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허능창 어허능창, 어화로다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늘 하루 혼자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검은오름아, 민오름아, 밝은오름아, 천아오름아, 어화능창 어화로다. 청산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등장 가세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하느님의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당오름아, 세미오름아, 검은이오름아, 아부오름아,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던 길로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허능창 어허능창, 어화로다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어머니 주위를 드리우고 있다. 여든이 넘었으니 으레 그러리라 여기고, 그녀의 통과의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주위 누구도 그녀에게 밀어닥친 마지막 종장을 뒤로 제쳐두고, 엉뚱한 곳에 정신이 팔려있다. 그것은 요즘 들어 더욱 심해지는 그녀의 치매 때문이리라. 나와 아내는 물론이거니와, 진정 우리 집안의 어르신이며 아버지 역할까지 도맡아 하는 큰아버지도 마찬가지이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주위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더 심해 가는 어머니의 미친 행동-옳고 그름을, 같고 다름을 가리지 못하는 치매현상-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문제다. 그녀의 흐트러진 행동이 심해지면서, 기억력도 유난히 떨어지고 있다. 혼자 앉아서 하나 둘, 하며 셈을 하다가도 다섯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한다. 의사는 그녀를 진찰하더니 보속현상이라는 어려운 말을 썼다. 보속이 뭐냐고 내가 재차 묻자, 보속이란 일정한 말과 행동을 하는 충동이 존속하면서, 똑같은 말과 행동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원까지 동행한 큰아버지는 내가 죽을 놈이야, 엉뚱한 소리를 토해 내면서 선 기침을 했다. 큰아버지는 나에게 항상 큰 바위이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더욱이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마을 비석거리로 나서는 것이 요즘 생활이다. 오늘도 그곳을 서성거리다가 돌아온 것이 분명하다. 어째서 혼이 빠지면서부터 비석거리를 찾는단 말인가? 글자가 거의 마멸되어 누구의 비석인지도 모를 정도로 풍상을 이겨 온 비석 돌들을 이리저리 살피거나 쓰다듬다가, 허탈한 표정으로 대문을 열고 그냥 들어선다. 대체 사람들이 지탄받는 옛 탐관들의 불망비나 선정비에 무슨 미련이 있단 말인가.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그녀는 난간으로 올라서며 부루퉁한 표정까지 지었다. 비석거리에 다녀오십니까? 마루로 들어서는 그녀에게 짐짓 물었다. 자네 부친 거기에 계신 줄 알아서 가보니까 안 계셔. 또 딴소리다. 그녀는 매일 아버지의 흔적을 찾고 있다. 오십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승에 계신 분이 어떻게 비석거리에 나오시겠습니까? 이제 그만 하십시오. 추워지고 있습니다. 아니야, 자네 부친이 거기로 오신다고 하셨어, 그렇지 않으면 석 삼자 표시라도 그려 넣는다고 하셨어. 그것은 오십 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오십년 전 약속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되살리려고 하고 있었다. 당시 아버지가 한 다짐-내가 살아 있다면 가운데 비석에 석 삼자 표를 해 놓겠다-을 되살려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미친 탓이리라. 그녀는 마루를 건너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아아, 한참 동안 아무 기척이 없다가 목청을 내어 불러 대는 상여 노래를 계속 중얼거리리라. 어화능창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아버지는 농업학교 교실에서 해방의 기쁜 소식을 들었다. 6학년 졸업반이었다. 세상이 변하면서 생각 없이 온갖 잡것이 밀어닥쳐, 무엇이 붉고 무엇이 흰지 모르던 어두운 시절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는 시골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읍내 무근성에서 큰아버지와 자취를 하였다. 큰아버지는 미군정이 법령에 따라 설립한 경찰에서 근무를 갓 시작한 신참 내기 순경이었다. 큰어머니도 농사를 지으며 고향을 지켰다. 고향이 읍내와 가까운지라, 별 불편 없이 생활하였다. 어머니와 큰어머니는 번갈아 가며 쌀과 땔감과 김치를 등에 지고 줄곧 자취방으로 날랐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그러나 해방을 맞은 섬사람들은, 또 다른 갈등을 낳을 조짐을 곳곳에서 내비쳤다. 본토와 일본에서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구는 급격히 늘어났고, 농업 생산력은 급격히 떨어져 식량난에 허덕거려야 했다. 주식인 보리농사까지 대 흉작을 기록하였다. 해방 전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으니 오죽하랴. 사람들은 뭍에서 바다로 일터를 옮겨갔다. 톳과 우뭇가사리 미역을 채취해 먹으면서 목숨을 이어갔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식량난은 농사가 흉작인데도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미군정의 정책 부재라고 믿기 시작하면서 불만이 터져 나갔다. 미군들은 그들이 그처럼 믿던 자유 시장경제를 일단 취소하고, 일제가 시행했던 곡물 수집제도를 부활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그렇지만 도민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미군정의 정책에 맞서 곡물 수집 거부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배고파서 못살겠다. 여기에는 물론 학생들이 앞장섰다. 사나흘이 지나기가 무섭게 쌀값이 배로 폭등하고 서민들의 생활은 생지옥 도탄으로 신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기아에 허덕이게 되었으며 쌀을 달라는 아우성은 날로 높아 가기만 하였다. 해방은 바로 배고픔이었다. 이러한 어려운 사회상은 읍내 거리에 나서면 더욱 실감이 났다. 소위 무산대중이 주로 이용하는 읍내 어느 식당에는, 오전부터 남녀노소는 물론 어린아이를 부둥켜안은 가여운 여인들이 찬바람을 맞으며 한 끼를 구하려고, 길가에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을 이어갔다. 모리배는 늘어가고 선량한 사람들은 도탄에서 신음하였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결국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1947년 8월 15일 정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관덕정 마당에 울려 퍼졌다. 골목골목에 숨어 있던 학생들이 미국 물러나라! 고 외치며 뛰쳐나왔다. 주로 농업학교와 고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구호와 함께 삐라도 대량 살포하였다. 삐라는 미군정 당국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학생들은 계속 골목에서 뛰쳐나왔다. 벼락 시위였다. 돌멩이에 삐라를 말아 뭉치가 되게 만들고, 그것을 생고무 줄에 여러 번 감고 공중으로 던지며 구호를 외치다가 곧 분산 도주하였다. 거기에는 중학생과 어린 초등학생까지 끼어 있었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미국을 믿을 수가 없다. 배고파 못살겠다. 통일정부 수립하자. 학생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아버지는 그 데모의 주모 학생이었다. 그 관덕정 삐라 사건으로 아버지는 결국 경찰에 잡혀가는 신세가 되었다. 경찰관이 된 큰아버지가 백방으로 힘을 써 봤지만 막무가내였다. 열 여드레 동안 철창신세를 졌다. 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하였다. 배가 불기 시작한 어머니는 유치장으로 면회를 갔다. 그 뱃속의 아이가 바로 지금의 내가 아닌가. 그런데 석방되어 철창 밖으로 나온 후 아버지는 누구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고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어머니도 찾지 않았으며 묵은성 자취방에도 발을 끊었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한라산에 진지를 구축한 유격대와 합류하기 위하여, 밤길을 타서 산으로 올라갔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형제는 비록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라졌지만, 당시 상황으로 봐서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사상으로 올가미를 씌울 줄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가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라져도 별일이 없을 줄 알았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전화벨이 울렸다. 김 선생님, 모친께서 비석거리에 쓰러 지셔서 지서로 모시고 왔습니다. 얼른 이리로 나오십시오. 입에 거품까지 물고 계십니다. 서로 눈인사를 하고 지내는 마을 지서 주임이 수화기에서 건네는 내용이다. 고맙습니다. 백부님께서도 여기에 와 계십니다. 그렇습니까? 금방 그리로 가겠습니다. 어머니는 또 비석거리로 나가서 일은 저지른 모양이다. 지서에서도 큰댁에 먼저 전화를 건 모양이다. 큰아버지는 아버지가 없는 나에게 아버지나 마찬가지다. 나를 친자식 마냥 대하였으며 늘 마음을 놓지 않고 돌봐 주었다. 어머니에게도 너무 극진하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늘 옆에 있다. 나는 얼른 윗도리를 걸친다. 아내는 대문을 나서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며 시어머니가 일을 벌였구나, 하며 한숨을 지었다. 헐떡거리며 지서에 가보니 어머니 등에는 그래도 홑이불이 덮여있었다. 큰아버지는 나무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나를 보자 반가운 눈치다. 얼른 등에 업게나. 큰아버지가 앞장을 서고, 나는 어머니를 업고 뒤를 따른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무자년 그 해, 사월 초하루 어스름 녘이었다. 어머니가 오들오들 떠는 어둠별을 헤아리며 부엌에서 나왔다. 소소리바람이 매섭게 살 속으로 스며들었다. 밖은 생각보다, 바람이 불어 차고 매웠다. 그녀는 남산같이 부른 배를 움켜잡고 뒤뚱거리며 장항 굽으로 향하였다. 장항들은 대나무 숲 바로 안쪽에 놓여 있었다. 겨우 된장 항아리를 눈짐작으로 찾고,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바로 그 때였다. 숲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사람 낌새가 틀림없었다. 덜컹 겁부터 났다. 소리 나는 쪽으로 귀를 바싹 기울였다. 다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섬뜩했다. 긴장을 풀지 않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토벌대 놈들이 아닐까. 아버지가 집에 찾아올까 봐, 놈들이 감시를 한다고 누군가가 들려준 말이 번득 스쳐갔다. 여보. 아버지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여보. 산으로 올라갔다는 아버지가 분명했다. 덜컹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버지가 대나무 숲을 헤치고 얼굴을 비죽 내밀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손짓을 보냈다. 숲으로 들어오라는 신호였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아버지의 몰골은 너무 볼품없었다. 턱수염이 산 폭도 형상 그대로였다. 토벌대들의 눈을 피해서 어떻게 집까지 찾아왔을까. 어머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얼른 잔걸음으로 숲으로 들어갔다. 곧 떠나야 돼. 앞으로 이틀 후, 사월 초사흘 새벽에 사건이 벌어질 거야. 새벽 두 시야. 꼼짝 말고 집에 있어야 돼. 그리고 한 사나흘 지나거든 비석거리에 나가 봐. 가운데 비석에 내가 석 삼자를 그려 넣을 거야. 그걸 확인하면 내가 살아난 줄 알고, 그 표시가 없으면 죽은 줄 알고 제사라도 지내 줘. 잠시 침묵이 깔렸다. 여보, 잠깐 방으로 들어갑시다. 그럴 시간이 없어. 아버지는 어머니의 솟아오른 배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여보, 옷이라도 갈아입고서 가요. 어머니는 눈물을 찔끔거렸다. 지금 읍내로 가 봐야 돼. 형님을 만날 생각이야. 우리 산군들이 초사흘 새벽, 온 섬을 덮칠 거야. 읍내 경찰서와 마을 지서들, 그리고 우익 반동분자들을 박살낼 거야. 앞으로 인민대중이 주인이 되는 그런 공평한 세상이 올 거야. 그때까지 반동분자들이 발악하겠지. 당신은 친정에 가서 몸을 피하고 있어. 토벌대가 마을을 덮칠지 몰라. 어머니는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였다. 여보, 잠깐만. 어머니는 집안으로 얼른 들어가더니 옥양목으로 만든 겹두루마기를 들고 나왔다. 남편이 결혼식 날 입었던 고동색 두루마기였다. 산에서 추우실 겁니다. 고마워. 해산날이 가까웠으니 몸조리 잘해야지. 남편은 두루마기를 받자마자, 번개처럼 대숲을 빠져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어머니는 넋 빠진 채 우두커니 서서 어둠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머니는 자리에 드러눕더니, 꿈쩍하지 않았다. 시간에 맞춰, 아내가 들여놓는 미음을 끼니마다 한 두어 모금 들이킬 뿐, 벽장만 바라보고 누워 있다. 바깥나들이는 아예 접어두고, 늘 읊조리던 어화능창 어화로다, 를 반복할 뿐이다. 덩달아 끙끙거리는 신음 소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졌다. 죽음이 다가서고 있음이 분명하다. 며칠 후, 큰아버지가 사랑에 누워 있는 그녀를 안방으로 옮기라고 일렀다. 가족들이 요 네 귀를 잡고 어머니를 옮기고 나서, 머리를 동쪽으로 눕혔다. 아내는 어머니가 늘 신고 다니던 코고무신을 대문 쪽으로 돌려놓고, 지팡이는 입구에 세워 놓았다. 그녀의 운명을 기다리는 일만 남아있다. 그렇지만 저승 문으로 떠나는 일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아내는 어머니 곁에 붙어 앉아서 미음을 한 숟가락씩 떠 먹이기 시작했다. 입술이 마르지 않도록 죽을 발라야 하네, 마르면 저승길에서 목이 마르게 되어 있어.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큰아버지가 아내에게 자상하게 이르는 말이다. 나는 그저, 그녀가 저승으로 가는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갑자기 무서움을 느꼈다. 얼마쯤 지나면 그녀의 운명이 눈앞에 펼쳐지리라. 눈동자도 흐릿하게 초점을 잃게 되리라.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눈만 감으면 한 많은 세상과 이별하게 되리라. 누가 말했던가. 죽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을수록, 슬픔도 더 크리라고 말이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소식을 듣고 이웃과 친족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들도 어머니의 운명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숨넘어가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웅크리고 앉아 있을 태세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나는 앞으로 닥칠 슬픔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여러 날을 지새운 탓인지 두 눈이 움푹 들어가고 몰골도 더 지저분해졌다고, 옆에서 누군가 일러주었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의 인사 치례리라. 목도 쉬었으며 움직일 기력조차 없다. 그렇지만 아내는 어머니의 깡마른 손을 꼭 잡고 앉아 있거나 미움을 입술에 바르거나 하는 일을 쉬지 않고 반복하였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큰아버지가 안방에서, 서울에 있는 종형에게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숙모가 심상찮다. 나도 덩달아 아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할머니가 운명하실 것 같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늘 하루 혼자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대나무 숲에서 어머니와 헤어진 아버지는, 큰아버지가 사는 읍내로 향하였다. 밤길은 너무 적막하였다. 하늘에 떠 있는 별들도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아버지는 묵은성 자취방을 행하여 줄달음쳤다. 밤 열 시를 넘긴 시간에 묵은성 물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취방은 큰길에 위치하여 나름대로 훤한 터라, 다른 사람의 눈에 띌 염려가 있었다. 들키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했다. 살금살금 낮은 울담으로 다가서서 마당으로 펄쩍 뛰어 내렸다. 큰아버지는 초저녁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여닫이창 가까이 다가섰다. 문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들겼다. 집주인은 안채에서 잠들고 있어, 사람이 들어선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늘 하루 혼자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형님, 접니다. 처음은 대답이 없었다. 깊은 잠에 빠진지라, 바깥 낌새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형님, 접니다. 숨죽이고 다시 불렀다. 큰아버지는 잠결에,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듣고,. 번득 잠을 깨었다. 삐라 사건으로 유치장에 들어갔다가 나와 행방불명된 동생 목소리가 분명했다. 반사적으로, 머리맡에 풀어 넣은 권총을 잡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일을 대비하여 항상 준비는 철저해야 했다. 문고리를 쥐고 문을 살짝 열었다. 숨죽이고 문틈으로 바깥 동정을 살폈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담벼락에 나타났다. 형님. 다시 들렸다. 동생 목소리가 분명했다. 움직이는 낌새가, 간데온데없이 사라진 동생 거동이 틀림없었다. 급히 총을 거두고 문밖으로 나왔다. 신발을 꿰고 얼른 그림자가 움직이는 쪽으로 다가갔다. 동생의 손을 붙들고 대문 밖으로 나왔다. 집주인이 눈치 채면 큰일이었다. 너, 생각대로 폭도가 되었구나. 큰아버지가 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 폭도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형님은? 반동분자가 아닙니까? 아버지의 반응은 단호하였다. 너, 귀순해라. 자수하면 목숨만이라도 붙일 수 수 있어, 내가 약속하마. 동지들을 배신하란 말씀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이제 미국 세상이야! 미 제국주의자들의 조국 분단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제발, 나와 함께 지서에 가서 자수하자, 목숨은 붙어 있어야 하느니라. 미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친일파와 우국 인사도 총알 밥이 되어야 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유격대가 행동을 개시합니다. 사월 삼일 새벽 두 시입니다. 내일 자정이 지나면 완전 무장한 산군들이 곳곳에 잠복하였다가 기관총과 박격포로 중무장한 반란 군인들과 합류하여 경찰서와 도내 지서들, 그리고 우익 반동분자를 제거할 것입니다. 그 말을 하러 왔습니다. 제발, 내일은 경찰서로 나가지 마십시오. 큰아버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지만 이미, 모슬포에 주둔한 9연대 소속 군인들까지 산군과 합류한다는 정보를 듣고 있었다. 그렇지만 풍문에만 듣던, 동생이 산군의 일원임을 확인하고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너희 폭도들은 결국 개죽음을 당할 것이며, 너희들이 원하는 이상 국가는 결코 세워지지 않아. 미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와 무기를 소유하고 있어. 제발 제 말을 잊지 마십시오. 초사흘 새벽입니다. 아버지는 말을 마치자마자 번개처럼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형은 동생의 뒷모습을 넋 빠진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어둠 속으로 젊은 산군이 사라져 갔다. 그러나 사월 삼일 새벽, 산군은 섬 마을 지서마다 수류탄을 던져 박살을 내었지만, 읍내 습격은 포기하였는지 오히려 평온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읍내에는 군인과 경찰들이 상주하고 있어, 공격을 포기했으리라. 오늘 하루 혼자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둠이 깔리자 일가 친족들이 사랑과 마루, 마당까지 꽉 메워 나갔다. 서울에 사는 종형도 대학에 다니는 아들도 마지막 항공편으로 도착하였다. 모두들 어머니의 운명을 통상의례로 받아들이고 덤덤하게 자신이 할 일을 서두르고 있었다. 오늘밤을 넘길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이미 장례 준비에 들어간 분위기이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큰아버지가 마당을 휙 둘러보더니, 무겁게 입을 연다. 원미를 입으로 넣어보게. 운명할 시간인데 월 꾸물대는가? 아내에게 이르는 말이다. 큰아버지의 말뜻대로 앞으로 치러야 할 모든 장례 절차를, 자신이 주도한다는 의도가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나무랄 사람은 없다. 실질적으로 모든 일에 있어서 지금까지 아버지 역할을 해 오지 않았는가. 아직 이릅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보겠습니다, 백부님. 내가 처음으로 고집을 부리자, 큰아버지는 한발 물러서는 눈치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머니의 목숨은 너무 질긴 것이 아닐까. 너무 오래 산 것이 아닐까. 아내는 꿀과 소주를 탄 죽을 숟가락으로 떠서 한 숟갈 한 숟갈 정성을 불어넣으며 어머니 입을 벌려 나갔다. 끄르륵 끄르륵, 죽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정말 이럴 수가 있는가? 눈을 감을 줄 알았던 어머니의 눈동자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숨결까지 가늘게 떨며 팔딱거렸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으으음… 으으음… 가벼운 신음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사람들의 시선도 모두 안방으로 모아졌다. 아내의 숟가락 놀림도 빨라졌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생기를 찾으며 되살아났다. 나 저승에 못 가고 돌아왔다! 그녀가 사흘만에 입을 열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기까지 하였다. 나 저승 문에서 돌아왔다! 신랑이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빨갱이는 저승에서도 받아주지 않은 모양이야. 아, 봉분이 없다고 돌려보낸 것이 틀림없어. 신랑 헛봉분이라도 만들어야 손잡고 함께 가지. 모두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큰아버지도 눈을 둥그렇게 뜨면서, 두어 번 헛기침을 하였다. 아주버님, 내 숨 거두거든 내 곁에 우리 신랑 봉분도 쌓아 주십시오. 헛봉분이면 어떻습니까. 신랑 손잡아 저승 문으로, 같이 들겠습니다. 네, 어머님. 멈칫거리는 큰아버지대신, 내가 대답하였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십 년 세월을 빨갱이 마누라로 살아온 분이 아니던가. 내가 빨갱이 새끼로 살아온 것은 아무 것도 아니리라. 그녀가 눈이 쉬 감기지 않은 것은 원한 맺힌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러리라.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그녀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일어나, 가족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말하였다. 그러고 나서 조용히 세상과 하직하였다. 나는 두 손으로 조용히 어머니의 눈을 내리 쓸었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큰아버지 헛기침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일가 사람들은 망인의 유언대로 아버지 봉분에 대하여 의논을 시작하였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헛봉분이라도 쌓고 비석이라도 세워야 하겠습니다. 나는 큰아버지 눈치를 살폈다. 큰아버지는 계속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합시다. 다른 친족 어르신들이 먼저 어머니 유언에 동의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나는 큰아버지 눈치만 살폈다. 그의 무거운 입은 한참 열리지 않았다. 백부님이 결론을 내리셔야겠습니다. 내가 다그치자, 마지못해 나섰다. 그거 안돼. 내 동생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밝힌 다음에 제사라도 지내야지. 혹시 아는가? 살아서 북쪽에라도 넘어갔는지? 일본으로 피한 사람들은 조총련에 가입하여 북조선으로 갔다는 말도 있어. 어화능창 어화로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큰아버지가 결론을 내렸다. 그 말이 떨어진 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청산 백옥이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산으로 오르는 길은 막혀 버렸다. 군과 경찰은 산 폭도 섬멸이라는 합동토벌 작전을 자행했다. 산군 최후의 보루라는 산 아지트까지 집중 공격하여 박살내기 시작했으며, 산군도 마지막 발언으로 이에 대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한라산 능선에는 수십 명의 산군이 집단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렇지만 나뭇가지에 여자용 흰 저고리를 메어 달고 투항하는 산군도 생겨났다. 청산 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청산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큰아버지는 토벌대 분대장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상급 부대에서 한라산 능선을 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어승생악 깊은 골짜기에 자연 동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졸개들은 분대장의 명령에 따라 숨을 죽이고 동굴을 향하여 살금살금 앞으로 나갔다. 순간을 놓친다면 죽음밖에 없었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순간을 놓칠 수가 없었다. 분대장이 발포 명령을 내렸다. 탕, 탕, 탕탕, 탕탕탕. 총소리가 콩 볶듯이 산골짜기를 흔들었다. 청산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사격을 계속하라! 동굴 안으로 진격하라! 잠시 후 대원 서넛이 안으로 몰려갔다. 그들은 축 늘어진 시신 하나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왔다. 청산 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한 놈밖에 없습니다. 죽은 산군은 학생 티를 갓 벗은 이십대 초반 젊은이였다. 유별나게, 몸에는 두툼한 두루마기까지 걸쳤다. 온몸에 피가 낭자하여 볼 나위조차 없었다. 비품과 서류를 지키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분대장이 앞으로 나섰다. 고개를 들어올리게. 졸개 하나가 젊은 산군 모자를 벗겨 내고 머리를 양손으로 바쳤다. 으음…분대장이 긴 신음을 토했다. 그리고 등을 돌리고 한라산 부악을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시신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 차에 싣게. 아는 사람입니까? 왜, 잔소리가 많은가? 아닙니다, 다만… 시신을 공동묘지로 옮겨서 가봉분을 해 두게. 나중에 그 위치만 나에게 말해주고. 청산 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동굴 안에서 사살된 산군은 동생이 분명했다. 물론 시신을 처리하라고 명령을 내린 분대장은 형이었다. 청산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검은오름아, 민오름아, 밝은오름아, 천아오름아, 어화능창 어화로다. 당오름아, 세미오름아, 감은이오름아, 아부오름아, 어화능창 어화로다.
청산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헛봉분이라도 쌓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한 많은 세상을 뜬다. 그렇지만 일가 친족들은 큰아버지 뜻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처럼 고집을 부리는데 막을 수가 있겠는가. 이 집안 어르신네가 아닌가. 그렇지만 가족들은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헛봉분 문제는 없었던 일로 그냥 묻어 두고, 장례를 치르기로 한다. 큰아버지가 헛기침을 하자, 밖에서 있던 조카 둘이 안방으로 들어선다. 양쪽에서 시신을 들고 머리를 북쪽으로 가게 반듯하게 눕힌다. 시신이 편안하게 자리를 잡자, 큰아버지가 하얀 솜으로 망자의 입, 코, 귀를 막는다. 입을 꽉 다물도록 얼굴을 바로 한 다음 머리도 반듯하게 괸다. 그리고 아내에게 팔과 다리를 주무르게 하더니, 망자의 배 위에서 오른손을 왼손 위로 가지런히 얹어 놓는다. 그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삼을 꺼내더니 망자의 어깨와 손과 무릎과 발목을 흐트러지지 않게 묶어 나간다. 큰 숨을 몰아쉬면서 홑이불을 시신 머리끝까지 덮는다. 그리고 병풍으로 시신을 가린다. 정시가 시신에 덮었던 적삼을 다시 든다. 망인이 늘 입던 나들이 적삼이다. 마당으로 나서서 동네는 기다렸다는 듯 지붕 용마루로 천천히 올라 북향을 향하여 우뚝 선다. 왼손으로 그 적삼의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 옷 허리를 잡아서 치켜올리며, 청주한씨팔십복! 하고 아주 익숙한 솜씨로 세 번 외친다. 누군가가 따라서, 청주한씨팔십복! 하고 외친다. 그 소리도 세 번 반복된다. 까마귀 한 마리가 먼 산을 향하여 푸드득 날아간다. 청산 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던 질로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벌초 때 마을 공동묘지에서, 그것도 밤중에 낫을 들고 풀을 베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공동묘지 동쪽 끝 무덤에서 혼자서 흥얼거리며, 벌초를 한다는 것이었다. 미친 사람처럼 봉분에 올라가 가시나무와 칡넝쿨, 잡초들을 잘라 내어 차곡차곡 쌓아 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큰아버지가 틀림없다고, 알동네 선배가 알려주었다. 자네 백부가 틀림없어. 그럴 리가 있습니까? 몇 년 전에도 제사를 지내고 오다가 어화능창, 하고 노래를 부르며 풀을 베는 자네 백부님을 보고, 형님 아니십니까? 하고 내가 불렀지. 그런데 눈 깜짝 할 사이에 사라지셨어. 내가 헛것을 본 것일까? 하필이면 왜 제 백부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 아니던가. 큰아버지는 분명 상여 노래를 구슬프게 부르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공동묘지에서 누구 무덤을 다듬는단 말인가. 어화능창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늘 하루 혼자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청산 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등장 가세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하느님의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하느님의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던 질로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그런데 말이야, 몇 년 전 벌초 때인가? 매년 당할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엘 가 보았죠. 분명히 방금 잡풀을 벤 흔적이 남아 있고, 무덤 앞에는 ‘學生金海金氏之墓’라는 돌비석이 있더란 말씀이주. 자네 집안이 김해 김씨 아닌가? 알 동네 선배가 전해 준 말을 듣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얼마 동안 마을을 조리다가 날짜를 잡고 그 곳을 찾아가서, 그 봉분이 김해 김씨의 묘임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저 세상으로 떠난 김해 김씨가 어디 한두 사람인가. 세상에 쌓이고 쌓인 것이 김해 김씨 아닌가. 그리고 우리 집안이 김해 김씨라서, 혹시 먼 친척 분 벌초라도 큰아버지가 하는 것이 아닐까. 큰아버지가 집에 들렀을 때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밤중에 공동묘지에 나가신 일이 있습니까? 내가 물으니 미친 소릴 하는구먼, 하며 고개를 획하고 돌려 버렸다. 능청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힐끗 노려보며 얼굴까지 붉히고 있었다. 오던 질로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김해 김씨 저승길 가네, 어화능창 어화로다. 청주 한씨 저승길 가네, 어화능창 어화로다.
등장 가세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정시와 큰아버지가 안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저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우두커니 서서 두 사람을 지켜본다. 이 마당에 내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내가 나서서 무엇을 지껄인단 말인가. 정시와 일꾼 두엇이 어우러져 숨을 몰아쉬며, 향탕수로 시신을 씻고, 수의를 속옷부터 차례로 입혀 나간다. 그 절차가 너무 종교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이렇게 해서 이런 절차를 밟고 망인은 이승을 뜨고 저승으로 가는구나. 그들은 망인의 손톱, 발톱, 머리털을 하나하나 잘라낸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주머니에 집어넣고 왼쪽, 오른쪽을 일일이 표시해 나간다. 저승 가는 일이 이승보다 더 질서정연하게 느껴진다. 시신에 복건을 씌우고 멱목으로 눈을 싸고 악수로 손을 싼다. 다음 버선과 천으로 만든 신을 신기고 저고리, 두루마기, 중치막, 도포 깃이 구겨지지 않게 펴고 행전을 두르고 도포 끈을 매어 나간다. 숨막히는 시간이 착착 흘러간다. 언제 수의를 다 입혔는지 염포 위로 시신을 옮겨 놓는다. 시신에 다시 염포를 적당히 잘라 시신 밑으로 넣어 여러 결로 묶어 나간다. 마당에 널려 있던 관이 방으로 들어간다. 관에 지요를 깔고 베개를 놓고 시신을 안으로 옮긴다. 망자의 적삼과 말린 흙을 백지에 싸서 시신이 움직이지 않게 빈곳을 메운다. 관을 덮고 나무못으로 박는다. 관 밑에 나무토막으로 받친다. 아, 아, 이렇게 하직하는구나. 나는 큰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머귀나무 상장을 든다. 내 옆에 아들이 선다. 상에 원미를 올리고 제주를 부어서 분향하고, 상주들이 곡을 시작한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등장 가세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무자년 아픔 가슴에 안고 저승으로 떠나요, 차사님아, 차사님아, 애 이승에서 할 일 다 못하고 떠나니 내 부끄러워 어찌 내 낭군 만나리요.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등장 가세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등장 가세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장례일 아침이다. 집 앞 공터에서 상두꾼들이, 바지런히 움직인다. 복친들이 하관 시간에 맞추기 위하여 운구를 서두른다. 그리고 시신을 상여로 조심스럽게 옮긴다. 안방에서 큰아버지가 어디서 났는지 사금파리를 깨고 그 자리에 향을 피우게 한다. 명정과 영위와 만사가 펄럭인다. 그 뒤를 울긋불긋한 상여가 따라 나선다. 상여에는 굵은 답포가 길게 매어져 있다. 나를 중심으로 큰아버지 아내, 조카들, 일가 친족들이 따라 나서고 조객들이 답포를 불끈 잡는다. 장사가 집을 향하여 상여를 반쯤 내리게 하면서, 하직이오, 를 세 번 외친다. 하직이요, 하직이요, 하직이요, 어야~어~야로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어야 어~야로다. 인생 한번 죽어 지나면 어야 어~야로다. 사람 한번 죽어 지나면 어야 어~야로다. 또다시 오지는 못하리라 어야 어~야로다. 서우봉아 잘 있거라 어야 어~야로다. 일가친척을 다 버리고 어야 어~야로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어야 어~야로다. 공동 산천이 얼마더냐 어야 어~야로다. 일가친척을 다 버리고 어야 어~야로다. 탕근 방에 갈 때는 친구도 많더니만 어야 어~야로다. 공동묘지는 나 혼자 뿐이로세 의야 어~야로다. 상여는 길을 찾아, 공동묘지로 향한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목적지를 향하면서 흔들거린다. 장지로 결정된 동쪽 끝이다. 상두꾼들이 상여를 바닥에 내려놓고, 조객들도 잡았던 답보를 내려놓는다. 제수를 준비하게. 큰아버지가 나를 쳐다본다. 아내가 얼른 술과 과실과 포를 준비하고 큰아버지를 따른다. 동네 선배가 이야기한 ‘學生金海金氏之墓’라는 묘비가 세워진 곳이다. 바로 장지 옆이다. 상이 차려지고, 나와 아들이 두 손을 모으고 절을 한다. 그러나 나는 묻지 않는다. 이미 이 묘가 아버지 묘라는 사실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리를 잡고, 그 아버지 묘 옆에 어머니 봉분을 쌓을 준비를 서두른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어화능창 어화로다. 장지에서 돌아온 조객들은 상주에게 인사를 나누고 돌아간다. 가까운 친족들과 이웃들은 저녁 굿을 보려고 자리를 잡는다. 굿은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사람들은 구경하는 관객이 아니라, 주인공 배우가 되어야 할지 모른다. 단골 심방이 귀양 풀이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마당에는 멍석 여러 장이 길게 펼쳐진다. 섬에서 귀양 풀이란, 장사를 지내고 나서 죽은 영혼을 무사히 저승으로 보내는 의식을 말한다. 이제 차사상과 영혼상을 차려 지리라. 무명을 감은 큰 대도 세워 지리라. 탁상에는 시루와 메와 쌀, 그리고 잔 세 개와 향로가 진열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수심방과 소미역이 북과 장고와 요령을 들고 마당 가운데로 나서리라. 굿판이 벌어지면 수심방이 망자의 영혼을 불러 생전의 심회를 털어놓으리라. 죽을 때의 마음과 저승으로 가면서의 심정을 풀어나가리라. 죽은 영혼의 이야기가 심방의 입을 빌어 사람들에게 사설로 되풀이되리라. 어화능창 어화로다.
…… 공신은 강신은 일직이 본을 가르니, 공신전에 강신 전에 말씀 올립니다. 무자년 사월 초사흘 됩니다. 나라를 가르옵기는 난산국도 아니옵고 달단국도 해토국도 아니외다. 안남국, 두만강, 몽고 대천 십이제국입네다. 사해 안도 열 두 나라, 사해 밖도 열두 나라, 강남 가면 천자지국이옵고 일본은 주년지국이웨다. 천하해동 조선은 남방 팔도 이남이 되옵니다. 그리고 제주 절도 사백 리입니다. 물은 보니 남해요, 산은 보니 영주 한라산, 산천 영기 소림당, 어승악은 단골 머리 아흔 아홉 골 되옵고, 한 골이 없어 곰도 왕도 범도 신도 못나던 요 섬중되옵네다. 저 산 앞에 당도 오백, 이 산 앞에 절도 오백이 됩니다. 영천 이형상 목사 시절에 당도 오백 불사르고, 절도 오백 파산시킨 섬이옵고, 부처 한쪽 갈라다 동양 삼국 절 당을 마련하던 섬이외다. 고의왕, 양의왕, 부의왕, 고량부 삼성이 모흥혈로 솟아나 도읍 하던 나라입니다. 세 사람은 거친 두메에서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더니, 하루는 자줏빛 흙으로 봉한 나무상자 하나 떠오름을 보고 나아가 이를 열었더니 안에는 돌 상자 있는데, 붉은 띠를 두르고 자줏빛 옷을 입은 사자도 따라왔습네다. 상자를 열어 보니, 속에는 푸른 옷을 입은 처녀 세 사람과 망아지 송아지와 오곡 씨앗이 있습니다. 사자가 말하기를, 저 이웃나라 임금께서 세 따님을 낳으시고 말씀하시되, 서해 산기슭에 신자 세 사람이 강탄 하시어 장차 나라를 열고자 하나 배필이 없으시다 하시고, 신에게 명하여 세 따님을 모시라 하여 왔습네다. 마땅히 배필을 삼으셔서 대업을 이루소서, 하고 사자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날아가 버렸습네다.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 세 사람은 나이 차례로 따라 나누어 장가들고, 물이 좋고 땅이 기름진 곳으로 나아가 활을 쏘아 거처할 땅을 점치었습네다. 비로소 오곡 씨앗을 뿌리고 소와 말을 기르게 되니 날로 백성이 많아지고 부유해 갔습네다. ……옛날 옛적 나라가 태평 성대할 때, 대정으로 가면 대정 현감, 정의로 가면 정의 현감 마련합고, 제주 판관, 항파두리 조방장 명월 만호 설연합고, 삼 고을 사 관장 마련합던 요 섬중 뒈옵네다. 면은 갈라 십 삼면, 마을 갈라 백 리입니다. 제주목 관할에 동으로 신촌현, 함덕현, 김녕현이 있습니다. 마을 동네는 갈라 보난 아무 동네, 큰길 들러 작은 길 생겨, 어느 골목 곱이 첩첩 들어서면 저 올래는 올래 문자. 집에 드니 집 가자. 앞마당은 서우봉 뒷마당은 한라산, 좌우 청룡 몸에 진 사람이 되옵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 모두가 거짓과 꾸밈이 없이 덕을 지녔다는 함유일덕입네다. ……설우신 영혼님, 성은 청주 한씨로 여든 둘 나는 해 기묘년 시월 상달 유시 들어서, 차사님 앞을 사고 죽어 명왕 갔습네다. 세경땅에 엄토감장 시며놓고 세 배 지어 연신맞이, 새 집 지어 성주 낙성, 사람 주어 귀양 풀이법 있습니다. 귀양 풀이 올립니다. ……설우신 영혼님, 명왕 가시는 길에 사내 아기는 쉰, 며느리 마흔 여덟에 큰손자 셋 손자 막내 손자, 축원하는 공신됩네다. 이 축원 올리면 어지신 영혼님 데리고 가던 차사님아, 저 인정 걸거든 많이 받아 좋은 곳으로 데려 가시옵소서. 내 낭군, 오십 년 전 이승 떠난 내 낭군, 저승길 못 찾아 헤맵니다. 좋은 곳으로 데려가십시오. 그 시절 죽은 동네 어른, 동네 삼촌 모두 모두 좋은 곳으로 데려 가십시오. 이렇게 하여 귀양 풀이 초감제 차례가 되옵니다. …… 어느 누가 울리는 축원 원정 하옵거든 성은 한씨, 나이는 여든 둘, 축원 원정하옵니다. 어떤 일로 이러한 축원 원정 하옵거든, 밥이 없고 옷이 없는 이 원장 아니 와, 옷과 밥은 얻어도 밥이옵고, 빌어도 옷입니다. 우리 낭군 질 잘못 들어, 빨갱이 물들어, 얼굴도 빨갛고 옷도 빨갛고 마음도 빨갛습니다. 옛날옛적 공자 성인 법으로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가장 귀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 목숨밖에 귀중한 게 있으리까. 천금보다 중하고 만금보다 중한 것은 인간 사람의 목숨이라, 인간 목숨은 토란잎에 이슬 같은 인생이 되옵니다. 빨갱이도 사람입니다. 빨갱이 목숨도 사람 목숨입니다. 어제 청춘 오늘 백발, 아차 잘못 되고 보면 낙낙 장송 들어 진토 집을 삼고 두견새 벗을 삼아 진토 낙낙 되고 보니, 몇 천년이나 몇 백년이 되어도 돌아 환생 못하는 법입니다. 우리 인간 탄생할 때 아버님의 뼈를 빌고 어머님의 살을 빌어 인간으로 태어나, 명과 복은 칠월 성군과 제석님에 빌어 탄생하고, 칠십고래희 팔십이 정명이라 하되, 잠든 날 잠든 시, 병든 날 병든 시 근심 수심 다 버려, 단 몇 년을 지날 수 있으리까. 옛날 성인 지법으로 봄 풀은 연연록이고, 왕손은 귀불귀법으로, 산천초목은 구시월 단풍집니다. 잎사귀마다 지었대도 명년 춘삼월 호시절 돌아오면 파릇파릇 제 몸 자랑해야 돌아 환생하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백발 같은 부모 조상 내버려두고, 어린 가속을 내버려두고, 옷의 앞자락 따르는 자식을 내버려두고 간들 인간을 한 번 돌아볼 수 있으리까. 강남 천자국 서양 각국 떠난 님도 돈을 벌면 부모 형제, 사랑하는 처, 어린 자식을 생각하여 고향에 돌아옵니다. 그러나 모자 기축 년에 떠난 님들은 소식이 없습니다. 그 길 따라 오늘 떠납니다. 우리 인생 한 번 가면 천길 백길 파면서, 통곡한들 돌아올 수 있으리까. 산지 조종은 수지 태산이요, 산이 높아 못옵네까? 물이 깊어 못옵네까? 산이 높으면 비행기 타서 지나올 수 있고, 물이 깊어 못 오면 사공을 거느려 올 수가 있는데, 우리 인생 저승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목숨입니다. 그 시절 섬 떠난 영원을 위하여 어떤 원정을 올립네까. 청원한 섬놈은 청원한데로 원정을 올리옵고, 원통한 섬놈은 원통한데로 원정을 올립니다. 가련한 섬놈은 가련한 대로 원정을 올립니다. 청원하고 원통하고 가련한 원정을 올립기는, 무자년 사월 초사흗날 훨훨 타는 봉화로 마음 병이 들어 약방 약도 허사되옵고, 의원 의술도 허사가 되옵니다. 갑갑한 사람 송사 갚고 목마른 인간 샘 파는 넋으로 아는 신녀 문복을 지내오니, 어떤 조상 어떤 영신에 걸린 괘가 된 듯 하다고 하여서, 강남서 들어온 애책력 일본서 들어온 소책력 우리 나라 만세력 걷어잡아, 초장 걷어 초파일 이장 걷어 두고 신에게는 하강일 생인에 생기 복덕 제 맞은 날 받았습니다. 성은 청주 한씨로 여든 둘 나는 해 기묘년 시월 선달 유시가 들어서, 차사님 앞을 사고 죽어 명왕 갔습네다. 내 사랑하는 낭군 오십 년 전 무자년 동짓달 스무 이렛날 저승길 들어섰습네다. 이제 반 백년 지나 바쁜 택일하여옵기, 석 달 열흘 백일 지극 정성은 못 올립고 칠일 지극 정성까지도 못하였습네다. 내 낭군 대나무 숲에서 건네주던 단 한 벌밖에 없는 두루마기 걸쳤습네다. 이제 몸단장하여 굿할 준비가 되옵고, 저 올래에 금줄 황줄 흑토 황토 다리 놓아 전생에 팔자 궂은 신의 형방 상신충, 어느 누구 초헌관 초집사를 삼아 몸 받은 당주문 열리옵고, 제석궁에 신의 소무 열둘 거느려, 어진 조상을 거느려 하늘같은 신공신상, 책상 같은 신공신상, 신방의 등에는 산범 같이 걸머지워, 천상 천하 노는 신을 청하여 김해 김씨 주당 소원의 축원을 올리자 하옵니다. 아비 얼굴 모른 자식 손잡고, 대나무 숲에서 헤어진 각시 손잡고, 비석거리에 나섭니다. 오십 년 세월 흘러수다. 방구들 안 탁상 위에 사람 모양으로 만든 종이를 댓가지에 달고, 종이로 만 귀한 돈을 모으고, 제물제향 우 버리고 좌 버려, 초감제로 천상천하 무변대천 영실당 노는 신이나 산과 물에 놀던 신, 남산 돌굽 마다 놀던 신, 무주공지 구름질 바람질에 놀던 신, 거울 없고 신령 있는 신위님, 얼굴 기상 육신 모른 신, 초감제로 신 모으려고 합니다. 어느 신 위주 하여 청하리까. …… 초 제일 진강대왕, 제이 초강대왕, 제삼 송제대왕, 제사 오관대왕 내려서서 상 받으십서. 제오는 염라대왕, 제육은 변성대왕, 제칠은 태산대왕, 제팔은 평등대왕, 제구에 도시대왕, 제십에 전륜대왕, 목숨 잡은 시왕님전 내려서서 상 받읍서. 열 하나 지장대왕, 열 둘 생불대왕, 열 셋 좌두대왕, 열 넷 우두대왕, 열 다섯 신의동자 죄판관, 열 여섯은 사자대왕 상 받읍서. 옥황사자 부원사자, 지부차사 일주님, 옛날차사 방나장, 저승차사 이원 나장, 이승차사 강님나사, 산소 털 흑두전립, 일광전 접두루막, 남수화지지 붉은 쾌자, 붉은 쾌자 품에 품어서, 붉은 천 옆에 차고 앞으로 나르는 용처럼, 뒤로 임금 왕처럼, 활처럼 꾸부러진 길, 살대같이 달려들어 인간 혼신 데리어 가던 어진차사 관장님아, 성은 한씨 여든 둘, 돌고 가던 차사님 내려서서 상 받읍서. 우리 서방 빨갱이 서방 죄랑 있거든 사하고 벌이랑 씻겨 풀어줍서. 김해 김씨입니다. ……신의 제자 이 삼방 나서며 들어앉아 어진 차사관장님 면천 같은 하늘님전 잘잘이 비옵니다. 하나 지장, 두개 생불, 셋에 좌두, 넷에 우두, 열 다섯 신의 동자 문서 잡은 재판관님, 앞으로 본은 김해 성은 김씨가 가시는 길, 설운 영혼 가시는 길, 고이고이 인도하여 주옵소서. 고조부에 고조모님 가시는 길, 증조부에 증조모님이 가시는 길, 당조부에 당조모님 가시는 길, 아버님 어머님 가시는 길, 친정 아버지 친정 어머니 가시는 길, 삼촌 사촌 오촌 육촌 칠 팔촌들 가시는 길, 죽어 명왕 가신 길, 초군군 이군문 삼삼 도군문에, 저 인정 많이 걸건 설운 영혼님, 고이고이 돌고 가십시오. …… 이렇게 하여 비오니 건 구름도 넘어 오십시오, 바람 산도 넘어 오십시오, 구름 산도 넘어 오십시오, 영혼 뒤로 만나시던 영혼님들, 이팔청춘 죽고 간 설우신 아가씨들, 모두 상 받아 신내립서. 신촌 사람, 조천 사람, 함덕 사람, 송당 사람, 어진 영혼님 달고 가던 차사 관장님네, 모두 모두 상을 받아 저승으로 좋은 곳으로 잘 인도하십시오. 불쌍한, 성은 한씨 여든 둘 아무 죄도 없습니다. 서방 미워한 죄밖에 없습니다. 우리 식구 남겨두고 산으로 오른 서방, 저승길 밝혀줍서. 불쌍한 영혼입니다. 저승 명왕 고이 들어갑서. 상청 들어 상마을이야 쉬우리까. 중청 들어 중마을, 하청 들어 하마을에 오르십시오. 이렇게 하여 빌어 가며 이 집안에 영장 났다고, 넋이 나가던 문전 지신 상 받으십시오. 토지지신 상 받으십시오. 성조지신 조왕지신 상 받으십시오. 제오방 제토신 넋 나간 일, 혼난 일 모두 막아주십시오. 오도롱 사람 죽어서 상제에 넋 난 일, 가시리 사람 죽어서 상제에 넋 난 일, 북촌 사람 죽어서 상제에 넋 난 일들 모두 막아주십시오. 우리 서방 한라산 굴속에서 넋 난 일도 모두 막아주십시오. …… 초감제로 모은 신전 초신맞이 모았습니다. 초신맞이 모은 신전 떨어진 신도가 있을 듯하여 초상계로 모아 우 앉히고 좌 앉혀서 제물제향 벌였습니다. 초공신으로 집안의 지극 정성 받으십시오. …… 신중에는 천지천황, 천지지황, 천지인황 공신 받으십시오. 불쌍한 영혼 성은 한씨 여든 둘, 우리 서방 나와 같이 지옥 들게 말고 저승 좋은 국으로 살려내어 가십서. 일각을 살려내어 갑서. 사나 사나 살려내어 가십서. 날로 달로 살려내어 가십서. 성은 김씨입니다. 김해 김씨입니다. 날로 달로 살려내어 가십시오. 영혼 영계님 돌고 가던 차사님아 관장님아. 우리 서방님 데리고 갑서. 불쌍한 서방, 멋을 몰라 길 잘못 들었습니다. 빨갱이 되었습니다. 범죄랑 있거든 사악 합서. 벌이랑 풀려 데리고 가십시오. 서홉 서미 원미죽으로 청감주로 소주로, 온도 천량 지전도 만량 인정 많이 걸거든, 사나 사나 사나가십시오. 칭원한 일 원통한 일 걷어 걷어 걷어서 갑서. 사나 사나 사나가십시오 사나 온다. …… 불쌍한 서방님아 명이 그만 이라서 가지셨습니까? 나 오십 년 간 청상과부로 살았습니다. 아들 하나 있는 거 빨갱이 새끼로 살았습니다. 초수렴에 어떻습디까? 대수렴에 어떻습디까? 입으로 쓸데없는 소리만 해수다마는 칭원한 일이랑 풀어서 가십시오. 동관시에 가려고 하니 어떻습디까? 하관시에 달이나 나왔습니까? 봉토 시간에나 용미 계절에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엄토감장 천년만년 지탱이나 될까요? 칭원한 일, 원통한 일 다 풀어 갑서. 끝에 문전으로 도진 할 때랑 소원 담긴 것 혼 든 것 다 불살라 올리겠습니다. …… 영혼님에게 심방 입을 빌어 분부 문안 올립니다. 설운 서방님아 칭원한 생각 마십시오. 낭군 스물 한 살, 할 수 없이 죽어서 저승 갔습니다. 그 시절 무자년에 출행할 때 차사님이 길을 안내하여 저승을 떠났습니다. 이제 쉰 넘은 아들놈 내 제사상 당신 제사상 함께 올린다니 내 낭군 손잡아, 오십 년만에 저승길이라도 가집니다. 눈을 감아서 저승을 가려고 하니 악마 같은 세상살이 생각하면 한이 없습니다. 낭군님아 조금도 원통하게 생각 마십시오. 시아주버님아, 형님 가슴에 불지르고 떠난 동생 아닙니까?. 형님전 섭섭한 생각하지 마십시오. 설운 형님 믿고, 설운 조카, 설운 아들 며느리 믿어서 같이 저승 떠납시다. 우리 먼저 저승 가는데 천만 죄만 갔습니다. 우리 시아주버님 오래오래 살다가 저승 오십시오. 우리 내외 초군문에 섰다가 상봉하여 만단 정회하오리다. 아이고 아이고, 친족 어르신네, 이웃 어르신네 이 못난 부부 위하여 귀양 풀이까지 하여주어 너무 고맙습니다. 어르신네들 저승에서 상봉하면 내 공 갚아 드리리다. 아이고 아이고, 설운 사람들아, 설운 세상 원망 말고 같이 손잡고 서로 안신 잘 시켜 주십시오. 가슴이 얼마나 아플 것입니까? 서로 안심시키고 서로 봉양하면서, 살고 계십시오. 설운 시아주버님아, 설운 장조카야, 시아주버님 손에 내 낭군 저승문 들었으니 편안합니다. 시아주버님아, 내 아들. 내 손자 이승에서 사람 대접받게 돌봐 줍서. 우리 낭군 제삿날 따뜻한 메 그릇과 향이라도 피워주십시오. 부탁입니다. …… 인정 사정 잔 들어가며 여든 둘 이네 몸, 아들 전에 분부입니다. 하느님 덕은 천덕이고 부모님 덕은 구천만덕이라. 부모 덕은 몇 백년이나 갚아도 갚을 수가 없는 부모공 아닙니까? 내 낭군 일찍 세상 하직하여 못 갚은 공, 저승길이나 치워 닦아서 공 갚아 드리려 하는데, 이 짓이 무슨 짓인고, 봉분도 못 찾고, 술잔도 못 올리고, 불쌍한 영혼 구천을 헤매는데 자식 마음이야 오죽 하리까. 그렇지만 낭군 손잡고 저승길 가니, 설운 며늘아가야 오늘은 저승길을 치워 닦아준다고 하니, 고운 길로 들어서노라. 설운 며늘아가야, 김해 김씨 집안에 시집와서 시아버님 사랑 한 번 못 받고, 자손 하나 나면서 살아 준 것도 너무나 고마운 사실인데, 이게 무슨 일인고? 저승 가는 길이 막막하구나. 며늘아가야……
전화벨이 울린다. 지서 주임이다.
“김 선생님, 큰아버님 어떻게 되신 것 모르십니까?”
“그런데 웬일이십니까?”
“자살입니다. 지서로 나오십시오.”
“네?”
주임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부리나케 지서로 달려간다.
지서 주임이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있다. 나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엉덩이를 붙인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이가 지긋한 분이 농약을 먹고 자살을 하다니… 집안에 무슨 복잡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
“우환입니다. 모친 장사를 지내고, 며칠이 지났다고……”
오토바이가 공동묘지 입구에 세워진다. 동쪽 끝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도 눈에 띈다. 수사관들이 눈을 번쩍거리며 시신 주위를 맴돌고 있다.
“김 선생님, 자살입니다. 유서도 남겼습니다.”
가죽 점퍼 형사가 하얀 봉투를 내민다.
“오십년 전, 형님이 동생을 죽였다는 내용입니다.”
형사는 말끝을 흐리며 나를 힐끗 쳐다본다.
어허능창 어허능창, 어화로다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늘 하루 혼자로다, 어화능창 어화로다. 검은오름아, 민오름아, 밝은오름아, 천아오름아, 어화능청 어화로다. 청산 백옥이 진토에 묻혀, 어화능창 어화로다, 등장 가세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하느님의 등장 가세, 어화능창 어화로다. 나는 가요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당오름아, 세미오름아, 감은이오름아, 아부오름아, 어화능창 어화로다. 오던 길로 나는 가요, 어화능창 어화로다. 어허능창 어허능창, 어화로다 어화로다.
Posted by 김관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