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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과 남북축구

월드컵과 남북축구


김 관 후


1929년부터 시작된 경성(서울)과 평양의 경평(京平) 대항전은 축구에 대한 관심을 크게 증폭시키며 전 민족이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축구는 일제 식민지 아래에서 가슴에 쌓인 민족의 울분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청량제였고 독립의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싹이었다.
경평축구는 당시 경성중학 주축의 경성팀과 숭실학교 주축의 평양팀이 서울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경기를 가진데서 기원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정기전이 시작된 것은 1933년이었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의 와중에서도 계속되었던 경평축구대항전은 해방 후 분단과 함께 1946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2010년 월드컵에 사상 유례없는 남북한 본선 동반 진출의 쾌거를 이룩하였다. 남한은 일찌감치 조 선두를 달리며 2010년 남아공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따냈다. 북한 역시 기적의 8강 진출로 큰 파란을 일으켰던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이후 44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발을 내딛게 됐다. 첫 동반 진출이라는 민족의 쾌거, 한반도를 비롯해 세계의 눈과 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등장한 두 개의 '코리아'로 향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월드컵에서 남북이 공동응원을 치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핑퐁 외교'가 큰 기여를 했다. 스포츠정신을 살려 적대관계에 놓인 두 진영을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물꼬를 전환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남과 북의 모든 선수를 다 응원하는 공동 응원단을 꾸려, 세계인이 바라보는 월드컵 경기장에서 상대방을 서로 응원한다면 남북통일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은가. 과거 남과 북이 올림픽 등 국제경기에 공동입장을 하면 항상 들었던 깃발이 단일기였고 부르는 노래는 아리랑이었다.

2005년 8월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통일축구대회에서 남측 응원단은 일방적으로 남측만 응원했다. 통일축구대회였는데도 그랬다. 당시에는 남측에 북측이 패해서 그랬는지 경기가 끝난 후 남측 선수들은 북측 선수들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었지만 북측 선수들은 굳어진 얼굴을 펴지 못했다.

나라와 국민의 기대를 잔뜩 지고 경기장에 나와 지고도 환하게 웃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이다. 하지만 누가 이기고, 누가 지든 남과 북의 선수끼리 얼싸안고 통일의 노래를 불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운동장에서 하나가 되어 정말 마음 놓고 얼싸안아 보자. 그렇게 잔디밭에 쓰러져 뒹굴다가 눈물이라도 펑펑 흘린다고 해서 누가 손가락질을 하겠는가. 수 십년간 갈라져 살던 형제가 만났는데 얼싸 안고 뒹굴고 눈물을 흘린다고 무엇이 이상하겠는가.  2010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은 해외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헝가리에 0-9로 대패한 후 무려 56년만이다. 32년 만에 본선에 진출했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로 보자면 24년만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8년만이다. 하지만 원정 16강에 올랐다고 한국을 축구 선진국이라 말하는 것에는 선을 긋는 전문가가 있다. 축구해설가 신문선 명지대교수다. 한국 축구는 뒤집어서 보면 아주 병색이 완연한 환자가 사진을 찍고 TV에 나오기 위해 화장을 짙게 한 얼굴이라고 일갈한다.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인 '수비 불안'과 '골 결정력 부재'는 바로 축구계의 구조적인 병폐에서 기인한다. 이론적인 공부를 하지 않는 것" 그리고 "결과에 목을 매는 문화"가 한국 축구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이른바 '뻥축구'(공만 뻥뻥 걷어차는 축구)의 모습도 보인다는 것이다. 수학에 공식이 있듯 축구에도 원리가 있다. 축구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공부가 절실하다. 하지만 한국 축구가 이론 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경기 중에는 당연히 실점할 수 있다. 대신 경기 후 선수와 감독과의 미팅, 혹은 학자들의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문제점을 공부하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여기에 덧붙일 것이 남북축구를 통하여 통일에 기여한다는 축구인들의 의식전환이다. 축구생산자 집단의 '통렬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누구를 위해서 게임을 하는가. 팬들을 위해, 그들을 감동시키는 최선의 게임을 해야 한다. 그래야 축구는 강해진다. 더 열심히 뛰어서 국민들을 위해 '명품'을 만들려 노력해야 한다. 그 명품이야말로 축구를 통한 남북교류가 이루저지고 통일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축구는 예측불허, 대반전, 통쾌한 결말을 지닌 한 편의 스릴러다. 통일도 마찬가지다. 예측불허이다. '손에 땀을 쥐게한다'는 진부한 표현으로는 설명할 길 없는 축구의 매력은 남북통일에도 해당된다. 이제 남과 북이 정기전을 통하여 서울과 평양이 축구열기에 휩싸이는 일부터 시작한다면 통일도 예측불허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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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30 13:13 2010/07/3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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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한계선은 냉전의 성역인가

북방한계선은 냉전의 성역인가

김 관 후

"서해북방한계선은 어릴 적 땅 따먹기 할 때 땅에 그어놓은 줄이다. 이것은 쌍방이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다. 그 선이 처음에는 작전금지선이었다. 이것을 오늘에 와서 영토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남북간에 합의한 분계선이 아니란 점을 인정해야 한다. 헌법상 북쪽 땅도 우리 영토인데 그 안에 줄을 그어놓고 영토선이라고 주장하면 헷갈린다. 국민을 오도하면 풀 수 없는 문제다" 2007년 10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당대표 초청간담회에서 김정일과의 평양회담에서 북방한계선(北方限界線, 영어: Northern Limit Line, 줄여서 NLL)을 북측에 일방적으로 양보했다는 야당측 주장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답변한 내용이다. 김영삼 정권 때만 해도 북방한계선은 영해선이 아니었다. 당시 이양호 국방부장관도 1996년 국회에서 NLL에 대해 ‘이건 정전협정과 관계없고, 넘어와도 어쩔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이처럼 NLL은 선(線) 개념이다. 남북은 20년 전에 해상경계선을 설정하자는 선 개념의 합의를 했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그걸로 해결이 안 되니까 면(面) 혹은 지대 개념으로 바꾼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10·4공동선언을 통해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의 개발에 합의함으로써 NLL문제는 여전히 그 불씨가 꺼지지 않게 되었다. 평화협력지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설정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NLL에 대한 남북 양측의 서로 다른 입장 특히 양측 군부의 안보인식이 대립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북방한계선은 1953년 정전 직후 마크 클라크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 북한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해상경계선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인정하지 않아 한해에 20∼30건의 월선사태가 빚어지는 등 문제를 안고 있는 경계선이다. 또한 국제법적으로 영해를 규정하는 경계선은 아니라는 게 국제법 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북한은 육지에서 12해리까지를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경우 서해 5도까지 포함하게 된다. 그러나 북한은 그동안 묵시적으로 북방한계선을 인정해왔다. 실제 1992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었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철저하고 신중한 조사를 했으리라고 보지만, 그러나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위기관리가 긴요하다.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지켜야 한다. 따라서 당장 필요한 것은 남북이 서로 자제하면서 긴장과 위기를 슬기롭게 관리하는 것이다. 국민의 30%가량이 정부의 천안함 발표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

천안함 조사 결과에 대해 서재정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와 이승헌 버지니아대 교수, 캐나다의 양판석 박사 등이 심각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일부 국내 학자들도 문제제기에 나섰다. 정부 발표가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는 전문가들한테 전혀 신용을 얻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포인트는 서해에는 해상경계선이 없다. 참여정부는 2007년 10·4선언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란 대단한 합의를 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합의가 잘 실천됐으면 천안함 사태가 일어날 수 없었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긴장의 바다, 충돌의 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어 가야 한다.냉전성역은 냉전 분단체제에서 형성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남과 북이 서로를 원천적으로 적대 및 부정하여 상대방에 극단적인 덫 칠을 가하여 악마화 하고, 자기 것은 절대적인 선으로 미화하거나 신성시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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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3 11:05 2010/07/1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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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희망입니다'

‘아이들이 희망입니다’

김관후


영국 노동당 당수의 아버지가 기자들 앞에서 부르주아를 흉내내는 자신의 아들을 대놓고 비판하였다.
"그 녀석은 노동자의 품위를 저버린 놈이다. 왜 부르주아들처럼 천박하게 비싼 식사를 하고 비싼 호텔에서 묵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노동자가 자본가와 똑같이 '부'와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는 한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노동해방은 권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가치'가 실현되는 세상으로 바뀌는 것이다. 과거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하였던 사회주의자들은 권력만 바꾸었을 뿐 '가치'를 바꾸지 못하였다. 진보주의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가치'를 바꾸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서울과 경기도를 비롯해 전국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교육감 6명이 당선되었다. 수도권에서는 ‘진보교육 벨트’가 형성되었다. 강원·전북·광주·전남에서도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현 정부의 교육정책들이 사안마다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교육당국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법률에 따른 정책은 강행하더라도 상당수는 교육감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제는 정부가 '지침'으로 교육청을 통제하기는 불가능해졌다.

제주교육계에도 새로운 진보바람이 불었다. 지난 2월 24일 제주특별자치도 교육의원 예비후보 이석문은 ‘교육희망 선언문"을 발표하고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하였다. 이 후보는 교육희망 선언문에서 “교육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우리 아이들의 행복과 희망입니다”라고 천명하였다. 교육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그리고 희망을 주기 위해 존재라는 문구도 덧붙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장을 지낸 이석문 후보가 결국 교육의원에 당선됐다. 전교조 출신이 도의회에 입성하기는 이영길 지부장에 이어 두 번 째이지만 교육의원은 처음이다. 특히 교육의원은 그동안 전직 교장이나 교육관료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전교조이자 평교사 출신인 이 후보가 그 관행을 깨뜨렸다. 특히 그는 제주4․3유족회 제주시중부지회장을 맡고 있어, 제주4․3교육에도 새바람이 예상된다.

특히 이석문 당선자는 공교육비를 한 푼도 들이지 않는 '제로(Zero)화'를 약속했다. 헌법으로 규정된 의무교육을 제주에서 현실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잘못 쓰이는 교육재정을 바로잡고, 지속적으로 확대해 학교운영비와 체험학습비 등 부모들이 부담하는 공교육비를 제로화하겠다고 것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 하고 있다. 이제는 어른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이석문 당선자는 이러한 교육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제주에서 만큼은 ‘행복한 10년’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행복한 10년’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합쳐 10년 정도는 아이들이 공부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이 당선자의 표현 방식이다. 교육은 따뜻해야 한다. 교육을 괴로운 존재, 억누르는 존재로 놔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돌이켜 보면, 4.19 교원노조 운동, 86년 교육민주화 선언, 89년 전국교직원노조의 결성에 이르기까지, 억압적 교육체제를 민주화하기 위한 교사 대중의 가열찬 투쟁은 기나긴 가시밭길을 헤쳐 왔다. 오늘날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은 각 곳에서 공동체 교육의 기반이랄 수 있는 공교육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있으며 자본의 논리로 교육을 압도하려 하고 있다.

이석문 당선자는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제주교육, 지방정치에 희망을 주고, 변화를 이끌겠다는 의지만큼은 확고하다. 현대는 ‘통치’가 아닌 ‘협치’, 즉 ‘거버넌스’의 시대다. 그의 당선은 도정이나 도의회의 ‘통치’ 시스템에 반기를 든 것이다. 도민들과 제대로 소통하고 협치해 합리적인 정치적 결과물을 생산해 달라는 절실한 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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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30 10:24 2010/06/3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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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축제다

선거는 축제다

김 관 후


선거는 국민을 위한 축제마당이다. 국민이 바른 말 할 수 있고, 정치인이 귀 기울이는 시늉이라도 하는 자리, 우리가 주인 되어 목청껏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축제의 마당이 바로 선거이다.
그런데 선거 후의 사회는 분노와 갈등으로 마무리가 되는 듯 하여 너무 안타깝다.

지난 지방 선거 때, 고희범 제주도지사 후보가 ‘고희범과 함께 여는 도민광장’에서「푸르른 날」을 불러 선거판에 신선감을 주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대중적인 가곡 칸초네도 열창하였고, 율동팀과 어우러져 한 판 춤도 선보였다. 지지자들과 어깨에 손을 얹는 ‘기차놀이’로 시청 거리를 축제의 분위기로 만들었다.

양창식 교육감 후보 역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축제의 선거운동을 펼쳤다. 운동원들이 횡단보도 파란불 보행시에 나와서 제주를 사랑하고, 부모님을 사랑하며 도민을 사랑한다는 하트 메세지를 남겼다.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를 위해서 젊은 친구들이 모여 참신한 아이디어를 선거운동에 활용하게 되었다. 바로 선거운동이 신명나고 재미나며 도민과 함께하는 축제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는 정말 우리에게 축제이고 잔치일까?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선거를 질펀하게, 모두가 어깨동무하고 즐기는 축제의 한마당으로 경험하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당대회는 나흘 동안 열린다. 전당대회는 여러 기능을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은 당원들의 단합을 높이고, 이미 결정된 대통령선거 후보를 축제 분위기 속에서 선출하면서 언론의 조명을 받기 위한 정치행사이다.

우리나라는 선거철만 되면 온통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선거가 축제가 아니라 한바탕 전쟁인 것이다. 다수결 원칙에 따라 불과 몇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고 희비가 교차되니 목숨을 내놓은 피나는 전쟁을 벌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선거로 인해 지불하는 대가가 너무 크다. 국력소진은 말할 것도 없고 국론분열 또한 선거가 원흉이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의 선거문화를 바꾸기 위해 과연 어떤 대안이 필요할 것인가?.

여기에서 프랑스 대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12명의 후보자들은 인터넷에 뛰어들어 축제판으로 만들어 나갔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르코지 사이트는 사르코지 브랜드 이미지 홍보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르코지가 디스코를 추는 동영상 웹사이트를 운영까지 하였다. 이 사이트에 나오는 사르코지의 아바타에 마우스를 갖다 대면 우스꽝스러운 개다리춤을 추기도 하고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나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에 나오는 존 트래볼타의 춤 같은 고난이도의 댄스를 선보였다. 전문가가 춤을 추는 동영상에 사르코지의 얼굴을 합성하였다. 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전략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하나의 축제라면, 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즐거운 행사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하나의 '축제'로서 국민누구든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하고, 그런 행위에 대해 국민 개개인이 판단하는 하나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 선거판은 ‘한심한 전쟁터’일 뿐이다. 서로 헐뜯고 무시하고 공격하는 행태가 그런 전쟁터를 보는 추잡한 기분이다.

정치의 핵심 키워드의 시작은 바로 '선거' 이다. 그렇다면 6.2 지방선거의 대표적인 키워드 는 무엇일까? 그것은 '북풍' 과 '노풍' 이였다. 여기서, 바로 북풍과 직결된 사안이 바로 '천안함'으로 인한 파장이다. 천안함을 이용하여 여당이 노풍의 차단을 위한 카드로 이용하고 있다는 한나라당이 작성한 '종합 상황보고 문건'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그 내용을 통해서 여당이 천안함 문제를 '국가적 안보 이슈' 로 정의하고 대국민 홍보에 나서 선거에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을 그대로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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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4 10:31 2010/06/1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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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모윤숙

친일파 모윤숙


김 관 후


지난 4월 20일 서울강남문화원강당에서는 서울시단(詩壇)과 강남문화원이 공동 주최하는 영운(嶺雲) 모윤숙(毛允淑) 시낭송회가 열렸다. 시낭송과 더불어 성기조 시인의 「펜클럽의 대모, 영운 모윤숙」이라는 주제 강연도 있었다. 시낭송회에서는 모윤숙의 여러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그렇다면 모윤숙은 어떤 인물일까? 그리고 어찌하여 꼭 모윤숙일까? 그리고 강남문회원이 왜 이런 행사를 주최할까?

모윤숙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이다. 친일인명사전이란 구한말 이래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지지, 찬양하고 민족의 독립을 방해 혹은 지연시키며 각종 수탈행위와 강제동원에 앞장서는 등으로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인물사전이다. 사전에는 해당 인물의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 주요행적 등이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해방이후 모윤숙과 인도인 쿠마라 P.S. 메논의 스캔들은 유명하다.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미군정, 친일 인사, 이승만의 밀실 정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대표로 한국에 입국한 메논은 모윤숙과의 만남을 계기로 남한 단독 선거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힘을 실어주는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 유엔총회에서 남한 단독 선거가 통과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처음부터 단정수립 반대국이었던 인도의 대표로서 한국에 온 메논은 모윤숙의 노력(?)으로 이승만과의 단독 대좌를 했는가 하면, 이광수와도 자리를 마련해 즐거운 한때를 가졌다. 단정수립 확정 후 메논이 한국을 떠난 뒤의 심경을 모윤숙은 “고마운 사람! 나만 아는 잊을 수 없는 은인.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우정과 신의에 가득 찬 영혼을 가진 세계의 외교관이었다. 이 박사는 실로 그 은혜를 잊을 수도, 또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윤숙은 어떤 친일행위를 했을까? 일제의 어용화를 위하여 만들어진 조선문인협회 문예대강연회의 연단에 선 것을 시작으로 모윤숙은 임전대책협의회, 조선교화단체연합회, 조선임전보국단 부인회 등 각종 여성 관련 친일단체에서 활약을 했다.

조선 여인으로 하여금 고루한 민족 관념을 버리고 일본의 서양 정복전에 협력해야 한다는 주제를 노래한 시 「동방의 여인들」(『신시대』, 1942. 1)에서 이렇게 노래한다.“비단 치마 모르고/ 연지분도 다 버린 채/ 동아의 새 언덕을 쌓으리다/ 온갖 꾸밈에서/ 행복을 사려던 지난 날에서/ 풀렸습니다/ 벗어났습니다// 들어보세요/ 저 날카로운 바람 새에서/ 미래를 창조하는/ 우렁찬 고함과/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산 발자국 소리를// 우리는 새날의 딸/동방의 여인입니다”

그리고 일본군의 싱가포르 점령을 찬양하는 “2월 15일 밤! / 대아시아의 거화! / 대화혼의 칼이 번득이자 / 사슬은 끊이고 / 네 몸은 한 번에 풀려 나왔다 / 처녀야! 소남도(昭南島)의 처녀야!”(「호산나 소남도」,『매일신보』, 1942. 2. 21)라는 시를 썼다. 싱가포르를 소남도로 고쳐 부른 일제의 침략을 미화한 시에서 ‘동방’의 단결을 강조하면서, 침략과 점령을 일본에 의한 해방으로 풀이한다.

그렇다면 친일문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친일반민족 행위 708명에 포함된 문인은 시 분야에 김동환 김상용 김안서 김종한 김해강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이찬 임학수 주요한 최남선, 소설·수필·희곡 분야에 김동인 김소운 박영호 박태원 송영 유진오 유치진 이광수 이무영 이서구 이석훈 장혁주 정비석 정인택 조용만 채만식 최정희 함대훈 함세덕. 평론 분야에 곽종원 김기진 김문집 김용제 박영희 백철 이헌구 정인섭 조연현 최재서 홍효민 등이다.

시인 성기조는 이번 강남문화원 강연에서 “모윤숙은 90년, 타계할 때까지 불같은 정열로 일생을 살았지만 어느 누구를 잡고도 그 정열을 숯덩이처럼 태워보지 못하고 가슴을 꼭 닫고 살다간 여인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찬양 일색으로 마무리하였다. 강남문화원이 주최한 성기조의 「펜클럽의 대모, 영운 모윤숙」의 강연 소식을 들으면서, 정부지원을 받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제주지역 문화원들 사업도 철저하게 점검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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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4 16:52 2010/05/1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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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모윤숙

김 관 후

지난 4월 20일 서울강남문화원강당에서는 서울시단(詩壇)과 강남문화원이 공동 주최하는 영운(嶺雲) 모윤숙(毛允淑) 시낭송회가 열렸다. 시낭송과 더불어 성기조 시인의 「펜클럽의 대모, 영운 모윤숙」이라는 주제 강연도 있었다. 시낭송회에서는 모윤숙의 여러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그렇다면 모윤숙은 어떤 인물일까? 그리고 어찌하여 꼭 모윤숙일까? 그리고 강남문회원이 왜 이런 행사를 주최할까?

모윤숙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이다. 친일인명사전이란 구한말 이래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지지, 찬양하고 민족의 독립을 방해 혹은 지연시키며 각종 수탈행위와 강제동원에 앞장서는 등으로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인물사전이다. 사전에는 해당 인물의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 주요행적 등이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해방이후 모윤숙과 인도인 쿠마라 P.S. 메논의 스캔들은 유명하다.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미군정, 친일 인사, 이승만의 밀실 정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대표로 한국에 입국한 메논은 모윤숙과의 만남을 계기로 남한 단독 선거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힘을 실어주는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 유엔총회에서 남한 단독 선거가 통과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처음부터 단정수립 반대국이었던 인도의 대표로서 한국에 온 메논은 모윤숙의 노력(?)으로 이승만과의 단독 대좌를 했는가 하면, 이광수와도 자리를 마련해 즐거운 한때를 가졌다. 단정수립 확정 후 메논이 한국을 떠난 뒤의 심경을 모윤숙은 “고마운 사람! 나만 아는 잊을 수 없는 은인.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우정과 신의에 가득 찬 영혼을 가진 세계의 외교관이었다. 이 박사는 실로 그 은혜를 잊을 수도, 또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윤숙은 어떤 친일행위를 했을까? 일제의 어용화를 위하여 만들어진 조선문인협회 문예대강연회의 연단에 선 것을 시작으로 모윤숙은 임전대책협의회, 조선교화단체연합회, 조선임전보국단 부인회 등 각종 여성 관련 친일단체에서 활약을 했다.

조선 여인으로 하여금 고루한 민족 관념을 버리고 일본의 서양 정복전에 협력해야 한다는 주제를 노래한 시 「동방의 여인들」(『신시대』, 1942. 1)에서 이렇게 노래한다.“비단 치마 모르고/ 연지분도 다 버린 채/ 동아의 새 언덕을 쌓으리다/ 온갖 꾸밈에서/ 행복을 사려던 지난 날에서/ 풀렸습니다/ 벗어났습니다// 들어보세요/ 저 날카로운 바람 새에서/ 미래를 창조하는/ 우렁찬 고함과/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산 발자국 소리를// 우리는 새날의 딸/동방의 여인입니다”

그리고 일본군의 싱가포르 점령을 찬양하는 “2월 15일 밤! / 대아시아의 거화! / 대화혼의 칼이 번득이자 / 사슬은 끊이고 / 네 몸은 한 번에 풀려 나왔다 / 처녀야! 소남도(昭南島)의 처녀야!”(「호산나 소남도」,『매일신보』, 1942. 2. 21)라는 시를 썼다. 싱가포르를 소남도로 고쳐 부른 일제의 침략을 미화한 시에서 ‘동방’의 단결을 강조하면서, 침략과 점령을 일본에 의한 해방으로 풀이한다.

그렇다면 친일문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친일반민족 행위 708명에 포함된 문인은 시 분야에 김동환 김상용 김안서 김종한 김해강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이찬 임학수 주요한 최남선, 소설·수필·희곡 분야에 김동인 김소운 박영호 박태원 송영 유진오 유치진 이광수 이무영 이서구 이석훈 장혁주 정비석 정인택 조용만 채만식 최정희 함대훈 함세덕. 평론 분야에 곽종원 김기진 김문집 김용제 박영희 백철 이헌구 정인섭 조연현 최재서 홍효민 등이다.

시인 성기조는 이번 강남문화원 강연에서 “모윤숙은 90년, 타계할 때까지 불같은 정열로 일생을 살았지만 어느 누구를 잡고도 그 정열을 숯덩이처럼 태워보지 못하고 가슴을 꼭 닫고 살다간 여인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찬양 일색으로 마무리하였다. 강남문화원이 주최한 성기조의 「펜클럽의 대모, 영운 모윤숙」의 강연 소식을 들으면서, 정부지원을 받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제주지역 문화원들 사업도 철저하게 점검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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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관후

2010/05/14 16:50 2010/05/1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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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권하는 한국사회

도박 권하는 한국사회


김 관 후


“이제 모든 게 끝났소.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었소. 이제 나는 도박하는 상상을 하느라 밤을 새우지 않을 것이오. 일만 생각할 것이오." 러시아의 문호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가 부인 안나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그는 도박으로 돈을 날리고 형 미하일에게도 돈을 부쳐달라고 졸랐다. 형이 죽자 그는 형의 빚까지 떠안으며 빚더미에 앉게 된다. 그는 출판업자게 돈을 빌리면서 전집 3권을 출간하되 장편 한 편을 덧붙여준다는 계약을 했다. 그 당시 써낸 작품이 바로『죄와 벌』이다.『카라마조프네 형제들』,『악령』,『백치』 등 그의 대표작들도 빚을 갚기 위해 써낸 것들이었다. 그가 도박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빚을 지지 않았다면 그의 소설들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루크 클라크(Clark) 박사는 ‘인간의 뇌는 도박에서 지더라도 이길 때와 같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이것이 도박에 중독되는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사행산업감독위원회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의뢰한 사행산업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성인인구의 '도박중독 유병률'은 9.5%로 조사됐다. 국민 10명 중 1명꼴로 도박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인생역전, 이번엔 당신 차례입니다’라는 광고까지 등장하는 사회 분위기를 타고 국내 사행산업은 급성장을 해왔다.

사행산업이란 적은 돈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업종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소득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큰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에 사행산업이 번창한다. 따라서 적은 돈으로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베팅을 선호하게 되고, 이런 ‘기대심리’가 사행산업을 계속 번창시키는 요인이다.

‘허가받은 도박’인 사행산업이 우리나라에는 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스포츠토토, 소싸움 모두 7종류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다. 미국·일본·영국 등은 4~6종이고, 룩셈부르크는 2종이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대비 사행산업 비중도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훨씬 높다. 국내 사행산업은 한번 베팅한도가 10만 원 정도이고, 하루 베팅 횟수가 10회 이상으로 돼 있어 100만 원 이상의 돈을 판돈으로 거는 게 허용된다.

우리 주위에서는 도박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국민의 놀이 문화 자체가 도박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근래에 급속하게 늘어난 불법 도박 사행 업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마, 경정, 경륜과 각종 장외 발매소, 카지노, 로또 복권방 등은 모두 국가가 운영하면서 전 국민을 도박 문화에 물들게 한 주범들이다. 이러한 도박 산업의 매출 규모는 우리나라 관광, 레저 산업 총 매출 28조 원의 절반이 넘는 15조 원 정도이다.

다시 말하면, 가장 심각한 문제는 도박 사행 산업을 국가가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박’이라는 용어는 역시 국가가 운영하는 로또로부터 비롯되었다. 요즈음 급속하게 번지는 화상 경마장은 공기업인 마사회의 장외 발매소를 모방한 것이다. 특히, 현 정권이 들어서 도박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었는데, 문화나 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한다고 하면서 그 재원을 사행 산업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기금에 의존하고 있다. 레저 관광 산업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외국인 카지노를 추가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 주도의 사행 도박 산업의 무절제한 확대는 결국 불법 도박까지 만연하게 하고 있다.

현재 제주특별자치도가 제도개선 핵심과제로 추진하는 관광객 전용 카지노의 도입에 대한 타당성 검증이 진행 중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관광객 전용 카지노 도입의 경제적, 인문사회적 타당성 연구용역'을 제주관광공사를 통해 전문기관에 의뢰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연구용역을 통해 국민과 중앙정부가 공감할 수 있는 관광객 전용 카지노 도입 방안이 나오면 카지노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그러나 문화관광체육부와 일부 시민사회단체 등은 사행심리를 부채질하고, 범죄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제주도 관계자는 "이번 용역은 경제적 파급 효과가 있음에도, 카지노에 대해 사행산업이자 도박중독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있어 이에 대한 타당성을 국가적 관점에서 검토, 제도개선에 활용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제주도의 속내는 관광객 전용 카지노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지방정부가 나서서 도박을 부추긴다면 그 결과는 참혹할 것이며, 우리 도민은 제주경마장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도 주위에서 숫하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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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9 16:40 2010/04/2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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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과 본회퍼

안중근과 본회퍼


김 관 후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기원하신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칼은 사람을 죽이는 무시무시한 무기이기도 하지만 아픈 곳을 도려내어 사람을 살리는 도구이기도 하다. 칼이 갈라놓는다는 것은 이어지는 다음의 예수님 말씀에서 분명해진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마태 10,35-36) 예수님은 왜 이런 끔찍한 칼을 제자들에게 주려고 하시는가?

안중근 (1879-1910) 의사는 독실한 신앙인이고 평화주의자이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동양평화론’을 쓸 시간을 벌고자 항소를 포기하고, 법정을 동양평화사상의 설교장으로 삼으려 했다. 그가 옥중에서 미완으로 남긴 ‘동양평화론’은 100년 앞을 내다본 동양의 미래상이다.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는 기독교 평화운동의 선구자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평화를 이 사회 속에 실천하고자 투쟁하다가 순교하였다. 미국의 라인홀드 니버는 본회퍼를 순교자라 칭하고 “그의 삶은 현대 사도행전에 속한다”고 말한바 있다.

올해는 안중근 의거 100주년이다. 그는 1909년 10월26일 흉적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대한의 자주독립과 한민족의 의기를 만천하에 드높였다. 대한제국을 멸망시킨 이토는 만주를 넘보고 대륙 진출의 야망을 위해 하얼빈에 가던 길이었다. 그는 이토의 심장을 향해 통렬하게 세 발을 쏘았고 적중하여 흉적은 쓰러졌다. 이를 지켜본 그는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대한만세!’를 세 번 외쳤다. 그는 거사 전에 ‘장부가’를 지었다.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어느 날에 과업을 이룰고/ 등불이 점차 차가워짐이여 장사의 의기는 뜨겁도다/ 분기하여 한번 지나감이여 반드시 목적을 이룰지어다/ 쥐도적 이토여 어찌 즐겨 목숨을 비길고”(후략)

디트리히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 모임에 가담하였다는 혐의로 비밀경찰에 잡혀 39세의 나이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독일 교회가 나치 정권의 폭압에 침묵하고 순응하는 것을 두고 값싼 은혜에 빠져 있다고 통박하며, “미친 운전사를 방치하여 희생자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보다 핸들을 빼앗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주장하였다. 다음 시는 그의 유고집『옥중서신』가운데에서 뽑았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가끔 말한다. 나는 좁은 감방에서 일어나 조용하고, 즐겁고, 확고하게 걷는다고. 마치 자기 성의 영주처럼.//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가끔 말한다. 나는 감시인에게 자유롭고, 친절하고, 분명하게 말을 건넨다고. 마치 내가 상관이 것처럼.//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또 말한다. 나는 불행의 날들을 평온하게, 웃으면서, 자랑스럽게 잘 견딘다고. 승리에 익숙한 사람처럼."

본회퍼가 남긴 공헌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정의와 평화를 위한 기독교인의 의무와 책임을 강조한 것에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그의 삶과 신학의 주제이다. 그는 그 질문에 대하여 고백하고 그 고백한 것을 증언하다가 나치정권에 의해서 처형되었다. 오늘 우리는 본회퍼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누구인가”를 물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평화를 만드는 자(peacemaker)로서 평화의 사도가 되라고 말씀한다. 평화운동의 선구자로서 안중근과 본회퍼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며 또 누구이며 그가 말한 기독교 평화론은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평화는 인류의 영원한 염원이다.

지금 중국의 동북공정의 결과물로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을 시킨 논문들이 발표 되고, 마라도 남방에 있는 이어도를 중국이 한국영토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보도가 나온다. 일본은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억지 주장을 하고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일본에 신군국주의 건설의 구실로 삼고 있다. 이러한 때 안중근과 본회퍼로부터 평화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배워야 한다. 한반도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마침내는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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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9 08:23 2010/04/1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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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되찾자

‘민주주의를 되찾자’



김 관 후



“인공적으로 정비되어진 코스가 아닙니다. 옛날 길을 찾아내어 만든 길이기 때문에 걷기 힘든 길도 있고, 교통편이 불편한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걷는 사람의 체력과 흥미, 시간 등에 맞춰 갈 수 있는 곳까지 자신의 페이스로 여유로운 마음으로 무리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상당한 매력을 느낍니다.” 서귀포시에서 파견근무를 하는 일본인 기노가와시 츠다카요코 씨가 제주올레를 걷고 느낀 소감문 중 일부이다. 제주올레는 거릿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길이다. ‘제주 올레’는 발음상 ‘제주에 올레?’ ‘제주에 오겠니?’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바람 부는 섬, 제주의 올레는 구멍 숭숭 난 현무암으로 이뤄졌다. 더불어 구불구불 이어진 제주 돌담길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제주올레가 조작되어 이사장은 시사저널 편집장과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역임한 제주출신 서명숙씨가 맡았다. 허영선 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문성윤 변호사,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 이창익 제주대 교수, 이유진 시인, 정혜신 정신과 의사, 조용환 법무법인 지평 대표 등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제주올레를 표방하여 서울에서 ‘민주주의 올레’가 결성되어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제주4·3올레 걷기 행사도 계획되어 있다. 민주주의 올레는 ‘놀멍, 쉬멍, 걸으멍’ 자연풍광을 즐기는 걷기행사로서 자발성, 개방성, 다양성을 특징으로 한다. 민주주의 역사현장을 함께 걷고자하는 민주주의 올레는 때로는 도심지 거리를 걷기도 하고, 민주주의 역사를 되새기는 문화행사와 병행해서 진행되기도 하지만 자유롭고 여유로운 올레의 기본정신을 특징을 잘 살리며 진행되고 있다,

특히 2010 민주올레 운영위원회가 ‘3·1민주올레’를 첫 사업으로 내세운 것은 그 의미가 깊다. 서울의 3·1운동과 민주올레는 서울은 독립만세운동이 처음 준비되어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의 3·1운동 올레길은 만세시위가 모의되어 실행되기까지의 과정을 되새겨볼 수 있는 코스로 구성되어있다. 민족대표들이 모여 운동을 준비한 곳, 힉생대표들이 만세시위를 모의한 주요한 장소들, 독립선언서가 인쇄되고 뿌려진 곳, 만세시위가 벌어진 주요 장소, 당시 민족지도자들이 투옥된 감옥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무심코 찾는 북촌 한옥마을 일대, 인사동과 종로통의 뒷골목, 덕수궁 돌담길, 서대문 성곽을 따라 독립문에 이르는 길이 바로 서울에서 3·1운동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들이다.

금년은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해이다. 한일합방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4·18 의거 50주년이 되는 해이고, 5·18 광주민중항쟁 30주년이 되는 해이고, 6·15 남북공동성명 10주년이 해이다. 그리고 제주4·3발발 62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기념비적인 해에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답을 민주주의 올레가 내놓았다. '일단 걷자'라는 것이다. 4월19일에는 시위학생들이 숨진 효자동에서 묘역이 있는 수유리까지 걷고, 5월18일에는 광주민중항쟁이 발발한 광주 금남로에서 희생자 묘역이 있는 망월동까지 걷고, 5월23일에는 진영읍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김해 봉하마을까지 걷자는 온동이다. 6월15일에는 판문점에서 개성공단까지 걸어볼 수 있다면, 대박이라고 주최 측은 말한다. ’어려우니까 포기하고, 포기하면 좌절하고, 좌절하면 배신한다.’는 민주올레운영위원회의 ‘좌절의 법칙’은 '어려우면 포기하지 말고 쉬어가면 된다. 내가 못하면 다음 사람이 하면 된다라고 편하게 마음먹어라'라고 하고 있다.

미국 보스턴에는 약 4km에 걸친 붉은 벽돌 길을 따라 걷는 프리덤 트레일(Freedom Trail)이 있다. 미국 독립전쟁과 연관된 16개의 역시유적을 연결하는 도보길이다. 프리덤 트레일은 1958년 저널리스트 위리엄 스코필드의 제안에 의해 조성되어 매년 3백만 명 이상이 트레일을 걷고 2만 명의 학생들이 현장학습을 진행하며 3만 명이 각종 프로그램과 워킹 투어에 참가하고 있다. 영국도 이미 1967년에 트레일의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길의 권리(Right of Way)'의 법제화에 나섰으며 일본 또한 1970년대에 ’토카이 자연보도‘를 시작으로 트레일 시스탬의 구축에 나섰다.

이제 제주4·3올레길도 곧 펼쳐질 예정이다. 민주올레에는 김명곤 전문화부장관, 도종환 시인, 서명숙 제주올레이사장, 이해찬 시민주권 대표, 정지영 영화감독, 현기영 소설가 등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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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1 09:01 2010/04/0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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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라는 유령

‘빨갱이’라는 유령


김 관 후


지난 주말 초등학교 동창회 프로그램으로 도내 관광을 다녀왔다. 마지막 코스로 제주4·3편화공원을 찾았다. 동창들 중에는 제주4·3당시 부모를 잃거나 친족들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십여 명이 넘었다. 소위 ‘빨갱이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일생을 살아온 동무들이다. 그들을 행방불명임 표석이 세워진 장소로 안내했다. 자신의 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표석 앞에서 한동안 말을 잃은 동창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미어짐을 느끼며 다시 제주4·3평화기념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리는 조선인민의 아들들이다. 우리는 노동자와 농민의 아들들이다.......모든 애국 동포들이여! 조선인 인민의 아들인 우리는 우리 형제를 죽이는 짓을 거부하고 제주도 파병을 거부한다. 우리는 조선 인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싸우는 진정한 인민의 군대가 되려고 봉기했다........” 여순사건 당시 제주출동거부병사위원회의 성명서 내용 중 일부이다.

제주4·3을 진압하기 위한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단독정부를 저지하기 위해 전라남도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14연대 소속 군인들을 시작으로 '여순사건'(1948년)은 시작되었다. 아직도 우리 겨레의 가슴에 아픈 역사로 남아 있지만, 여순사건은 제주4.3과 그 뿌리가 닿아있다. 고립무원의 섬에 갇힌 제주 민중을 지지하고, 통일조국을 염원하면서 일으킨 의거란 점에서 역사적 상징성이 크다. 최초 봉기에 참여한 2천여 명의 일반병사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14연대 병사들이 동참했고, 지역민중들이 함께 깃발을 들었다. 항쟁은 삽시간에 순천·광양·구례·보성·고흥·곡성 등 전남 동부지역으로까지 확산됐다. 민중의 뿌리는 제주에서처럼 고립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화두로 등장한 '빨갱이'. <'빨갱이'의 탄생>(김득중, 선인, 2009)이라는 책이 최근 발간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여순사건과 이승만 반공국가의 탄생을 다룬 학술서적이다. 지은이는 여순사건을 통해 한국의 '빨갱이' 탄생을 재조명하고 반공국가의 형성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빨갱이'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운동이나 민족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지칭하였고, 해방공간에서 공산주의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빨갱이란 단지 공산주의 이념의 소지자를 지칭하는 낱말이 아니다. '빨갱이'란 용어는 도덕적으로 파탄난 비인간적 존재, 짐승만도 못한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를 천하게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빨갱이'. 가슴이 떨리고 내려앉는 단어이다. 61년 전에는 그 어떤 전염병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무서운 병이 '빨갱이'가 아니였을까? 이 병에 걸리면 100% 목숨을 잃고 가족과 친척까지 굴비처럼 엮여서 깊은 산골짜기나 바다에서 총에 맞아 죽어갔다. 삼대 혹은 그 이상으로 오랜 세월동안 '붉은 딱지'를 달고 살면서 국가로부터 연좌제로 옥죄어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했다. 이 지독한 '빨갱이'라는 전염병이 20세기를 넘어 21세기로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기에 '비국민'인 '빨갱이'는 초법적으로 죽음을 당했다. 이승만은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국가를 세웠다. 이승만은 국민을 '좌'와 '우'로 나누어 '비국민'을 제거대상으로 보고, 각종 단체와 민주인사까지 '빨갱이'로 몰아서 정치보복과 학살을 자행했다고 지은이는 말하고 있다. 반면 국방부에서 간행한 공식 간행물에는 여순사건을 '여수 제14연대 남로당 세포들이 대한민국을 전복하기 위해 일으킨 군내의 쿠데타'이며 남로당 중앙과 지방 좌익들이 일으킨 반란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빨갱이. 남한 사회에서 빨갱이는 일차적인 사회악이며, 심지어 때려 죽여도 죄 될 것 없는 인간 이하의 존재였다. 김득중의 <'빨갱이'의 탄생>은 그 빨갱이, 혹은 빨갱이를 만든 세력이 어떻게 태어났으며 60여년 동안 남한의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녀왔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저자의 결론은 "빨갱이는 ‘여순항쟁’이라는 기념비적이고 유혈적인 사건을 통해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승만을 정점으로 한 남한의 기득권 세력은 반대 세력인 공산주의자를 '양민을 학살하는 살인마, 비인간, 같은 하늘 아래 살지 못할 존재'로 만드는 데 여순사건을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여순사건을 통해 전면적으로 등장한 국가폭력은 빨갱이를 없애기는커녕, 끊임없이 빨갱이를 만들어냈다"고 강조한다.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관광문화해설사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동창들은 제주4·3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며, 초등학교 시절 이승만 생일이 되면 그를 찬양하는 글짓기 대회에 참가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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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관후

2010/03/16 10:19 2010/03/1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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