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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종언

한국문학의 종언


김 관 후



소설가 백가흠이 쓴󰡐포도나무 한그루󰡑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시인 박형준과 치악산에 올랐다. 등단한 지 얼마 안됐을 무렵이었는데, 생활이 어려워 도저히 살 수가 없었던 시절 이야기다. 그래서 등단한 지 십년쯤 지난 박형준에게 물었다. 형 연봉은 얼마나 돼요? 박형준이 껄껄 웃더니 내 연봉은 포도나무 한그루쯤 될까, 라고 대답했다. 문학하는 사람에게 연봉은 마음속에 포도나무 한그루 정도 있으면 된다는 뜻이다.

미국은 1950년대에, 일본은 1980년대에, 한국은 1990년대 말부터 문학이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에서의 문학의 쇠퇴를 보며 ‘근대문학의 종언(終焉)’을 실감한 작가들도 많다. 이는 문학에 종사하는 문인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문학청년 시절에 접했던 월평(月評)이나 연재소설은 신문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지방신문에서 그 지역작가들에게 배려했던 단편연재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문청시절 발간되던 유일한 월간지『現代文學』은 다른 문학지들이 우후죽순 발간되면서 그 기력이 쇄진했는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수많은 문예지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작가에게 고료를 지불하는 잡지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이제 ‘한국문학의 종언’은 바로 눈앞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문학이 급격히 영향력을 잃어가기 시작한 1990년 대 말 상황은 과연 어떠한가? 학생운동은 쇠퇴했지만, 노동운동은 매우 왕성했다. 2000년대 이후 노동자 집회에서는 화염병이 날아다녔다.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것은 그것이 노동운동이 불가능한 시대, 일반적으로 정치운동이 불가능한 시대의 대리적 표현이 아닐까? 정치운동이나 노동운동이 가능하게 되면, 학생운동은 쇠퇴하기 마련이다. 문학도 그것과 닮아 있다. 한국에서 문학은 학생운동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학이 모든 것을 떠맡았다. 문학은 체제와 화해하지 않는다. 문학은 절대 체제에 무릎 꿇지 않는다. 문학은 체제가 내미는 손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렇다면 한국 문학은 이미 끝장이 난 것일까? 이제 체제와 잘 어우러져 로또지원금을 받고 대학교수가 되고 문학의 본질로 돌아가라며 비정치적인 양상을 띈다. 이 모두가 바로 한국문학의 종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 특별한 의미, 과도하게 부여되었던 도덕적 책임을 가졌던 한국문학이라는 근대의 문학이 과연 끝난 것일까?

일본인 카라따니 코오진(柄谷行人)의 『근대문학의 종언』이 번역돼 한국 독자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문학 위기론들이 있지만, 카라따니의 '종언'은 확실히 치열했다. “국민국가가 완성되면서 문학이 윤리적, 지적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그의 근대문학 종언론은 그의 추종자에게 ‘문학 자체의 종언’ 선언과 다름없었다. 오늘의 인간 사회가 처해 있는 문제들을 극복하는 데 문학이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 시대는, 끝났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문학의 종언은 1980년대 후반에 징후를 보였던 ‘과거형’일까?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한국문학의 본 모습은 대체 무엇일까? 글을 쓰는 작가가 마음속에 포도나무 한그루 정도에 만족해야만 할까? 작가가 가로수를 부러워하면 안 되는 것일까? 요즘 방송드라마 작가 원고료가 회당 5000만원 시대를 넘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데, 내가 방송드라마를 썼다고 인기가 치솟는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방송드라마는 소설의 영역에서 아주 빗나갔지 않은가?

이미 죽어버린 시와 소설들은, 오히려 그 죽음으로 인해서, 더 첨예하게 삶과 세계를 대면할 수 있을까? 이 죽음의 자유로움이야말로 정확하게 오늘의 문학이 지닌 가능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문학이 죽었다, 그러자 완강한 체제를 끈질기게 교란하는 유령의 문학이 태어났다! 유쾌하고 불편한, 유령으로서의 문학. 그것도 좋다고, 모두가 손뼉을 쳐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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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13:46 2010/08/2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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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종언

김 관 후

소설가 백가흠이 쓴󰡐포도나무 한그루󰡑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시인 박형준과 치악산에 올랐다. 등단한 지 얼마 안됐을 무렵이었는데, 생활이 어려워 도저히 살 수가 없었던 시절 이야기다. 그래서 등단한 지 십년쯤 지난 박형준에게 물었다. 형 연봉은 얼마나 돼요? 박형준이 껄껄 웃더니 내 연봉은 포도나무 한그루쯤 될까, 라고 대답했다. 문학하는 사람에게 연봉은 마음속에 포도나무 한그루 정도 있으면 된다는 뜻이다.

미국은 1950년대에, 일본은 1980년대에, 한국은 1990년대 말부터 문학이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에서의 문학의 쇠퇴를 보며 ‘근대문학의 종언(終焉)’을 실감한 작가들도 많다. 이는 문학에 종사하는 문인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문학청년 시절에 접했던 월평(月評)이나 연재소설은 신문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지방신문에서 그 지역작가들에게 배려했던 단편연재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문청시절 발간되던 유일한 월간지『現代文學』은 다른 문학지들이 우후죽순 발간되면서 그 기력이 쇄진했는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수많은 문예지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작가에게 고료를 지불하는 잡지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이제 ‘한국문학의 종언’은 바로 눈앞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문학이 급격히 영향력을 잃어가기 시작한 1990년 대 말 상황은 과연 어떠한가? 학생운동은 쇠퇴했지만, 노동운동은 매우 왕성했다. 2000년대 이후 노동자 집회에서는 화염병이 날아다녔다.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것은 그것이 노동운동이 불가능한 시대, 일반적으로 정치운동이 불가능한 시대의 대리적 표현이 아닐까? 정치운동이나 노동운동이 가능하게 되면, 학생운동은 쇠퇴하기 마련이다. 문학도 그것과 닮아 있다. 한국에서 문학은 학생운동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문학이 모든 것을 떠맡았다. 문학은 체제와 화해하지 않는다. 문학은 절대 체제에 무릎 꿇지 않는다. 문학은 체제가 내미는 손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렇다면 한국 문학은 이미 끝장이 난 것일까? 이제 체제와 잘 어우러져 로또지원금을 받고 대학교수가 되고 문학의 본질로 돌아가라며 비정치적인 양상을 띈다. 이 모두가 바로 한국문학의 종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 특별한 의미, 과도하게 부여되었던 도덕적 책임을 가졌던 한국문학이라는 근대의 문학이 과연 끝난 것일까?

일본인 카라따니 코오진(柄谷行人)의 『근대문학의 종언』이 번역돼 한국 독자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문학 위기론들이 있지만, 카라따니의 '종언'은 확실히 치열했다. “국민국가가 완성되면서 문학이 윤리적, 지적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그의 근대문학 종언론은 그의 추종자에게 ‘문학 자체의 종언’ 선언과 다름없었다. 오늘의 인간 사회가 처해 있는 문제들을 극복하는 데 문학이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 시대는, 끝났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문학의 종언은 1980년대 후반에 징후를 보였던 ‘과거형’일까? 민중이 사라진 시대의 한국문학의 본 모습은 대체 무엇일까? 글을 쓰는 작가가 마음속에 포도나무 한그루 정도에 만족해야만 할까? 작가가 가로수를 부러워하면 안 되는 것일까? 요즘 방송드라마 작가 원고료가 회당 5000만원 시대를 넘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데, 내가 방송드라마를 썼다고 인기가 치솟는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방송드라마는 소설의 영역에서 아주 빗나갔지 않은가?

이미 죽어버린 시와 소설들은, 오히려 그 죽음으로 인해서, 더 첨예하게 삶과 세계를 대면할 수 있을까? 이 죽음의 자유로움이야말로 정확하게 오늘의 문학이 지닌 가능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문학이 죽었다, 그러자 완강한 체제를 끈질기게 교란하는 유령의 문학이 태어났다! 유쾌하고 불편한, 유령으로서의 문학. 그것도 좋다고, 모두가 손뼉을 쳐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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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13:44 2010/08/2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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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시대

무상급식시대



김 관 후



“어린이는 고른 영양을 취하고,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받으며, 맑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1988년에 재개정된〈어린이헌장〉 내용이다. 원래 어린이헌장에는 “굶주린 어린이는 먹여야 한다.”로 되어있다.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에도 “국가는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정책을 입안할 것과 생존과 발달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헌법」,「교육기본법」,「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학교급식법」에도 무상급식에 대한 법적근거가 마련되어 있다.

제주도내 초·중·고교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무상학교급식 지원 조례안’이 오랜 진통 끝에 9월 도의회 정례회에서 다뤄진다. 조례안을 원안대로 통과시킬 경우 내년부터 광역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무상급식이 실현된다. 민주노동당 제주도당 강경식 위원장(현 도의원)이 대표청구인으로 발의한 ‘무상급식 지원조례안’은 지원 대상을 병설유치원까지 확대하고 있다. 도민 3886명의 서명을 받아 지난 5월18일 청구한 주민발의 조례안이다. 강 의원은 제주주민자치연대 지방자치위원장으로도 활동하였고, 특히 친환경급식연대 사무국장 당시 친환경무상급식 조례 주민발의를 주도하면서 존재감이 확실히 부각됐다.

그러자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들이 초·중학생에 대한 무상급식을 국가가 지원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교과부 당국자는 교육감협의회의 건의에 대해선 검토를 하겠지만, 지난 2005년 지방교육재정교부율을 높이면서 급식사업비도 시·도 교육감 재량으로 넘겼다며 시·도 교육감이 알아서 해야 할 사안인데 국가에 예산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아이들 밥 먹는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보편적 교육복지정책인 ‘친환경 무상급식’이 주요 정책이슈가 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이니 사회주의니 하는 정치공세와 부자급식에 국가재정 파탄설까지 왜곡된 논의들도 쏟아지고 있다.

2009년, 보건복지부 ‘아동청소년 종합실태조사’ 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중 최저생계비 이하의 절대빈곤층은 7.8%, 상대빈곤층은 11.5%대로 조사되었다. 아동 8명 중 약 1명이 빈곤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와 사회 양극화로 인한 빈곤 심화, 가족해체, 부모의 질병, 맞벌이로 방임과 위기상황에 놓여있는 아동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왜 부자집 아이들까지 ‘공짜밥’을 줘야하나, 많은 분들이 의문을 갖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세금은 소득에 따라 차등해서 내지만, 복지는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골고루 혜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도 합당한 논리이다. 특히 국가에서 ‘의무’로 정한 교육․국방과 같은 분야에서는 ‘무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우리헌법은 이미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급식은 교육’이며, 무상급식은 의무교육의 완성이다.

탈북 남자 청소년들의 평균 신장이 남한의 또래보다 13.5㎝가량 작다.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남자 청소년들 중 월 소득 300만원 이상과 100만원 미만의 남자 청소년들을 비교했더니 후자가 평균 7.4㎝ 작았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할 때이다. 그들의 키를 쑥쑥 키워줄 방법은 어디서 시작해야 할 것인가. 빈곤층 아이들의 방학 중 끼니. 해결에 먼저 쓰는 일부터 생각하자. 학기 중 아침 급식도 절실하다. 한발 더 나아가 유럽처럼 과일·야채까지 챙겨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이미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60년 전부터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과 스코틀랜드도 무상급식 비율을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무상교육과 무상보육이 동시에 이루어 져야 사회적 보육과 교육이 완성되고 여성들의 사회진출에 날개가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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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3 11:06 2010/08/1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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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과 남북축구

월드컵과 남북축구


김 관 후


1929년부터 시작된 경성(서울)과 평양의 경평(京平) 대항전은 축구에 대한 관심을 크게 증폭시키며 전 민족이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축구는 일제 식민지 아래에서 가슴에 쌓인 민족의 울분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청량제였고 독립의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싹이었다.
경평축구는 당시 경성중학 주축의 경성팀과 숭실학교 주축의 평양팀이 서울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경기를 가진데서 기원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정기전이 시작된 것은 1933년이었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의 와중에서도 계속되었던 경평축구대항전은 해방 후 분단과 함께 1946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2010년 월드컵에 사상 유례없는 남북한 본선 동반 진출의 쾌거를 이룩하였다. 남한은 일찌감치 조 선두를 달리며 2010년 남아공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따냈다. 북한 역시 기적의 8강 진출로 큰 파란을 일으켰던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이후 44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발을 내딛게 됐다. 첫 동반 진출이라는 민족의 쾌거, 한반도를 비롯해 세계의 눈과 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등장한 두 개의 '코리아'로 향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월드컵에서 남북이 공동응원을 치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핑퐁 외교'가 큰 기여를 했다. 스포츠정신을 살려 적대관계에 놓인 두 진영을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물꼬를 전환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남과 북의 모든 선수를 다 응원하는 공동 응원단을 꾸려, 세계인이 바라보는 월드컵 경기장에서 상대방을 서로 응원한다면 남북통일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은가. 과거 남과 북이 올림픽 등 국제경기에 공동입장을 하면 항상 들었던 깃발이 단일기였고 부르는 노래는 아리랑이었다.

2005년 8월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대회에서 남측 응원단은 일방적으로 남측만 응원했다. 통일축구대회였는데도 그랬다. 당시에는 남측에 북측이 패해서 그랬는지 경기가 끝난 후 남측 선수들은 북측 선수들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었지만 북측 선수들은 굳어진 얼굴을 펴지 못했다.

나라와 국민의 기대를 잔뜩 지고 경기장에 나와 지고도 환하게 웃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이다. 하지만 누가 이기고, 누가 지든 남과 북의 선수끼리 얼싸안고 통일의 노래를 불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운동장에서 하나가 되어 정말 마음 놓고 얼싸안아 보자. 그렇게 잔디밭에 쓰러져 뒹굴다가 눈물이라도 펑펑 흘린다고 해서 누가 손가락질을 하겠는가. 수 십년간 갈라져 살던 형제가 만났는데 얼싸 안고 뒹굴고 눈물을 흘린다고 무엇이 이상하겠는가.  2010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은 해외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헝가리에 0-9로 대패한 후 무려 56년만이다. 32년 만에 본선에 진출했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로 보자면 24년만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8년만이다. 하지만 원정 16강에 올랐다고 한국을 축구 선진국이라 말하는 것에는 선을 긋는 전문가가 있다. 축구해설가 신문선 명지대교수다. 한국 축구는 뒤집어서 보면 아주 병색이 완연한 환자가 사진을 찍고 TV에 나오기 위해 화장을 짙게 한 얼굴이라고 일갈한다.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인 '수비 불안'과 '골 결정력 부재'는 바로 축구계의 구조적인 병폐에서 기인한다. 이론적인 공부를 하지 않는 것" 그리고 "결과에 목을 매는 문화"가 한국 축구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이른바 '뻥축구'(공만 뻥뻥 걷어차는 축구)의 모습도 보인다는 것이다. 수학에 공식이 있듯 축구에도 원리가 있다. 축구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공부가 절실하다. 하지만 한국 축구가 이론 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경기 중에는 당연히 실점할 수 있다. 대신 경기 후 선수와 감독과의 미팅, 혹은 학자들의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문제점을 공부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여기에 덧붙일 것이 남북축구를 통하여 통일에 기여한다는 축구인들의 의식전환이다. 축구생산자 집단의 '통렬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누구를 위해서 게임을 하는가. 팬들을 위해, 그들을 감동시키는 최선의 게임을 해야 한다. 그래야 축구는 강해진다. 더 열심히 뛰어서 국민들을 위해 '명품'을 만들려 노력해야 한다. 그 명품이야말로 축구를 통한 남북교류가 이루저지고 통일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축구는 예측불허, 대반전, 통쾌한 결말을 지닌 한 편의 스릴러다. 통일도 마찬가지다. 예측불허이다. '손에 땀을 쥐게한다'는 진부한 표현으로는 설명할 길 없는 축구의 매력은 남북통일에도 해당된다. 이제 남과 북이 정기전을 통하여 서울과 평양이 축구열기에 휩싸이는 일부터 시작한다면 통일도 예측불허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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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30 13:13 2010/07/3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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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한계선은 냉전의 성역인가

북방한계선은 냉전의 성역인가

김 관 후

"서해북방한계선은 어릴 적 땅 따먹기 할 때 땅에 그어놓은 줄이다. 이것은 쌍방이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다. 그 선이 처음에는 작전금지선이었다. 이것을 오늘에 와서 영토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남북간에 합의한 분계선이 아니란 점을 인정해야 한다. 헌법상 북쪽 땅도 우리 영토인데 그 안에 줄을 그어놓고 영토선이라고 주장하면 헷갈린다. 국민을 오도하면 풀 수 없는 문제다" 2007년 10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당대표 초청간담회에서 김정일과의 평양회담에서 북방한계선(北方限界線, 영어: Northern Limit Line, 줄여서 NLL)을 북측에 일방적으로 양보했다는 야당측 주장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답변한 내용이다. 김영삼 정권 때만 해도 북방한계선은 영해선이 아니었다. 당시 이양호 국방부장관도 1996년 국회에서 NLL에 대해 ‘이건 정전협정과 관계없고, 넘어와도 어쩔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이처럼 NLL은 선(線) 개념이다. 남북은 20년 전에 해상경계선을 설정하자는 선 개념의 합의를 했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그걸로 해결이 안 되니까 면(面) 혹은 지대 개념으로 바꾼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10·4공동선언을 통해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의 개발에 합의함으로써 NLL문제는 여전히 그 불씨가 꺼지지 않게 되었다. 평화협력지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NLL에 대한 남북 양측의 서로 다른 입장 특히 양측 군부의 안보인식이 대립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북방한계선은 1953년 정전 직후 마크 클라크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 북한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해상경계선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인정하지 않아 한해에 20∼30건의 월선사태가 빚어지는 등 문제를 안고 있는 경계선이다. 또한 국제법적으로 영해를 규정하는 경계선은 아니라는 게 국제법 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북한은 육지에서 12해리까지를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경우 서해 5도까지 포함하게 된다. 그러나 북한은 그동안 묵시적으로 북방한계선을 인정해왔다. 실제 1992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었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철저하고 신중한 조사를 했으리라고 보지만, 그러나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위기관리가 긴요하다.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지켜야 한다. 따라서 당장 필요한 것은 남북이 서로 자제하면서 긴장과 위기를 슬기롭게 관리하는 것이다. 국민의 30%가량이 정부의 천안함 발표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

천안함 조사 결과에 대해 서재정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와 이승헌 버지니아대 교수, 캐나다의 양판석 박사 등이 심각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일부 국내 학자들도 문제제기에 나섰다. 정부 발표가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는 전문가들한테 전혀 신용을 얻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포인트는 서해에는 해상경계선이 없다. 참여정부는 2007년 10·4선언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란 대단한 합의를 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합의가 잘 실천됐으면 천안함 사태가 일어날 수 없었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긴장의 바다, 충돌의 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어 가야 한다.냉전성역은 냉전 분단체제에서 형성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남과 북이 서로를 원천적으로 적대 및 부정하여 상대방에 극단적인 덫 칠을 가하여 악마화 하고, 자기 것은 절대적인 선으로 미화하거나 신성시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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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3 11:05 2010/07/1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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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희망입니다'

‘아이들이 희망입니다’

김관후


영국 노동당 당수의 아버지가 기자들 앞에서 부르주아를 흉내내는 자신의 아들을 대놓고 비판하였다.
"그 녀석은 노동자의 품위를 저버린 놈이다. 왜 부르주아들처럼 천박하게 비싼 식사를 하고 비싼 호텔에서 묵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노동자가 자본가와 똑같이 '부'와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는 한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노동해방은 권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가치'가 실현되는 세상으로 바뀌는 것이다. 과거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하였던 사회주의자들은 권력만 바꾸었을 뿐 '가치'를 바꾸지 못하였다. 진보주의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가치'를 바꾸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서울과 경기도를 비롯해 전국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교육감 6명이 당선되었다. 수도권에서는 ‘진보교육 벨트’가 형성되었다. 강원·전북·광주·전남에서도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현 정부의 교육정책들이 사안마다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교육당국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법률에 따른 정책은 강행하더라도 상당수는 교육감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제는 정부가 '지침'으로 교육청을 통제하기는 불가능해졌다.

제주교육계에도 새로운 진보바람이 불었다. 지난 2월 24일 제주특별자치도 교육의원 예비후보 이석문은 ‘교육희망 선언문"을 발표하고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하였다. 이 후보는 교육희망 선언문에서 “교육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우리 아이들의 행복과 희망입니다”라고 천명하였다. 교육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그리고 희망을 주기 위해 존재라는 문구도 덧붙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장을 지낸 이석문 후보가 결국 교육의원에 당선됐다. 전교조 출신이 도의회에 입성하기는 이영길 지부장에 이어 두 번 째이지만 교육의원은 처음이다. 특히 교육의원은 그동안 전직 교장이나 교육관료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전교조이자 평교사 출신인 이 후보가 그 관행을 깨뜨렸다. 특히 그는 제주4․3유족회 제주시중부지회장을 맡고 있어, 제주4․3교육에도 새바람이 예상된다.

특히 이석문 당선자는 공교육비를 한 푼도 들이지 않는 '제로(Zero)화'를 약속했다. 헌법으로 규정된 의무교육을 제주에서 현실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잘못 쓰이는 교육재정을 바로잡고, 지속적으로 확대해 학교운영비와 체험학습비 등 부모들이 부담하는 공교육비를 제로화하겠다고 것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 하고 있다. 이제는 어른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이석문 당선자는 이러한 교육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제주에서 만큼은 ‘행복한 10년’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행복한 10년’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합쳐 10년 정도는 아이들이 공부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이 당선자의 표현 방식이다. 교육은 따뜻해야 한다. 교육을 괴로운 존재, 억누르는 존재로 놔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돌이켜 보면, 4.19 교원노조 운동, 86년 교육민주화 선언, 89년 전국교직원노조의 결성에 이르기까지, 억압적 교육체제를 민주화하기 위한 교사 대중의 가열찬 투쟁은 기나긴 가시밭길을 헤쳐 왔다. 오늘날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은 각 곳에서 공동체 교육의 기반이랄 수 있는 공교육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있으며 자본의 논리로 교육을 압도하려 하고 있다.

이석문 당선자는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제주교육, 지방정치에 희망을 주고, 변화를 이끌겠다는 의지만큼은 확고하다. 현대는 ‘통치’가 아닌 ‘협치’, 즉 ‘거버넌스’의 시대다. 그의 당선은 도정이나 도의회의 ‘통치’ 시스템에 반기를 든 것이다. 도민들과 제대로 소통하고 협치해 합리적인 정치적 결과물을 생산해 달라는 절실한 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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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30 10:24 2010/06/3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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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축제다

선거는 축제다

김 관 후


선거는 국민을 위한 축제마당이다. 국민이 바른 말 할 수 있고, 정치인이 귀 기울이는 시늉이라도 하는 자리, 우리가 주인 되어 목청껏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축제의 마당이 바로 선거이다.
그런데 선거 후의 사회는 분노와 갈등으로 마무리가 되는 듯 하여 너무 안타깝다.

지난 지방 선거 때, 고희범 제주도지사 후보가 ‘고희범과 함께 여는 도민광장’에서「푸르른 날」을 불러 선거판에 신선감을 주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대중적인 가곡 칸초네도 열창하였고, 율동팀과 어우러져 한 판 춤도 선보였다. 지지자들과 어깨에 손을 얹는 ‘기차놀이’로 시청 거리를 축제의 분위기로 만들었다.

양창식 교육감 후보 역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축제의 선거운동을 펼쳤다. 운동원들이 횡단보도 파란불 보행시에 나와서 제주를 사랑하고, 부모님을 사랑하며 도민을 사랑한다는 하트 메세지를 남겼다.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를 위해서 젊은 친구들이 모여 참신한 아이디어를 선거운동에 활용하게 되었다. 바로 선거운동이 신명나고 재미나며 도민과 함께하는 축제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는 정말 우리에게 축제이고 잔치일까?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선거를 질펀하게, 모두가 어깨동무하고 즐기는 축제의 한마당으로 경험하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당대회는 나흘 동안 열린다. 전당대회는 여러 기능을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은 당원들의 단합을 높이고, 이미 결정된 대통령선거 후보를 축제 분위기 속에서 선출하면서 언론의 조명을 받기 위한 정치행사이다.

우리나라는 선거철만 되면 온통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선거가 축제가 아니라 한바탕 전쟁인 것이다. 다수결 원칙에 따라 불과 몇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고 희비가 교차되니 목숨을 내놓은 피나는 전쟁을 벌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선거로 인해 지불하는 대가가 너무 크다. 국력소진은 말할 것도 없고 국론분열 또한 선거가 원흉이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의 선거문화를 바꾸기 위해 과연 어떤 대안이 필요할 것인가?.

여기에서 프랑스 대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12명의 후보자들은 인터넷에 뛰어들어 축제판으로 만들어 나갔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르코지 사이트는 사르코지 브랜드 이미지 홍보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르코지가 디스코를 추는 동영상 웹사이트를 운영까지 하였다. 이 사이트에 나오는 사르코지의 아바타에 마우스를 갖다 대면 우스꽝스러운 개다리춤을 추기도 하고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나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에 나오는 존 트래볼타의 춤 같은 고난이도의 댄스를 선보였다. 전문가가 춤을 추는 동영상에 사르코지의 얼굴을 합성하였다. 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전략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하나의 축제라면, 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즐거운 행사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하나의 '축제'로서 국민누구든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하고, 그런 행위에 대해 국민 개개인이 판단하는 하나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 선거판은 ‘한심한 전쟁터’일 뿐이다. 서로 헐뜯고 무시하고 공격하는 행태가 그런 전쟁터를 보는 추잡한 기분이다.

정치의 핵심 키워드의 시작은 바로 '선거' 이다. 그렇다면 6.2 지방선거의 대표적인 키워드 는 무엇일까? 그것은 '북풍' 과 '노풍' 이였다. 여기서, 바로 북풍과 직결된 사안이 바로 '천안함'으로 인한 파장이다. 천안함을 이용하여 여당이 노풍의 차단을 위한 카드로 이용하고 있다는 한나라당이 작성한 '종합 상황보고 문건'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그 내용을 통해서 여당이 천안함 문제를 '국가적 안보 이슈' 로 정의하고 대국민 홍보에 나서 선거에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을 그대로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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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4 10:31 2010/06/1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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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모윤숙

친일파 모윤숙


김 관 후


지난 4월 20일 서울강남문화원강당에서는 서울시단(詩壇)과 강남문화원이 공동 주최하는 영운(嶺雲) 모윤숙(毛允淑) 시낭송회가 열렸다. 시낭송과 더불어 성기조 시인의 「펜클럽의 대모, 영운 모윤숙」이라는 주제 강연도 있었다. 시낭송회에서는 모윤숙의 여러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그렇다면 모윤숙은 어떤 인물일까? 그리고 어찌하여 꼭 모윤숙일까? 그리고 강남문회원이 왜 이런 행사를 주최할까?

모윤숙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이다. 친일인명사전이란 구한말 이래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지지, 찬양하고 민족의 독립을 방해 혹은 지연시키며 각종 수탈행위와 강제동원에 앞장서는 등으로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인물사전이다. 사전에는 해당 인물의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 주요행적 등이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해방이후 모윤숙과 인도인 쿠마라 P.S. 메논의 스캔들은 유명하다.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미군정, 친일 인사, 이승만의 밀실 정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대표로 한국에 입국한 메논은 모윤숙과의 만남을 계기로 남한 단독 선거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힘을 실어주는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 유엔총회에서 남한 단독 선거가 통과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처음부터 단정수립 반대국이었던 인도의 대표로서 한국에 온 메논은 모윤숙의 노력(?)으로 이승만과의 단독 대좌를 했는가 하면, 이광수와도 자리를 마련해 즐거운 한때를 가졌다. 단정수립 확정 후 메논이 한국을 떠난 뒤의 심경을 모윤숙은 “고마운 사람! 나만 아는 잊을 수 없는 은인.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우정과 신의에 가득 찬 영혼을 가진 세계의 외교관이었다. 이 박사는 실로 그 은혜를 잊을 수도, 또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윤숙은 어떤 친일행위를 했을까? 일제의 어용화를 위하여 만들어진 조선문인협회 문예대강연회의 연단에 선 것을 시작으로 모윤숙은 임전대책협의회, 조선교화단체연합회, 조선임전보국단 부인회 등 각종 여성 관련 친일단체에서 활약을 했다.

조선 여인으로 하여금 고루한 민족 관념을 버리고 일본의 서양 정복전에 협력해야 한다는 주제를 노래한 시 「동방의 여인들」(『신시대』, 1942. 1)에서 이렇게 노래한다.“비단 치마 모르고/ 연지분도 다 버린 채/ 동아의 새 언덕을 쌓으리다/ 온갖 꾸밈에서/ 행복을 사려던 지난 날에서/ 풀렸습니다/ 벗어났습니다// 들어보세요/ 저 날카로운 바람 새에서/ 미래를 창조하는/ 우렁찬 고함과/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산 발자국 소리를// 우리는 새날의 딸/동방의 여인입니다”

그리고 일본군의 싱가포르 점령을 찬양하는 “2월 15일 밤! / 대아시아의 거화! / 대화혼의 칼이 번득이자 / 사슬은 끊이고 / 네 몸은 한 번에 풀려 나왔다 / 처녀야! 소남도(昭南島)의 처녀야!”(「호산나 소남도」,『매일신보』, 1942. 2. 21)라는 시를 썼다. 싱가포르를 소남도로 고쳐 부른 일제의 침략을 미화한 시에서 ‘동방’의 단결을 강조하면서, 침략과 점령을 일본에 의한 해방으로 풀이한다.

그렇다면 친일문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친일반민족 행위 708명에 포함된 문인은 시 분야에 김동환 김상용 김안서 김종한 김해강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이찬 임학수 주요한 최남선, 소설·수필·희곡 분야에 김동인 김소운 박영호 박태원 송영 유진오 유치진 이광수 이무영 이서구 이석훈 장혁주 정비석 정인택 조용만 채만식 최정희 함대훈 함세덕. 평론 분야에 곽종원 김기진 김문집 김용제 박영희 백철 이헌구 정인섭 조연현 최재서 홍효민 등이다.

시인 성기조는 이번 강남문화원 강연에서 “모윤숙은 90년, 타계할 때까지 불같은 정열로 일생을 살았지만 어느 누구를 잡고도 그 정열을 숯덩이처럼 태워보지 못하고 가슴을 꼭 닫고 살다간 여인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찬양 일색으로 마무리하였다. 강남문화원이 주최한 성기조의 「펜클럽의 대모, 영운 모윤숙」의 강연 소식을 들으면서, 정부지원을 받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제주지역 문화원들 사업도 철저하게 점검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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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4 16:52 2010/05/1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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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모윤숙

김 관 후

지난 4월 20일 서울강남문화원강당에서는 서울시단(詩壇)과 강남문화원이 공동 주최하는 영운(嶺雲) 모윤숙(毛允淑) 시낭송회가 열렸다. 시낭송과 더불어 성기조 시인의 「펜클럽의 대모, 영운 모윤숙」이라는 주제 강연도 있었다. 시낭송회에서는 모윤숙의 여러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그렇다면 모윤숙은 어떤 인물일까? 그리고 어찌하여 꼭 모윤숙일까? 그리고 강남문회원이 왜 이런 행사를 주최할까?

모윤숙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이다. 친일인명사전이란 구한말 이래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지지, 찬양하고 민족의 독립을 방해 혹은 지연시키며 각종 수탈행위와 강제동원에 앞장서는 등으로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인물사전이다. 사전에는 해당 인물의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 주요행적 등이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해방이후 모윤숙과 인도인 쿠마라 P.S. 메논의 스캔들은 유명하다.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미군정, 친일 인사, 이승만의 밀실 정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대표로 한국에 입국한 메논은 모윤숙과의 만남을 계기로 남한 단독 선거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힘을 실어주는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 유엔총회에서 남한 단독 선거가 통과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처음부터 단정수립 반대국이었던 인도의 대표로서 한국에 온 메논은 모윤숙의 노력(?)으로 이승만과의 단독 대좌를 했는가 하면, 이광수와도 자리를 마련해 즐거운 한때를 가졌다. 단정수립 확정 후 메논이 한국을 떠난 뒤의 심경을 모윤숙은 “고마운 사람! 나만 아는 잊을 수 없는 은인.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우정과 신의에 가득 찬 영혼을 가진 세계의 외교관이었다. 이 박사는 실로 그 은혜를 잊을 수도, 또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윤숙은 어떤 친일행위를 했을까? 일제의 어용화를 위하여 만들어진 조선문인협회 문예대강연회의 연단에 선 것을 시작으로 모윤숙은 임전대책협의회, 조선교화단체연합회, 조선임전보국단 부인회 등 각종 여성 관련 친일단체에서 활약을 했다.

조선 여인으로 하여금 고루한 민족 관념을 버리고 일본의 서양 정복전에 협력해야 한다는 주제를 노래한 시 「동방의 여인들」(『신시대』, 1942. 1)에서 이렇게 노래한다.“비단 치마 모르고/ 연지분도 다 버린 채/ 동아의 새 언덕을 쌓으리다/ 온갖 꾸밈에서/ 행복을 사려던 지난 날에서/ 풀렸습니다/ 벗어났습니다// 들어보세요/ 저 날카로운 바람 새에서/ 미래를 창조하는/ 우렁찬 고함과/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산 발자국 소리를// 우리는 새날의 딸/동방의 여인입니다”

그리고 일본군의 싱가포르 점령을 찬양하는 “2월 15일 밤! / 대아시아의 거화! / 대화혼의 칼이 번득이자 / 사슬은 끊이고 / 네 몸은 한 번에 풀려 나왔다 / 처녀야! 소남도(昭南島)의 처녀야!”(「호산나 소남도」,『매일신보』, 1942. 2. 21)라는 시를 썼다. 싱가포르를 소남도로 고쳐 부른 일제의 침략을 미화한 시에서 ‘동방’의 단결을 강조하면서, 침략과 점령을 일본에 의한 해방으로 풀이한다.

그렇다면 친일문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친일반민족 행위 708명에 포함된 문인은 시 분야에 김동환 김상용 김안서 김종한 김해강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이찬 임학수 주요한 최남선, 소설·수필·희곡 분야에 김동인 김소운 박영호 박태원 송영 유진오 유치진 이광수 이무영 이서구 이석훈 장혁주 정비석 정인택 조용만 채만식 최정희 함대훈 함세덕. 평론 분야에 곽종원 김기진 김문집 김용제 박영희 백철 이헌구 정인섭 조연현 최재서 홍효민 등이다.

시인 성기조는 이번 강남문화원 강연에서 “모윤숙은 90년, 타계할 때까지 불같은 정열로 일생을 살았지만 어느 누구를 잡고도 그 정열을 숯덩이처럼 태워보지 못하고 가슴을 꼭 닫고 살다간 여인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찬양 일색으로 마무리하였다. 강남문화원이 주최한 성기조의 「펜클럽의 대모, 영운 모윤숙」의 강연 소식을 들으면서, 정부지원을 받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제주지역 문화원들 사업도 철저하게 점검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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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4 16:50 2010/05/1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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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권하는 한국사회

도박 권하는 한국사회


김 관 후


“이제 모든 게 끝났소.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었소. 이제 나는 도박하는 상상을 하느라 밤을 새우지 않을 것이오. 일만 생각할 것이오." 러시아의 문호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가 부인 안나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그는 도박으로 돈을 날리고 형 미하일에게도 돈을 부쳐달라고 졸랐다. 형이 죽자 그는 형의 빚까지 떠안으며 빚더미에 앉게 된다. 그는 출판업자게 돈을 빌리면서 전집 3권을 출간하되 장편 한 편을 덧붙여준다는 계약을 했다. 그 당시 써낸 작품이 바로『죄와 벌』이다.『카라마조프네 형제들』,『악령』,『백치』 등 그의 대표작들도 빚을 갚기 위해 써낸 것들이었다. 그가 도박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빚을 지지 않았다면 그의 소설들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루크 클라크(Clark) 박사는 ‘인간의 뇌는 도박에서 지더라도 이길 때와 같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이것이 도박에 중독되는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사행산업감독위원회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의뢰한 사행산업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인구의 '도박중독 유병률'은 9.5%로 조사됐다. 국민 10명 중 1명꼴로 도박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인생역전, 이번엔 당신 차례입니다’라는 광고까지 등장하는 사회 분위기를 타고 국내 사행산업은 급성장을 해왔다.

사행산업이란 적은 돈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업종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소득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큰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에 사행산업이 번창한다. 따라서 적은 돈으로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베팅을 선호하게 되고, 이런 ‘기대심리’가 사행산업을 계속 번창시키는 요인이다.

‘허가받은 도박’인 사행산업이 우리나라에는 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스포츠토토, 소싸움 모두 7종류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다. 미국·일본·영국 등은 4~6종이고, 룩셈부르크는 2종이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대비 사행산업 비중도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훨씬 높다. 국내 사행산업은 한번 베팅한도가 10만 원 정도이고, 하루 베팅 횟수가 10회 이상으로 돼 있어 100만 원 이상의 돈을 판돈으로 거는 게 허용된다.

우리 주위에서는 도박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국민의 놀이 문화 자체가 도박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근래에 급속하게 늘어난 불법 도박 사행 업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마, 경정, 경륜과 각종 장외 발매소, 카지노, 로또 복권방 등은 모두 국가가 운영하면서 전 국민을 도박 문화에 물들게 한 주범들이다. 이러한 도박 산업의 매출 규모는 우리나라 관광, 레저 산업 총 매출 28조 원의 절반이 넘는 15조 원 정도이다.

다시 말하면, 가장 심각한 문제는 도박 사행 산업을 국가가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박’이라는 용어는 역시 국가가 운영하는 로또로부터 비롯되었다. 요즈음 급속하게 번지는 화상 경마장은 공기업인 마사회의 장외 발매소를 모방한 것이다. 특히, 현 정권이 들어서 도박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었는데, 문화나 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한다고 하면서 그 재원을 사행 산업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기금에 의존하고 있다. 레저 관광 산업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외국인 카지노를 추가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 주도의 사행 도박 산업의 무절제한 확대는 결국 불법 도박까지 만연하게 하고 있다.

현재 제주특별자치도가 제도개선 핵심과제로 추진하는 관광객 전용 카지노의 도입에 대한 타당성 검증이 진행 중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관광객 전용 카지노 도입의 경제적, 인문사회적 타당성 연구용역'을 제주관광공사를 통해 전문기관에 의뢰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연구용역을 통해 국민과 중앙정부가 공감할 수 있는 관광객 전용 카지노 도입 방안이 나오면 카지노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그러나 문화관광체육부와 일부 시민사회단체 등은 사행심리를 부채질하고, 범죄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제주도 관계자는 "이번 용역은 경제적 파급 효과가 있음에도, 카지노에 대해 사행산업이자 도박중독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있어 이에 대한 타당성을 국가적 관점에서 검토, 제도개선에 활용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제주도의 속내는 관광객 전용 카지노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지방정부가 나서서 도박을 부추긴다면 그 결과는 참혹할 것이며, 우리 도민은 제주경마장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도 주위에서 숫하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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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9 16:40 2010/04/2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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