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 체험으로 역사는 생동한다

경계인 체험으로 역사는 생동한다

김 관 후

최인훈은 그의 장편소설 『광장』에서 "한국 정치의 광장에는 똥오줌에 쓰레기더미만 쌓였어요.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이게 한국 정치의 광장이 아닙니까?"라고 쓰고 있다. 밀실과 광장의 필요성을 말하던 주인공 이명준은 결국 제3국으로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다. 만약 우리가 이명준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그리고 지금의 이명준은 어떤 길을 갈까.

‘경계인’(境界人)은 ‘남’과 ‘북’, 한민족으로서 갈라진 두 사회 체제를 이어 줄 접점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한민족의 매개인’이라는 자기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남과 북, 그 어느 것에도 완전하게 소속될 수 없는 자이다. 경계인의 생활체험은 독자적인 가치관·감수성을 키우며, 우수하고 창조적인 의의를 가져오는 수가 있어 예술가·사상가·학자 등이 배출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제주출신 경계인 김시종 시인과 송두율 교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일동포 시인 김시종은 1949년 6월 제주4·3의 악몽에서 벗어나 일본으로 탈출한다. 그렇지만 그는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시대를 경계의 벽으로 허무는 문학을 소통의 매개이자 희망으로 삼았다. 그는 제주4·3의 상처를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얼굴로, 그렇게 일본에서의 삶 속에서 격렬하게 근현대사를 이끌어 갔다.

“길들여 익숙해진 재일에 머무는 자족으로부터/ 이방인인 내가 나를 벗어나/ 도달하는 나라의 대립 틈새를 거슬러 갔다 오기로 하자// 그렇다, 이젠 돌아가리/ 노을빛 그윽이 저무는 나이/ 두고 온 기억의 품으로 늙은 아내와 돌아가리 ”(<돌아가리> 부분)

“사전에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내 표현 중에 가끔 '조선'이라는 어구가 나오는데, 이건 남북을 통한 총체어로서의 '조선'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재일작가 김시종 '나의 문학 나의 고향' 첫 글)

송두율 교수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고 일컬었다. 1994년 10월에 그가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강의할 때였다. 독일인 동료들이 그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너의 머리 속에는 칸트나 헤겔과 한국이 공존하는데 힘든 노릇이 아니냐?” 이에 대해서 송 교수는 이렇게 답하였다: “어려워도 할 수 없지 않느냐, 그것이 한국과 유럽 사이의 경계인의 숙명이 아니냐”(송두율, “연보/ 처음 그려보는 자화상,” 역사는 끝났는가, 당대, 1995, 377-8).

그가 평생 부여잡은 화두들은 ‘경계’라는 개념에 직접 맞닿아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남과 북의 경계, 철학과 사회과학의 경계, 동과 서의 경계, 현대와 탈현대의 경계…. 2000년에 벌어진 그의 귀국 좌절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은 <경계도시>(감독 강석필)였다. 경계의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 있는 탓에 경계인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2003년 9월 귀국, 2003년 10월 구속, 2004년 1심 징역 7년, 2004년 7월 2심 징역 3년·집행유예 5년, 2008년 대법원의 판결까지. 오랫동안 끌어온 송두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21세기 우리들은, 김시종과 송두율의 경계인 체험에 동참할 수 있을까? 그들의 고난이 민족의 고난의 현장을 상징하는 한 지표로서 우뚝 설 수 있을까? 우리 민족의 문화와 사상의 한 횃불이자 민족의 갈림을 잇는 데 기여할 한 진정한 접점으로서, 그들이 우리의 역사를 자유롭게 견인할 그 날이 하루속히 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

'경계인'은 기존의 경계선을 허문다. '경계인'은 이쪽과 저쪽이 모두 숨 쉴 수 있는 틈을 만드는 사람이다. 남과 북을 가르는 휴전선이라는 경계선의 틈을 열어 서로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게 하는데 경계인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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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8 09:12 2010/05/2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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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모윤숙

친일파 모윤숙


김 관 후


지난 4월 20일 서울강남문화원강당에서는 서울시단(詩壇)과 강남문화원이 공동 주최하는 영운(嶺雲) 모윤숙(毛允淑) 시낭송회가 열렸다. 시낭송과 더불어 성기조 시인의 「펜클럽의 대모, 영운 모윤숙」이라는 주제 강연도 있었다. 시낭송회에서는 모윤숙의 여러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그렇다면 모윤숙은 어떤 인물일까? 그리고 어찌하여 꼭 모윤숙일까? 그리고 강남문회원이 왜 이런 행사를 주최할까?

모윤숙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이다. 친일인명사전이란 구한말 이래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지지, 찬양하고 민족의 독립을 방해 혹은 지연시키며 각종 수탈행위와 강제동원에 앞장서는 등으로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인물사전이다. 사전에는 해당 인물의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 주요행적 등이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해방이후 모윤숙과 인도인 쿠마라 P.S. 메논의 스캔들은 유명하다.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미군정, 친일 인사, 이승만의 밀실 정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대표로 한국에 입국한 메논은 모윤숙과의 만남을 계기로 남한 단독 선거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힘을 실어주는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 유엔총회에서 남한 단독 선거가 통과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처음부터 단정수립 반대국이었던 인도의 대표로서 한국에 온 메논은 모윤숙의 노력(?)으로 이승만과의 단독 대좌를 했는가 하면, 이광수와도 자리를 마련해 즐거운 한때를 가졌다. 단정수립 확정 후 메논이 한국을 떠난 뒤의 심경을 모윤숙은 “고마운 사람! 나만 아는 잊을 수 없는 은인.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우정과 신의에 가득 찬 영혼을 가진 세계의 외교관이었다. 이 박사는 실로 그 은혜를 잊을 수도, 또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윤숙은 어떤 친일행위를 했을까? 일제의 어용화를 위하여 만들어진 조선문인협회 문예대강연회의 연단에 선 것을 시작으로 모윤숙은 임전대책협의회, 조선교화단체연합회, 조선임전보국단 부인회 등 각종 여성 관련 친일단체에서 활약을 했다.

조선 여인으로 하여금 고루한 민족 관념을 버리고 일본의 서양 정복전에 협력해야 한다는 주제를 노래한 시 「동방의 여인들」(『신시대』, 1942. 1)에서 이렇게 노래한다.“비단 치마 모르고/ 연지분도 다 버린 채/ 동아의 새 언덕을 쌓으리다/ 온갖 꾸밈에서/ 행복을 사려던 지난 날에서/ 풀렸습니다/ 벗어났습니다// 들어보세요/ 저 날카로운 바람 새에서/ 미래를 창조하는/ 우렁찬 고함과/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산 발자국 소리를// 우리는 새날의 딸/동방의 여인입니다”

그리고 일본군의 싱가포르 점령을 찬양하는 “2월 15일 밤! / 대아시아의 거화! / 대화혼의 칼이 번득이자 / 사슬은 끊이고 / 네 몸은 한 번에 풀려 나왔다 / 처녀야! 소남도(昭南島)의 처녀야!”(「호산나 소남도」,『매일신보』, 1942. 2. 21)라는 시를 썼다. 싱가포르를 소남도로 고쳐 부른 일제의 침략을 미화한 시에서 ‘동방’의 단결을 강조하면서, 침략과 점령을 일본에 의한 해방으로 풀이한다.

그렇다면 친일문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친일반민족 행위 708명에 포함된 문인은 시 분야에 김동환 김상용 김안서 김종한 김해강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이찬 임학수 주요한 최남선, 소설·수필·희곡 분야에 김동인 김소운 박영호 박태원 송영 유진오 유치진 이광수 이무영 이서구 이석훈 장혁주 정비석 정인택 조용만 채만식 최정희 함대훈 함세덕. 평론 분야에 곽종원 김기진 김문집 김용제 박영희 백철 이헌구 정인섭 조연현 최재서 홍효민 등이다.

시인 성기조는 이번 강남문화원 강연에서 “모윤숙은 90년, 타계할 때까지 불같은 정열로 일생을 살았지만 어느 누구를 잡고도 그 정열을 숯덩이처럼 태워보지 못하고 가슴을 꼭 닫고 살다간 여인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찬양 일색으로 마무리하였다. 강남문화원이 주최한 성기조의 「펜클럽의 대모, 영운 모윤숙」의 강연 소식을 들으면서, 정부지원을 받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제주지역 문화원들 사업도 철저하게 점검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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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4 16:52 2010/05/1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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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모윤숙

김 관 후

지난 4월 20일 서울강남문화원강당에서는 서울시단(詩壇)과 강남문화원이 공동 주최하는 영운(嶺雲) 모윤숙(毛允淑) 시낭송회가 열렸다. 시낭송과 더불어 성기조 시인의 「펜클럽의 대모, 영운 모윤숙」이라는 주제 강연도 있었다. 시낭송회에서는 모윤숙의 여러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그렇다면 모윤숙은 어떤 인물일까? 그리고 어찌하여 꼭 모윤숙일까? 그리고 강남문회원이 왜 이런 행사를 주최할까?

모윤숙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이다. 친일인명사전이란 구한말 이래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지지, 찬양하고 민족의 독립을 방해 혹은 지연시키며 각종 수탈행위와 강제동원에 앞장서는 등으로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인물사전이다. 사전에는 해당 인물의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 주요행적 등이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해방이후 모윤숙과 인도인 쿠마라 P.S. 메논의 스캔들은 유명하다.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미군정, 친일 인사, 이승만의 밀실 정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대표로 한국에 입국한 메논은 모윤숙과의 만남을 계기로 남한 단독 선거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힘을 실어주는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 유엔총회에서 남한 단독 선거가 통과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처음부터 단정수립 반대국이었던 인도의 대표로서 한국에 온 메논은 모윤숙의 노력(?)으로 이승만과의 단독 대좌를 했는가 하면, 이광수와도 자리를 마련해 즐거운 한때를 가졌다. 단정수립 확정 후 메논이 한국을 떠난 뒤의 심경을 모윤숙은 “고마운 사람! 나만 아는 잊을 수 없는 은인.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우정과 신의에 가득 찬 영혼을 가진 세계의 외교관이었다. 이 박사는 실로 그 은혜를 잊을 수도, 또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윤숙은 어떤 친일행위를 했을까? 일제의 어용화를 위하여 만들어진 조선문인협회 문예대강연회의 연단에 선 것을 시작으로 모윤숙은 임전대책협의회, 조선교화단체연합회, 조선임전보국단 부인회 등 각종 여성 관련 친일단체에서 활약을 했다.

조선 여인으로 하여금 고루한 민족 관념을 버리고 일본의 서양 정복전에 협력해야 한다는 주제를 노래한 시 「동방의 여인들」(『신시대』, 1942. 1)에서 이렇게 노래한다.“비단 치마 모르고/ 연지분도 다 버린 채/ 동아의 새 언덕을 쌓으리다/ 온갖 꾸밈에서/ 행복을 사려던 지난 날에서/ 풀렸습니다/ 벗어났습니다// 들어보세요/ 저 날카로운 바람 새에서/ 미래를 창조하는/ 우렁찬 고함과/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산 발자국 소리를// 우리는 새날의 딸/동방의 여인입니다”

그리고 일본군의 싱가포르 점령을 찬양하는 “2월 15일 밤! / 대아시아의 거화! / 대화혼의 칼이 번득이자 / 사슬은 끊이고 / 네 몸은 한 번에 풀려 나왔다 / 처녀야! 소남도(昭南島)의 처녀야!”(「호산나 소남도」,『매일신보』, 1942. 2. 21)라는 시를 썼다. 싱가포르를 소남도로 고쳐 부른 일제의 침략을 미화한 시에서 ‘동방’의 단결을 강조하면서, 침략과 점령을 일본에 의한 해방으로 풀이한다.

그렇다면 친일문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친일반민족 행위 708명에 포함된 문인은 시 분야에 김동환 김상용 김안서 김종한 김해강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이찬 임학수 주요한 최남선, 소설·수필·희곡 분야에 김동인 김소운 박영호 박태원 송영 유진오 유치진 이광수 이무영 이서구 이석훈 장혁주 정비석 정인택 조용만 채만식 최정희 함대훈 함세덕. 평론 분야에 곽종원 김기진 김문집 김용제 박영희 백철 이헌구 정인섭 조연현 최재서 홍효민 등이다.

시인 성기조는 이번 강남문화원 강연에서 “모윤숙은 90년, 타계할 때까지 불같은 정열로 일생을 살았지만 어느 누구를 잡고도 그 정열을 숯덩이처럼 태워보지 못하고 가슴을 꼭 닫고 살다간 여인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찬양 일색으로 마무리하였다. 강남문화원이 주최한 성기조의 「펜클럽의 대모, 영운 모윤숙」의 강연 소식을 들으면서, 정부지원을 받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제주지역 문화원들 사업도 철저하게 점검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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