망할 줄 압니다. 사랑은 내리사랑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가끔 아리송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키운, 지금은 다른 성을 가진 그놈 말입니다. 교직원 노동조합 운동을 하다가 학교에서 쫓겨난 그 녀석이 그립고 보고 싶답니다. 지금은 복직이 됐습니까? 자식 겉 낳지 속은 못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이 그리운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의 남편은 살아있는 동안 무슨 반공 단체의 사무국장이었는데 교사 노동조합 운동을 하는 아들을 호적에서 지운다고 노발대발했던 사실을 신문 가십난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여튼 그 녀석은 제 핏줄이 분명합니다. 섬 입도 조로 따지면, 제가 이십 오 대이고, 그 녀석은 이십 육 대가 됩니다. 노동조합 활동으로 구속되기 직전에 신문에 실린  얼굴 사진을 보았을 때, 축 없이 저를 닮은 모습에 정신이 아찔하였습니다. 제 자식이 분명하죠? 내 발등의 불도 끄지 못하는 주제에 아들 발등의 불을 끌려는 내 심보가 밉다고요? 그런데 여기에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습니다. 저 세상 사람이 된 당신 남편이 그 녀석을 진정으로 친자식으로 알고 있었을까요? 솔직한 대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녀석을 한 번 만나고 싶답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호적상으로 다른 성씨 집안의 아들임을. 그러나 결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놈은 저와 당신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참으로 다행이라고 말입니다. 그 녀석이 내 호적에 입적이 되었더라면, 연좌제 문제로 출세에 지장이 많았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저 그 녀석을 만나, 내 핏줄이라고 제 입으로 말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는 길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녀석을 이 섬 이 병실로 보내주시렵니까?

음력 팔월이면 그 섬에서는 추석 전에 조상의 묘에 벌초를 하는 풍습이 있지요. 벌초 때마다 저의 부모님 산소에 가서 술잔을 올리고 계실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저려옵니다. 그리고 왜 고향 섬을 찾지 않느냐고 물을 실 것입니다. 지금은 세상이 너무 좋아져서 섬 사태의 진상을 구명하라고 의원 나으리까지 나서고 있지 않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누구나 떳떳하게 그 사태를 이야기하는데 왜 숨고 사시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저가 고향 섬을 찾아서는 안됩니다. 저는 비록 빨갱이 누명을 쓰고 있지만, 당신의 살아온 길을 되돌리고 싶은 심정은 없습니다. 그냥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 빨갱이 누명으로 징역살이를 하고, 이제 고향에 되돌아 가봐야 주위 사람만 곤란해 질 것이 아닙니까? 그 때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인, 미군정 시절이 아닙니까. 과연 진상규명이 될까요?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고향 섬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저는 달아나는 한라산 노루 보고 얻은 토끼를 놓지는 않겠습니다. 여기에도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습니다. 저를 위하여 일생을 애태우며 살다가 저 세상으로 떠난 이곳 마누라의 무덤도 지천에 있습니다. 그들은 나의 진정한 가족들입니다. 그들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아직도 장대비는 그치질 않습니다. 그 섬에서도 사이렌 소리는 들리지 않겠지요. 민방공 훈련을 하는 날에도 사이렌 소리는 들리지 않겠지요. 지금 가르랑가르랑하며, 목구멍 안에서 들려 오는 것은 가래 끓는 소리뿐입니다. 제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입니다.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식놈에게도 친아버지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죽음의 그림자가 제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그 놈의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김관후

2006/05/09 16:17 2006/05/09 16:17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kimgwanhoo.pe.kr/tt/rss/response/37

흔들리는 섬

 

                             흔들리는 섬

                                                   

섬은 몽고군이 밀려와도 흔들거렸고, 유배인이 배를 타고 포구에 닻을 내려도 흔들거렸다. 왜놈들이 밀려와도 흔들거렸고, 육지 놈들이 군화를 신고 칼을 차고 밀어닥쳐도 흔들거렸고, 그들이 총을 메고 들이닥쳐 윽박질러도, 미군들이 성조기를 휘날리며 항구로 진입해도 흔들거렸다.

지금도 섬은 흔들거린다. 흔들바람이 불어서 흔들거리고, 센바람이 불어서 흔들거리고, 큰센바람이 불어서 흔들거린다. 관광객들이 몰려와도 흔들거리고, 밭뙈기를 파헤쳐 관광지로 개발하려고 재산가들이 돈 뭉치를 들고 들이닥쳐도 흔들거린다. 별똥별이 떨어져도 흔들거리고, 먼바다에서 갯고랑으로 저어새가 날아와도 흔들거린다.

섬이 흔들거림은 운명이다. 섬은 흔들거리지만, 그 풍광만은 섬이 간직한 슬픔만큼 수려하다. 관광객들은 그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른다. 아름다움 뒤에 아픈 흔적이 각인 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관광객들이 섬이 숨긴 통한의 역사를 안다면, 얼마나  당혹스러워 할 것인가. 그러나 일년에 수만 명이나 되는 관광객들이 ‘아름답다’ ‘원더풀’이라 소리치며, 비행기 트랩에서 내린다. 그들이 처음 밟는 공항 역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섬 사태 당시, 공항은 바로 극악 무도한 학살터였다. 그 곳을 밟고 관광객들이 사시절 밀려든다. 관광객들은 끼리끼리 손을 잡고, 아름답다는 섬으로 밀려온다. 그들은 비행기 트랙에서 공항으로 발을 내딛고, 환호하면 그만이다. 그냥 구경하고, 사진 찍고, 먹고, 마시고, 즐겁게 놀다 가면 그만이다.

당시 토벌군은 트럭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정뜨르비행장이라고 불리던 지금 공항이 있는 자리에 끌려온 섬사람들을 일렬로 세웠다. 스스로 그 자리에 구덩이를 파게 하고, 탕 탕 탕탕 탕탕 탕, 하고 총부리를 겨누었다. 사람들은 날아오는 총알을 허리통에 맞고, 콧잔등에 맞고, 궁둥짝에 맞고, 앞정강이에 맞고, 이승을 그렇게 하직하고  그렇게 저승으로 떠났다. 굿중패가 굿중놀이를 할 염두도 못 냈으며, 날송장으로 그냥 묻혀졌다. 그 자리에는 사토장이도 없었다. 너른 벌판에는 하늬바람이 불었고, 하늘마음도 온데간데없었다. 무더운 여름이라 시체가 너무 부패되어, 누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조차 없었다. 가족을 찾을 길은 막막했다. 그래서 어떤 아낙네는 생각해 낸 것이 유치장으로 밥을 나를 때 사용했던 보자기로 가늠하며 남편의 시체를 찾았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바로 그 곳으로,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비행기의 굉음이 하루에 수십 차례씩 들려온다. 건들바람의 시원한 느낌마저 그 굉음에 묻혀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지금 그 공항이 마구, 흔들거리고 있다.


해피 라이트 씨가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는 하얀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었고, 어깨에 카메라까지 메었다. 공항 로비에서 나를 보자, 너무 반가워하며 환하게 웃음까지 지었다. 그리고 나를 얼싸 안았다. 하늘을 가리키며 원더풀을 연발하면서 공기가 상쾌하고 사월 하늘이 맑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 그의 손을 잡고, 안부부터 묻자 그는 딴청부터 부렸다.

  “비행기가 흔들거리니까, 바다가 흔들린다는 기분이 들어.”

  로비를 빠져 나오며, 그는 느닷없이 흔들린다는 말에 힘을 실었다.

  “섬이 흔들린다는 이야기입니까?”

  “저기 버티고 있는 큰산까지 흔들리는 기분이 들어.”

  그는 한라산을 가리키며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 두 사람은 청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공항 주차장을 향하여 걸었다. 그의 보폭은 생각보다 너무 길었으며, 나의 보폭은 너무 짧았다. 구름 하나 없는 하늘에서 까치 서너 마리가 카샤 카샤, 울며 큰산 너머로 날아갔다. 그 까치 꼬리들이 유난히 까맣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쪽 오름과, 서쪽 오름으로 올라가고 싶군. 일단 광장으로 안내해 줘. 오늘 행사가 벌어지는 모양이야.”

  한국어가 능통하다는 사실은 전화 통화에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섬 동쪽 끝과, 서쪽 끝에 있는 오름을 들먹거렸다. 광장에서 열리는 행사까지 알고 있었다.

  “위령제가 열리는 광장 말입니까?”

  “어디서나 광장은 열린 공간이지. 모든 역사가 광장에서 이루어지니까.”

  도착하자마자 대뜸 광장으로 가자고 의도를 모르겠다. 그 속내를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광장에서 집회가 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렇지만 그가 하자는 데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를  찾아온 손님이었다.

  나는 승용차의 문을 열었다.

  그도 허리를 굽혀 뒷좌석에 앉았다.

  “하루면, 섬을 한바퀴 돌 수 있겠지. 위령제가 열리는 광장에 들렀다가 포구가 보이는 동쪽 오름으로 해서, 남쪽 해안에 있는 폭포로 해서 서쪽 오름을 돌아, 다시 광장으로 되돌아오는 거야.”

“관광 코스가 매우 색다릅니다.” 

“관광이 아니라, 사업을 위한 사전 답사지.”

“사업이라 했습니까?”

그는 미국 무슨 회사에서 서울 지사에 파견된 고문이라고 했다. 자기 스스로 국제적인 장사꾼이라고, 전화에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처음부터 광장으로 가자는 속셈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광장에 투자를 한단 말인가. 그곳에서는 위령제가 열리고 있지 않은가. 

승용차는 북적대는 관광 버스들 사이를 간신히 빠져 나왔다. 나는 광장으로 빠질 수 있는 해안 도로로 핸들을 돌렸다. 노란 유채꽃이 밭고랑마다 활짝 피어, 봄 냄새가 상큼하게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가까운 들판에서 아지랑이가 자오록하게 피어올랐다. 

“섬의 화두는 흔들림이야.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섬은, 분명 흔들리고 있었어. 비행기도 흔들리고, 섬까지 흔들렸어. 흔들리는 섬은 한 폭의 예술품이야. 아름다운 해안선이 마치 화가가 곡선을 짙게 그어놓은 것 같은, 예술성 넘치는 질감으로 흔들리고 있었어. 신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조각품이 분명해. 섬의 흔들림이야말로, 또 다른 아름다운 예술 작품에 대한 감흥으로 살아남을 수 있겠어. 그것이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드는 이유가 아닐까?”

  섬이 흔들린다, 섬은 아름다운 예술품이다, 어디서 들어본 귀에 익은 이야기다.  그렇다. 당시 어느 미군 장교는 활활 불타는 마을을 향하여, 너무 아름답다, 불타는 섬이 너무 아름답다, 라고 감탄했다는 기록을 읽은 기억이 있다. 장교는 정찰기에서 불타는 광경을 열심히 촬영하면서 탄성을 질렀다. 원더풀, 원더풀.

“하필이면 광장입니까?”

“섬이 흔들리니까, 광장까지 흔들릴 거야.”

  그는 흔들린다는 말만 계속하였다.

  그렇다. 그가 섬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지 몰랐다. 섬은 분명 섬곶부터 큰산까지 흔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섬사람들은 섬의 흔들림에 대하여,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하여 결코 말하려 하지 않는다. 흔들린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결코 그 이유를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모두가 입을 꼭꼭 다물고 있어야 함을 타고난 운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섬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체념하고 있었다. 귀머거리 삼 년이요, 벙어리 삼 년이었다.

“섬은 돈이 필요해. 공항을 늘리고, 큰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모래밭에 호텔을 짓고........그래야 관광객이 밀려오고 돈이 떨어지지. 그러면 섬은 더 흔들릴 거야”

“그렇다면 섬을 돈 많은 외국인에게 팔아야 합니다.”

나는 비아냥거림이 섞인 투로 말했다.

“광장이 먼가?”

“가깝습니다. 차가 너무 흔들립니다, 갯바람 때문에.”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바라보며, 해피 라이트 씨가 내뱉는 감탄사 역시 유창한 한국어였다. 미국에서 보내온 엽서를 읽어봐도  한국어가 꾀 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막상 그를 대하니, 그 어휘력이 대단하였다. 공항 로비에서 나를 포옹하며, 섬의 공기가 너무 맑다며 탄성을 지르는 순간부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채꽃이 곱디곱다, 오랜만에 만나서 흠흠 하다, 공항 입구에 세워진 돌하루방 눈망울을 보고 부리부리하다, 라며 그림씨를 너무 풍부하게 나열하는 것도 일품이었다. 그는 무서운 미국인이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코리아 디벨럽먼트 컴퍼니가, 섬을 투자 우선 지역으로 선정했지. 우리 회사가 개발에 참여하여 투자를 늘린다면, 섬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뀔 거야. 섬사람들도 꿩 먹고 알 먹게 된 거지. 어때?”

  그의 목소리는 자신감에 넘쳐있었다.

  어제 느닷없이, 사무실로 그의 전화가 결려 왔다. 전혀 예상치 않은 전화가 우선 반가웠다.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뜸, 내일 섬으로 찾아갈 것이며, 하루  동행을 할 수 없겠느냐는 부탁이었다. 나는 옛 정리를 생각하며, 쾌히 승낙하였다.

“한국에는 언제 오셨습니까?”

“석 달쯤 됐어. 코리아 디벨럽먼트 컴퍼니의 고문 자격으로 서울에 일년 동안 있게 됐어. 자주 보게 될 거야. 회사가 섬에 투자를 하고, 관광지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

“외국인 투자가 절실한 때입니다. 섬도 외국회사가 자본만 가져오면, 불편 없이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놓고 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거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세계는, 이제 자본에서도 지구촌이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이십여 년 전이었다.

그는 평화봉사 단원으로 제주에 내려와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칠십 년대 초, 나는 오직 영어 회화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그를 뒤를 쫓아다녔으며 그는 한국어를 배울 목적으로 국어학을 전공하는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거의 이 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지냈다. 그가 섬을 떠난 후에도, 일년에 두어 번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크리스마스와 생일에는 어김없이 엽서를 보내왔다. 서신으로 서로 안부를 묻고, 일상 생활까지 알리고 있었다. 내가 회사 일로 미국에 들렀을 때, 일부러 그의 고향 오리언을 찾은 적도 있었다. 그런 그가 서울에서 전화를 주었다.

“제가 도울 일은 무엇입니까?”

“자주 만나면서 설명하지. 나도 자주 섬에 올 거야.”

“어떻게 동북아의 가장 작은 섬, 그것도 한반도 변방의 섬에 투자할 생각이 드셨습니까? ”

“투자는 항상 미래성을 참작하지. 일단 위치와 기후가 제격이지. 섬은 동북아의 중심으로 부상할 거야. 국제 관광지로 개발할 생각이야. 레저 스포츠 단지로 말이야.”

그런데 그가 느닷없이 왜 광장을 찾는단 말인가? 나는 차를 광장 가까운 공용 주차장에 세웠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광장의 행사를 아셨습니까?”

“4월이면 신문마다 요란하잖아. 한국 신문을 계속 읽었어. 그리고 섬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공부를 했지. 4․3을 한마다로 어떻게 표현할까.......?”

  당시도 광장은 인산인해였다. 털버선을 신은 사람도, 차렵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도, 장작모시옷을 입은 사람도, 갓두루마기도, 옴쟁이도, 짝귀도, 쭈그렁이도 모두 모여들었다. 벼릿줄과 삼태그물, 쪽배와 낚싯배까지 포구에 놓아두고 모여들었다. 두렁에서, 멍석자리에서, 도롱태에서 뛰쳐나왔다.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섬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팔을 끼고, 어깨동무를 하고, 대열이 끊어지지 않도록 허리띠를 서로 잡았다.

오십 년 전 그 날, 삼일절 기념 행사를 하던 날, 어디서부터인지 왔샤 왔샤,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무르익은 분위기를  돋구어 나갔다. 시위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광장을 향하여 탕 탕 탕탕 탕탕 탕, 하고 총소리가 들렸다. 광장 일대는 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쓰러졌다. 대열이 무너졌다.

그런데 총을 쏘도록 한 최종 결재를 한 자가 누구일까. 지금까지 아무도 모른다. 물론 미군정이 전권을 쥐고 있던 시절이다. 며칠 후 광장에는, 사람의 목을 베어 매달아 놓았다. 몇 달 후 광장에는 국가 원수가 찾아왔다. 광장에서 원수를 위한 환영 대회가 열렸다.

언제나 광장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흩어졌다. 강한 자가 형별을 가하고, 약한 자가 구호를 외쳤다. 강한 자와 약한 자가 함께  제사를 지내는 곳도 바로 광장이었다. 광장은 항상 소용돌이쳤으며 항상 흔들거렸다. 흔들리는 광장. 흔들리는 섬땅.  

세월이 바뀌어도 봄은 4월과 함께 밀려왔고, 그 초사흘에 하늘을 향하여 한 맺힌 호곡이 메아리쳤다. 잔인한 역사의 수레바퀴로 희생된 영령들을 위하여 흐느끼는 소리가 한라산 부악을 넘을 듯 했다. 새벽녘부터 꾸역꾸역 모여든 사람들의 통한의 소리가 광장을 흔들어 놓았다. 반 백년이 이르도록 긴긴 세월 숨어 울던 원혼들의 아우성이 섬곶으로 밀려들어, 섬땅을 흔드는 듯 했다.

하늘에서 당장 꽃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흔들리는 광장, 우리 두 사람은 서 있었다.

해피 라이트 씨는 멍울 같은 눈을 끔벅거리며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양코배기,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위령제가 대단하군. 제단 앞 신위가 몇이나 될까?”

“1만 오천여 개나 됩니다.”

“모두가 빨갱이에게 희생된 섬사람들이지?”

“.........아닙니다.”

“반공 국가에서 빨갱이를 위한 제사를 지낼 수 있어?”

“..............?”

제단 가까운 곳에서 검은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나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의 이름으로 유주 무주, 유명 무명의 영령들을 두 손 모아 제단 앞으로 간절히 청하라고, 소리를 높였다. 연대 부락 신위, 제단으로 강림하시어 흠향하옵시라, 고 외쳤다. 오도롱내 신위, 모래동산 신위, 도두오름 신위, 월랑 신위, 도령 마루 신위, 박성내 신위, 고우니모루 신위, 모살물 신위, 벌랑 신위, 정뜨르 신위, 굴왓 신위, 망마루 신위, 다랑쉬굴 신위, 밴뱅디굴 신위.......아직 미진하여 위패를 모시지 못한 무명의 수많은 신위들이 한을 풀고 제단으로 강림하시어 흠향하옵시라, 고 목소리를 돋구었다.

조기들이 갯바람에 거칠게 펄럭거렸다.

“죽은 사람을 위하여 어떤 사업을 하고 있지?”

그가 카메라 렌즈를 수건으로 닦으면서 물었다.   

“위령공원을 조성하고, 위령탑을 세우고,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진상 규명? 저 위패 가운데 빨갱이를 구분할 수 있나?”

“.................?”

사회자 목소리가 가라앉자 스님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스님은 마른기침을 여러 번 하고 나서, 물 컵을 오른손으로 들었다. 물을 천천히 마시고 나서 축원문을 읽어 내려갔다. 

“.....광명이신 부처님, 맑고 밝은 소요가 수정인 양 청명하고, 동백꽃 향기가 섬 천하를 짓누르는 생명이 움트는 계절입니다. 밝고 밝은 부처님의 지혜가 상처받은 온 섬 위에서 빛나게 하옵소서.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했던 처참한 그 나날들. 저 큰산 자락에서 저 바다 가운데서 외치다 외치다 사라져 간 무고한 원혼들이 섬 하늘과 섬땅, 섬 골짜기 골짜기마다 울부짖고, 동네마다 마을마다 통곡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 불쌍한 영혼들을 위무하고 왕생극락케 하기 위하여 여기 광장에 함께 모여 추모의 향을 사르고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부모 형제 일가 친족, 그리고 섬사람 모두 모였습니다....”

사람들이 합장하고, 머리를 계속 조아렸다.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어깨를 들썩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섬 사건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극이라는, 세계교회협의회 신학 위원회의 신앙보고서도 일찍이 나왔지.”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세계인의 관심사군요.”

맑고 청명한 스님의 목소리가 구름 발을 갈라나갔다. 갯바람이 기세가 꺾이자, 꽁무니바람이 사람들 뒤통수를 간질이며 불어대었다.

“.....대자 대비하신 부처님, 무연의 배를 띄우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어 인천의 중생을 남김 없이 제도하시려는 것이 부처님의 끝없이 움직이는 중생에의 대자비입니다. 큰 자비를 베푸시어 비명에 가신 우리의 부모 형제, 구천에 사무친 외로운 영령들을 왕생극락케 하시옵고, 한 송이 꽃으로 인연을 다한 시방법계 유주무주의 외로운 모든 영혼들이 다함께 삼계의 고해를 벗어나서, 극락세계의 상품 연대에 태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슬픔에 젖어있는 가족들을 평안케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분들에게도 자비의 광명을 함께 내려 주시옵소서......”

  스님이 단상에서 내려갔다.

  로만 칼라의 젊은 신부가 단상으로 올라 추도문을 낭랑하게 읽어 내려갔다. 

  “.....만물을 창조하신 다음, 참으로 아름답다 하신 하느님. 하늘과 땅, 해와 바다 가운데 있는 섬에서 당신을 만나 뵐 수 있음에 감사 드립니다.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오늘은 섬사람들에게 결코 지울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남긴 날입니다. 섬 역사는 물론, 반도의 최대 비극으로 기록될 상처는, 그러나 아직껏 그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있습니다. 정의로우신 하느님, 그 4월에 역사적으로 불행한 일들을 겪고, 그러한 순간들로 가슴속에 슬픔과 불행, 한을 간직한 섬사람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당신의 위로와 사랑을 심어주소서. 자비로우신 하느님, 우리는 섬에서 죽어간 영혼들을 당신 손에 맡깁니다. 가신 분들은 우리들 가운데서 떠났습니다. 그분들은 우리들 가운데서 마지막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분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이제는 고통과 슬픔이 없는 하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하소서. 사랑이신 주님, 그들이 우리에게 행한 일을 기꺼이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마음 또한 열어주소서. 사람들의 이기심과 지나친 욕심으로 주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이 고통받고 있는 오늘, 섬사람들이 사랑으로 한데 뭉쳐 아름다운 이 섬에서 당신 뜻을 따르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인도해 주소서........”

  “모든 종교가 함께 제사를 드리는군.”

그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신부가 내려오자 목사가 단상으로 올라가 기도문을 읽었다.   주제사와 추도사가 이어지고, 시인이 추도시를 낭독했다. 순서가 물 흐르듯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사회자가 크게 소리쳤다.

“개인별 헌화와 분양이 있겠습니다.”

주악이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서 일렬로 줄을 만들어 나갔다. 제단을 향해 긴 행렬을 이루며 한 사람씩 꽃을 받치고  향을 피워 나갔다.

나도 분향 행렬에 끼여들었다.

그는 생각이 없는지 촬영에만 정신이 팔려 한 컷 한 컷 열심히 셔터만 눌러나갔다. 줄을 선 사람, 앉아있는 사람, 향을 피우는 사람을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이때 누군가 제단 앞에서 소지에 불을 붙여 공중으로 날려보냈다. 얇은 소지는 불에 타면서 공중으로 올라갔다. 하얀 종이가   검정재가 되어, 나풀거리며 하늘을 뒤덮었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사월의 상처는 아픈 전설의 꽃이 되어 광장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오십 년이 흘렀어도, 그 깊은 상처는 치유되지 못하고, 살아 있는 역사로 살아 숨쉬고 있었다. 광장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시절 불귀의 객이 된 영령들을 위하여, 구천을 헤매는 원혼들을 위하여, 차마 무슨 말로 고혼들을 해원해야 할지, 그저 가슴이 미어질 뿐이었다. 태어나 사는 일이 죄라고 누군가 말을 했지만, 이 사월 미몽에서 깨어나듯, 떠나버린 영령들을 오래오래 기억하려고 모두들 흔들리고 있었다. 불귀의 객들의 고뇌와 아픔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있었다. 마른하늘에 마른번개가 치고, 마른천둥이 울어댈 것 같았다. 조화의 물결로, 위패의 물결로, 조기의 물결로 흔들리고 있었다. 어깨를 들먹거리며 사람들이 훌쩍거리고 있었다. 검정색 바탕에 하얀 글귀가 새겨진 조기들은 갯바람에 을씨년스럽게 퍼덕거리고 있었다.

  사회자가 파제사를 낭독할 때까지, 그의 셔터 누르는 소리는 리듬을 타며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광장이 너무 흔들려서, 멀미를 할 것 같은 기분이야.”

그가 중얼거리며, 광장을 떠나자는 눈짓을 보냈다.


  광장을 뒤로하고, 동쪽 오름을 향하여 차를 몰았다. 광장에서 오름으로, 그리고 폭포에서 서쪽 끝 오름을 돌아,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게 일정은 짜여져 있었다. 광장을 멀리 벗어나니 억새 무리가 흔들거리는 벌판이 나타났다.

  해피 라이트 씨는 섬에 흠뻑 취한 듯 했다.

“우리 집안은 섬과 인연이 깊어. 일본이 항복하자마자 아버지는 정보 장교로 섬에 파견되었어. 미군정 시절이지. 아버님의 이름은 드라이 라이트야.”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드라이 라이트? 선생님이 평화봉사단원으로 섬에 오시기 전에, 이미 아버지께서는 사태, 주둔 군인으로 계셨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 참혹한 시절에 말입니다.”

“그렇지. 아버지는 생전에, 늘 섬에 대하여 말씀하셨어. 당시 사건이 일어남에 있어 남로당이 개입만큼은 확실하다는 말씀을 하셨어. 처음 통치 시스템은 원만했고, 인민위원회도 미군과 협력이 잘 이루어졌다는 거야. 그러나 본토의 우익을 불러들여 일거의 체제를 변화시키려는 미군정에 대한 원주민의 반발이 심했다는 거야. 미군은 섬의 안정을 위하여 토벌대를 훈련시키고, 공산 당원들을 심문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지. 섬은 온통 붉은 물이 들어있었지. 세계 강국으로 부상하는 미국은 빨갱이를 뿌리  뽑는 것이 지상 과제였어. 게릴라 수색에 미군 정찰기가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야. 섬을 빨갱이 세상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 미군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다는 아버지의 설명이었어.”

“사건은 분명 미군정 아래서 일어났습니다.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미군정이 남한의 법적이고 공식적인 행정부였습니다. 미군은 한국 군대와 경찰을 지휘하였습니다. 섬에서 일어난 무자비한 학살 극과 잔혹 행위에 대해 미국은 윤리적 책임뿐만 아니라, 실제적이고도 법률적 책임이 있습니다. 미군은 자신들이 직접 나서는 것을 기피했지만, 사태를 진압하는데 있어서 한국인끼리의 죽고 죽이는 행위는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여기에는 분명 인종적인 측면도 깔려있습니다.”

나는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생각을 내뱉었다.

그는 나의 말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겉으로 나타내지 않았다.

“당시 아버지는 상황을 기록하고, 필름으로 상황을 찍어 본국 사령부로 보고했겠지.”

“사건을 너무 이념을 내세워 바라보는 게 아닙니까?”

“아무튼 섬은 빨갱이 소굴이었지. 분단 체제에서 이념을 뒤로하면 위험하지. 미군이 한국 전쟁에서도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 세계인의 자유 수호를 위해서야.”

  그는 차분하게 자신의 논리를 펴나갔다.

  나도 주섬주섬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많습니다. 저 잠녀들도 빨갱이 누명을 쓰고 바다에서 생목숨을 바쳤습니다.”

  잠녀들이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있었다.

  차 안까지 숨비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훠어이, 훠어이.

  “빨갱이 누명? 아버지는 주님의 이름으로, 이 세상을 마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노력한 신앙인이야. 만일, 섬이 빨갱이 세상이 됐다면.....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섬이 흔들린다, 섬이 아름다운 예술품이다? 그렇지. 당시 내 아버지께서는 활활 불타는 마을을 향하여,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불타는 섬은 너무 아름답다고 감탄했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섬은 관광객을 위하여 길을 닦고, 다리를 놓고, 호텔과 여관을 짓고, 술집을 늘려왔다. 오직 그들을 위하여 돈을 쏟아 부어 치장을 했다. 그들이 떨어뜨린 동전 몇 닢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손을 비비며 불러모으고 있었다. 동쪽 오름으로 가는 해안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길 양쪽은 화강암으로 널따랗게 쌓아올려 외지인에게 색다른 풍취를 안겨 주었다. 차 안으로 상쾌한 갯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속도를 내고 얼마쯤 달렸을 때, 포구를 품에 안은 오름이 나타났다. 작지만 그 자태는 우람하였다.

“오름 기슭으로 이어진 검은 모래밭에 콘도를 짓기로 했어. 관광객들이 맨발로  모래밭을 밟으며, 갯가를 거니는 모습을 상상해 봐. 바로 지상 천국이지.”

“밤에 고깃배들이 밝히는 집어등 불빛 역시 환상적입니다. 불빛에 넘실대는 파도의 높낮이는 바로 무용가의 율동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는 넓은 바다와 검은 모래밭, 환상적인 오름 풍경에 흥분하기 시작하였다. 오름은 바다를 품에 안고, 모래밭을 깔고 앉아 의젓한 자태로 나그네를 감동시키고 있었다. 자화산 중에서 유일하게 용암이 바다 속에서 분출하여 굳어진 암산은, 그 자태가 빼어났다.

그러나 그 바다가 핏빛으로 느껴졌다.  

“아버지는 장엄한 일출의 빛깔을 들려주었지. 너무 환상적이라고, 꼭 찾아가 보라고 말씀하셨어.” 

“그렇지만 피 냄새가 나는 곳입니다.”

포구에는 낚싯배, 주낙배, 똑딱선, 당도리들이 졸망졸망 매어졌다. 안에서 주낙배들이 미풍에 설레설레 흔들거리고 있었다. 오름 주위에는 먹거리 볼거리가 풍성하였다. 나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가지런히 이어진 해안선을 따라 둘이서 한참 걸어가니 끝자락에 입구가 나타났다.

“평화봉사단원 시절, 섬은 고립이고 단절임을 깨달았어. 이방인에게 고독감만 안겨주었지. 사람들의 미개한 생활에 치를 떨었어. 아버지의 오십 년 전 생활을 상상해 봐. 원주민들은 자기들끼리 총부리를 겨누었어. 바로 야만인이야. 미안한 이야기지만 아버지는 섬사람을 미국의 인디언과 같다고 항상 말씀하셨어. 이제 섬은 대륙의 변방이 아니라 그 중심이야. 관광 산업을 발전시켜 외국인을 불러모아야 돼.”

“미개인? 야만인? 너무 심한 표현입니다.”

“아버지가 섬을 위하여 젊음을 불사른 것처럼, 나도 이제 섬을 위하여 새로운 프로젝트를 펼쳐 나갈 거야.” 

  오름 암벽으로 갈매기 떼가 날아드는 광경이 보였다.  입구 터진목은 온통 갈대밭으로 덮여있었다.

  “여기가 터진목입니다. 옆으로 보이는 것이 우뭇개동산입니다. 이곳에서 멜 널어지듯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총으로 쏘아 죽이다가, 나중에는 죽창 질을 해서 죽이기도 했답니다.”

그는, 누가 총질을 하였으며, 그 총질을 시킨 배후는 어떤 세력이냐, 하는 의문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멜이 무엇이지?”

“멸치를 섬사람들은 멜이라고 합니다.”

  사방 천지가 온통 파란 빛깔로 우리를 맞았다. 청명한 날씨 탓으로, 바다에 작은 섬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작은 섬은 바다 위에 떠 있는 평야와 닮았다. 마치 물소가 드러누웠거나 머리를 내민 모습과 흡사하였다.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끝나자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당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토벌대의 보복이 두려워 피신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돛단배에 숨어 타고 저 앞에 보이는 소섬을 향하였습니다. 바다 가운데 너분여라는 곳에서 배가 침몰하였습니다. 열세 명 가운데 열두 명이 죽고, 한 명만 살아났습니다. 너분여에는 지금도 비만 오면 바다 밑에서 통곡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왜 선거를 보이 코트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들은 죽음을 자초했어. 빨갱이이니까 도망을 친 것이야.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곤란해지지.”

그가 목소리를 높이자 앞에 버티고 있는 오름이 흔들거렸다. 눈앞에  보이는 소섬이 흔들거렸다. 오름에서, 소섬에서 죽음의 냄새가 풍겨왔다. 소섬으로 가는 뱃길은 물빛이 사뭇 새파랗다. 마치 푸른 유리알 같았다.

우리들은 오름 정상을 향하였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험준한  암벽의 정상은 광활한 분화구로 되어있었다. 올림픽 경기장의 메인 스타디움과 흡사하였다. 분지 둘레에는 아흔 아홉 개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빙 둘러서 있어, 마치 성곽 같기도 하였다.  어슴푸레한 이른 새벽에 검푸른 바다를 뚫고 천천히 솟구쳐 흐르는 거대한 불덩이를 볼 수 있는 해돋이 장면 또한 가관이라는 일출봉이었다. 


당시, 오름 가까운 마을에 살던 청년 사십 여명이 집단으로 희생을 당하였다. 토벌 대원들이 떼지어 다니며, 국가원수 사진을 강제로 사라고 주민들에게 강요하였다. 주민들은 돈이 없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이없게도 거절한 사람들이 불순분자로 몰렸고, 목숨까지 내놓는 수모를 당하였다. 어떤 사람은 지서로 끌려가 창고에 수감되었다가, 이유 없이 터진목으로 끌려가 총살을 당하였다. 군부대로 끌려가 총살당한 경우도 있었다. 부대 원들이 사람들을 집결시키고 완장을 차지 않은 열 두 명을 연행해 갔다. 지서에서 일주일간 옥에 처넣었다가, 며칠 후 모래밭에서 총살하였다. 열 일곱 살 이상 마흔 살까지 모이라는 명령이 내려지고, 그 자리에서 방아쇠를 당겼다. 청년들에게 식량을 갖고 지서에 집결하도록 하고, 사살하기도 하였다.

오름에서 내려와 다시 차에 올랐다. 해피 라이트 씨는 흡족한 듯 계속 길을 재촉하였다. 둘이서 도착한 섬 남쪽에 있는  폭포 주변에도 관광객 물결이었다. 폭포로 가는 오솔길에는 가시떨기와 동백나무, 진달래와 철쭉이 널브러졌다. 물은 가뭄 탓으로 조용한 몸짓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쏴아 쏴아, 하고 시원한 물소리가 다른 세상에 온 듯하게 만들었다.

그는 떨어지는 물길을 보자 신이 났던지 셔터를 계속 눌러대었다.

관광객들도 돌무더기에 앉아서 포즈를 잡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폭포수가 흔들리니까, 너무 멀미해.”

“물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맑아지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갖고 있는 흑백 사진첩에는 이 폭포 앞에서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있지. 벼랑 위 나무 밭에 공산주의자들을 세워 놓고, 군인들이 총을 쏘았다고 했어.”

“그들은 양민이었습니다. 사십 여명이나 됐지요. 빨갱이 누명을 씌우고 농민들을 끌고 와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시신들이 물결 따라 나풀나풀 벼랑에서 떨어졌습니다.”

“자네는 공산주의자를 옹호하는가? 말투가 이상해.”

                                                  

섬 서쪽 끝에 있는 오름 꼭대기에 올랐다. 거기에서 바라다 보이는 바다를 검붉게 물들이는 낙조는 너무 아름다웠다. 동쪽 오름에서 떠오른 해가 서쪽 오름 너머로 잠기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섬이 서서히 침묵에 빠졌다. 탁 트인 바다와 멀리 보이는 또 다른 섬 속의 섬, 그리고 바다 쪽 절벽을 깎아지르듯 형성된 단애의 절경을 바라보았다. 꼭대기에서 바라다 보이는, 작은 섬이 흔들거렸다. 바둑판처럼 펼쳐진 들녘과 작은 오름들이 작은 섬과 어우러져 흔들거렸다. 그 광경은 장엄한 심포니를 이루었다.

해피 라이트 씨가 자기가 다녀왔다는, 스페인 이야기를 꺼냈다.

“스페인의 관광 팜플렛에는 ‘바예 테 로스 카이도스’ 라는 곳이 소개되고 있지. 죽음의 계곡이라는 뜻이야. 스페인 내전 기간에 인민 전선과 프랑코 장군 쪽 장병 수십만 명이 쓰러진 곳이야. 마드리드에서 서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산간 벽지를 관광 명소로 만든 것은 엉뚱하게도 그 내란을 일으킨 프랑코 자신이었어. 프랑코는 내란 종식 뒤 그곳 산간 벽지에 긴 암벽 동굴을 뚫고 유럽 최대 규모의 대 사원을 지었어. 그리고 그 사원을 내란 피해자들의 영령 앞에 바친 거야. 그는, 나를 적이라고 공언한 사람들을 내가 진심으로 용서하는 것과 같이, 그들도 나를 용서해 주기 바란다, 는 유언을 남겼지. 자신도 그 전몰자의 계곡에 묻히고 말이야. 미국 남북전쟁 당시 수많은 사람이 숨진, 케티즈버그에 링컨 대통령이 세운 국립 군사공원도 비슷한 경우지. 둘 다 세계인들이 몰려오는 유명한 관광지로 변모한 거야. 역시 생각이 참신해.”

그렇다면, 당신도 수많은 영령들에게 머리를 숙일 수 있습니까. 영령들 앞에서 무릎 꿇고 향을 피울 수 잇습니까. 그러나 나의 입은 열려지지 않았다.


해거름이다. 해피 라이트 씨와 다시 찾은 광장에는 어스름이 깊게 깔리기 시작하였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가로등들도 을씨년스레 갯바람에 떨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광장을 거쳐 동쪽 오름으로, 동쪽 오름에서 남쪽 폭포로, 그리고 서쪽 오름으로 해서 다시 광장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광장이 흔들린다고, 오름이 흔들린다고, 폭포가 흔들린다고 계속 떠 불렸다. 발이 닿는 섬땅 모두가 흔들린다고, 히죽거렸다. 광장은 어스름에 깔렸지만, 조기들은 마냥 출렁거렸다. 내내 광장에 버틸 기세로 펄럭거리고 있었다. 아직도 자리에 버티고 앉아 울먹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한 쪽에 자리잡은 간이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 전시실이었다. 당시 미군이 촬영했다는 색이 바랜 흑백 사진들이 여러 장 전시되고 있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입수한 사진들이라고, 안내원이 친절하게 설명하였다. 천막 수용소 앞에 늘어선 처참한 모습이 처음 눈에 띄었다. 어린이, 아주머니, 할아버지 모습까지 보였다. 한 달에 수천 명을 검거했다는 당시의 신문 기사에서 보듯, 무차별 검거 선풍을 일으켰던 토벌 작전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진들이었다. 밭담 너머로 총을 들고 눈을 부릅뜬 경찰들. 마치 이리에게 잡혀온 어린양 모습을 한 원주민들. 눈을 끔벅이는 어린이들. 하얀 저고리에 통치마를 입고 꿇어앉은 아주머니들. 사진들은 가지각색이었다. 국방경비대가 게릴라 소탕작전을 벌이면서 남자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아무나 잡아갔다는 설명문이 눈길을 끌었다. 수용소 안에 열살 된 어린이가 잡혀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

전시실 밖으로 나와서, 그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 드림 라이트 씨는 당시 섬에서 무슨 역할을 하였을까. 나는 그의 옆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해피 라이트 씨가 서울로 올라가는 날, 나는 급히 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앞으로 자주 만날 수 있을 거야. 섬에 사무실을 차리기로 했어.”

  그는 의기 양양하게, 내 손을 잡고 여러 번 흔들었다.

“내가 속한 회사가 섬에 대대적인 투자를 결정했어. 도 당국도 관광개발 사업자로 우리 회사를 승인했어. 관광 명소마다 ‘바예 테 로스 카이도스’를 본뜬, 그 지역 특색에 맞는 호텔과 카지노와 콘도와 레저시설을 세워나갈 거야. 오름과 해수욕장과 폭포가 주무대가 되겠지.”

“.........................?”

“성조기를 다시 이 섬에 휘날리게 할거야. 자유와 평화의 상징으로······그런데 자네가 나를 도와줘야 하겠어. 회사가 관광개발을 추진하기 위해서 이곳에 연락 사무소가 필요해. 그 책임을 맡아 줄 수 있겠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가 비행기 트랩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비행기가 폭음을 내며 하늘을 나르자 섬땅이 온통 흔들거렸다. 공항 활주로까지 심하게 흔들림을 느낄 수 있었다. 공항 입구에 세우진 돌하루방도 흔들거렸고, 공항로에 늘어선 가로수들도 흔들거렸다.

그를 보낸 후 나는 로비에서 조간신문을 한 장 샀다. 일면에 박힌 ‘섬 관광지 개발에 서광’이라는 헤드라인이 눈길을 끌었다. 관광개발지구가 대부분 준 농림 지역에서 준 도시 지구로 변경되면서 숙박시설과 위락시설이 들어선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특히 동쪽 오름과 서쪽 오름, 그리고  남쪽 해안 폭포지구에는 호텔과 콘도미니엄, 스포츠 타운, 그리고 휴게음식점이 들어서고, 개발사업자는 세계 굴지의 관광지 개발회사인 코리아 디벨럽먼트 컴퍼니가 맡게 되었으며, 최근 한국 법인 고문인 해피 라이트 씨가 섬에 다녀갔다는, 내용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나는 멍하니 큰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섬이 이제서야,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일까. 나는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사월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떼가마귀들이 캬아 캬아, 하며 큰산을 넘어서고 있었다.  옛날부터 화산으로 흔들리고, 앞바람에 흔들리고, 하늬바람에 흔들리는 운명, 이제는 어쩌란 말인가. 어여 싸나 어여 싸나, 물에 들민 숨비질 소리, 산엔 가민 우김새 소리, 가름엔 들민 하기새 소리, 귀에 쟁쟁 울리엄서라. 내 귓바퀴로 귀에 익은 노래가 맴돌았다. 분명 섬은 흔들리고 있는데, 사람들은 노래만 부르고 있었다. 흔들림에 대한 체념일까. 흔들림에 대한 거부일까. 흔들림에 대한 애린일까. 아아, 그러나 아낙들의 노래에, 짙고 아픈 흔들림이 숨쉬고 있었다. 아픈 흔들림이 노래곡이 되어 숨쉬고 있었으며, 거기에는 울분이 가려져 있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김관후

2006/05/09 16:16 2006/05/09 16:16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kimgwanhoo.pe.kr/tt/rss/response/36

어허렁 달구

 

                              어허렁 달구


섬에 대한 기억 하나가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면, 섬이 가슴속에 남아 오랜 세월 자글거린다면, 그것은 아스라한 아픔일 수 있다. 섬은 바다 위에 홀로 떠있어, 그 자체가 외로움 덩어리다. 섬이 기억 속에서 항상 흔들리고 있어, 위험스럽기까지 하다.

  섬에 관한 기억이라면, 하늬가 모진바람으로 불어 멀리 자오록한 물마루를 밀치고, 작달비가 몰아치는 우중충한 분위기가 먼저 떠오른다. 삐요, 하고 울던 직박구리가 오름 둥지로 숨어버리던 모습도 떠오른다.

그렇다. 섬에서 우는 직박구리는 나뭇가지나 칡덩굴이 감겨있는 숲에 항상 밥그릇 모양의 둥지를 틀고, 한 마리가 울면 차례 차례로 모여든다. 비가 그치면 삐요, 삐이요, 삐, 삐, 히이요, 히이요, 하고 떼지어 울고 회갈색 몸을 흔들며 하늘을 두어 바퀴 돌고 둥지로 돌아간다. 그리고 모진 바람이 불면 숨어버린다.

섬이 그리워지면서, 직박구리 울음소리부터 그리워졌다. 섬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힌 후부터, 밤마다 가위눌림에 시달렸고, 꿈에서 삐, 삐, 히이요, 하는 아픈 소리를 들어야 했다.  고향 마을에 총소리가 사라진 후에도, 그 직박구리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던 기억도 아프게 되살아났다..

이제 고향 섬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할머니가 이어도를 이야기하던, 그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렇다면 누구는 물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미련이 남아있기에, 그처럼 고향을 붙들고 발버둥을 치느냐고, 말이다. 당신은 이제 서울 사람이 아니냐고 말이다. 아무튼 섬으로 돌아가야 한다. 뼈를 추스르는 아픈 파도소리, 자갈밭에 괭이질을 하면 불쑥불쑥 튀어나오던 사람 뼈다귀들, 사촌은 오른쪽, 육촌은 왼쪽으로 갈라져 서로가 토라져버린 친족들, 나를 ‘폭도 새끼’라고 부르며 측은한 모습으로 쳐다보던 동네 아낙들, 밤새 내쉬는 할머니의 한숨 소리가 서려 있는 곳, 그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 그곳에 묻혀 남은 한평생을 살아야 한다. 그 지긋지긋한 섬으로, 용서받지 못할 섬으로 돌아가야 한다.

  섬이 떠오르면 먼저, 이어도 이야기를 구성지게 엮어가던 할머니 생각이 가슴팍을 짓누른다. 그 시절, 식구라야 할머니와 단둘이었다. 아버지 주검은 찾을 길 없었고, 어머니도 멀리 떠나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분명 이어도에 살고 있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섬사람들은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길을 잃은 아버지의 도피처로 이어도를 설정하였다. 지아비는 낚시와 낚싯밥, 뭇과 삼태그물을 싣고, 새벽 물길에 고기잡이를 바다로 나갔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닻을 올리고 바다 밭으로 나갔지만 점점 강해지는 폭풍우에 휘말리고 말았다. 지아비 소식이 없을 때, 그 아내는 그 가족은 먹구름이 삼킨 물마루를 바라보며 그냥 절망만 하지 않았다.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남편의, 아버지의 죽음을 믿어서는 안되었다. 섬사람들에게 바다는 밭이었다. 바다가 밭처럼 식량을 대준다는 뜻이다. 태왁을 메고 나가거나, 고깃배를 타고 나가면 많은 먹을거리가 생겼다. 밭을 가꾸듯이 바다를 다스리고 이용하면, 바다는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다. 바다로 나간 지아비가 뱃길을 잃었다면 도피처를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망망대해를 헤매었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에 어렵게 이어도에 안착했을 것이다. 섬사람들은 이심전심으로 이런 상상을 하면서 서로를 위로했을 것이다. 그래서 잠시 풍랑을 피할 수 있는 도피처를 상정하게 되고, 끝내 돌아오지 않을 때에는 가상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내었다.  그렇게 애절한 곳, 섬에서 상상할 수 있었던 또 다른 곳이 바로, 이어도였다. 이어도는 지아비가 죽은 후에 안식하는 유토피아였다. 이어도는 외로움과 아픔을 견뎌내는 섬사람들 스스로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이었다. 삶과 자연에 대한 저항과 원망을 감싸고 용서하여, 평화로 화해하는 신성한 장소였다. 이어도를 가슴에 품고 있었기에 섬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 살 수 있었고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근면성을 일구어낼 수 있었다. 항해술과 선박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 돌변하는 기상 악화는 수없이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살아있는 가족에게는 미완의 숙제가 남아있었다. 단절과 슬픔이 숱한 사연이 하나하나 쌓여, 보다 고귀한 영역으로 승화될 수 있는 구역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이어도였다.


할머니는 이어도 전설을 구성지게 이어갔다.

그런 날 내가 물었다.

“어멍 아방, 어디간?”

  나는 할머니 무릎 위에 누웠다.

  내가 핏덩이일 때 아버지는 죽었다.

“어딜 간단 말이니. 아방은 이어도에 갔주.”

  늘 하는, 할머니의 대답이다.

“이어도는 얼마나 멀어?”

또 늘 하던 질문이다.

“하늘 보다 더 멀지”

“그럼 어멍은?”

“...........”

어머니에 대하여 물었을 때, 할머니는 답변을 피했다.

나는 짓궂게 어머니도 이어도에 있다며 대들었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버지가 잡혀가고 얼마 지나자, 어머니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북 사투리를 쓰는 꺼벙이에게 끌려가 읍내에서 살림을 차렸다는 소문만 나돌았다. 그래서 할머니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었는지 모른다.

“이어도에는 밥도 많고 반찬도 많아?”

“괴기국도 있고 호박엿도 이실 거여.”

너무나 배고픈 시절의 질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나도 이어도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아버지는 바다에 수장된 것이 아니라, 이어도로 떠났다고 믿고 있었다. 어머니도 거기에 가서 살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핏덩이일 때 부모와 헤어지는 운명을 맞았으며, 그래서 가족은 풍비박산이 났다.


섬으로 가기 위하여 항공권을 여행사에서 구입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섬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었다. 항공권을 구입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사람은 낳아서 서울로, 말은 나아서 섬으로, 라는 말이 뒤바뀌고 있었다. 섬으로 섬으로,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었다. 섬을 떠날 당시만 해도, 섬사람들은 배고프고 춥고 외로워서, 섬에서 탈출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지금은 관광을 목적으로, 땅을 사려고, 호텔을 지으려고, 콘도에서 쉬려고, 자전거 하이킹을 위하여, 섬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서울 시민 모두가 섬으로 섬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여행사는 연일 북새통이었다. 그렇지만 어렵게 항공권을 구입하였다. 다니던 출판사에 사표까지 제출하였다.

  “섬으로 떠나십니까? 부럽습니다. 이제 파돗소리나 들으시며 여생을 보내시겠습니다.”

  사장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는지 덤덤하게 대하였다.  사표를 쓰고 난 후, 회사 게시판에는 기다렸다는 듯 후임 편집장이 임명되어, 공고까지 나붙었다. 아내는 섬에 가면 제일 먼저 내 명의로 되어있는 땅부터 정리하라고 안달이었다. 빨리 팔아치워 서울에서 목이 좋은 상가라도 분양을 받아야 한다며 신이나 있었다.

  “고향에 가시면 땅부터 정리하세요. 꾀 값이 나간다고 들었어요.”

  할머니는 자신이 손수 일구던 밭뙈기를 꾀 많이 남기고 돌아갔다. 내가 한 번도 구경 못한 부동산이다. 주로 모래밭이지만, 고향 마을이 국민관광단지로 개발되면서, 좋은 값으로 거래된다고 듣고 있었다.

  “좀 더 기다려 보지.”

  나는 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좋은 값으로 오를 때까지 기다리자는 핑계로, 지금까지 차일피일 미루어왔다.

  “서울로 다시 돌아오시죠? 감옥에 갔다오셔서 심신이 피로하고 그리고 너무 외롭고, 괴로우신 것 알아요. 섬에서 지내시다 보면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으실 거예요.”

  그래도 대학생 딸이 아내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교도소에 있을 때도 열심히 편지를 보내고 책을 들여주었다. 딸은 결코 섬을, 고향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섬은 아버지의 고향일 따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이 가까운 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상담실에서 불렀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할 뜻이 있다고?”

  선생님이 육사 지원서를 밀쳐내며 물었다.

  “네, 할머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선택했습니다. 집에는 할머니 혼자 뿐입니다.”

  “성적도 뛰어난데 하필이면 육군사관학교야? 작년에도 너의 선배 중에 여섯 명이 육사 필기시험에 합격을 했는데, 다섯 명이 떨어졌다. 다 집안의 사상 문제 때문이야.”

“사상 문제요?”

“가족이 4․3에 연루가 되었단 말이야.”

  선생님은 내 집안 내력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주홍글씨가 새겨진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결국 육사 지원서는 휴지 조각이 되었다.


김포공항 출발 시간은 오후 20시 45분. 공항 로비는 너무 붐볐다. 마중을 나온다는 아내와 딸의 의사를 아예 거절하고 혼자 가방을 들고나섰다.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 자체가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다. 포켓에서  여객 보관용 국내여행 항공권을 꺼냈다. 선명한 항공 회사 마크와 함께, 이름· 구간· 운임· 비행기 편명· 월일· 출발 시각이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항공권을 구입한 여행사 이름도 고무도장으로 찍혀있었다. 나는 이름과 주소를 써넣는 칸을 채우고 탑승 수속을 마쳤다. 승강구부터 신혼부부  물결로 출렁거렸다. 예약 번호에 맞는 좌석을 찾아 앉았다. 안전 벨트를 조이고, 손에 쥔 항공권을 다시 읽어 내려갔다. 항공권 뒷면으로 눈길이 끌렸다. 계약 조건. 그렇다. 승객들은 항공사와 계약을 하고, 다시 자신의 몸체를 비행기에 맡기고 탐승하였다. 아주 작은 글씨로 계약 조건 내용이 인쇄된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과민 반응일까. 여객의 사망이나 상해에 대한 항공사의 배상 책임은, 여객 1인당 소송비와 제 경비를 포함하여 국제 통화기금의 특별 인출권인 SDR 100,000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입증된 손해 액으로 제한된다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 하늘에서도 죽음은 가능하다. 아버지가 그 시절, 바다에서 죽었다면, 누구든 하늘에서도 죽을 수 있다. 우발적인 사고를 당하여 내가 죽는다면, 내 아내와 딸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  시신을 받아들고 어떤 생각을 할까. 이제 죽음의 냄새가 갯바람에 묻혀 옴짝달싹 못하는 섬으로 간다. 갯벌에도, 모래톱에도, 콩밭과 보리밭에도 죽음의 냄새가 서려있는 고향으로 간다. 섬 어디에서도 죽음의 냄새가 지금도 지독하게 풍기고 있을 것이다. 그 냄새가 지겨워 섬을 떠났고, 다시 그  냄새를 맡기 위하여, 섬을 찾아간다. 섬에서 죽어,  거친 파도에 묻혀버리기 위하여 일부러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시험을 치르기 위하여 부두에 정박한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난생 처음 육지 나들이다. 목포로 출항하는 여객선은 미군 함정을 개조하여 만든 볼품없는 배였다. 보통 야간 운행이던 여객선이, 이상하게도 그 날은 주간 운행이다. 여객선이 항구를 출발한 시각은 정각 오전 10시. 짙은 안개가 눈앞을 가리는 계절이라, 주간 운행으로 뒤바뀐 모양이다. 섬이 멀어질 때까지, 나는 섬의 머리라고 일컫는 머리봉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과악, 과악하고 머리 꼭대기와 뒷머리에 검은 광택이 유난히 빛나는 붉은 왜가리가 울어대었다.

“이제 고향도 섬도 잊어 불라.”

할머니는 흐트러짐이 없는 단정한 차림을 하고 마중을 나왔다.

  “................”

  “영영 돌아오지 말라. 내가 죽었다는 소식 들어도, 돌아오지 말라. 넌 이제 섬놈이 아니어.”

  “..................”

  할머니는 종이돈 몇 장을 내 손에 쥐어주며, 고향을 찾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을 받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여객선 터미널에 버티고 서있었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머니 배웅을 받으며 눈물만 질금질금 삼켰다. 그리고 아홉 시간을 멀미로 고생하며 육지에 도착하였다. 구토가 너무 심했다. 목포항에 도착하여, 다시 완행선 야간열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하였다. 기차도 처음이었다.

섬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말뜻은, 어른이 되고서야 깨달았다. 섬은 빨갱이 섬이다. 그러니까 섬사람은 빨갱이다. 아버지도 억울하지만 빨갱이 누명을 쓰고 죽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도 빨갱이다. 제발 섬으로 돌아오지 말고, 육지놈이 되라고 일러준 말이다. 폭도 아들이라는 신분으로는 섬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처럼 신신당부하던 그 부탁을 허물어뜨릴 수가 없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본적지를 서울로 옮겼다.


  떠나자 섬으로, 붉은 섬이라고 이름 붙여진 삼십 년 전에 떠나온 섬으로 가자. 할머니의 부음을 듣고 딱 한 번 찾았던 내 고향 남촌리로 가자. 죽음의 냄새가 서려있는 섬을 향하여 이미 내 마음은 저만치 가 있었다. 그 지긋지긋한 죽음의 냄새가 요즘 들어 서울 한복판 내 집과 사무실까지 풍겨왔다. 그런데 섬에서 풍겨오는 죽음의 냄새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서울 사람이 되어있지 않은가. 섬은 한반도의 끝이다. 비행기가 없던 시절에 섬사람들은 단절의 삶에 익숙해 있었다. 옛날 대륙의 시대에, 섬사람들은 그 지리적 격절성과 변방성을 체험했다. 소외와 폐쇄로 얼룩진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섬은 항상 죽음이다. 섬이 죽음이었다면 육지는 정복이다. 정복당한 곳에 사는 섬사람들의 운명은 죽음뿐이다. 그 시절, 섬으로 불어오는 갯바람은 항상 죽음의 냄새가 풍겼다. 항구에 정박한 미군 함정에서 내려진 정복자들은 보무도 당당하게 군화발로 짓밟았다. 그래서 섬사람들을 정복했다. 지금은 돈이 섬을 정복하고 있다. 총 대신 돈으로 섬땅에 금을 긋고, 그 시절 살육 장에 호텔을 짓고 희희낙락하고 있다.


  아내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은 할머니의 승낙이었다. 섬사람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할머니는 육지년을 처음부터 싫어했다. 거기에는 섬 사태 당시 육지 놈들이 건너와서 못살게 굴었다는 억하심정이 깔려있었다. 아버지를 육지놈들이 죽였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육지 것들이라고 부르며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육지년이라고 다 나쁩니까? 사람 나름입니다.”

나는 힘든 설득에 나섰다. 할머니는 결국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난생처음 서울에 와서 결혼식에 참석하였다.

“내래 사돈임, 반갑습네다.”

예식이 끝나고 장인 어른과 인사를 나누었다. 할머니 표정은 창백하게 변하고 말았다. 장인 어른이 쓰는 이북 사투리 때문이었다. 사태 당시 섬에는 민심을 억누르기 위하여 서북청년들을 대거 투입하였다. 할머니는 사돈 인사를 마치자마자 말도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처갓집에서 불거졌다. 나와 아내는 신혼 여행에서 돌아와서 처갓집에 들렀다. 장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내가 가족 사진첩을 내밀었다. 시간을 때우면서 무료함을 달래라는 의사 표시였다. 사진을 한 장씩을 넘기는데, 색이 바랜  흑백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남촌리라고 쓰여있는 사진 설명이 눈을 뒤집히게 만들었다. 그 사진에는 ‘남촌리 불순분자(RAIDER) 토벌 기념, 단기 4281년 11월 13일’이라고 흰 글씨가 박혀있었다. 영문자 ‘RAIDER’가 눈길을 끌었다. 눈을 번쩍 뜨고 다시 사진을 살폈다. 사진 가운데 자리에는 미군 장교가 앉았다. 그리고 제복을 입은 삼십 여명이 총을 들고, 관덕정을 배경으로 미군 장교를 중심으로 앉거나 서있었다. 장인이 맨 뒤쪽에 서있는 모습도 보였다.

  물론 남촌리는 내 고향이다. 아버지 제삿날은 십일월 열 이튿날이다. 무자년 11월 13일 새벽 1시께, 읍내에 주둔하고 있던 군인들이 마을에 들이닥쳤다. 그 시각, 집안에서는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난 후 식구들이 모여 앉아 음복을 하고 있었다. 토벌대원들은 환히 불이 켜진 집을 덮쳤다. 이웃집에 들이닥쳐 잠자던 동네 삼촌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낸 후였다. 그들은 아버지를 잡아갔다. 나는 갓난아기 시절이라 어머니 무릎에서 잠들고 있었다. 그날 밤 서른 일곱 명이 잡혀갔다. 대원들은 사람들을 배에 싣고 머리봉 앞 바다로 끌고 갔다. 그들 가슴을 향하여 가볍게 방아쇠를 당기고 바다로 내던졌다.

저녁 시간에 맞춰 장인이 돌아왔다. 장인은 당시 어느 반공 단체 사무국장이었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공손히 엎드려 절부터 하였다.

“고향이 제주도라고? 나는 이북에서 넘어와 반공전선에서 목숨을 바치고 활동하다가 군에 자원 입대했지. 제주도에는 공비 토벌 때문에 한 일 년 머무른 적이 있었지. 당시는 빨갱이 섬이었지. 인연이로군.”

  그날 어떻게 처가댁을 나왔는지 기억이 없다.

  결혼 생활은 초장부터 삐걱거렸다.

  나는 그후 처가댁을 찾지 않았다.

  아내는 신혼 초부터 이상하게 변해 가는 나의 결벽증으로 혼자 마음 고생을 시작하였다. 


떠나자 남촌리로. 내 고향 남촌리로 떠나자. 호박잎 찜과 톳무침 그리고 자리돔 조림을 먹던 고향으로 가자. 비오면 도롱이를 입고 나막신을 신던 고향으로 가자. 그런데 정말 고향에 가서 살 수 있을까. 할머니가 그처럼 말리던 고향을 내가 왜 찾는 말인가. 안될 말이다.

비행기가 남해 위를 날기 시작하였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피안이며 영원이다. 그래서 바다는 죽음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저 바다에서 죽었다. 따르르 따르르, 총을 맞고 수장되었다.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서 용왕맞이굿을 하는 것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 사만 사천의 용신이 등장하여 익사한 이의 넋을 구제하는 내용의 본풀이 광경을 보았다. 그렇다. 용왕맞이굿을 하러 가는 것이다, 나는 지금.

그런데 내가 탄 비행기가 추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그 드넓은 바다 위에서 죽음을 상상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상상은 무법자 마냥 종횡무진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섬에는 비와 바람이 많다. 지금 당장 마른번개가 치고 마른천둥이 운다면, 폭풍우가 몰려온다면, 소나기구름 속에서 돌발적 난기류가 일어난다면, 비행기가 추락할 것이다. 비행기가 추락하면 승객은 모두 죽을 것이다. 소나기구름이 일고, 소나기가 내리친다면, 구름이 움직이는 뒤쪽에는 상승기류가, 앞쪽에는 하강기류가 생길 것이다. 상승기류에서 바람을 맞아 올라가는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하강기류가 생긴 곳에서는 비행기를 떠받쳐주는 양력이 떨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비행기 바퀴가 요란하게 굉음을 내면서 내 머리를 짓물렀다.

용왕맞이굿을 펼쳐야 한다.

북을 울려라.

징을 울려라.

무당들은 나와서 길을 닦아라.

나는 외치고 있었다.


  첫 소설집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였다.

“소설가 선생, 당신 고향이 어디요?”

  책이 전국 서점으로 뿌려지고 나서 며칠 후, 험상궂은 사나이가 출판사로 찾아왔다. 수사기관 사람이다. 임의동행 형식으로 끌려간 곳은 어느 우중충한 건물의 지하실이다.

취조실로 끌려가 심문을 받기 시작하였다.

“제주돕니다.”

“빨갱이 섬 출신이군. 당신과 당신 가족의 전력을 조사했어. 직계 존 비속 모두 말이야.”

“...........?”

사나이는 캐비닛에서 서류를 뒤적거렸다.

“자네는 빨갱이 자식이야. 빨갱이 자식이 빨갱이 소설을 써? 자네 부친이 섬 사태 때 빨갱이였지?”

“무고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저 농사만 지었습니다.”

“섬놈이 서울 바닥에서 지랄이군!”

사나이의 구둣발이 나의 안면을 향했다.

나는 기소되어 교도소로 넘겨졌다. 법정에서 실형을 받고 컴컴한 독방에서 두어 달을 보냈다. 소설집도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장인 어른이 백방으로 노력하여 형정지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교도소 문을 나오는 날 장인이 한 마디 던졌다.

“우리 나라는 반공국가지. 반공을 해야 살 수 있지.”  


  창 밖으로 섬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비행기는 착륙을 위하여 정상 루트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류가 이상 현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섬이 가까워 오자 강한 하늬바람이 불어대었다. 기체도 바람을 타면서 뒤뚱거렸다. 정상으로 하강하기에는 힘이 들어 보였다. 비행기는  굉음을 내며 비행 고도를 완만하게 낮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고향 마을에는 바람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바람 신이 고산국이라는 여자와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동생 안개신이 뛰어난 미모에 연연해하다가 둘이서 한라산으로 도망가 부부가 되어 사랑에 빠졌다. 고산국은 그들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동생 안개신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화해할 수밖에 없었다.

전설에 나오는 그 바람이 부는 것일까. 비행기는 계속 흔들거렸다. 승객들이 몸을 비틀거리며 웅성거렸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의자에 깊숙이 파묻혀 있었다. 그리고 죽음을 향한 엉뚱한 상상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 상상은 분명 죽음에 머물러 있었다. 거기에 비행기 사고를 대입시키고 있었다.

  만일 비행기가 착륙 직전에 공항의 계기착륙 장치에서, 적정 고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활공 유도장치의 움직임이 중지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될 때, 승객들은 어떤 행동을 할까?  아니면 조종사가 피곤하여 고도 작동이 불가능하다면, 육안으로 고도를 확인할 수 없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엉뚱한 상상을 비웃기나 하듯 비행기는 바람을 가르며 목적지로 접근해 나갔다. 랜딩기어도 쉽게 내려졌다. 조종사가 착륙을 시도하는 결심 고도는, 계기 착륙일 때 2백 피트 정도다. 육안 착륙일 때는 5백 피트 이상에서 결정해야 한다. 이상이 있다면, 관제탑에 비상사태를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기체에 뭔가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기면,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승객들은 어떻게 될까?

그러나 승객은 조종사를 전혀 볼 수가 없다.


  할머니의 부음을 받고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아내와는 이미 금이 가 있어 따라 나서지 않았다. 내가 일부러 아내를 멀리 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처갓집에서 본 한 장의 흑백 사진이 늘 결혼생활에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나 사진 이야기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혼자 속병을 하면서 살았다. 집 올래로 들어서자 곡소리부터 들려왔다. 상주가 없는데도 곡을 해줄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앙,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아아, 아이고 아이고.아이고, 아이고. 그래도 친족들과 동네 어른들이 모여 장사 준비를 하고 있어서 고마웠다. 그러나 너무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느꼈다. 할머니 말대로 나는 이미 서울 사람이 되어있었다.

“너네 할망은 편안하게 눈감아서.”

  초등학교 친구가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친구가 시키는 대로 수리대로 만든 방장대를 들었다. 복건도 쓰고 적삼과 저고리, 아래는 중의바지도 입었다. 겉에는 도포도 걸쳤다. 아이고 아이고, 나도 친족들을 따라 곡을 시작하였다. 시신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철저하고 완벽하게 죽음을 준비하고 세상을 뜬 할머니의 결벽성에 머리를 설레설레 흔드는 일 뿐이었다. 할머니는 당신의 죽은 뒤에 치를 장례를 생각해서, 스스로 모든 준비를 하고 저승으로 떠났다. 먼저 떠난 자신의 외아들, 내 아버지를 따라가듯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수의라든가, 안찝과 개판까지, 모든 장례 준비를 완벽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그뿐인가, 지요도 만들어 두었고, 묏자리를 미리 봐 두고 가봉분까지 쌓아올려, 자신이 누울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고 친족들이 일러주었다. 심지어 뫼를 둘러싸는 산담까지 밭 한 곳에 쌓아두었다. 자신의 무덤이 들어앉을 자리를 둘러쌓을 도래솔도 심어놓았다. 섬에서 호상옷이라고 부르는 수의를, 이 세상에서는 변변치 못하게 살았지만 영원히 가는 저 세상에서만은 편안히 살아보려는 듯 화려하게 꾸며놓았다. 재료도 최고급품으로 치는 명주였다. 담배 잎이나 좀약을 넣고 좋은 날씨에는 바람까지 쏘이면서 귀하게 다루었다.

이처럼 세상을 뜨기 위하여 대체 몇 년이나 마음준비를 했을까. 장례 준비를 해 둔 사실은 나의 짐을 덜어주고, 홀가분하게 저승에 가서 자식을 만나려는 생각이었을까. 자신을 엄격히 다스리다가, 저 세상으로 떠난 할머니를 생각하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대신 손자 노릇을 톡톡히 하며 관머리를 혼자 지키던 친구가 또 다른 호상옷을 내 앞에 펼쳤다.

“느네 부친 호상옷이여. 할머니가 만들어 놔서라. 좀처럼, 죽은 네 할망이 눈을 감지 않아. 눈을 뜨고 돌아가신 거주. 원한 맺힌 일이 너무 많은 때문이주. 마지막으로 유언으로. 너에게 꼭 네 아방 시신 없는 봉분을 만들라고 하더군. 네 아방이 바당에서 죽어, 거릿송장도 없다는 거지. 시신 없는 묘라도 만들어 망자를 위로하라는 거야. 너의 몫이라는 거주. 그리고 나서 눈을 감았주.”

나는 그때까지 아버지의 무덤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친구 이야기를 듣고서야, 내 결혼식에 왔다가 할머니가 했던 말이 퍼뜩 생각이 났다. 너네 아방 묘를 만들어야 할텐데.......시신도 없는데..........? 나는 관심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헛묘 말이여! 결혼식에 온 할머니는 엉뚱한 말부터 꺼냈다.

그 시절, 총소리가 요란하던 시절, 날송장이 눈을 뜨고 토벌대가 무장대를 번갈아  노려보던 시절, 할아버지 제삿날 잡혀간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같이 바다에 던져졌다. 어린 시절 마을 갯가에 서면 바다에서 죽음의 냄새가 풍겨왔다. 할머니는 동네 무당을 데려다가 굿거리가 펼쳤다. 곡소리가 요란하였다. 아아아,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아아,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그 후 나는 동무들로부터 ‘폭도 새끼’라고 놀림을 당하였다. 할머니는 ‘육지 것들’이라며 토벌대를 향하여 앙심을 품었다. 지구상의 모든 섬들이 육지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였다고, 섬은 죽음이고 육지는 정복이었다고, 할머니에게 배웠다.   

할머니는 혼자서 줄곧 고향집을 지켰다. 갈라지는 밭뙈기를 갈며 보리와 조 농사에 진력하였다. 매달 하숙비까지 조금씩 보내 왔다. 별을 보고 집을 나서서, 밭에서 땀을 흘리다가 별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나 잃고 하나 주었으니 손해가 아니주. 내 어린 시절 할머니가 늘 하던 말이었다. 외아들을 잃었지만 손자가 하나 있으니 다행이라는 마음보였다.

친구는 할머니가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평생 가꾸던 밭뙈기를 나에게 남기고 돌아갔다고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그 땅은 관광지 개발로 엄청난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친구는 오히려 들떠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유일한 상속자였다.

나는 장례식을 마치고 곧장 서울로 돌아왔다. 


십 분 후에 공항에 도착한다는, 승무원의 안내방송이 나긋나긋하게 들려왔다.

직박구리가 삐요 삐이요, 머리봉 나뭇가지에서 울면서 나를 맞고 잇는 것만 같았다. 지금 내가 탑승한 비행기가 내려앉을 공항은,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하던 그 시절에 살육장이다. 단꿈에 적어있는 신혼부부들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일년에 이 백만이 넘는 관광객이 활주로를 가볍게 밟지만, 그들은 희희낙락할 뿐이다.

비행기는 여러 번 착륙을 시도하였다. 기체가 낡았는지 덜덜거리는 소리가 불안하게 들렸다. 기내 시설물도 낡은 중고차와 다를 바가 없었다. 조종사가 한두 차례의 착륙을 시도하다 실패한다면, 다시 세 번째 착륙을 시도하다 실패한다면, 나의 상상은 기막히게 들어맞을 수가 있었다. 짙은 구름 때문에 갑자기 머리봉이 불쑥 나타나, 비행기의 고도를 높였다면, 꼬리 부분이 머리봉 정상에 걸리고 만다면, 뻔함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강한 하늬바람이 불고 구름이 앞을 막는다면 착륙조건이 불량해 진다면, 태풍의 간접 영향으로 폭우가 쏟아진다면, 승객들에게 뻔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머리봉을 지나자 활주로가 바로 나타났다.

나의 상상을 비웃기나 하듯, 승객들은 내릴 채비를 서두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열대성 소나기가 쏟아지고, 돌풍이 발생한다면, 기내는 수라장이 될 것이다. 기체가 수백 미터나 흩어져 나뒹굴고 산산 조각난 파편들이 사방에 흩어질 것이다. 기자들이 달려올 것이다. 생생한 현장 중계가 시도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어도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얼토당토않은 상상력을 끄집어내게 했을까. 그러나 그런 엄청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죽음의 냄새가 불러들인 고향 땅을 밟았다.  

아아, 그리운 섬. 나는 섬에 도착하여 남촌리 모래밭에 있는 여관에 몸을 풀었다. 짐을 내려놓고 밤 바닷가로 나섰다. 철썩거리는 파도가 나를 불렀다. 석양이 바라다 보이는 매혹적인 해변이, 신비와 환상을 펼치며 나그네가 된 나를 유혹하였다. 흔들거리는 거룻배와 음절이 정확한 똑딱선이 시야에 나타났다. 머리봉 가까운 숲에서 직박구리가 여전히 울고 있었다. 바다는 고통을 인내하면서 피를 흘린 역사를 용서하고 있었다. 그것은 섬만이 간직 할 수 있는 관용이었다. 섬은 관념어를 거부하고, 참혹한 아름다움을 위하여, 그냥 섬으로 남아있었다.

다음 날 아침을 맞았다. 밖에는 굵은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 텔레비전 스위치를 눌렀다. 날씨예보 순서였다. 여자 아나운서가, 섬을 향해 북상 중인 태풍이 해안으로 상륙하여,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태풍은 중심 최대 풍속 38m, 반경 1백70km 이내에는 초속 25m, 3백60km 이내에는 초속 15m의 강한 비바람을 동반하고 있다고, 태풍은 새벽 세 시쯤 섬 해안에 상륙했고, 오전 아홉 시쯤 한반도로 진출할 것이며 이미 남쪽 해상에 태풍경보, 섬과 남해 먼 바다에 태풍주의보가 각각 내려졌다고 뉴스를 마쳤다.

강한 바람이 여관까지 세차게 불어닥쳤다. 유리문이 덜컹거렸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까 그래서 이십 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 막을 내리자고 말할까. 굳이 전화를 하지 않더라도 아내는 나름대로 자신이 먼저 마음을 굳히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만 두자.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모래밭이 비바람으로 만신창이로 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릴까. 가까운 곳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귀에 익은 가락이었다. 궁상스럽게 이 새벽에 노래 소리가 들리다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 이산 저 산 양산간에 울고야 가는 건 곡소리로다.

야에~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이야 백발은 더욱 설 코나.

야에~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들었던 행상노래가 틀림없었다. 사람이 죽었을 때 불려지던 민요가 꼭두새벽에, 바닷가에서 들려오다니 오금이 바르르 떨렸다. 여자 목소리였다. 미친 여자가 아닐까. 너무 궁금하였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노래가 들리는 식당 쪽으로 향했다. 선명한 민요 가락이 너른 바다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장맛비  쏟아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어떤 여인이 오붓하게 앉아 동뜨게 노래를 뽑고 있었다. 수준을 넘는 솜씨였다. 어젯밤에 본 여관 주인이었다. 나는 우두커니 그녀 등뒤에 섰다.

 

....... 이제 오늘 성턴 몸이 저녁나절에 벵이나 들엉

야에~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부르나니 어머니요 찾는 것이라 냉수로구나.

야에~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인생 한번 죽어지면 세상 만사가 허사로구나.

야에~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등장 가자 등장을 가자 하나님 전에다 등장을 가자.

야에~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늙으신 양반 쫓지를 말지 젊으신 홍안을 꺼끄지마라.

야에~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어떠한 연유로 등장을 가나 이러한 연유로 등장을 가나.

야에~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행상을 장지까지 메고 가면서 부르던 노래였다. 죽은 자와 이별을 가슴 아파하며 부르는 슬픈 곡조였다. 동네 사람들이 죽은 망자를 둘러메고 가면서 부르던 노래였다.


...... 저승 질이 멀다 드니 창문 밖에가 저승이로다.

야에~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산에 올라 옥을 캐니 이름이 좋아서 멩산이로다.

야에~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인생 인생 불쌍한 인생 한 번 어차 죽어지면 허사로구나.

야에~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동네 여러분들 수고 많이 하시오 이 은혜도 백골난망이로다.

야에~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오늘 하루 놀아 보면 영원히 또다시 못 만나리라.

  야에~어허이어허야 얼얼얼거려서 염불이로다........


  후렴을 이을 때는 가슴이 더욱 설레었다.

  나는 그녀 가까이 다가섰다.

  인기척에 노래가 멈추었다.

  여인이 돌아보면서 얼굴을 붉혔다. 하얀 스웨터에 검정색 긴치마를 입었다. 턱이 갸름하게 빠진 사십 대 후반의 여인이었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인사를 보냈다.

“죄송합니다. 아침마다 노래하는 버릇이 되어서·····”

“어디서 배웠습니까? 행상 노래를·····”

어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초등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창은 이미 남촌리 바닷가에 있는 별장 여관을 예약해 두었다고 했다. 주인은 일본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등학교 후배라고 일러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방송국에서 만든 테이프로 연습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듣던 노래입니다.”

  나는 여인 앞으로 가서 앉았다.

“저는 선배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말입니까? 저도 친구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배님의 소설도 읽었습니다. 일본에서 번역된 소설도 읽었습니다.”   

“아, 그랬습니까?”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초등학교 시절, 선배님이 전교 어린이 회장에 출마하였을 때 열렬한 지지를 했습니다. 단상에서 소견 발표를 할 때 얼마나 열심히 박수를 쳤는지 모릅니다. 졸업 식장에서 대표로 답사를 하기로 되었는데 선배님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식장이 웅성거리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제가 송사를 했습니다. 일본에서 돌아와서는  주위에서 선배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작가가 되어 고생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별걸 다 기억하십니다·······”

나는 졸업 식장에서 송사를 읽기로 되어 있었다. 일등으로 졸업하는 아동에게 주는 교육감 상도 받을 예정이었다. 수석 졸업에 어린이 회장이므로, 상을 받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러나 일이 뒤틀리고 말았다.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로 나를 불렀다. 너무 상심하지 말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였다. 내가 받기로 되어있던 교육감 상이 보류되었다는 것이다. 송사를 읽는 일도 다른 친구로 바뀌었다. 이유를 캐묻지 말라는 당부가 뒤따랐다. 교문을 나서며, 처음으로 아버지를 원망하며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버지가 그 사태에 돌아가셨다는 사실로, 나의 출신 성분이 문제가 되었다. 아버지가 미웠다. 머리봉을 향하여 고함을 질렀다. 졸업 식장에도 나가지 않았다.

“선배님, 생각나십니까? 늙은 대통령이 섬을 방문하는 날이면, 하루 종일 신작로에 나가 지프를 기다리던 일 말입니다. 차가 나타나면 태극기를 흔들며 대통령 만세를 외쳤으며, 만수무강을 빌었습니다.”

“그런 날 집에 오면 왜 태극기를 흔들었냐는, 할머니의 역정을 참아야만 했습니다. 나는 너무 외로웠습니다. 그저 남폿불 앞에서 손을 호호 비비며 글을 읽는 것이 유일한 재미였습니다. 아버지가 그리워서, 어머니가 그리워서 심지를 돋구며 글공부만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일본으로 갔습니다.”  

“언제까지 될지 모르지만, 여기에 묵기로 했습니다. 식사까지 준비해 주면 더욱 고맙고······”

“선배님, 영광입니다.”

하늘이 터진 듯 비가 계속 쏟아졌다. 장대비가 여관을 난타하여 지붕이 흔들거릴 정도였다. 모래밭으로 파도가 하얀 포말을 만들며, 무섭게 달려드는 광경이 나타났다. 한철 해수욕장으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어, 텐트와 음식점 간판이 바람에 너절하게 흩어져 있었다. 가까운 포구에서 거룻배 서너 척이 심하게 흔들거리는 광경도 보였다.

며칠 뒤 여인은 내 품에서 흐느꼈다.

“너무 가난해서 중학교를 중퇴하고 밀항선을 타고 이모가 사는 오사까로 건너갔습니다. 4.3 사태로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만 남겨두고 밀항선을 탔습니다. 봉제공장, 신발공장, 전구공장, 안 다녀 본 곳이 없습니다. 교포 남자와 결혼했지만 실패하고, 돈 버는 일에만 열중했습니다. 나이가 들자 고향이 그리워집디다. 시신을 찾지 못한 아버지 영혼을 위로해야 할 생각이 듭디다. 아버지는 저 앞 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머리봉 꼭대기에 시신 없는 무덤이라도 쌓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같은 운명입니다.”

“모릅니까? 제 아버지와 선배님 아버지가 그해 동짓달 열 사흘 날 머리 봉 앞 바다에 수장된 걸 말입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말했습니다 ”

“········?”

여인의 입술이 내 귓불에 가까워졌다.

“선배 아버지와 제 아버지의 묘를, 따뜻한 햇볕이 드는 머리봉 자락에 마련합시다.”

  나는 양팔에 힘을 주어 여인을 안았다.

  저녁 노을이 제주 바다를 붉게 물들였다. 석양은 참혹한 붉은 색이었다. 그렇지만 내일 아침이면 눈부시도록 맑고 푸른 하늘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붉은 노을을 가슴에 안은 것은, 아침마다 여인과 더불어 푸른 바다를 바라보기 위함이었다.

나는 가방 속에 묻어두었던 원고지를 꺼내고, 정중하게 책상 앞에 앉았다. 글쓰는 일이 순조로울 것만 같았다. 밤마다 옥죄이던 가위눌림도 사라졌다. 행상 노래도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달구노래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어허렁 달구 어허렁 달구 어허렁 달구

  삼세번 소리에 들고 놓자 어허렁 달구

  사공 아이 소리끗 보멍 어허렁 달구

  좌골를디 좌골르곡 어허렁 달구

  우골를디 우골라 줍서 어허렁 달구.


언제부터인가 울어대는 직박구리가 여기가 이어도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이미 이어도에 와있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김관후

2006/05/09 16:15 2006/05/09 16:15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kimgwanhoo.pe.kr/tt/rss/response/35

고향은 지금

 

                           고향은 지금


위원장이 의사 봉을 두들겼다.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증인선서가 있겠습니다.”

증인석으로 카메라 앵글이 옮겨졌다.

한 노인이 일어서서 손을 들었다. 그의 얼굴이 모니터에 확대되었다. 노인이 손을 내리고 앉자, 위원장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우리 의원들이 문칠봉 증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것은, 증인이 무슨 죄를 졌다고 해서 수십 년 전 사건에 대한 이모저모를 묻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또 죄가 없다고 단정해서 묻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피해자 가족들에 따르면 당시 지서주임이었던 증인의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해서 리에서 비롯된 사건에 대해서 가장 잘 알 것으로 여겨 증인으로 채택하였습니다. 증인은 그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노인이 잠시 멈칫거렸다.

“지서주임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 사실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다음, 젊은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고향이 어딥니까?”

“해서립니다.”

“주임으로 얼마나 있었습니까?”

“1949년 1월 29일 부임하여 2개월 동안 있었습니다. 지서에서 공비를 잡은 것밖에 다른 기억이 없습니다.”

젊은 의원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다음은 여성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증인의 재임 동안에 사건은 일어났습니다. 일흔 두 명이나 되는 양민이 학살당했다고 피해자 가족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단체도 이 사건에 대하여 현장조사를 마치고 보고서도 작성하였습니다. 증인이 그 사건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있다고, 여러 사람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에 대하여 아는 데로 말하십시오.”

“그런 일은 결코 없습니다.”

“주임을 언제 그만 뒀습니까?”

“1949년 3월말에 그만 두었다고 기억합니다.”

“정말 해서리 사건을 모릅니까?”

“모릅니다.”

잠시 질문이 멈췄다.

몇 의원들이 귓속말로 주고받는 광경이 화면에 나타났다.

잠시 후, 또 다른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나중에 들은 일도 없습니까?”

“경찰서로 옮긴 후에도 들은 일이 없습니다.”

“자리를 옮긴 날짜를 조사하면 모두 밝혀집니다. 모르겠다고 잡아떼는 것은 허위증언이 됩니다. 증인이 주임으로 있는 동안에 한 사람이고 몇 사람이고 양민이 학살당한 일은 없다는 이야기입니까?”

“네, 없습니다. 해서리 사건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군인과 순경이 죽은 것은 압니다. 그러나 양민이 죽은 사실은 결코 없습니다. 군용차가 해서리로 오다가 신작로에서 공비 습격을 받고, 군인 한 사람과 순경 한 사람이 죽은 사실은 기억납니다.”

“재임기간에 양민이 죽은 사실을 정말 모릅니까?”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주임으로 부임한 것은 정확하게 언제입니까?”

“방금 말씀드렸습니다. 1월 29일입니다. 그리고 오래 있지 않았습니다.”

다시 젊은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육십 년 전에 섬에서 대대적인 양민 학살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금 오십 만 도민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하여 이 광경을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증인을 알고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십시오.”

“다른 마을에서 학살사건이 있었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가 재임하는 동안 해 서리는 없었습니다.”

“증인이 상급 부서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양민을 체포하거나 잡아 가둔 일도 없습니까? 단 한 건이라도......”

“그런 일도 없습니다.”

“같은 지서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손으로 사람을 죽인 일이 없습니까?”

“죽인 일이 없습니다.”

“고문을 가하거나 죽인 일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해서리 사건은 2월 6일에 일어났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증인이 근무하던 때에 일어났습니다.”

“.......? 저는 모릅니다.”


김진철은 텔레비전 스위치를 끄고 전기코드를 뽑았다. 증인석에 앉아있는 노인은 문칠봉이 틀림없었다. 카메라가 증인석으로 돌아가자마자 금방 알 수 있었다. 나이를 먹었지만, 둥그렇고 부리부리한 방울눈에 두툼하게 살이 오른 목덜미, 축 처진 군턱까지 옛 보습 그대로였다. 안방에서 어머니도 청문회 광경을 텔레비전을 통하여 보고 있었다.

문칠봉은 문갑식의 아버지다. 문갑식은 초등학교 시절 같은 해서리 알동네에 살았다. 김진철과 같은 반이어서 항상 붙어 다녔다. 죽마고우였다. 고냉이성창에서 함께 볼락을 낚거나 미역을 감았고, 학교에서 구호물자로 나온 우유가루를 받아 그의 집에서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그가 얼레를 돌리면 가오리연을 들고 한참 앞으로 나가 하늘을 향해 올리기도 하였다. 차롱착에 고구마 밥을 가득 채우고 소풍 길에 나서면 그는 쌀밥에 삶은 계란을 넣어 가지고 왔다. 서로 도시락을 바꾸어먹는 절친한 사이였다.

그와 어울려 다니다가 집에 오면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았던 기억도 났다. 그와 놀다가 온 사실을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어머니는 회초리부터 들었다. 이놈 새끼야, 너 문가 놈과 같이 다녔지? 제발 그놈 새끼와 붙어 다니지 말아. 죽은 너의 아버지가 불쌍하지도 않나, 이놈 새끼야. 그 놈이 누구 아들이란 걸 아느냐? 네 아버지를 죽인 문칠봉의 아들이여. 어머니는 핏대를 올리며 회초리로 종아리를 후려쳤다.

  그렇지만 둘은 늘 붙어 다녔다. 그의 집에 들렀을 때 문칠봉도 가끔 보았다. 문갑식은 자기 어머니가 사태 때 산 폭도에게 잡혀가 죽창을 맞고 죽었다고 했다. 집에 가보면 그는 항상 혼자였다. 토요일마다 들르는 그의 아버지는 경찰 제복을 입고 있었다. 모자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계급장과 노란 테가 아버지가 없는 김진철을 너무 주눅들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서러웠다. 문칠봉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올 때도 있었다.

하루는 문칠봉이 자기 아들과 마당에서 팽이 돌리기를 하는 김진철에게 물었다. 너 어느 동네 사느냐? 알동네입니다. 알동네 누구 아들이냐? 아버지 존함은 김 자 학 자 수 자입니다. 김학수? 김학수는 일제시대 때 내 소학교 동창인데. 너 학수 아들 맞냐? 그는 아들 친구를 꾀 유심히 쳐다보면서 더 이상 말을 잇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집에 오는 토요일이면 문갑식은 용돈을 두툼하게 받는 눈치였다. 그럴 때마다 김진철은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는 구멍가게에서 주로 알사탕을 샀다. 그가 주는 그 큼직한 알사탕은 혓바닥에서 슬슬 잘 녹았다. 그 단맛을 지금 어떻게 다 표현한단 말인가. 그렇지만 어머니에게 야단맞을 생각을 하면 늘 걱정도 들었다.

위원장이 다시 의사 봉을 두들겼다.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증인 선서가 있겠습니다.”

중인석으로 카메라 앵글이 옮겨지고 중년 사나이가 일어서서 선서를 하였다.

  선서를 마치자 위원장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우리 의회가 육십 년 전 해서리 사건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하는 것은 이 사건이 사례가 되어, 4․3의 전체적인 진상을 밝혀보자는 것입니다. 어제 의원들은 당시 지서 주임을 증인으로 세워 진상을 밝히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앞으로 여러 사람의 증언 내용을 종합하여 사건의 진실을 계속 밝혀 나가겠습니다. 오늘은 피해자 가족을 증인으로 채택하였습니다. 증인은 그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증인이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피해자 가족입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사건은 제가 초등학교 시절 일어났습니다. 분명 저녁에 어떤 사람이 집에 와서 내일 학교 운동장에 모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그 이후 소식이 없습니다.”

위원장이 질문을 계속하였다.

“고향이 어딥니까? 그리고 집에 찾아온 사람은 누굽니까?”

“해서립니다. 세월이 지나 그 사람은 기억할 수 없습니다.”

“순경입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위원장이 눈짓을 하자 다른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럼 해서리 사건의 전모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아버지는 산 폭도와 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아니면 선거를 거부하는데 앞장 선 것은 아닙니까? 그러면 반역죄가 설립됩니다.”

  “그 사건으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어머니가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는 농투성이라고 말입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분이셨습니다. 반역죄를 저지르실 분이 아닙니다.”

“아버지 시신은 찾았습니까?”

“찾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제사는 지냅니까?”

“운동장에 모인 다음 날 총살을 당했다는 소문을 듣고, 그 날에 맞춰 제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다시 다른 의원이 나섰다.

“해서리 사건에서 죽은 사람은 일흔 두 사람입니다. 그 유가족들이 모두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까?”

“같은 날 제사를 모십니다. 그 날은 동네 명절날입니다.”

“가족들이, 지서 주임은 같은 마을 사람이고, 학교 운동장에서 보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기억이 없습니다.”

“4․3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많이 죽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죄 없는 양민들도 있습니다. 이제 정부가 나서서 사실을 밝힌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본의 아니게 피해자 가족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입 한 번 벙긋하지 못했습니다. 연좌제에 묶여 꼼짝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거라도 풀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연좌제로 어떤 불이익을 당했습니까?”

“항상 감시를 받고 살았습니다. 폭도 아들이라고 말입니다. 공직에는 꿈도 꿀 수가 없었습니다.”

“지서 주임 문칠봉을 알고 있습니까?”

“저는 모릅니다. 그가 지서 주임이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가 현장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굽니까? 문칠봉을 보았다는 사람 말입니다.”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시 젊은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문칠봉을 역사의 죄인으로 몰수는 없습니다. 그 점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4․3은 너무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할 이야기가 없습니까?”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입을 막고 귀를 막아서 누구 한 사람 입도 벙긋 못했습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밝혀져야 합니다.”

“그 사건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앞으로 그 원인이 밝혀져야 합니다.”


  어머니는 방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요즘 들어 텔레비전 중계시간에 맞춰 다이얼을 돌리는 눈치였다. 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육십 년 전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는데 잠을 잘 수가 있겠는가. 문칠봉이 죄인 취급을  받는 광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이 증인으로 나선 중계방송을 보고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의원들은  문칠봉을 역사의 죄인으로 몰아갔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오죽할까.

고향은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슴에 남아있었다. 송충이를 잡는 날에 감자밥을 싸오던 동무가 그리웠으며, 너패밥을 싸오던 동무도 그리웠다. 보리껍질 죽을 먹었다고, 나무뿌리를 삶아먹었다고 푸념하는 동무들의 그 순수가 그리웠다. 마을이 소개되어 집을 잃고 중산간에서 내려온 아이들은 항상 굶고 다녔다. 그렇지만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그들의 모습이 그리웠다.

그렇지만 나이 육십이 되어서야 그 그리움이 사치임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총살당했는데, 가슴에 그 총소리가 가두어져 있는데 그걸 모른 척 하고 살아왔다. 폭도새끼라는 말이 싫어서 반공을 앞세우는 나라에서 목숨을 이어가기 위하여 경찰서 근방에 가는 것도 꺼려왔다.  그 시절 문갑식과 어울리던 막역한 우정을 지금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했다. 그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사지옷과 운동화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가 사주던 알사탕이 생각났다. 그런데 요즘 들어, 가슴에 가두었던 말못할 사연이 꿈틀거리면서 놈은 순경 새끼이며 나는 폭도새끼라는, 나는 주홍글씨를 달고 험하게 살았다는 대상 없는 항변까지 하게 되면서 씁쓸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전교생 가운데 보드라운 사지옷을 입고 다니는 놈은 문갑식 뿐이었다. 모두가 물들인 광목 천으로 만든 볼품없는 교복 아닌 교복을 입던 그 시절, 그는 주름이 곱게 선 사지옷을 입고 늠름하게 학교에 나와 동무들의 부러움을 샀다. 동무들이 입은 광목천 옷은 구겨졌는데 놈의 사지 옷은 천이 부드럽고 구김이 가지 않았다. 놈이 입은 사지옷은 다림질을 하면 할수록 더 윤이 나는 것만 같았다. 너 사지옷 어디서 났어? 응, 우리 아버지가 미군 부대에서 가져왔어. 미군들 입던 옷이지? 응 그걸 물들였어. 너의 아버지 순경이니까 좋겠구나.

그러나 그 미제 사지옷이 이제는 부럽지가 않다. 당시 미군들은 사지옷을 입고 휘파람을 불며  겁을 주었다. 당시 전교생 가운데 운동화를 신은 놈도 문갑씩뿐이었다. 검정고무신을 신기만 해도 너무 신이나 흡족한 마음으로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다. 동무들은 행여 새 고무신이라도 사면 동네 고랑에 빠지지나 않을까 걱정이었다. 심지어 짚신이나 남신을 신고 오는 동무들도 많았다. 점차 이것들이 사라지면서 이 자리를 고무신이 차지하였다. 고무신을 신고 다니다가 찢어지면 어머니가 실로 꿰매거나 헝겊과 고무로 땜질해 주었다. 밭에서 일하다 흙이 묻어도 금방 벗어 털어 내면 그만이고 옆에 개울물이 있으면 물로 씻어 내 햇볕에 말렸다. 명절 때 고무신을 사러 장에 간 어머니를 집밖에서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그렇지만 문갑식은 늠름하게 운동화를 신고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그는 또래 동무들과도 달랐다. 사지옷에 운동화, 그리고 항상 알사탕을 입에 물고 다녔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문칠봉이 4․3 사건 증인으로 의사당에서 죄인 취급을 받고 있었다. 세상이 변하고 있었다.

그 시절 동무들은 문갑식을 양코배기라고 불렀다. 미군 옷을 성내 동문시장에서 사다가 집에서 검은 물을 들여서 입었고 운동화도 미군 부대에서 아버지가 갖고 왔다. 미제 장난감에 미제 우유가루도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는 동무들 부러움을 사면서부터 왕 노릇을 하였다. 그는 동무들과 다른 별천지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산 폭도들에게 어머니 목숨을 빼앗겨서 그런지 혼자 있을  때는 늘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너네 어머니 산 폭도에게 죽었나? 응. 우리 아버지는 토벌대에게 총 맞았다. 그래? 어머니 보고 싶어? 응, 넌 아버지 보고 싶어? 응. 그와 나누던 추억이 차츰 이제 아픔으로 변하고 있었다.


“오랜만이여.”

“야, 어쩐 일이고? 양코배기!”

사무실에서 신문을 뒤적거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김진철이 여보세요, 하고 수화기를 들자마자 문갑식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왔다. 얼굴이나 보자.”

“그래, 양코배기!”

육 오십 줄에 들어섰지만 그를 양코배기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옛 별명이 스스럼없이 튀어나왔다. 그는 가끔 서울에서도 전화를 주었다. 고향에 내려올 때도 만나보기가 힘들었다. 며칠 전에는 텔레비전에서 그의 아버지 문칠봉을 보았는데, 오늘은 느닷없이 전화를 주었다. 그러나 솔직히 속마음은 달갑지 않았다.

“저녁에 해서리 어촌계 횟집에서 만나자. 다른 친구들도 몇 명 모인다고 했어.”

“해서리? 그래.......”

그는 다짜고짜로 만날 장소까지 결정해 놓았다. 그런데 놈이 갑자기 웬일일까. 벌초 때나 집안에 경조사가 있을 때 가끔 서울에서 내려와 전화 연락을 하는 일은 있는데 얼굴을 서로 맞대는 일은 드물었다. 문칠봉이 텔레비전에 나타나 정신을 어지럽히더니, 아들놈까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을 하고 김진철은 해서리로 차를 몰았다. 도로가 쭉쭉 뻗어 시내에서 삼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그런데 이처럼 가까운 고향이 마음에서 자주 멀어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기억이 아픔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어촌계 횟집은 북적거렸다. 초등학교 동창들은 문갑식을 중심으로 십 여명 들러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여자 동창도 몇 명 눈에 띄었다. 정기 모임에는 얼굴도 비추지 않는 친구들이, 그가 나타나면 거의 참석하여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서울에서 돈 많이 벌고 출세한 사람은 틀렸다. 음식도 푸짐하게 차려졌다. 술판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늦었습니다.”

김진철은 구석 자리를 겨우 차지하고 앉았다.

문갑식이 김진철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했다.

“.......해서리를 생각하면 먼저 너희들이 떠오른단 말씀이야. 고향에는 순수가 있으며, 감성이 있으며, 자연과 뛰놀던 원초적 삶이 있지. 악동 노릇을 하던 개구쟁이 시절이 떠오르고, 청운의 꿈을 심어준 선생님들이 고맙게만 느껴지지.”

그는 사업가답게 말솜씨도 청산유수였다. 김진철에게 소주잔을 돌리는 여유도 보였다.

“방금 진철이가 왔는데, 나와 진철이는 알동네 불알 친구지. 매일 붙어 다녔으니까. 저 놈 아버지하고 우리 아버지도 일제시대 소학교 동창이지. 그런데 말이야, 저 놈만 보면 생각나는 게 있어. 우리 학교 다닐 때 교사는 일제시대 때 사용하던 슬레이트 목조건물을 그냥 쓰고 있었지. 그 본관 동서 쪽에 우물이 있었지. 나는 진철이와 머리를 처박고 두레박으로 물을 떠올리고 벌컥벌컥 떠 마셨지. 그 물맛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마시는 양주 맛보다 낫지. 그렇지, 진철아?”

김진철은 얼굴을 붉히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소주 한 잔을 벌컥 목젖으로 넘겼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가 더욱 소원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텔레비전에 나타난 문칠봉의 때문일까. 아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그렇게 말리던 그와의 만남을 껄끄럽게 여겨서 그럴까. 문가 놈이 너네 아버지 죽였구나. 살릴 수 있는 너네 아버지를 죽인 거여. 하루는 문가 놈 찾아가서 너네 아버지 묻은 곳만 알려주라고 했지. 시신만 찾아 달라고 했지. 문가 놈은 등을 돌려 불어라. 모르겠다고 하면서 말이야. 그렇지만 지금은 그를 거들어야 했다.

“갑식이는 우리들에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을 실제로 보여준 놈이야. 녀석이 삶 자체가 유별났지. 저 놈은 잊어버렸을 거야. 오 학년 때인가? 저 놈을 따라 처음으로 시내 구경을 갔지. 그리고 갑식이 아버지가 사는 경찰관 관사를 찾아갔지. 그런데 말이야, 온돌방에서만 살던 나는 일본식으로 꾸민 집에 들어가 보고 놀라 자빠지고 말아서. 방에는 다다미가 깔려있고 난생 처음 양변기를 구경했어. 그때까지 우리는 화장실이란 말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지. 우리 그때 돋통이라는 곳에서 대소변을 처리하지 않았나? 그때 우리 집 밥그릇보다도 깨끗한 그 양변기를 보고 그만 가슴이 쿵쿵 뛰기까지 했어. 정말 놀랐지. 별 세상이었어”

김진철이 거들자 동창들은 그래 그래,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느닷없이 어떤 녀석이 불쑥 나섰다.

“텔레비전에 나온 양반이 자네 어르신네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